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山行日記/충청·경상·전라

1600년 세월 영광 불갑사(2019년 9월 29일)

물흐르듯이순리대로 2019. 9. 30. 08:30

불갑산(516m) 기슭에 자리 잡은 불갑사는 백제 침류왕(384년)때 인도스님 마라난타 존자가 백제에 불교를 전래하면서 제일 처음 지은 불법도량이라는 점을 반영해 절 이름을 부처 佛, 첫째 甲, 불갑사라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영광의 법성포 라는 지명도 성인이 법을 가지고 들어 온 포구였다고 해서 아무포, 부용포 라는 이름에서 법성포로 바뀌었다 한다.

불갑사 울타리 계단 형성지에 곱게 핀 꽃무릇을 보면서 불갑사 경내로 들어가는 해탈문으로 들어간다,

해탈문에서 사찰내로 들어가는 문 이름은 金剛門 이라는 현판을 붙여 놓앗다, 금강문을 들어가면서 보면 계단위에 있는 천왕문이 보인다,

16개의 돌 계단을 올라 마주하게 되는 천왕문 안에는 목조 사천왕상이 모셔져 있다. 이는 도선국사가 창건한 전북 흥덕 연기사에 있던 조선 중기때 작품으로 고종 7년에 설두선사가 불갑사를 중수하면서 폐사된 연기사에서 옮겨왓다고 한다.

천왕문을 지키고 있는 불갑사 사천왕상은 1870년에 불갑사를 중창하면서 사천왕상을 불갑사로 옮기는데 전 군민을 동원하여 도로를 정비했다고 한다, 조선중기 사천왕상은 목조로서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거상으로 균형미가 뛰여나고 셈세하고 화려한 조각으로 그 예술성을 높이 평가받고 있다,

절에가면 천왕문이 있고 천왕문에는 사천왕이 있다,  사천왕은 왜 절 입구를 지키고 있을까? 사천왕은 고대 인도 종교에서 숭상했던 귀신들의 왕이었으나 불교에 귀의하여 부처님과 불법을 지키는 수호신이 되었다. 그들은 수미산(須彌山) 중턱에서 각각 그들의 권속들과 살면서 동서남북의 네 방위를 지키며 불법(佛法) 수호와 사부대중의 보호를 맡게 되었다.

사천왕 중 동쪽을 수호하는 이는 지국천왕(持國天王)이다. 그는 안민(安民)의 신으로서 수미산 동쪽 중턱의 황금타(黃金埵)에 있는 천궁(天宮)에서 살고 있다. 16선신(善神)의 하나이기도 한 지국천왕은 선한 자에게 상을 내리고 악한 자에게 벌을 주어 항상 인간을 고루 보살피며 국토를 수호하겠다는 서원을 세웠다고 한다. 왼손에는 칼을 쥐었고 오른손은 허리를 잡고 있거나 또는 보석을 손바닥 위에 올려 놓고 있는 형상을 취하고 있다

서쪽을 방어하는 신은 수미산 중턱 백은타(白銀埵)에 살고 있는 광목천왕(廣目天王)이다. 그는 흔히 잡어(雜語), 비호보(非好報), 악안(惡眼)이라고도 불리는데, 이는 그의 남다른 모습에서 유래한 것이다. 즉, 그의 몸은 여러 가지 색으로 장식되어 있고 입을 크게 벌린 형상을 함으로써 웅변으로 온갖 나쁜 이야기를 물리친다고 한다. 또 눈을 크게 부릅뜸으로써 그 위엄으로 나쁜 것들을 몰아낸다고 하여 악안, 광목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의 모습은 붉은 관을 쓰고 갑옷을 입었으며, 오른손은 팔꿈치를 세워 끝이 셋으로 갈라진 삼차극(三叉戟)을 들고 있고, 왼손에는 보탑을 받들어 쥐고 있다

남방을 지키는 증장천왕(增長天王)은 수미산 남쪽의 유리타(瑠璃埵)에 살고 있다. 그는 자신의 위덕을 증가하여 만물이 태어날 수 있는 덕을 베풀겠다는 서원을 세웠다고 한다. 구반다 등 무수한 귀신을 거느린 증장천왕은 온몸이 적육색이며 노한 눈을 특징으로 삼고 있다. 대개 갑옷으로 장하고 오른손은 용을잡아 가슴 아래에 대고 있고, 왼손에는 용의 여의주를 쥐고 있는 경우가 많다.

