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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 매화마을 청매실농원 이야기 - 2,(2018년 3월 25일) 본문

국내 山行日記/그곳에 가고싶다

섬진강 매화마을 청매실농원 이야기 - 2,(2018년 3월 25일)

물흐르듯이순리대로 2018. 3. 26. 23:00

청매실농원으로 들어선다,

입구에서 부터 만개한 매화를 보면서 넘처나는 사람들 틈에 끼여 밀려서 들어간다

청매실농원에서는 매화(梅花)를 노래한 시(時)가 적힌 이런 시비(詩碑)가 많이 있다,

그 중에서도 첫번째 만난 시비(詩碑)다,

도사리에서도 가장유명한 매화밭은 버려진땅 산기슭을 매화천국으로

천지개벽 시켜놓은 청매실 농원이다, 청매실농원은 시아버지가 1920년대부터 매화나무를 심기

시작한 곳에서 50년동안 매화를 키우며 살아온 홍쌍리여사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청매실농원을 비롯한 광양매화마을은 눈(雪)을 머리에 이고 피여난 청매화,

백매화, 홍매화가 저 마다의 아름다움을 자랑하듯 화사한 봄을 불러들이는 곳이다, 변해버린 청매실농원 입구에서

느낀 삭막함이 그나마 이 장면으로 다소 풀어진다, 내가 알든 매화마을 입구는 이렇게 기억되여 있기 때문이다,

청매실농원의 장독대가 보인다,

무려 2500여개나 되는 장독에는 매실청을 비롯해 된장과 고추장 매실장아찌 등이 일년 열두달 익어가는 곳이다,

지금 광양전역에 흰눈처름 피여 있는 매화는 이곳 매화마을

청매실농원에서 부터 시작되였다, 청매실농원의 주인 홍쌍리여사는, 젊은시절부터 섬진강변

야산 돌밭을 개간해 매실을 심고 매실로 매실청과 장아찌, 등 장류를 개발한 분이다,

예전에 매실은 매화꽃을 보기위해 관상용으로 심었고 약용으로 심었을뿐

그저 줘도 먹지도 않든 과실이다, 홍쌍리 여사가 매실을 심어 수확한 매실 활용법을 널리 알리면서

인근 농민들이 매실농사를 짓게 된다, 덕분에 섬진강변 농부들은 매실로 먹고 산다,

2018년 3월의 마지막 주말인 오늘 25일까지 매화축제가 열린다,

강변의 척박한 땅이였든 이곳이 매화철에 100만명이나 찾는 관광지가 되였다,

매화가 이니였어면 아직도 이곳은 아직도 깊은잠에 들어있을 오지 지만 오늘 이곳은

많은 사람들로 넘처나는 전국 제일의 관광 명소가 되였다,

하늘이 보이지도 않을 만큼 온 천지가 매화다,

매화가 떨어진 자리에 잎이 나면서 매실이 열리지만 봄을 알리는 매화(梅花)가

귀한 것은 꽃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잎보다 꽃이 먼저 피는 매화는 추운 날씨에 파여난다,

 하얀 꽃과 은은하게 배여나는 매화 향은 선비들이 좋아할수 밖에 없는 매력이 있는 꽃이다,

매화는 엷은 분홍빛이 감도는 흰 꽃을 피워낸다, 꽃으로는 매화나무고 열매로는 매실나무다,

옜날부터 매화 향기는 후각이 아니라 청각으로 듣는 향기로 전해 내려온다

강변 공기는 매화향이 가득하다,

아침이면 섬진강 매화밭은 물안개에 싸이고 비가오면 이곳은 매화비가 내린다,


지리산 앉고  

 섬진강은 참 긴 소리다,

~ 중략 ~

이 미친 향기의 북채는 어디 숨어 춤추나

 매화 폭발 자욱한 그 아래를 봐라

 뚝, 뚝, 뚝 듣는 동백의 대가리들

선혈의 천둥  난타가 지나간다,

(문인수 - 채와 북 사이, 동백진다 중에서)

맨손으로 돌산을 개간해 매실과 50년을 함께 살아온 청매실농원 홍쌍리 여사는 농축액을 비롯해

장아찌등의 가공식품을 만들어서 약제용 매실을 먹거리로 대중화했다, 물론 오늘날 매실이 웰빙식품의 대명사가

되기까지는 2000년에 방영한 드라마 허준에서 매실로 전염병을 고치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현대인들의 웰빙식품에 대한

