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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흐르듯이 순리대로

창덕궁 대조전 후원과 성정각 (2018년 7월 5일) 본문

국내 山行日記/그곳에 가고싶다

창덕궁 대조전 후원과 성정각 (2018년 7월 5일)

물흐르듯이순리대로 2018. 7. 6. 13:19

대조전에서 동쪽 끝으로 나와서 후원으로 들어간다,

후원은 전각이 들어 서 있는 곳과 산으로 이루어진 경사도에 단을 쌓고 그곳에 꽃과 나무를 심었다,

우리나라 건축은 남향을 위주로 하기 때문에 전각의 후원은 어둡고 스산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각종 장식이

베풀어진 아름다운 굴뚝이 있어 후원은 오히려 더 밝고 정겨운 공간이 되기도 한다,

창덕궁 희정당 굴뚝은 그림 문양과 문자 문양이 새겨진 아름다운 굴뚝이다,

먼저 그림 문양을 보면, 코끼리, 송록(松鹿), 쌍학, 기린 문양이 각 면에 하나씩 부조되어 있다. 이 중 송록은 

십장생의 구성원인 소나무와 사슴을 따로 떼어 만든 문양으로 장수와 상서를 의미한다.

쌍학문은 날개를 활짝 편 두 마리의 학을 대칭적으로 배치한 형식이다.

새가 건축 장식 문양으로 널리 사용된 이유는 천성이 자유롭고 그 형태 자체가 장식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코끼리는 상(象, xiàng)과  상(祥, xiáng)의 중국식 발음이 유사한 데 연유해서 상서 혹은 길상의 의미를 얻었다.

기린은 봉황과 같이 왕도 정치가 이루어져 나라가 태평하면 나타난다고 하는 상상의 서수(瑞獸)이다.

산의 경사를 마감하면서 자연스럽게 조성된 계단식 후원이다 보니

특별히 꾸며야 하는 것은 계단을 쌓아 흙의 흘러내림을 막는 정도면 충분하지 않았을까, 경사도에

따라 계단의 단수도 다르다, 그렇게 마무리를 해 놓어면 나무도 살고 꽃도 피기 때문이다,

침전의 후원에서

궁의 후원으로 왕과 왕비가 드나 들든 문이다, 

침전이니 불을 지펴야 한다,

전각에는 이렇게 아궁이 들이 있는게 보인다,

왕비가 거처하는 침전 건물에는 용마루가 없다,

아궁이가 있어니 굴뚝이 있는데 궁궐 후원의 굴뚝을 장식하는 문양 속에는

길상·벽사에 대한 기원과 인간의 원초적 욕망이 깃들어 있으며, 도교적 이상세계를 지향하는 소박한 꿈이 펼쳐져 있다.

창덕궁 대조전에는 각각의  전각을 이어주는 또하나의 길이 있다,

바로 이렇게 건물 아래로 나 있는 길이다,

이제 대조전 후원을 나간다,


대조전후원을 나가는 길에 보이는 희정당 뒷편, 이곳에도 굴뚝이 있다,

대조전 후원을 나와서 본 희정당 정면과 인정전

誠正閣 이다, 대조전 후원으로 가는길 조선시대 동궁이라고 불리던 왕세자가 경서(經書)를

공부하던 건물로, 성정 이라는 이름은 대학(大學)의 성의(誠意) 정심(正心) 에서 앞 글자를 따서 붙였다.

숙종의 경계세자십잠급소서(警戒世子十箴及小序) 순조의 성정각명(誠正閣銘) 등이 남아 있다.

희정당의 동남쪽에 자리했는데,

왕세자가 하루에 3번 조강(朝講), 주강(晝講), 석강(夕講)의 서연(書筵, 冑筵)을 받았던 곳이다. .

언제 건립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1705년(숙종 31)에 왕세자가

이곳에 있다가 뜰에 내려와 비답(批答)을 받았다는 기록이 있으므로, 이전에 건립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왕세자의 공간이었지만, 국왕이 사용하기도 했다.

1782년(정조 6)에 동궁전인 중희당(重熙堂)이 건립되면서, 이 건물은 초계문신의 시험을 치르거나

대신을 만나는 곳으로 활용되어 희정당(熙政堂)과 함께 편전으로 쓰이기도 했다.

1895년(고종 32)에 내의원(內醫院)을 전의사(典醫司)로 개편한 뒤,

내의원에 있던 현판, 의약 도구 등을 옮겨와 내의원 물품 창고로 사용하였다


창덕궁 후원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매화나무다,

창덕궁 일원, 인정전 동쪽,

선정전과 희정당, 그리고 대조전 성정각 등 크고 작은 전각들이 보인다,

창덕궁 후원으로 들어가는 입구다, 이곳 오른쪽 매표소에서 표를 구입해서

정해진 시간에 입장을 해야 하며 문화재 해설사가 동행한다, 후원관람시간은 약 70분 정도다,

- 문화재청 자료를 인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