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흐르듯이 순리대로
인천 상륙작전 첫 수복지 월미도(2021년 5월 30일) 본문
차이나타운에서 짜장면으로 점심을 먹고 인천역으로 왔다,
월미도로 가는길은 인천역을 지나 가야하기 때문이다, 월미바다역이 보인다,
월미바다역에서 열차표를 구입하려고 했더니
인터넷 예약제로 운영하기때문에 주말에는 예약을 해야한다고 한다,
인터넷 예약처 / 월미바다열차 (wolmiseatrain.or.kr)
바다열차를 탈수 없어 걸어서 월미도로 간다,
들머리는 월미바다역 건물 옆 공중에 설치되여 있는 바다열차
레일만 따라가면 되니까 길 찾는 문제는없다,
인천항 연안부두
8부두 철망울타리에 흐트르지게 핀 장미꽃을 보면서
월미도로 들어간다,
인천역에서 월미도까지는 걸어서 약 30분 정도는 걸린다,
머리 위 공중에는
인천바다 열차가 지나가는 것도 보인다,
국내 최장 도심형 관광모노레일 월미바다열차는
2019 한국관광공사가 제시한 한국인이 가봐야 할 곳 한국관광100선에 선정된
인천 월미도를 순환하는 국내 최장 도심형 관광모노레일이다,
인천역에서 들어가면서 보면 바다열차 첫역은 월미공원역이다,
인천항 8부두와 인천항 7부두 를 지나서 여기까지 오늘길은 약 1,2km 정도다,
월미바다열차 운행거리는 6.1km, 평균시속 9km의 속도로
월미도를 한 바퀴를 도는데 걸리는 시간은 약 42분 정도다, 월미바다열차의
궤도는 지상으로부터 7m에서 최고 18m 높이까지라고 한다,
바다열차 레일이 보이는 곳 오른쪽은 월미공원이고
왼쪽바다는 인천항 6부두다, 월미도와 인천항 일대는 인천상륙작전의 주무대다,
신랑 신부가 맞아주는 월미도로 들어 왔다,
일반적으로 만조때 바다로 둘러싸인 땅을 섬이라 하지만, 월미도는
1920년대에 돌로 축대를 쌓아 육지가 되였다, 육속화되기 전 이 섬의 둘레는 1㎞,
육지와의 거리 1㎞의 아담한 섬이었으며, 남쪽에는 소월미도가 있었다.
소월미도와 함께 인천 내항 북서쪽 방파제 역할을 한다.
월미도는 인천상륙작전의 본거지로 군부대였다,
2001년 인천시가 매입후 월미도 일대에 공원을 조성했다,
월미도에는 조선 후기 임금의 임시 거처인 행궁이 설치되었고,
행궁은 존속기간 내내 영종진 관할이었다. 월미도 행궁은 대체로 18세기 전반까지는
유지된 듯하다. 그래서일까? 월미공원에 뜬금없이 궁궐마당이 조성되여 있다,
경복궁은 조선을 세운 이성계가 고려의 수도인 개경으로 부터 도읍을
한양성으로 옮겨 신도경영을 착수함과 동시에 1394년(태조3년)9월 신궐조성도감을
두고 -중략- 궁 명칭은 시경에서 글귀를 따 경복궁이라 하고 궁내에 조성된 전각은 총 390여
칸이였다, 본 공원 궁궐마당은 경복궁의 입지, 건물 배치등 전통 궁궐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위해 조성했다고 안내판에 적혀있는데, 월미도에 왠 궁궐마당?
조선숙종18년 1962년 창덕궁 후원에 조성된 연못,
애련이라는 이름은 송나라 주련계가 연꽃을 사랑하여 쓴 애련설에서 따온
창덕궁 애련지도 재현해 놓았다, 세금은 이런데 쓰는게 아니다,
1922년 석축을쌓아 육지와 연결한 월미도는 섬 역할이 끝났다.
그리고 1920년대 후반부터 15년간 전성기를 누리던 월미도는 태평양전쟁에서
일본이 패망하고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모든 시설이 초토화 된다.
월미도는 인천개항을 전후해 외세의 각축장이 되었는데,
일제강점기에는 일본군사기지, 6,25사변 때는 인천상륙작전의 전초기지로
미군용지로 이용된일도 있었든 우리민족 애환의 역사공간이다,
월미전통공원 언덕에 있는 정자 이름은 월휴정이다,
조망처 겸 휴식터 인가 보다,
월휴정에서 주변을 둘러본다, 둥근형태의 구조물은 대한제당
사료공장 사이로다, 월미도 남쪽 시내방향 인천항은 1, 2, 3, 5, 6, 7, 8부두가 있고
북쪽 청라방향은 북성포구 만석부두 그리고 인천항 4부두가 있는 북항이다,
보이는 대한제당 사이로는 만석부두에 있다,
궁궐터를 재현해 놓은 곳도 보인다,
이곳은 월미전통공원이라 했다,
공원이름도 궁권터를 재현해 놓았어니 전통공원이라 붙였나보다,
월휴정에서 작은 연못가로 간다,
데크길 가운데 화강암으로 둥굴게 징금다리도 만들어 놓았다,
징금다리 옆 연못에는 잉어가 떼지여 놀고있다,
공원이란 이런 시설이 아이들에게는 오래도록 남을 추억거리가 아닐까?