북쪽을 지키는 다문천왕(多聞天王)은 달리 비사문천왕(毘沙門天王)이라고도 하는데, 항상 부처님의 도량을 지키면서 부처님의 설법을 듣는다 하여 다문이라고 한다. 그가 맡은 역할은 암흑계의 사물을 관리하는 것인데 한때 불법에 귀의하여 광명신(光明神)이 되었으나, 본래 자신의 원을 지킨다 하여 금비라신(金毘羅神)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다문천왕은 왼손에 늘 비파를 들고 있다.

그러고 보면 사천왕은 동서남북의 네 방위를 지키며 불법(佛法)수호와 사부대중을 보호하는 사대천왕인데 동쪽을 지키는 지국천왕(持國天王)은 칼을 쥐고 있고, 서쪽을 지키는 광목천왕(廣目天王)은 삼차극(三叉戟)을 들고 있다, 남방을 지키는 증장천왕(增長天王)은 용의 여의주를 쥐고 있고, 북쪽을 지키는 다문천왕(多聞天王)은 비파를 들고 있다, 사천왕을 구별하는 방법?은 무었을 쥐고 있는지 손을 보면 알 수 있다,

불갑사 불교문화재로는 대웅전(佛甲寺大雄殿, 보물 제830호), 대웅전삼신불좌상(보물 제1377호), 사천왕상(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59호), 사천왕상복장불서(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26호), 팔상전, 명부전. 진각국사비(眞覺國師碑)가 있어며. 2006년에 259점이 보물로 지정된 불복장전적(보물 제1470호)도 있다.

불갑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8교구 본사 백양사의 말사다. 창건시기가 분명하지 않아 384년(침류왕 원년)에 마라난타가 창건하였다고도 하고, 백제 문주왕 때 행은이 창건하였다고도 한다.

통일신라시대인 8세기 후반에 중창하였고, 고려 후기에 각진국사가 머무르면서 크게 중창했데 당시 수백 명의 승려가 머물렀으며 사전(寺田)이 10리 밖까지 이어졌다고 하는 대규모 사찰이였다,

불갑사 너른 경내에는 범종루가 보인다, 범종각이나 범종루는 대개 사찰로 들어가는 왼쪽에 배치되여 있다,

끝에보이는 2층누각, 선다루라 쓰인 현판이 보인다, 그러나 선다루가 무슨 용도로 쓰이는 건물인지는 알수 없다,

불갑사는 비탈진 곳에 세원진 당우는 없고 계단식으로 터를 딱아 평지를 만들어 사찰을 세웠다, 수백년은 되였것 같은 배롱나무가 보이는 곳에 불갑사 대웅전이 있다,

불갑사는 정유재란을 겪은 이후 법릉이 중창하였고 1634년에는 해릉이 중창했는데, 여러 차례 중창을 거치면서 절의 규모가 점차 줄어들었다. 1802년(순조 2)에는 득성이 대대적으로 중창을 하였고 또 869년(고종 6)에는 설두가, 1876년(고종 13)에는 설파가, 1879년(고종 16)에는 동성이 각각 중창하어며 1938년에 설제가, 1984년에도 중수가 이어졌으며 1996년에 기와를 새로 입히는 등 보수를 했다.

