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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흐르듯이 순리대로
삼복권역 커뮤니티센터에서 동복천 둑길로 나간다, 동복천 둑길에는 둑길은 물론이고 천변에도 산책길이 만들어져 있는게 보인다, 외진 시골이라 아침산책을 하면 이슬에 젓을까 걱정을 했는데 안해도 되는 걱정을 했다, 하천으로 흐르는 물이 조금 많아서 물소리 마저 정겨운 길이다, 둑길을 따라 가다가 보니 하천을 건너가는 다리가 있다, 와우 ~ 지금 내가 무었을 보고 있는지? 생각지도 못했던 호사를 혼자 다 누리고 있나보다, 다리를 건너가면서 보니 동복천변에 비석도 세워져 있고 동복천변에 배가 닿을 수 있도록 선착장도 만들어 놓은게 보인다, 다리를 건너와서 보니 이곳에도 다리방천(섶다리)이 있다, 지금의 다리가 놓이기 전에는 주민들이 이곳 섶다리를 이용해 동복천을 건넜던 것 같다, 섶다리는 (다리 방천) 연둔리 숲..
벌교천이 흐르는곳 벌교리 58-1 번지에 벌교 홍교가 있다, 보물 제304호. 길이 27.6m, 너비 4.5m. 돌을 쌓아 만든 무지개 모양의 다리로, 1723년(영조 5)에 순천 仙巖寺 선암사 스님인 楚安 초안과 習性 습성 등이 놓았다고 전한다. 그 뒤 1737년과 1844년(헌종 10)에 수리하면서 고쳐 쌓았고, 1981년부터 1984년까지 4년에 걸친 보수공사를 통해 지금의 모습에 이르게 되었다. 예전에는 이 자리에 뗏목을 이은 다리가 있어 벌교(筏橋)라는 지명이 생겨났으며, 그후 영조 13년(1737) 다리를 고치면서, 3칸의 무지개다리로 만들어졌고, 1981∼1984년까지의 4년에 걸친 보수공사를 통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원래는 길이 80m, 너비 4m에 이르렀을 것으로 전하기도 하는데, 현재 ..
선암사 주차장에 도착한 시간이 AM 10 : 17분, 서울에서 05시에 출발해 순천선암사까지 5시간이나 걸렸어니 멀어도 한참은 먼 거리다, 물론 중간 휴게소 아침 식사 시간 포함해서다, 선암사로 들어가면서 첫 건물인 선암사 안내소에서 문화유산탐방여권에 순천선암사 스템프도 찍고 순천 선암사는 542년(진흥왕 3)에 阿道和尙 아도화상이 처음으로 개창하여 毘盧庵 비로암 이라고 하였다고 하나 이것을 그대로 믿기 어렵고. 875년(헌강왕 1)에 道詵 도선이 창건하여 선암사라고 하였다는 설이 더 신빙성이 있다. 朴全之 박전지가 쓴 靈鳳山龍巖寺重創記 영봉산용암사중창기에 지리산 聖母天王 성모천왕이 만일 세개의 巖寺 암사를 창건하면 삼한이 합하여 한 나라가 되고 전쟁이 저절로 종식될 것이다. 라고 한 말을 따라 도선이 ..
종로3가역 11번 출구에서 종묘시민광장으로 가서 宗廟 종묘전교로 간다, 종묘전교는 종묘 앞쪽 세운상가 입구 부근에 있던 다리다. 준천사실과 김정호의 대동지지에 宗廟前橋 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다른 고지도에는 다리 모양만 표시되어 있다. 세종길록에 따르면 회동, 제생동천은 지금의 가회동 인근 북촌 가회방에서 시작해 남족으로 흘러 청계천과 합류 했지만 홍수에 따른 민가 피해를 막기위해 세종대에 종묘 앞으로 인공제방을 만들어 동쪽으로 물길을 돌렸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훼손된 회동, 제생동천은 도시화 과정에서 매립되어 완전히 사라진 하천이다, 종묘전교를 지나서 종묘 외대문으로 들어간다, 宗廟 종묘 정문인 외대문 오른쪽 매표소에서 매표를하고 입장을 하면 외대문 안에 문화유산여권 스템프함이 있는데 이곳은 특이하게도..