연못을 지나가면서 돌아 본 월휴정,
흙을쌓아 언덕을 만들고 정자를 지였지만 신록이 배경을 더해주니 아름답다,
전통공원에서 월미산 정상으로 올라간다,
만만치않은 데크계단길을 따라
올라가는 중간에도 정자가 만들어저 있다,
이름을 알리는 현판은 없었지만 멋스러운 전경이다,
1차 데크계단 175개를지나 올라온 월미산중덕 둘레길
이 길은 미제7보병사단 상륙 10주년기념비에서 시작해서 월미산을
한바퀴돌아 다시 상륙 10주년기념비로 이어지는 길이다,
일제는 월미도를 풍치지구(風致地區)로 지정하고
순환도로도 개설했어며 목욕탕과, 일본요정 용궁각(龍宮閣)호텔, 동물원,
하계야영 캠프촌 등을 만들어 월미도를 유원지로 만들었다,
월미산중턱 둘레길을 따라 가다가
안내판이 보이는 곳에서 다시 오른쪽으로 계단으로 올라간다,
계단을 오르는 길에는 월미평화의나무 장군나무가 있다,
아기가 태여나면 금줄을 치고 솔가지를 매달아 나쁜 기운을 막고 소나무로 지은
집에서 살며 소나무로 불을 지폈고 나무껍질에서 꽃가루까지 많은 먹거리를 얻기도했다,
밤 하늘의 무수한 별 만큼의 세월동안 고난을 극복하고 뱃고동 소리를 함성삼아
기백과 철갑을 두른 장군으로 당당하게 월미산을 지키고 있다,
- 안내판에 적혀있는 내용이다, -
계속해서 나무계단을 올라간다,
올라가고 또 올라가도 끝이 없을 것 같은 계단길이다,
375계단을 올라서야 도착한 월미산 정상은 넓은 마당이다,
정상까지 운행하는 전동차도 있다,
정상 한켠에는 매점도 있고
여기서 왼쪽으로 조금만 더 가면 정상 전망대도 있는데
정상으로 올라오느라 170계단과 375계단을 더해 545계단이나 올라왔더니
힘들어서 매점 의자에 주저앉아, 아이스크림 한개씩으로 더위를 식히며 잠시 쉬였다,
올라 온 길 반대편 길로 내려가면서 인천상륙작전의 이야기를 해 본다,
전쟁은 끝난게 아니라 휴전중임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된다,
월미공원은 6,25전쟁이후 50여년간이나 군부대가 주둔하고 있었다,
인천상륙작전의 본거지였어니 군부대주둔은 필연적이였다, 인천상륙작전은 미군극동군
사령부에서 작전 100-B, 작전 100-C, 작전 100-D의 세 가지 안을 만들었는데 작전 100-B는 서해안 중
인천에 상륙하는 것이고, 작전 100-C는 군산, 작전 100-D는 동해안 주문진에 상륙하는 것이었다.
세 가지 작전에서 최종적으로 작전 100-B가 채택되였고, D-Day는 9월 15일이었다.
작전의 주력부대는 미 제10군단, 주요 부대는 미 제1해병사단과
미 제7보병사단이었다. 미 제7보병사단은 한국에 파병된 다른 부대에서 장교및 기간
요원들을 차출했지만 병력이 부족하자 한국청년 8,000여 명을 선발하여 일본에서 훈련시킨 후
배치시켰다. 이들이 바로 카투사(KATUSA)의 시초다. 한편 국군으로서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한 부대는 제1해병연대와 국군 제17연대다.
인천상륙작전을 개시하기 전 상륙부대는 양동작전을 전개한다.
9월 5일부터 평양에서부터 군산까지, 인천을 포함한 서해안 상륙작전 가능지역에
폭격을 실시했고. 9월 12일부터는 미국과 영국의 혼성 기습부대가 군산을 공격하고, 동해안
전대는 9월 14일과 15일 삼척일대에 맹 포격을 가하며 적을 분산시키는 작전을 했고
한편 1950년 9월 12일부터는 월미도를 제압하기 위한 폭격을 시작했다.
상륙작전은 2단계로 전개되었다. 제1단계는 월미도 점령이었고,
제2단계는 인천 해안의 교두보 확보였다. 제1단계 작전에서는 미 해군이 함포사격을
하는 동안 미 해병연대가 상륙했다. 제2단계에서는 후속 부대들이 해안 교두보를 확보하여
인천시가지 작전을 전개했는데 9월 16일 미 해병사단이 전진교두보를 확보하고
본격적인 진격작전의 토대를 마련할때까지 연합군의 손실은 미미했다,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은 북한군 병참선을 일거에 차단 했으며,
이로 인해 낙동강 방어선에서 반격의 계기가 되고 또한 인천 항만시설과 서울에
이르는 제반 병참시설을 북진을 위해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6,25 전쟁 발발후
4일(6월 29일)만에 빼았겻든 서울을 되찾았다는 심리적인 성공은 국군 및 유엔군의
사기를 크게 제고시키고 북한군에게는 치명적인 패망을 안겨준 작전이였다,
-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인용 -
내려가는길↑갈림길 왼쪽에 월미돈대와 월미포대가 있다, 돈대란?
