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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흐르듯이 순리대로

화석정(花石亭)과 반구정(伴鷗亭)에서 2019년 새해 첫날을 보내며, 본문

국내 山行日記/그곳에 가고싶다

화석정(花石亭)과 반구정(伴鷗亭)에서 2019년 새해 첫날을 보내며,

물흐르듯이순리대로 2019. 1. 1. 22:20

이곳은 경기도 파주시 파평리 율곡리 산 100-1 번지,

임진강변에 있는 花石亭 화석정이다,


화석정은 원래 고려 말의 유학자인 길재(吉再)선생이

조선이 개국하자 벼슬을 버리고 향리에 돌아와 후학을 양성하던 곳이었는데 사후 그를 추모하여

서원을 세웠다고 한다. 그 후 폐허가 되었다가 율곡 이이의 5대조인 강평공 이명신(康平公 李明晨)이세종 25년(1443년)에

정자를 세우고 1478년 증조부 이의석(李宜碩)이 중수하였고. 이숙함이 화석정이라 하였으며,

이이 때에 이르러 다시 중수한 유서 깊은 곳이다.

화석정 花石亭 현판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썻다, 요즘에는 과거를 부정하는

사람들이 점령군처름 설처대는 세상이라 박대통령이 쓴 이 현판도 언제 떨어질지 모르겟다, 

과거를 지운다고 역사까지 달라질까? 역사는 역사일뿐이다, 잘못된 역사라고 부정을 하고 강제로 바로 잡는다고 해서

역사가 달라지는게 아니다, 잘못된 역사라면 되풀이 하지 않는게 역사를 바로 잡는 순리다,

그러니 이 현판 자체도 역사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

왼쪽 끝, 아래와 같은 시를 새긴 花石亭 詩 비가 있다, 이 詩는 율곡이 8세때

화석정(花石亭)에서 지은 팔세부시(八歲賦詩)라고 한다,


林亭秋已晩 / 騷客意無窮 / 숲속 정자에 가을이 이미 깊어드니 / 시인의 시상은 끝이 없구나,

遠水連天碧 / 霜楓向日紅 / 멀리보이는 물은 하늘에 잇닿아 푸르고 / 서리 맞은 단풍은 햇볕을 행해 붉구나,


山吐孤輪月 / 江含萬里風 / 산의에는 둥근 달이 떠 오르고 / 강은 만리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머금었네,

