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흐르듯이 순리대로
퇴계와 기생두향이의 매화이야기 - 4,(2018년 3월 25일) 본문
청매실농원 외곽으로만 돌다가
이제 오래된 매실나무가 있는 원래의 매화밭으로 들어 왔다,
이곳은 고목에 속하는 매화 나무들이 있는 곳이다,
오늘 외곽으로 돌아보니 거의가 최근 수년동안에 새로 심은 매화나무가 많았는데
고목에서 피는 매화가 더 멋스럽고 고운게 사실이다,
오늘은 가슴 시리도록 아프고 애절했던 기생 두향이와 퇴계 선생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를 해보려한다, 역사상 매화를 가장 사랑한 사람은 퇴계이황 선생이었다.
평생 매화를 노래한 시만도 100편이 넘는다. 선생이 매화를 그리도 끔찍이 좋아한 것은 꿋꿋한 선비의
기개 때문이기도 했지만 두향이라는 한 여자 때문이기도 했다
선생이 단양 군수로 부임한 것은 48세 때였다.
그리고 두향은 시와 서예와 가야금에 능했던 18세의 관기였다.
두향은 첫 눈에 선생에게 반했지만 안동포 처럼 뻣뻣했던 선생은 두향의 애간장만 녹일 뿐,
한 번도 눈길을 주지 않았다.
그러다가 부인과 아들을 잇따라 잃자
선생도 텅 빈 가슴을 한 떨기 설중매 같았던 두향으로 채우지 않을 수 없었다.
두향은 시와 서예, 가야금에 능했고 특히 매화를 좋아했다.
그렇게 퇴계와 두향의 사랑은 깊어갔다
그러나 그들의 사랑은 불과 9개월 만에 끝났다.
선생이 풍기로 전임되었기 때문이었다. 이별을 앞두고 선생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내일이면 떠난다. 기약이 없으니 두려울 뿐이다, 그러자 두향은 먹을 갈아 붓을 들었다
어느듯 술 다하고 님 마저 가는구나
꽃피고 새우는 봄날을 어이할까 하노라,
이날 밤의 이별은 결국 너무나 긴 이별로 이어졌다.
두 사람은 1570년 퇴계가 6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21년 동안 한 번도 만나지 않았다.
퇴계가 단양을 떠날 때 그의 짐 속에는 두향이 준 수석 2개와 매화 화분 하나가 있었다.
이때부터 퇴계는 평생을 이 매화를 가까이 두고 사랑을 쏟았다.
퇴계는 비록 두향을 가까이 하지는 않았지만 매화를 두향 보듯 애지중지했다.
퇴계가 나이가 들어 모습이 초췌해지자 매화에게 그 모습을 보일 수 없다면서 매화 화분을
다른 방으로 옮기라고 했을 만큼 퇴계의 매화 사랑은 숭고했다
퇴계를 떠나보낸 뒤 두향은 간곡한 청으로 관기에서
빠져나와 퇴계와 자주 갔었던 남한강가에 움막을 치고 평생 그를 그리며 살았다,
퇴계는 그 뒤 부제학, 공조판서, 예조판서 등을 역임했고, 말년에는 안동에 은거했다,
그리고 세상을 떠날 때 퇴계의 마지막 한 마디는 이러했다 "매화에 물을 주어라." 퇴계의 그 말속에는
그의 가슴에 항상 두향이가 가득 했다는 증거였다
평생 그 매화를 가까이 하던 선생은 임종에 이르러 시한 수를 남겼다.
내 전생은 밝은 달이었지만,
몇 생애나 닦아야 매화가 될까?
두향을 단양에 홀로 남겨두고 떠나 말년에 안동 도산서원에서
후학을 가르치며 그녀를 잊지 못하고 지낼때, 어느 날 두향이 인편으로 보낸
난초를 받고 단양에서 함께 기르던 것임을 알아보고는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한다, 퇴계는
새벽에 일어나 자신이 평소에 마시던 우물 물을 손수 길어 두향에게 보냈다,
이 우물물을 받은 두향은 차마 물을 마시지 못하고,
새벽마다 일어나서 퇴계의 건강을 비는 정화수로 소중히 다룬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정화수가 핏빛으로 변함을 보고 퇴계가 작고했음을 간파한
두향은 소복차림으로 단양에서 머나먼 도산서원을 찾아간다.
나흘만에 당도하였으나 신분을 밝힐 수 없는 처지인지라
먼발치에서 세 번 절하고 단양으로 되돌아와 남한강에 몸을 던져 퇴계를 따른다.
두향의 사랑은 한 사람을 향한 지극히 절박하고 준엄한 사랑이었다.
이들의 애절한 사랑을 확인한 선생의 후손들은 그 매화를 도산서원에 옮겨 심었다.
