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흐르듯이 순리대로
문수사와 대남문,(2008,5,1) 본문
등산객들의 갈증을 풀어주던 문수사 약수터
절에서 출입금지 팻말을 붙여 놓은것을 보니 가뭄에 샘이 말라붙어 물이 안나오는 모양이다,
서울의 진산鎭山 인 삼각산 정상 깍아지른 듯한 산비탈에 지어놓은 절 문수사,
북한산 에서는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절로. 북한산 남장대(南將臺, 716m) 벼랑 밑에 있다.
고려 예종 4년 지금부터 900년 전인 1109년 대연감국사(大監坦然國師) 가 開山 하였고 주위의 절묘한
기암괴석과, 경관, 천연동굴,에 매료되여 이곳을 佛法 의 유연찰토(有緣刹土)로 정하고 불우
(佛宇)를지어 문수암(文殊庵)이라 하고 천연동굴을 문수굴이라 명명하였다, 라고 한다
북한산에 있는 절중에서 제일 전망이 좋은 절이라고 한다,
절 바로앞에 보현봉(700m)과 서쪽에 비봉(556m)이 버티고 있고 발 아래로는 서울시가지를 조망할수 있다,
특히 마주 바라보이는 보현봉의 겨울 설경과 봄 경치는 비경 중 비경으로 손꼽히는 곳이다,
대웅전에는 석가모니 본존불과 탱화가 법당벽을 장식하고 있고..
문수사는 다른 절에서는 볼수 없는
북한산 남장대 벼랑 밑 천연문수동굴에도 법당이 있다,
불교에서 부처님 오신날을 맞아 등불을 켜는 것은
어둠과 번뇌를 물리치고 영원한 진리의 광명을 밝힌다는 뜻이있다.
↑ 천연동굴 법당 내부
연등(燃燈)은 무명으로 가득 찬 어두운 마음이 부처님의
지혜처럼 밝아 지고 따뜻한 마음이 불빛처럼 퍼져 나가 온 세상이
부처님의 자비와 지혜로 충만토록 하자는 것이다.
문수사에도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연등이 빼곡히 걸려있다,
흰색의 연등도 보인다, 흰색연등에는 극락왕생이라고 씌어져있고 꼬리표가 달려있다.
꼬리표에는 사람의 이름이 써 있고, 끝에 '영가'라고 덧붙여져 있다. 즉 영혼이라는 의미다.
죽은 자들의 극락왕생을 기원하고자 매단 연등이다,
삶이란 무엇이며, 죽음이란 무엇일까, 흰색 연등을 바라보며 생각이 깊어진다,
가다가 돌아 보니 북한산 남장대(南將臺, 716m) 벼랑 밑 우거진 녹음속에 가려진 문수사가 보인다,
그리고 앞에는 북한산성 대남문이 한폭의 그림 되여 다가 다,
북한산성 대남문 오른쪽의 보현봉(700m)은 수양대군(세조)이 천문관측을 위해 올랐고
따라서 그 신하와 많은 선비, 승려들이 풍수지리, 학문 정진을, 위해 올랐든 곳 이라고 하는 곳이다,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때 청군에 한양이 점령 당하고, 피난처인 남한산성에서 나와
지금의 잠실강가인 삼전도에서 청태종에게 수모를 격은 숙종이 백제시대에 쌓은 토축산성을
근간으로 하여 1711년 단 6개월 만에 7,620보(8.5㎞)에 이르는 북한산성 축성을 완공, 남한산성과 대칭되는
이름인 북한산성이라 붙였다. 북한산이란 지명의 유래도 북한산성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숙종 때 단 6개월만에 북한산성을 쌓은 이유는 무엇일까?
숙종은 청태종에게 삼전도의 뼈저린 수모를 겪었기 때문이리라.
숙종은 남한산성에서 맨발로 걸어 나와, 삼전도에서 무릎 꿇고 세번 절하고 9번 머리를 조아린다,
그것도 숙종이 이마를 땅에 부딪쳐 피를흘리며. 청태종에게 항복의식을 해야 했다,
그것은 항복한 패전국의 임금이 치루는 관행 이였다고 한다,
청태종은 숙종이 이마찧는 소리를 들으며 옆에 있는 신하와 농담을 주고 받았다고 하니
숙종은 삼전도의 수모를 결단코 잊을 수 없었을 것이고. 잊어서도 안되였을 것이다,
청태종은 숙종에게 북쪽을 향해 성을 쌓지 말라 했다.
그러나, 청태종에게 당한 수모를 잊을 수 없었던 숙종, 암암리에
북벌을 감행하려고 북한산성을 쌓았던 듯 싶다,
'숙종이 북한산성을 축성하고 명명했던, 북한산.'
북한산(北漢山)은 북의 한족을 잊지 말자는 뜻의 지명, 한(漢)은 95% 한족으로 구성된
당시 청나라를 뜻한다. 따라서, 북한산은 청태종에게 맺힌 한이 서린 이름이다
그후 숙종은 1713년 북한산성의 외성으로 탕춘대성을 축조하기 시작 하나
신하들의 반대 의견이 많았기에 완성을 보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숙종이후 북한산성의
중요성이 약화되어 거의 사용하지 않았으며 이로 인해 방치되고 전란시 화재등으로
성곽및 사찰들이 크게 훼손된다
북한산성을 축성하면서 자재창고가 있었든 곳이 지금의 창동이다,
즉, 창고가 있든 동네 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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