昌德宮 宣政殿 창덕궁 선정전으로 들어간다, 선정전은 창덕궁의 왕의 공식 집무실인 便殿 편전이다, 인조 25년(1647)에 광해군이 세운 인경궁의 광성전을 헐어다가 지었다. 현재 궁궐에 남아 있는 유일한 청기와 건물로 보물 제814호다선정문에서 선정전으로 이어지는 복도 건물은 지붕이 있어 비가오거나 눈이 와도 출입이 자유롭도록 만들었다,선정문에서 선정전 까지는 이렇게 이어진다,선정전은 창덕궁을 창건할 때 건립되었으나 인조반정 때 소실되어 1647년에 중건했다. 장대석을 바른층 쌓기를 한 단의 월대 위에 넓은 장대석 바른층쌓기 기단을 만들고 다듬은 초석들을 놓은 다음에 그 위에 12개의 평주와 2개의 고주를 세웠다.기둥과 창방 위에 평방을 놓고 공포를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놓은 다포식 구조로 지은 건물이..
경복궁역에서 지하철로 1정류장 안국역 3번 출구에서 창덕궁으로 가는길 현대건설 사옥을 지나가면서 보니 여기는 계동궁터라는 표석이 있다, 현대건설 일대는 현대원서 공원이다, 또한 이 일대는 사도시 터로 조선시대 궁중의 미곡과 장 등의 물건을 맡은 관청으로 1392년(태조1) 고려의 제도를 따라 요물고를 설치 하였다, 이후공정고, 도관서로 바뀌였다가 사선서에 흡수 되었어며 시도시라 개칭되였다, 1882년(고종19)에 폐지 되었다, 현대공원이 끝나면 창덕궁 돈화문이 있다, 창덕궁 담장 바깥에는 예전에 안 보이든 창덕궁 매표소가 이렇게 새로 만들어저 있어 여기서 매표를하고 돈화문으로 창덕궁으로 들어간다 돈화문으로 들어가면서 왼쪽에 있는 이 나무가 창덕궁 회화나무 군으로 천연기념물이라는 안내도 보인다, 내용은 돈..
2023년 4주 일요일인 7월 23일 지하철 경복궁역에서 국립고궁박물관으로 가는길 불로문이 있다, 불로문은 한장의 판석으로 만든 석문으로 이 문을 통과하면 만구무강과 불로장생한다고 하는 청더궁의 불로문을 모방해 제작한 문이다, 모방을 했어도 불로문이니 당연히 불로문으로 들어갔다, 경복궁역에서 국립고궁박물관으로 가는 출구는 경복궁역 5번 출구다, 고궁박물관 출구 벽에는 국립고궁박물관에 전시되여 있는 유물들 사진을 찍어서 벽에 붙여 놓았다, 조선 태조 금보와 영친왕비 적의와 대삼작노리개 를 시작으로 영조임금 초상과 청화백자 용무늬 항아리 와 암금의 초상화를 모시는 곳에 쓰인 병풍과 제기 십장생도와 왕세자 성균관 입학식 그림에 흉배용 봉황문 목판 까지 전시되여 있는 사진 유물들을 보면서 고궁박물관 으로 나가니..
제21대 영조의 둘째 아들인 사도세자는 당쟁에 휘말려 27세의 나이에 뒤주에서 생을 마감한 인물이다. 영조에 이어 왕위에 오른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를 장헌세자로 개칭한 뒤, 배봉산 기슭에 있던 무덤을 1789년(정조 13년) 지금의 경기도 화성으로 이장했다. 조선 최고의 명당에 조성된 융릉은 추존왕이라는 사실에 무색할 정도로 장중하고 화려하다. 봉분 아랫 부분에는 연꽃 문양이 조각된 섬세한 병풍석을 둘렀고, 능 앞에는 팔각형과 사각형의 석등 양식을 결합한 장명등을 세웠다. 묘역의 불을 밝히는 장명등은 사악한 기운을 물리치는 벽사의 기능을 가지고 있는데, 새로운 양식으로 만들어진 이 장명등은 조선 왕릉에 있는 장명등 가운데 가장 아름답다고 평가받는다. 융릉 서쪽 울창한 숲길 너머에는 정조와 효의왕후 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