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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흐르듯이 순리대로

종자산 & 한탄강 하늘다리(2019년 2월 24일) 본문

국내 山行日記/인천·경기·강원

종자산 & 한탄강 하늘다리(2019년 2월 24일)

물흐르듯이순리대로 2019. 2. 25. 18:23

등산 안내도를 참고해서 1코스인 중2리 해뜨는 마을에서 정상으로 올라

3코스 중리저수지로 하산하는 등로로 종자산을 오른다, 이 코스는 정상까지 오름길 1,6km

정상에서 중리저수지 까지 하산길 3,3 km로 등산 거리는 약 5km 정도다,

종자산(種子山)은

포천시 관인면 중리와 연천군 연천읍에 걸쳐 있는 산이다,

종자산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남동쪽 산 중턱 바위굴에 옛날 이곳에서 3대 독자 부부가 아이를 갖기 위해

백일기도를 올린 후 아들을 낳았다고 해서 종자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산으로, 같은 뜻인 씨앗산이라고도 불린다.

또 한편으로는 이 산의 정상이 마치 종지를 뒤집어 놓은 형상처럼 생겼다고 해서 종지산으로도 불려오다가

한자로 표기될 때 종자산이 되었다는 설도 있다.

높이 642.8m의 종자산은 포천시의 서북쪽에 위치해 연천군과의 경계를 이루는 산이다.

모산은 지장봉이고, 동쪽으로 한탄강을 끼고 기암석으로 이루어진 산봉우리가 병풍처럼 솟아 있다.

북쪽 산기슭에는 중리지가 있으며, 동쪽 산자락에는 국도 87호선이 남북으로 뚫려있다.

종자산의 정상으로 오르는 산행 길은 5개다. 종자산 남쪽에 위치한 중리의

해 뜨는 마을에서 오르는 길이 하나 있고, 종자산 동쪽의 중 3리 마을 회관에서 출발하여 오르는 길이 2개,

그리고 종자산 북쪽의 중리지에서 출발하여 오르는 길이 2개 있다고 하는데 안내등로는 3개다,

종자산에는 유명한 사찰이나 대형 폭포는 없어나, 한탄강의 협곡과 기암괴석의 산봉우리가

어우러져 등산객들이 많이 찾는다. 정상에 오르면 주변이 비교적 탁 트여 있어 전망이 좋으며, 개성의 송악산이나

멀리 철원평야까지도 시야에 들어온다. 진달래와 단풍이 아름답고 북쪽 능선으로는 싸리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 위 내용은 포천향토문화백괴사전 참고했다, -

종자산 1코스 등로, 시작해서 얼마 오르지 않아서 이런 계단이 있는데

이 철제 계단이 가파른 등로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다,

종자산은 가파르지만 별다른 시설이 설치되여 있지 않다,

 안전시설이라면 손으로 잡고 올라갈수 있는 굵은 로프를 걸어놓은게 전부다,

그래도 이 밧줄이 없다면 무척 힘들 것 같은 등로다,


그렇게 잠시 올라가면 자연적인 환경이 아니라

바위로 된 산을 석재로 캐내여 생긴 듯한 공터가 있는데 이곳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이곳이 바위굴성이다,

쉼터에서 다시 조금만 더 위로 올라가면 중2리 마을이 보인다,

정상까지 1,6km 정도의 잛은 거리니 예상은 했지만

오름길 코스는 아주 재미있고 아기자기한 가파른 길이다, 그렇다고 위험한 길은 아니다,


어찌보면 오로지 한줄 걸려려 있는 이 로프가 생명줄 정도?

종자산의 모산은 지장봉이다, 이 일대의 산들은 모두 모산인 지장봉을 닮아

암봉이나 바위가 많다, 그래서 일까, 종자산도 예외가 아니다, 수직단애와 암봉, 암릉이 있는가 하면 협곡이 있고 벼랑이 많다.


