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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흐르듯이 순리대로

영남길 제3길 구성현길上(불곡산출구~민영환 묘)2023, 02,19 본문

경기옛길(조선시대 7大路)/영남길

영남길 제3길 구성현길上(불곡산출구~민영환 묘)2023, 02,19

물흐르듯이순리대로 2023. 3. 17. 00:42

고구려에서 이름 지은 옛 용인의 중심 구성현

구성현은 삼국시대 용인이 고구려에 편입되면서 옛 용인의 중심지가 되였된 지역이다, 현재는 기흥구에 편입되였지만 영남길을 걷다 보면 아직도 옛 용인의 중심이 였던 흔적을 곳곳에서 찾아 볼 수 있다,

탄천을 거쳐 구성역을 지나면 잘 보존된 마북동 석불입상과 을사늑약 체결을 반대하며 자결한 민영화의 묘소를 마주 친다, 조금 더 옛 용인의 중심으로 들어가면 용인향교와 옛 구성의 영화를 보여주는 구성동 주민센터가 보인다, 여기서 고즈녁한 법화산의 숲길을 지나면 용인의 신도시로 각광 받는 동백지구 호수공원으로 도착할 수 있다, - 인용자료 경기옛길 홈 페이지 -

영남길 제3길 구성현길 해발고도 지도, - 경기옛깅 홈페이지 -

불곡산출구 무지개마을에서 

미금로 로 나가면

여기는 성남시와 용인시 경계다,

도로로 나가는 방향 왼쪽으로 죽전교차로로 내려간다,

12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지만 초행길이니 죽전 교차로 건너에 있는

죽전감자탕 집에서 뼈 해장국으로 점심을 하고

오른쪽으로 가면

길 안내는 왼쪽으로 가라고 되여 있지만 길이 없는 것 같아서 건물 옆으로 가보니

이렇게 좁은 인도가 있다,

그리고 앞에 보이는 보도 전용 다리를 건너서

오른쪽으로 개천을 따라 내려간다,

그리고 그다음에는 개천에 놓여진 안대지천교

아래로 들어간다,

이어서 계속해 개천을 따라 내려가면

대지교 아래 탄천변으로 연결이 된다,

탄천변에서는 왼쪽 탄천 상류로 가야한다,

탄천에는 흰뺨검둥오리가 많이 살고 있는지? 여름에는 암수 한쌍이 짝지여 습지에 살고 겨울에는 무리지어 생활을 하는 텃새라는 안내도 붙어 있다,

탄천에서 유유히 놀고 있는 오리가 흰뺨 검둥오리다, 암수 1쌍이 짝지여 산다고 하더니 지금 보이는 녀석들도 한쌍이다,

탄천상류로 올라간다,

여기는 연식이 오래된 나무도 보이는데 이 나무는 수양버들 이였다,

이 수양버들 두그루가 탄천 가운데 작은 섬?에서 살고 있는데 얼핏 보는 것 만으로도 족히 100여년은 되였을 것 같은 고목이다,

용인도심을 흐르는 탄천인데도 생각보다 물이 깨끗하다,

그래서 인지 탄천에는 많은 고기 떼가 보인다,

조금은 탁한 물에 잘 견디는 잉어떼가 무리지어 다닌다,

탄천을 구경하면서 올라가다 보니 죽전교가 보인다,

죽전교를 지나가면 탄천 건너에

죽전 이마트가 있다,

이 마트 앞 쪽

죽전2교를 지나가는 길은 탄천변 데크길이다,

탄천과 탄천변 자전거길 그리고 인도인 데크길이 나란히 있다,

데크길로 아치형 다리로 조금 더 올라가면

아치형 다리는 탄천1교이고 여기는 죽전동에 관한 이야기가 안내되여 있다, 죽전동은 정몽주 선생의 이야기가 살아 있는 고장이라는 제목으로 죽전동은 본래 용인군 수지면 지역으로 큰 못이 있어 대지 또는 죽전이라 하였는데 이곳 지명 유래는 모현면 능원리에 있는 포은 정몽주 선생의 묘소와 관계가 깊다,

정몽주 선생의 시신은 개서 근처 풍덕이라는 곳에 모셔졋는데 19년 뒤 1411년 태종 11년에 선생의 고향인 경상도 영천으로 이장하기 위해 풍덕천에 이르렀는데 갑자기 돌풍이 일어나 상여 영정이 날아올라 지금의 묘소에 떨어졋다, 사람들이 영정을 따라 가보니 가히 명당이라 여겨 그 자리에 여기에 모셨다, 만고 충신을 사모하는 민초들에 의해 이곳 지명을 죽전이라 부르게 되였다, 죽이란 대나무로 충신을 뜻하며 절은 마디가 있는 나무이니 역시 대나무라 충신을 의미 허기 때문이다, 이곳 말고도 정몽주 선생으러 인해 지명이 바뀐 곳이 선죽교다, 처음 선지교였어나 피살 후 죽자를 넣어 선죽교가 되였다,