佛甲寺 大雄殿 건물 규모는 보잘것 없지만 각종 조각이 특이하다, 창살무늬는 보기드문 눈송이 설문이고 대들에서 용이 기둥을타고 내려오는 오소리를 쫓는 형국을 하고 있다, 불상위를 덮고 있는 닷집 또한 일품으로 이 대웅전의 조각은 건축당시 이름있는 조각가가 찾아와 스스로 일할것을 자원하여 일했다 전해진다, 이 조각가는 조각일을 끝내는 동안에는 절대로 부정한 여자들이 드나들지 못하도록 해달라고 당부했는데 몇달이 지나도록 나오지도 않고 일만 계속하고 있으므로 밥을해 나르든 여인이 하도 궁금해서 문틈으로 보았더니 조각쟁이는 피를 토하고 죽었고 그 피는 까치 한마리가 되여 멀리 날아 갔다고 한다,

대웅전에는 목조석가여래 삼존불 좌상이 있다,  후불탱화는 세로 298㎝, 가로 329㎝ 크기의 비단 바탕에 채색으로 중앙에 편단우견에 항마촉지인을 한 석가모니불, 향우측에 설법인에 약함을 든 약사불, 향좌측에 설법인을 한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여덟 보살이 협시했는데 연꽃을 든 문수, 보현보살과 머리에 해와 달을 인 일광, 월광보살, 그리고 백의를 입고 정병을 든 관음보살, 보주에 육환장을 든 지장보살 등이 확인된다.

목조석가여래 삼존불 좌상 소개

대웅전 옆 비석, 무슨 비석인지는 알수 없지만 보이는것 만으로도 예사롭지가 않다,

고찰이라 그런가? 배롱나무의 고풍스러움이

대웅전 뒤 추녀끝에는 인경이 걸려있다, 오늘은 바람이 없어니 인경이 소리를 내지는 않지만 바람부는날 저 인경소리를 목탁소리처름 들어보고 싶다,

향로전(香爐殿)은 정면 5칸 측면2칸의 전후퇴로 되어 있으며 팔작지붕의 주심포양식에 익공식이 가미된 건물이다. 1765년에 제 6창 중수된 건물로서 고려말 각진국사 이후 불갑사의 대덕스님이 주석하던 곳이다.

대웅전뒤 높은곳에 있는 왼쪽 가운데 건물은 칠성각(七星閣)이고 오른쪽 건물은 팔상전(八相殿)이다,

칠상각은 1923년에 중건 했어며 칠성단은 치성광여래와 칠원성군을 모신 단으로 북두칠성신앙을 불교적으로 수용하여 수명 장수와 자손번영 복덕구족을 주로 기원한다, 오른쪽 팔상전은 1822년 3중창된 건물로서 정면 3칸의 맞배 지붕이다. 여기에는 석가모니불주존을 중심으로 16나한을 봉안하고 있다.

좌측 아랫단 끝에 명부전이 보인다, 명부전은 시왕전 이라고도 불린다,  염라대왕등 10왕을 모신 전각으로 주존은 지장보살을 모신다, 이 세상이 아닌 어두운 세계인 명부세계(冥府世界)의 왕인 염라대왕을 모신 곳이라 하여 명부전 이라 고도 하며 지옥에서 죄의 경중(輕重)을 정하는 열 분의 왕(十王)을 모신 곳이라 하여 시왕전이라고도 하는 전각이다,

사람이 죽어면 그날부터 49일까지는 7일마다 각 7대왕이 심판을 맡어며 그 뒤 100일에는 8대 평등대왕, 소상때는 9대 도시대왕, 대상때는 10왕 오도전륜 대왕이 차레로 생전에 지은 선업과 악업 등 잘 잘못을 심판한다, 명부시왕을 모신 主座에 지상보살을 모시는 일이 있는데 이 경우도 지장전이라는 이름대신 명부전, 시왕전 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명부전 안에 지장보살을 봉안하고 있기 때문에 지장전이라고 하며 유명계의 심판관인 시왕을 봉안하기 때문에 시왕전이라고도 한다,