종자산은 한탄강변에 붙어 솟아있다. 한탄강은 여느 강과 다르다. 협곡이 깊이 패인 안으로

강물이 흐른다. 종자산은 그 높이에 비해 무척 억세고 강인해 보이는 산이다. 산엔 여기저기 바위들이 돌출해 있다,


그래도 중간 중간에서 내려다 보이는 마을의 모습은

다른 곳과는 달리 운전면허 시헙장 같은 모습도 보인다, 운전면허 시험장은 아니니 무슨 용도 일까?


거칠고 가파르고 숨 가쁜 오른길에서 능선으로 올라섯다,

능선에는 8부능선이라는 이정표가 세워저 있다, 이곳 8부능선에서 정상까지는 500m라 알려준다,

그러니 약 1,1km정도가 조금은 난해한 오름길이라고 보면 된다,

능선에 올랏어니

잠시 휴식을 하며 주변 산군락을 두루 살펴 보기도 하고


제일 마지막으로 올라오는 분들도 많이 힘든 모습?이다,


다시 정상으로 올라간다,

올라가는 길이기는 하지만 능선에서 보이는 주변 산 군락은 전형적인 아름다운 산 군락 모습이다,


종자산으로 가는 길은 지장봉, 관인봉으로 가는 길과 같다.

지장봉이나 관인봉이 중리에서 버스를 하차하는데 비해 종자산은 중리 직전 마을인 늘거리마을에서

하차하면 된다. 산행은 늘거리마을 뒤로 난 산길로 들어서면서부터 시작된다.

해뜨는 마을이란 돌비석이 도로변에 있는 길로 올라가면 청소년수련원이 있고

길은 그 뒤 공터로 들어서 왼쪽 골짜기로 들어가서. 좁은 골짜기안으로 올라가면 급경사 산길을 따라오르게 된다,




8부 능선에서 정상까지 500m,

다른 산과는 달리 능선길 500m가 무척이나 길게 느껴진다, 그러다가 나즈막한 언덕에 보이는 정상석

이곳이 종자산 정상이다,

종지를 뒤집어놓은 형상이라고 해서 종자산이라고 부른다는

설이 있는 정상이라 그런지종지를 뒤집어 놓은 공간처름 협소하기는 하다,

정상에서 보이는 아랫녁




정상에 올랐어니 이제는 하산이다,

오름길에서는 한톨도 없든 눈이 하산길은 음지라 얼어 붙어 있다, 내림길도

여전히 로프가 걸려 있기는 하지만 매우 미끄럽다,







정상에서 중리저수지 까지 3,3km 이니

이제 절반정도 내려 왔다,

하산길에는 싸리나무와 드릅나무가 많이 보인다, 인삼에 버금간다는 드릅나무는 껍질과 뿌리는

약용으로 쓰이고 봄철 새순은 나물로 먹는다, 건위, 이뇨, 진통, 거풍, 강정, 신장염, 당뇨, 신경쇠약, 발기력 부족,

관절염 등의 치료약의 재료로 도 사용되며 봄에는 새순을 뜯어 무쳐 먹거나 부침, 취김, 소금절임, 등

반찬으로 먹기도 하는데 건강에는 아주 좋은 나무로 알려져 있기도한 나무다


나무 사이로 보이는 저수지 저곳이 중리저수지 인가보다,

내림길 내내 미끄러운 눈길을 내려왔다,

아이젠은 아주 유용했지만 흙으로 범벅이 되기도 했다,


낚시터 방갈로가 많이 보이는 저수지 이제 이곳 중리 저수지에서 종자산행은 끝이난다,

그리 먼거리는 아니지만 아름답고 멋스러운 산이 종자산인듯 하다,

약 5km에 3시간 20분이나 걸렸어니 산행 난이도는 조금 높은 편이다,

많은 산을 다녀 본 사람이지만 종자산은 오늘이 처음이다보니 낮설어? 그럴수도 있겠지만

수도권에서 가까운 거리의 산이니 나들이 겸해서 다녀올수도 있다,

종자산 가는 버스는 포천시청 맞은편 정류장에서 62-1 또는 62-2번을 타고 가야하는데

중리마을은 하루에 몇차레만 운행하므로 한번 버스를 놓치면 2 -3 시간은 기다려야 할 정도로 대중교통편은 열악하다,


중리저수지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포천 한탄강 하늘다리로 이동했다,


이곳은 한탄강 협곡으로 단절된 생태경관단지(2019.12. 준공예정)와

테마파크 (2019.12. 준공) 등을 연결하는 이색적인 형태의 육교로 길이 200m, 성인(80㎏) 1,500명이 동시에

지나갈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고, 한탄강 협곡을 지상50m 조망할 수 있다.



