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흐르듯이 순리대로
서울성곽길(한양도성,10) 와룡공원 ~ 숙정문 ~ 창의문(2015년 4월 18일) 본문
북악으로 가는길
여기서 부터는 주택지와 붙어 있지 않은 산속의 도성이다,
입구에는 최근에 보수한 흔적이 많이 남아 있는가 싶더니
여기서부터 성곽은 태조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듯 자연석을 옮겨와서 작은 돌을 고이고 받처 쌓은 축성 기법이 보인다,
한양도성을 쌓은 기록을 보면 1395년 농한기인 1월 9일부터 49일. ~ 8월6일 부터 49일간 98일간 전국의 백성 19만 7천 4백명이 동원되여
10분이면 갈수 있는 삼청각도 보이고,
삼청각이 보이는 길에 한양도성 북대문 격인 숙정문으로 가는 입구
말바위 안내소에서 숙정문에서 부터 창의문구간 까지의 통행에 필요한 절차를 마처야 한다,
주민등록증 등의 신분증을 제시하고 신원확인을 한후 발급하는 비표를 목에 걸고 넘어가야 한다,
신분증이 없어면 갈수 없는 유일한 한양 도성길인 셈 이다
잘 정비되여 있는 계단을 조금 올라가면 숙정문인데,
이 구간은 비표 발급 시간이 오후 4시에 끝난다, 결국 백악구간을 넘자면 4시까지는
이곳 말바위안내소 든 창의문 안내소까지 도착해야 한다, 시간이 지나면 통행할수 없다,
숙정문(肅靖門) 또는 숙청문(肅淸門)은 조선 시대에 건축한 서울성곽의 4대문 중 북쪽에 있는 문으로,
북대문(北大門)으로 부르기도 한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동(三淸洞) 산 2-1번지(북악산 동쪽 고갯마루)에 있다,
서울성곽을 이루는 사대문(四大門) 가운데 하나로, 도성의 북쪽 대문이다.
1396년(태조 5) 9월 도성의 나머지 삼대문과 사소문(四小門)이 준공될 때 함께 세워졌다.
원래 이름은 숙청문(肅淸門)으로, 도성 북쪽에 있는 대문이라 하여 북대문, 북문 등으로도 부른다.
숙정문이 처음 기록에 등장하는 것은 1523년(중종 18)이며, 북정문(北靖門)이란 표현도 나오는데,
숙청문과 숙정문이 혼용되다가 뒤에 자연스럽게 숙정문으로 바뀐 것으로 추정된다.
도성 북문이지만, 서울 성곽의 나머지 문과는 달리 사람의 출입이 거의 없는
험준한 산악지역에 위치해 실질적인 성문 기능은 하지 않았다.
1413년 풍수지리학자 최양선(崔揚善)이 지맥을 손상시킨다는 상소를 올린 뒤에는 문을 폐쇄하고
길에 소나무를 심어 통행을 금지했다. 이후 숙청문은 음양오행 가운데 물을 상징하는 음(陰)에 해당하는
까닭에 나라에 가뭄이 들 때는 기우(祈雨)를 위해 열고, 비가 많이 내리면 닫았다고 한다.
숙정문에서 바라보이는 의정부방향 즉 서울 부쪽 시가지 전경,
숙정문이 세워질 당시 이곳은 인적이 드문 깊은 산중이였어나 지금은 도시의 끝이 안보인다,
이곳 구간은 사진 찰영이 금지되여 있다,
단지 허용하는 일부 지점과 성곽 외부의 찰영은 가능하다, 정상석은 찰영가능,..
1968년 무장공비가 청와대 폭파 목적으로 침투했을때 치열한 교전이 벌어젓든 역사의 현장이다,
이 소나무는 아직도 총탄의 흔적이 남아있다, 북악능선의 나무와 바위등에는 이런 흔적이 많이 남아있다,
북악산은 높이 342m의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서울의 주산(主山)이다.
서쪽의 인왕산(仁王山, 338m), 남쪽의 남산(南山, 262m), 동쪽의 낙산(駱山, 125m)과 함께
서울의 사산(四山) 중 하나로, 북쪽의 산으로 일컬어졌다,
별칭은 백악산(白岳山), 면악산(面岳山), 공극산(拱極山)으로도 불렸다,
북한산 비봉능선도 손에 잡힐듯 가까운 거리에 보인다,
북악산 한양도성은 2006년 4월 1일 1단계로
홍련사-숙정문-촛대바위(1.1km)의 구간을 부분 개방하였어며
2007년 4월 5일 와룡공원-숙정문-청운대-백악마루-창의문(4.3km)의 구간을 전면 개방했다.
창의문(彰義門)이다,
서울 4대문 사이에 있는 4개의 소문 중 하나로 그 중 서북쪽 문이다.
축성시에는 이 곳이 양주와 북한으로 가는 길과 이어져 있었다.
이 곳은 근처 계곡의 이름을 따서 자하문(紫霞門)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1396년 (태조 5년)에 지어졌으며 1413년 (태종13년)에
풍수학자 최양선이 창의문과 숙정문이 경복궁의 양 팔과 같아 길을 내면 지맥이
손상된다고 주장하여 닫혔다. 이곳에는 인조반정때 공신들의 이름이 적힌 현판이 걸려 있다.
원래 창의문은 문루가 없었으나 나중에 세워졋다.
창의문은 지금 남아있는 4소문 중 가장 원래의 모습을 잘 유지한 문이다.
창의문 앞 도로에는 최규식 경무관의 동상이 있다,
68년 청와대를 습격할 목적으로 남파된 무장공비들과의 교전중 사망한 종로경찰서장 동상이다,
창의문 길 건너에는 윤동주 시인의 문학관도 있다,
이곳 윤동주 시인 문학관부터는 서울 한양 도성중 인왕산 구간이다,
성곽은 여기서 인왕산 정상과 사직터널을 지나 경희궁 옆으로 해서 강북삼성병원으로 이어진다,
지금의 강북삼성병원은 돈의문(서대문)이 있든 곳이다, 지금 돈의문은 흔적조차 없고 돈의문터 로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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