탄천1교 위로 탄천2교가 있다, 탄천 1교와 탄천 2교사이는 직선으로 흐르는 탄천과 죽전 이마트 뒤로 흘러드는 성복천이 합수되는 지점이다,

영남길은 계속해서 탄천변을 따라 올라간다,

탄천2교 다음으로 있는 다리는

독정교다,

독정교를 이어서 있는 넓은 다리는 신세계백화점 경기점뒤 성복천에서 탄천을 지나 은솔공원까지 이어지는 한국철도공사 용인기지 다리다, 다리 폭은 대략 200m는 넘는다,

철도공사 용인차량기지 뒤 탄천변으로 상류로 간다,

이번에는 보정교를 지나간다, 탄천을 건너는 다리가 생각보다 많다,

탄천변으로 올라가는길 오른쪽은 자전거길이고 걷는길은 왼쪽 도로는 용구대로 2469번 길이다,

보정역입구 삼거리 못가서 탄천변에 보정리 독정 이라는 홀로 서있는 정자? 옹기가마터 라는 안내판이 있다, 이런 안내판을 중요시해서 일일이 기록하는 하는 이유는 이런 안내판에 적힌 이야기는 그 지역의 역사가 서려 있는 내용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현재의 연원부락에 보수원이 있었고 그 곳에 큰 정자가 있었다고 하여 보정리라 불렷다고한다, 옛날에 독정 마을 앞에 이씨 성을 가진 선비가 정자 밑에 움막을 짓고 공부하여 과거에 합격한 후 집으로 돌아가 보니 노부모님들이 모두 돌아가시여 페가가 되여 있었다,

오갈데 없는 선비는 과거공부하던 곳으로 돌아와 거처를 정하고 정착하게되여 마을을 형성하게 되였어며 마을 이름도 홀로서있는 정자 정자를 사용했어나 일제 치하에서 獨자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개명되여 두터울 篤자로 고처쓰게 했다, 또한 마을 상류에 조선시대 독을 만들던 가마터가 있어 독쟁이라고 하는 설도 있다,

용인시기흥장애인복지관을 지나고 그 옆에 있는 사각토가 라는 간판이 붙어있는 건물도 지나간다,

탄천변으로 가는 길에는 지역적인 이름이나 특징이 없어므로 가는길 왼쪽 도로변 건물들을 보면서 대략의 위치를 가늠해 본다,

탄천 건너는 경부고속도로 로 서울로 들어오는 차량들이 꼬리를 물고 달린다,

매직 세프 건물도 지나가고

녹십자의 새로운 얼굴이라는 GC 간판이 붙어 있는 곳도 지나 가다보면

이번에는 노란색을 칠한 건물도 보인다,

이 건물은 규모가 상당하다,

건물 끝까지 가서 보니 이 건물은 이마트몰 물류센터다,

탄천변을 따라 오면서 잘 보이지 않던 화장실도 여기에 있다,

경부고속도로 건너에도 용인시 일대의 아파트 단지가 이어진다,

영남길 이야기는 경부고속도로 서울과 부산을 잇는 대동맥 이라는 제목으로 경부고속도로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1968년 2월 1일 서울 연지동 서울톨게이트 자리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참석한 가은데 역사적인 기공식을 가졋고 착공 11개월 만인 1968년 12월 21일 서울 ~ 신갈간 경부고속도로 첫 구간의 개통식을 보게 되였다, 

경부고속도로가 용인시를 통과하는 구간은 17,9km로 풍덕천동, 보정동,  신갈동, 공세동, 고매동, 남사면 진목리를 경유하고 있어 수도권 길목의 교통의 요지로 중요한 역활을 하고 있다, 라는 이야기다,

보정동 탄천 산책로 출발점도 있다, 종점은 약 2km정도로 이곳에서 출발해서 탄천 상류로 가는 모양이다,

탄천에 있는 인도교 와 

조금만 더 위로 올라가면 

구성 1교도 있다, 구성 1교는 구성역 방향으로 갈 수 있는 다리다,

구성1교를 지나서 탄천 건너편을 보니

구성역이 보인다,

구성역 맞은편 탄천변에 이제 막 새로 지은듯 깨끗해 보이는 화장실도 있다,

탄천 상류 하천 폭도 점점 더 좁아지고 양쪽으로는 하천정비 공사중인 것도 보인다,

가는길 왼쪽 즐비하게 보이는 음식점 간판들이 보이는 곳에서 옆 도로로 나간다,

이 도로는 23번 국도 용구대로다,

도로를 따라 조금 더 가다가 구성역으로 갈 수 있는 구성2교 앞에서

건널목을 건너 맞은편으로 간다,

맞은편 인도로 마북삼거리까지 가서

왼쪽 구성로로 들어간다,

이 길은 아주 먼 옛날 삼국시대부터 이어저 오는 용인의 옛 마을로 가는 길로, 이곳 용인 구성현은 삼국시대 용인 지역이 고구려에 편입되면서 부터 옛 용인의 중심지가 되였던 곳이다,