원래 고려말 까지는 지장전과 시왕전이 독립된 전각으로 각각 분리 되여 있었어나 조선시대 불교 말살 억불 정책 속에서도 부모에게 효도하고 죽은 부모를 좋은 세계로 보내기 위한 불교 신앙과 의식만은 그나마 인증을 받게 됬다, 그 결과 망인의 형벌 및 새로 태여날 셰게를 결정하는 심판관인 시왕과 망인을 자비로 인도하는 지장보살과 각각 독립된채 존재했던 지장전과 시왕전을 명부전이라는 이름으로 결합했다, 이러한 변화는 대략 조선초에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명부전 앞에 있는 우물, 우물가득히 물이 넘처 난다, 맑고 깨끗해서 한모금 마셔보았다, 그러나 흐르는 물이 아니여서 조금은?

무량수전(無量壽殿)이다, 극락의 주불인 아미타불(阿彌陀佛)은 자기의 이상을 실현한 극락정토에서 늘 중생을 위하여 설법하고 있는데, 이를 상징하는 극락전을 아미타전 또는 무량수전(無量壽殿) 이라고도 한다. 극락전을 본당으로 삼고 있는 절에서는 극락을 의역한 안양(安養)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여 안양교, 안양문, 안양루 등을 갖추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법당이 대웅전 다음으로 많이 설치되어 있다. 이상향인 극락이 서쪽에 있으므로 보통 동향으로 배치하여, 예배하는 사람들이 서쪽을 향하도록 배치되어 있다.

무량수전 내부에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협시보살(脇侍菩薩)로 봉안되어 있다. 관세음보살은 지혜로 중생의 음성을 관하여 그들을 번뇌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며, 대세지보살은 지혜의 광명으로 모든 중생을 비추어 끝없는 힘을 얻게 하는 보살이다. 법당의 내부구조도 극락정토왕생신앙이 강했던 만큼 대웅전에 버금가는 화려함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보이는 5층 석탑,

규모로보아 이 탑에도 무슨 내용이 있을것 같은데 알려진게 없다,

이제 불갑사를 주욱 돌아보았어니 나가야할 시간이다,

불갑사 너른 경내 한켠에 있는 범종루로 간다, 범종루는 중앙에 보이는 벽체가 없는 건물이다,

오른쪽 건물은 범종루다, 2층의 누각(樓閣)으로 되어 있을 때는 범종루라 하고, 불전사물 가운데 범종만을 봉안하는 경우에는 범종각이라고 한다. 이곳에 비치되는 사물은 모두 부처님에게 예배드릴 때 사용되는 불구로서, 우리나라에서는 새벽예불과 사시공양(巳時供養), 저녁예불 때에 사용된다. 이들은 소리로써 불음(佛音)을 전파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범종은 청정한 불사(佛寺)에서 쓰이는 맑은 소리의 종이라는 뜻이지만 지옥의 중생을 향하여 불음을 전파하고, 홍고는 축생의 무리를 향하여, 운판은 허공을 나는 생명을 향하여, 목어는 수중의 어류를 향하여 소리를 내보낸다는 상징적 기능을 가지고 있다.

규모가 큰 사찰에서는 이 사물을 모두 갖추고 있으며, 규모가 작은 사찰이라도 범종만은 반드시 비치하게 된다. 이 당우는 산문(山門)을 들어서서 좌측 편에 위치하는 것이 일반적인 통례다. 불갑사 대법고는 1741년에 만들어진 것으로서 길이 240cm, 울림판 직경 200cm, 높이 220m의 웅장한 규모를 자랑하는 큰북이다. 이 대법고는 오래된 법고 가운데에서는 가장 크다고 한다. 불갑사에는 범종과 법고는 배치되여 있었어나 운판과 목어는 없었다,

오늘(2019년 9월 20일)불갑사 트레킹에 함께해준 일행들, 한분은 찍사니 사진에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