적의 침입을 막기위해 설치한 방어물로, 성을쌓기 곤란한 능선이나 계곡, 해안가에
흙이나 돌을쌓아 만들었다, 월미도 남서쪽 4부 능선에 있는 둥근모양의 돈대는 외국세력의
접근이 활발했든 조선후기 이들로 부터 인천과 월미도를 지키는 중요한 군사기능을
담당했겠지만 월미돈대에서 전투를 했다는 기록은 찾을수 없다,
포대는 은페가 가능하고 침입하는 외적을 기습 공격할수 있는
지형정 특성을 갖춘 곳에 설치한다, 고종조에 들어 제물포 인근에 외국의
이양선들이 출몰하자 조선정부에서는 1879년(고종16년)인천과 부평연안에 요쇄라
할수있는 화도진과 연희진, 그리고 각 진에서 관할하는 여러 곳에 포대를
축조했는데, 이때 월미도 정상 부근에도 포대가 설치된 것같다,
월미포대에서 조금만 내려가다가
석양정 현판이 붙어있는 정자앞 샛길로 내려간다,
석양정 정자앞 내림길은 나무 계단길로
조금은 가파르다,
내려가는 계단의 길이는 길지는 않아도
나름 멋스러운 길이기도 했다,
이 계단을 내려서면
월미도 이민사 박물관이있는 일대 공원이다,
지금으로부터 110년 전인 1902년, 돈을 벌기 위해
대한민국을 떠나 하와이로 이민을 떠나야 했던 이주 첫 노동자들
102명이 1902년 인천항에서 갤릭호를 타고 하와이로 갔다
19세기 후반, 조선에 대한 서구의 이권 경쟁과 정치적 사건들
속에서 국민들은 빈곤과 혼란을 겪어야 했어며. 이를 벗어나고자 선택한 것이
하와이 이민이다. 당시 하와이에서는 설탕 수요의 증가로 사탕수수 농업에 많은
노동력이 필요해지자 조선인 노동자를 선택하게 되었다.
아래 사진에 보이는 2층 규모의 이민사 박물관에서는
이민의 출발지였던 인천의 개항 당시 모습을 소개하고, 이민이 이루어
지기까지 국내 정세와 하와이 상황 등을 살펴볼 수 있다.
또한 이민자들을 싣고 하와이로 떠난 첫 선박인 갤릭호 모형을 통해
이민자들의 길고 험난했던 여정을 가늠해 볼수있어며 존스목사의 흉상도 전시
되어있다. 초기 이민은 인천 내리교회목사가 주도적인 역할을 했어며
실제로 이민자의 절반 이상이 내리교회 신자였다,
이민사박물관 앞 왼쪽은 인천해사고등학교가 있어며
해안은 인천항갑문이고, 갑문 건너에는 소월미도가 있는 곳으로 인천항은
월미도와 소월미도에 둘러 쌓인 천혜의 요쇄같은 항구다, 우리는
인천항으로 가지않고 월미등대가 있는 이곳으로 왔다,
월미등대길로 잠시 들어가 본다,
월미등대로 가는길 여기도 유원지나 다름없다,
전용부두와 인천항갑문 그리고 소월미도가 보인다,
소월미도 다음에는 인천연안항 여객터미널이 있는 등 인천항 본거지다,
반대편 서북쪽으로는 인천공항이 있는
영종도가 보인다,
사진 왼쪽 희미하게 보이지만 영종도로 이어지는
인천대교가 있는 것도 보인다,
등대길에서 돌아나가는길 월미테마파크 놀이시설이 보인다,
그 앞으로 허공에 길게 한줄로 이어지는 구조물은 인천바다열차가 운행되는 열차선로다,
바다열차는 이렇게 월미도를 한바퀴 돌아서 인천역으로 나간다,
오른쪽 앞에 보이는 바다열차 월미포구 정류장(2층건물)이
있는 곳은 인천역으로 운행하는 버스정류장이다,
이곳에서 10번버스를 타면 인천역까지는 약 10분정도 걸리며
주말에는 매15분 간격으로 버스가 다닌다,
버스를 타고 돌아 온 인천역은
철도가 처음 운행했을때부터 이어오는 한국철도 탄생역이다,
여기는 서울로 가는 전철 1호선 출발역이며
수인분당선 인천역 이기도 하다,
전철 1호선으로 도착한 노량진역에서
수산시장으로 갔다,
요즘 대게가 조금은 가격이 떨어졋다고 해서인데
4kg을 86,000원에 구입해서
2층으로 가면 쪄주고 밑반찬도 제공해주는 식당이 있다
비용은 kg당 8,000원 기타(소주 1병, 맥주1병)등 해서 요금은 47,000원이였다,
세 사람이 133,000원으로 배부르게 먹었어니 대계치고는 싼 편이다,
지도를 크릭해보면 인천항 일대를 상세히 볼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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