현재는 기흥구에 편입되었지만 아직도 옛 용인의 중심이 였던 흔적을 곳곳에서 찾아 볼 수 있다,

구성동 갈을 가다가 커다란 고목이 있는 이곳은

용인시 향토유적 제52호인 마북리 석불입상 및 석탑이 있는 곳이다,

마북리 석블 입상은 용화전 이라는 전각속에 봉안되여 있는데 문헌에 의하면 본래 용화전은 고려시대 학주사라는 절이 있었던 곳이라고 한다,

마북리 석블 입상 이다, 불상은 직육면체의 몸통에 높은 관을 쓰고 있는데 얼굴은 정방형이고 턱부분은 둥글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널리 유행하는 마을 미륵 신앙의 일종으로 민간에게 치병, 기자, 마을의 수호, 기복 등의 역활을 하며 신앙되였던 불상으로 보인다,

전각 옆에는 석탑이 있는데(사진에는 안보이지만 보이는 방향 우측에 있음) 탑재는 파탑이 되여 쓰러져 있던 것을 수습해 세운 것으로 새로 쌓은 석재중에는 다른 석재가 포함되기도 했다, 영련이 조각된 1층 옥개석 위에 얹혀져 있는 방향석재는 대좌형 기단의 상대석으로 보인다, 그리고 전각 앞으로는 2열로 선정비들이 줄지여 세워져 있다,

전각앞 비석중 오른쪽 제일 앞에 있는 비석은 효자한량 김해 김사철지리 라고 음각된 비석이 있다, 본관은 김해이고 신분이 한량인 효자 김사철 마을이라는 뜻으로, 어느마을 입구에 세워져 있던 것을 옮긴 것 같다,

이곳에 있는 비는 모두 14기로 현령등의 송죽비가 10기, 군수선정비 1기, 효자비가 1기 이고 나머지 2기는 용인과 관련이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 김홍집과 민영준 등의 비다,

마북리 석불입상 및 석탑이 있는곳에서 나가면 바로 왼쪽으로 구성초등학교가 있는데 이 길은 구성초등학교 정문으로 가는 구성로 39번 길이다,

정문에서 본 구성초등학교다, 1935년에 설립 된 학교다,

이어지는 영남길은 구성초등학교 뒤 길이다,

구성초등학교 뒤, 주택이 끝나는 지점 앞 언덕에

경기도 기념물 제8호 민영환 선생 묘가 있다, 민영환 선생의 묘는 원래 수지구 풍덕천동에 있었어나 1942년 후손들이 이곳으로 옮겨 오면서 부인과 합장했다,

민영환선생은 1861년(철종12년)서울에서 태여 났어며은 1878년(고종15) 문과에 급제한 후 여러 요직을 거쳣어며 1897년에 영국, 독일, 러시아, 프랑스,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등 6개국 특명전권공사가 되여 각국을 순방, 서양의 발전된 문물제도를 직접 체험했다,

일제가 을사조약을 강제로 체결하고 조선의 외교권을 박탈하자 을사조약에 찬동한 5적의 처형과 조약의 파기를 요구하는 상소를 올렸어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에 민영환선생은 일제의 팀략을 죽음으로 항거 하기 위해 세 통의 유서를 남기고 자택에서 자결 했다, 민영환의 자결은 당시 사회에 큰 충격을 주어 많은 순국지사들이 그의 뒤를 따라 자결 했다고 한다,

민영환 선생 묘는 봉분 뒤쪽에 높은 언덕을 쌓고 그 위에 담을 설치한 독특한 구조로 되여 있다, 

봉분 앞 석물로는 상석과 향로석이 놓여 있고 좌우로 문인석과 망주석이 각각 한쌍씩 배열되여 있어며 중앙에는 장명등이 있다, 상석 오른쪽에는 1959년에 건립한 묘비가 있는데 앞면 글씨는 이승만 전 대통령이 썻다,

경기옛길 홈 페이지에 영남길 제3길 스템프함 위치는 민영환 선생 묘에 있다고 했다,

안내대로 민영환선생 묘 울타리 앞에 영남길 제3길 스템프 함이 있다,

여기서 찍은 제3길 스템프는 경기도 영남길 민영환 묘소 라는 스템프가 선명하게 찍혔다,

민영환선생 묘소를 나와서

구성초등학교 울타리를 따라 나간다, 보이는 도로는 민영환 선생 묘 뒤 쪽에 있는 구성고등학교와 구성증학교로 연결되는 도로다,

이길 끝 구성로 왼쪽에

구성초등학교.구성파출소 마을버스 정류장이 있다, 여기서 33번 버스를 타고

미금역 3번 출구로 왔다, 미금역은 신분당 선이다,

신분당선으로 강남역으로 그리고 2호선 전철로 도착한 사당역 죽순 추어튀김으로 저녁을 했다,

영남길 제2길을 끝 내고 이어서 간 제3길은 6,9km다, 다음주에 다시 구성초등학교로 가서 영남길 제3길을 이어 갈 예정이다, 다음주에는 제3길 남은거리(8~9km)와 제 4길 6,5km를 이어가야 하지만 난이도 상으로 지정된 길이라 만만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