인지도가 커지다보니 매실청 담그는 계절이되면 설탕이 평소의 두배나 팔리는 시대가 된 것이다,

관상용에서 근대적인 매실농사가 처음 시작된 곳이 청매실농원이다,

들리는 말로는 홍쌍리여사의 시아버지가 1930년대 초 일본에서 가저온 매화나무 묘목을

이곳에 심어면서 부터라고 하는데 이곳에서 부터 마을 전체로 보급된 매실나무가 섬진강변 8km

산기슭에 매실 단지가 들어서게 되는 국내최대의 매실 생산지가 된다,

홍쌍리여사는 경남 밀양출신이다,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여윈후 부산국제시장에서

건어물과 과일장사를 하든 작은 아버지 집에서 장사를 배우며 지냈는데 그때 밤을 공급해 주시든 분의

며느리가 되여 22세때에 이곳으로 시집을 왔다고 한다

시집을 와서보니 시집은 약 45만평이나 되는 땅을 가진 대농으로 밤과 논 밭등의 농사를 짓는

집안이 였어나 그 당시 광양은 전기도 안들어오는 오지였다, 대도시에 살다가 광양산골로 시집온 새댁은

이곳은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도망갈 궁리만 하고 살았다,

그러든 어느날 시아버지께 도시에 나가 살고 싶다고 했더니

시아버지는 아무 말없이 밥상을 마당으로 집어 던젓다, 그렇게 몇번을 하고서야 도망갈 생각을 접고

병든 남편 병 수발하고 농사를 지었어나 힘에 부쳐 울고있어면 시아버지는 니가 내 며느리가 되여줘서 고맙다,

어려운 산을 넘어면 평지가 나오는 법이라 달래 주었다고 한다,

시아버지는 16살때 일본으로 건너가 탄광광부로 일하면서 13년동안 돈을 모아

밤나무와 매화나무 묘목 5000그루 씩을 사가지고 귀국해 고향인 광양 마을 뒷산에 심어

당시만 해도 생소헸든 매실로 오매(烏梅 -덜 익은 매실을 연기에 쪼여 만든 약제) 등을 만들어 한약방에

공급하는 등 매실에 대한 사랑이 각별했든 분으로 일려지는 분이였다,

결혼한지 10년 농사에 이력이 날때 쯤 시아버지가 일본에서 낳은 배 다른 시숙이 하든

광산산업이 망하면서 채권자들에게 많은 농토를 모두 다  빼았기면서 재산은 모두 채권자에게 넘어가고

버려진 못쓰는 땅인 지금의 청매실농원이 된 야산만 남았다, 그러나 홍쌍리여사는 절망의 기로에서

남 들은 처다보지도 않든 땅에 매실을 심었다고 한다

결혼 후 처음 매실을 만나 50년동안 매실과 살아 온 이곳 청매실농원의

주인인 홍쌍리여사는 맨손으로 혼자의 힘으로 혼자만의 방식으로 여기까지 왔다,

돌산에 젊음을 바치니 황무지가 천국이 되였다,

청매실농원의 또다른 볼거리인 푸른대나무 숲,

이 대나무 밭은 영화에도 등장하는 유명한 곳 이기도 하다,

예전에 대나무 숲에는 장독대가 있었는데 지금은 오솔길이 나 있고

그 길로 관광객이 다닌다,

이제 대나무 숲을 지나 매실농장을 돌아볼 시간이다

수천 수억만송이 매화는 끝이 안보일 정도로 곱게 피여있다,

그래서 오늘은 꽃길을 걷는 날이다

만개한 매화를 가깝게도 보고

차분히 매화 속살을 들여다 도 본다,

고목에 핀 매화,

몽울이 터지면서 피여난 매화가 어지러울 정도다,

누가 이 나무에다 맑고 고운 희디 흰, 소금을 뿌렸을까,

수 억만송이 목화 솜을 뿌렸을까?

어디를 보건 어느 곳을 바라보 건 보는 건 개인의 자유지만

미친듯이 내 뿜는 매향에 누구나 다 취할 정도다,

섬진강을 바라보며 넋을 잃고 앉았다

예전에는 매화나무 아래 보리를 심고 맥문동을 심어 푸른 카펫위에

매화를 피워 냈었는데 오늘은 보리도 맥문동도 볼수없어 아쉽다, 그래도 내 기억속에

자리잡고 있어니 그것으로 만족해야 할것 같다,

조금 높이 올라서서 섬진강을 내려다 본다,

발아래 굽이쳐 흐르는 섬진강 물줄기는

아무리 보아도 선경(仙景)에 버금가는 전경이다,

홍매화 와 백매화가 함께 어우려지는 쫏비산 자락

산 기슭은 가파르지만  멀리서 보는 사람은 그저 정신이 멍할 지경이다,

매화를 찾아 새벽부터 천리 먼길을 찾아 왔지만 정말 오기 잘했다는 생각을 지울수 없다,

오늘이 아니면 다시 일년을 더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매향에 취해 붉어진 얼굴은 사진을 편집하고 나서야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