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흐르듯이 순리대로
1500년의 역사는 살아 숨쉬는데 (2009,12,13 - 1)삼각산 승가사 본문
산을 오르는 것은 언제나 새로운 만남을 기대하는것 처름
두근거림과 설레임으로 부터 시작된다
신화와 역사가 겹쳐진 역사와 현실이 과거와 현재가 행복하게 만날수 있을때
우리가 얼마나 풍요로워 질수 있는가를 눈으로 마음으로 확인할수 있는 곳 중의 하나가
북한산과 북한산성이랄수도 있겠다, 475년 고구려군의 침공으로 한성백제시대가 막을 내리지만
이 백제시대부터 토성으로 조성한 산성이 오늘 우리가 만날수 있는 북한산성의 근간이니
북한산에 얽힌 역사는 어디가 역사고 또는 설화인지, 산을 오를때 마다 같은곳 같은
자리인데도 만날때 마다 다른곳, 그 곳이 북한산이다
언제나 나는 집을 나서 지하철을 탈때까지 오늘은 어디로 올라서
어디로 하산을 해야겠다는 계획이 전혀 없다, 그냥 지하철을 탄다, 그리고 광화문 교보빌딩 앞이나,
구파발역에 내리면 북한산에 오를수있는 버스가 코스별로 다 연결되니까, 그냥 타고 내리기만 하면된다,
그래서 패티가 서울의 찬가를 노래했나? 오늘은 광화문에서 구기동으로 왔다,
그래서 승가사로 올라간다
僧 伽 寺 는 신라경덕왕 15년 수태선사가 세칭관음보살의 화신이라 일컬어지던
당서역신승 승가대사가 한토에 내화하였다는 聖跡, 도덕을 사모하여 삼각산 남쪽의 성지를
찾아 석굴을 개작하고 굴 암자를 조성하여 돌을 조각하여 승가태사상을 모형하여
사명을 승가사라 하였다, (안내문에 이렇게 써 있다,)
비봉의 동쪽 자락 턱밑에 경덕왕 15년(756년)에 창건된 고찰인 승가사가 자리하고 있다,
창건이후 고려의 선종, 숙종을 비롯한 많은 왕들이 행차한 바가 있고 대각국사 의천이 거쳐 가기도 했어며
조선초기에는 함허득통같은 고승을 배출했다는 이 절은 유감스럽게도 1253년이나 된 고찰다운 면모는 별로 없다,
한국전쟁당시 절이 모두 소실된 뒤 새로이 중창하였는데 그렇다고는 해도 꼭 그 때문만은 아닌듯 하다
승가사는 근세에 불탑과 계단등을 모두 화강암으로 만들어 놓았다,
화강암은 우리산천에 가장 흔할뿐만 아니라 우리의 심성과도 잘 어울리는 돌이라고 한다,
그래서 옜적부터 우리조상은 화강암으로 주춧돌을 놓고 계단을 만들고 기단을 앉혀 집을 지었어며
다리를 놓고 성을쌓고 무덤을 치장하고 불상, 탑, 석등, 마애불, 당간지주, 등 온갖 것들을
만들어 섬기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때마다 돌이 흔하다고 흔전만전 마구 쓰지도 않았어며
꼭 알맞은 만큼만 활용하여 지나치지도 넘치지도 않았다, 돌을 다루는 태도는 겸손했고
소중히 다루었다,..
절 마당에서 대웅전으로 들어가는길 아래는 계단이고 위는 범종각이다,
거대한 암석과 사찰, 승가사는 이렇게 자연속에 녹아 있는 절이다,
그런곳의 중들이 어찌 자연을 파괴하는것도 모자라 천만년 대대로 후손에거 물려 주어야할
자연유산을 떳어내고 부시고 깍아서 중넘들의 편의를 위한 계단을 만들고 탑을 쌓는가,
마이석가여래 좌상이 있는 절 뒤편으로 올라간다,
구기동 마애석가여래좌상은 절의 맨꼭대기,
가파르고 멋없는(돌공사 이음새는 세멘트나 코킹등으로 때워저있다)
108계단 위 거대한 화강암반에 장대하게 새겨져 발아래에 깔린 서울은 물론
그 너머까지 일망무제로 펼쳐진 세상을 굽어보고 있다,
북한산 구기동 마애석가여래좌상,
승가사 위쪽 100m 지점에 우뚝 솟아있는 화강암벽에 석가여래의 앉은 모습을 새겨 넣은것으로
불상의 크기는 약 5m로 상당히 큰 작품이며 조각쏨씨 또한 뛰여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만들어진 연대는
고려초기 10세기경으로 추정된다, 얼굴은 네모에 가까울 정도로 풍만하게 처리되였다,
오똑하게 솟은 콧날과 꾹 다문 입, 가늘게 내려뜬 눈 등이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되여 있으면서도
자비로운 인상을 지니고 있다, 왼쪽 어께에 걸처입은 법의의 주름선은 유려하고 활달하나 형식화된 각진 어깨와
맛맛한 가슴등은 입체감이 부족하다, 그러나 손 모양은 당당한 불격佛格 을 나타내 줄 뿐만아니라
오른쪽 손목을 안쪽으로 꺽이게 함으로서 율동적인면 또한 잘 표현되여 있다,
광배光背 는 굵은선으로 아무 장식없이 조각되였다,
불상 머리 위에는 8각형의 뚜껑돌이 얹혀있는데 불상의 머리에 직접 얹지않고
별도의 돌에 새겨 바위돌에 끼워 놓은것이 특이하다, 불상의 아랫부분에는 연꽃 무늬의 받침대를 새겨 놓았다,
불상의 좌우에 구멍이 있는것으로 보아 원래는 불상을 보호하기위해 나무로 만든 덮게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불상은 통일 신라시대 마애불상보다는 다소 둔화되고 형식화된 감이 있다, 그러나 신체표현에 어느정도
균형이 잡혀 있으며 얼굴 표정 또한 부드러움과 자비로움이 잘 간직되여 있어 10세기 고려시대
불상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곳 안내판 내용을 그대로 옮겼다,)
흙한점 보기 어려울 만치 절의 구석 구석까지 화강암을 깍고 다듬은 갖가지
석물이 가득 들어차 있는 이곳 승가사는 겸손함과 절제의 미덕을 찾아보기 어렵다,
아마 화강암을 가장 나쁘게 사용한 예로 화강암이 얼마나 천박하게 쓰일수
있는가를 본보기 처름보여주는 것이 여기 승가사가 아닌가 싶다, 오로지 오늘 내가 본
마애석가여래좌상과, 석조승가대사상(오늘은 보질 못했다,)이 아니라면 두번 다시 오고싶지 않은 곳
승가사, ~ 이렇게 만들어 놓은 똘중들은 자기네가 무슨 잘못을 저질러고 있는지?
알고는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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