그 매화는 지금도 대를 이으면서 도산서원을 찾는 이들에게 은은한 사랑의 향기를
전해주고 있다. 매화는 이른 봄에 피어나 평생을 춥게 살지만 그 향기를 팔아 안락함을 구하지 않는다.
그래서 매화가 선비의 꽃이 된 것이다
농원에 있는 정자다, 정자에 올라서면 청매실 농원의 곳곳이 모두 다 조망된다,
이런 전망이 좋은 곳에서는 느긋하게 앉아 시인흉내를 내야하는데 사람들이 빼곡히 올라가 있어
편히 둘러보기도 마땅치 않다, 대신 한시나 몇 구절 적어본다,
달밤에 핀 매화 퇴계 이황
獨倚山窓夜色寒 산창에 기대서니 밤기운이 차가운데
梅梢月上正團團 매화가지 끝에는 둥그렇게 달이떴다
不須更喚微風至 살랑살랑 미풍을 기다릴것도 없이
自有淸香滿院間 집안에 맑은 향기가 절로 가득하다,
매화가지 끝의 밝은 달 -율곡이이 -
梅花本瑩然 매화는 본래부터 환히 밝은데
映月疑成水 달빛이 비치니 물결 같구나
霜雪助素艶 서리 눈에 흰 살결이 더욱 어여뻐
淸寒徹人髓 맑고 찬 기운이 뼈에 스민다
對此洗靈臺 매화꽃 마주 보며 마음 씻으니
今宵無點滓오늘 밤엔 한 점의 찌꺼기 없네
一氣巡還往復來 천지기운 돌고 돌아 오고 가나니
天心可見臘前梅 섣달에 피는 매화 천심을 보겠도다,
直將殷鼎調羹實 은정* 의 조갱실이 분명하온데
向山中落又開 산 속에 부질없이 피고 지누나.
-고려후기의 고승 일연이 지은 시 -
雪擁金橋凍不開 금교엔 눈이 쌓이고 얼음도 풀리지 않아
鷄林春色未全廻 계림의 봄 빛은 아직도 완연히 돌아오지 않았는데,
可怜靑帝多才思 예쁘다 봄의 신은 제주도 많아
先著毛郞宅裏梅 먼저 모랑의 집 매화나무에 꽃을 피웠네
백운산 중턱을 온통 휘감아 돌며있는 수많은 매화 숲속을
정신없이 헤메다가 문득 고개를 들고 보니. 발 아래에 그림 처름 다가오는 섬진강의
푸른 물길과 은빛 모래가 눈에 들어 온다
섬진강가 임시주차장에는 전국에서 봄을 찾아온 사람들을 실어 나른
많은 차들이 "매화축제장을 통하는 길목을 빼곡히 메우고 있다, 광양매화축제는
우리나라에서 매년 제일 먼저 열리는 지방 축제다,
내려서서 정자를 올려다 보니
매화에 묻힌 정자는 더욱 운치가 있어 보인다,
4월의 꽃인 목련도 피여 있다,
이곳이 따듯한 남쪽나라 라서 그런가 보다,
하얀 목련 / 양희은
♪♬ 하얀 목련이 필 때면 다시 생각나는 사람
봄비 내린 거리마다 슬픈 그대 뒷 모습 ♬♪
이제는 이곳을 떠나야 하는 시간이다,
아침에 재첩국에 실망을 했지만 그래도 파전에 막걸리 한잔은 해야 할것 같아서다,
이곳을 마지막으로 다녀간지가 3~4년정도 되였는지 알았더니 기록을 찾아보니 7~8년 정도가 되였어니
이제 다시 이곳을 찾아 언제 다시 올려는지?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나서야 주차장으로 간다,
우리가 타고온 버스는 이곳에서 약 2km정도 떨어저 있는 섬진교 아래 둔치에 있다,
여기는 매화마을 버스 정류장이다, 혹시라도 하동이나 광양에서 시외 버스로
매화마을을 찾는다면 이 정류장에서 내려야 한다,
매화마을 앞 섬진강 이다,
이 섬진강을 따라 하류로 내려가면 섬진교가 있다,
섬진강가의 매화와 섬진강 모래톱,
그리고 강건너 마을까지 동양화가 가 그리는 모델은 이런 곳이 아닐까
천막들이 보이는 것을 보니 주차장인 모양이다,
아침에 내려주고 간 버스가 이곳에 주차하고 있기 때문에 걸어 왔지만 행사장에서
이곳까지 서틀 버스도 운행한다, 그러나 사람이 많아서 기다리는 시간이면
걸어서 이동하는게 더 빠르다,
축제기간동안 사용되는 임시 주차장인 이곳에서 버스를 타고
다시 5시간 이상 달려야 서울로 돌아가야한다, 장장 왕복 10시간 이상 걸리는
긴 여행을 했지만 보상은 충분했다, 아름다운 매화와 함께 산수유도 진달래도 만났다,
더 이상 무었을 바라겠는가? 그리고 오늘 함께해준
정겨운 친구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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