塞鴻何處去 / 聲斷暮雲中 / 변방의 기러기는 어느곳으로 날아 가는가? / 을고 가는 소리 저녁 구름속으로 사라지네,


강물이 휘감아 돌아 흐르는 임진강변 언덕에 세워진

화석정 조망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아름다운 곳인 것 같다,


그리고 坡州 파주 臨津八景 임진팔경에 대한 안내도 있는데,

워낙 작은 글씨라 읽어 보기도 어렵다, 그래도 사진을 찍어 붙인다,





정자 주변에는 느티나무가 울창하고 그 아래 임진강에는 밤낮으로 배들이 다녔다,

밤에는 고기잡는 등불이 무척이나 아름다웠다고 하지만 지금 임진강은 도로와 철조망이 가로막고 있다,


이곳으로 찿아가는 대중교통은

경의중앙선 문산역에서 173m거리에 있는, 한진1차 문산역정류장에서

92번, 92-1번, 95번 버스로,(15개 정류장 약 16분정도 걸림) 율곡2리 정류장에서 하차,

약 1,4km 거리에 있는 화석정까지 도보로 약 20분 정도 이동해야 한다,

경기 파주시 문산읍 사목리 190에 있는 伴鷗亭(반구정)으로 이동했다,

고려말에서 세종조까지 장 기간 임금을 보필하고 89세로 장수하신 청백리 황희정승(1463~1452)이

말년에 관직을 사양하고 고향에 돌아와 갈매기를 벗삼아 지낸 곳으로 임진강 하류

 절경지역에 세워진 정자가 있는 곳이다,








신문으로 들어가면 제일 왼쪽에 첫번째 로 월헌사가 있다,

월헌사는 소양공이신 월헌 선생 부조묘 다,

영의정 방촌 선생의 현손으로 1472년에 출생 중종반정에 공을세워 분의정국공신이며

호조, 형조, 공조, 예조, 참판및 경기 강원 관찰사,등을 역임했고 1523년 중종 19년 갑신장원군으로

책봉되고 예조판서, 한성부윤을 지내신 분이다,

그리고 그 안쪽에 황희선생의 영당지인

황희선생의 영정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곳이 있다,



1452년 황희정승이 세상을 떠나자 유덕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방촌영당,

영당 옆에 있는 건물이 황희 선생의 제사를 지내는 경모재 다,

황희선생 동상이다,

동상 오른쪽과 왼쪽에는 詩가 새겨진 동판이 있다,

오른쪽에는 관풍루라는 詩 가 왼쪽에는 청산임황로 시작되는 詩가 새겨저 있다,



황희선생 동상은 강변 언덕에 있는

앙지대(仰止臺)와 반구정 伴鷗亭 을 바라보고 서 있다,

앙지대(仰止臺)가 조금 높은곳에,

조금 낮은 곳에 있는 반구정 伴鷗亭, 그저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느낌이 다르다,

양지대로 올라간다,

양지대에서 보이는 임진강 하류,

반구정 伴鷗亭 이다,

이곳 伴鷗亭 반구정에 낙조가 들면 더 없는

아름다움을 한꺼번에 느끼게 해주는 곳이다. 허목(許穆)의 반구정기(伴鷗亭記)에는 "조수때마다 백구가

강위로 몰려들어 모래사장 벌판에 가득하다" 라고 했다.

伴鷗亭(반구정)에오르니 만감이 교차한다, 민족의 비극을 안고 흐르는 임진강,

멀리 북한이 보이고 정자옆의 철조망과 군 초소가 통일을 기원하는 방문객들에게는 안타까움을 더한다, 

더욱이 철조망이 반구정과 임진강을 가로 막아 임진강가로 들어갈수 없는 분단의 현실이 더욱 가슴아프다, 그래도

예나 지금이나 임진강은 유유히 서해로 흘러가는 것을 보니 자연은 그대로 인데 사람만 변했나 보다,

청백리 황희가 관직에서 물러나 갈매기를 벗삼아 여생을 보냈다는 伴鷗亭,(반구정)

나라가 무너질 지경인 지금의 현실에서 보면 반구정의 의미는 크다,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였는지?

그럴수록 청렴, 성실, 강직했든 황희선생의 생애가 가슴을 때린다,

세종을 도와 새로운 나라 조선의 기틀을 마련하였던 황희 정승은 태조의 부탁을 받은

두문동의 고려 신하들이 왕은 미워도 백성은 도탄에 빠지게 할 수 없다 하여 추천한 인물이다, 태종 때 도승지의

자리에 올라 가까운 거리에서 왕을 보필하는 등 신임이 두터웠으나 이후 왕세자 폐출 문제로

양녕대군을 물리치는 것을 반대하여 귀양을 가기도 했다,

왕이 된 세종은 양녕대군을 옹호했던 황희를 등용하고 그의 도움으로 조선 최고의

 치세의 시대를 열게 된다. 이곳에는 정자인 반구정을 비롯해, 황희 묘, 기념관과 황희의 영정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사당인 방촌영당이 함께 있다. 반구정은 한국전쟁 때 불이 난 것을 1960년에 다시 지어

건물의 예스러움은 덜하지만, 자리는 그대로인지라 반구정에 올라 바라보는 풍경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가 않은 것 같다,

반구정은 고려말엽에 문과를 급제하고 망국과 함께 두문 불출하다가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하려 새 왕조와 협력하여 정승을 18년간 재임하고 관직에 물러나 자연으로

돌아온 곳이다, 그러나 지금의 사람들은 압구정은 잘 알아도 반구정은 잘 모른다,


압구정은 조선의 재상 한명회가 지였든 정자다, 서울 강남 압구정동 근처

어딘가에 있었다고만 알려저 있을뿐 지금은 흔적도 없다, 그러나 방촌 황희(1363~1452)가 지은 반구정은

아직도 그대로 남아 북녁땅이 보이는 파주 임진강변에서 오늘도 방문객을 맞이한다,

손에 피를묻힌 사람과 덕으로 정치를 한사람의 역사? 판단은 각자의 몫이다,

神門 밖에 있는 황희선생 기념관이다,

기념관에 전시된 모든 것을 다 올릴수는 없지만 그중 대표적인 것 몇가지를 추려서 가저왔다,





















첫글자 사진이 빛에 바랫지만 두문불출의 유래다





반구정으로 가는 대중 교통편은 경의중앙선 문산역,

한진1차문산역 정류장에서 053, 055, 버스로 17개 정류장(약 14분정도 걸림)을 지나

사목1리 반구장 정류장에서 내리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