하늘다리위에서 보이는 한탄강

한탄강 하늘 다리는 한탄강 주상절리의 비경을 구경 할 수 있는

주요 산책 코스로 하늘다리에서 시작하여 북쪽 방향으로 멍우리 협곡을 따라 하늘다리로 돌아오는

약 6km 구간은 한탄강을 양 옆을 따라

 강을 바라보며 걷다가 한탄강 아래로 내려가 징검다리를 건널 수 있으며 강 아래서

협곡의 비경을 감상 할 수 있는 최적의 코스로 조성되였다,

한이 많아서 한탄강이 아니라

여울이 있는 강, 그래서 한탄강이라 적혀 있다,

한탄강 주상절리길 안내도 도 있다,

한탄강 현무암 협곡과 비둘기낭 폭포지역 일대는

드라마와 영화찰영지로도 유명한 곳이라 안내되여 있기도 하다,








종자산과 한탄강 하늘다리 일정을 끝내면서 한탄강 현무암협곡과는

전혀다른 이야기를 이번여행길 일기에 남기려고 한다, 이곳과는 전혀 다른 쌩둥맞은

이야기를 남기려는 이유는 오늘 트레킹하면서 지인에게 들은 이야기가

너무도 가슴 아픈 사연이였기 때문이다,


625동란이 발발했든 시기 경기도 양평군 지평리 최씨댁 큰 딸이 18세에

결혼해 아들을 낳았는데 남편은 그해 의용군으로 징용이 되여 전선에 투입되였어나

그후 소식이 끊기여 생사를 알수가 없었다, 홀로 남겨진 최씨댁 큰딸은 어린 아들을 데리고

평생을 홀로 살면서 매끼니 밥을 지어 단 하루도 거르지않고 따듯한 밥을떠서 부뚜막에

올려놓았다, 행여라도 남편이 언제든 집으로 돌아오게 되면 바로 밥을 먹을 수

있을거라는 간절한 바램으로 밥상을 차렸다,


그렇게 차려놓은 밥은 남편이 돌아오지않아 식은밥이되면 또 새로밥을 지어서

 밥상을 차리고 식은밥은 본인이 먹었다, 그러다보니 평생을 식은 밥만 먹고 살아가는

것도 모자라 들에서 일을 하다가도 문득 남편이 집으로 돌아왔을 것 같은 예감이 들면 그 길로

집으로 달려가 확인을 하기가 다반사였다, 그렇게 평생을 눈물로 살다가 지금은 먼길을

떠나셧고 그때 낳은 아들도 지금은 70 이 넘은 노인이 된 세월이 흘렀다,


의용군으로 참전했든 남편은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생사를 알길이없다,

남편은 국가를 위해 참전을 했어나 군번없는 의용군이였기 때문에 가족은 참전사실을

증명할수도 없어 국가유공자로 인증을 받을수도 없었다, 그저 할수있는 일이라고는 남편이

 돌아 오기만을 간절히 기다리는 일뿐이였다, 한평생을 남편이 살아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기다리다 저 세상으로 떠나신 분의 남편을 향한 至高至純한 사랑이

이분에게는 삶이였고 종교가 아니였을까?


 純愛譜 라는 말은 이렇게 평생을 남편을 향한 아름다운 사랑을

한분에게 어울리는 말이 아닐까? 한많은 사연을 가슴에 묻고 지금은 고인이 되신

최씨댁 큰 따님에게 존경과 경의를 표하며 비록 국가는 아무일도 한게 없지만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한송이 꽃이라도 가신분의 무덤가에 바치고 싶다, 그래서

평생을 남편을 기다리다 망부석이 된 한많은 여인의 삶의 이야기를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