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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흐르듯이 순리대로

1950년 장사 상륙작전(2016년 9월 3일) 본문

해파랑길(동해안 일주)/영덕구간 62,8 km

1950년 장사 상륙작전(2016년 9월 3일)

물흐르듯이순리대로 2016. 9. 3. 18:27

장사 상륙작전은? 625전쟁 당시 1950년 9월 14일부터 ~19일까지

경북 영덕군 장사동 해안에서 한국군 유격대원들이 감행한 최초의 상륙작전이다,

625전쟁 전투교착상태를 타개하기 위해 맥아더장군이 인천 상륙작전을 감행하기에 앞서

적의 시선을 분산시키는 교란작전으로 동해안에서 이루어진 상륙작전이다,

1950년 장사 앞 바다에 침몰해 지금도 바다속에 가라 앉아있는

해군수송함 LST 문산호 를 재연해 놓은모습이 보인다, 역사 재조명 필요성을

느낀 영덕군은 지난해부터 1년 4개월 동안 부산의 한 조선소에서 문산호 복원작업을 진행해

원래 배보다는 길이 10m, 너비 5m 가량을 줄인 축소 모형으로 길이 90m, 폭 30m,

높이 26m 의 배를 건조했다. 복원된 문산호는 바지선으로 옮겨져 장사

해안으로 돌아왔는데 장사 상륙작전 65년 만의 일이다.

문산호 1, 2층에는 장사상륙작전의 역사적 배경과 200고지를

점령한 학도병 영웅이야기 영상물을 만들어 설치하는 등 다양한 콘텐츠로 채워지고,

4층에는 PX와 군번 줄 걸기등 군 체험코너, 5층엔 조타실과 전망대를 마련해 스토리 전시관으로

개관할 예정이였든 문산호 복원은 일부 시행착오가 겹치면서 막대한 예산만 낭비한채

아직(2016년 9월 3일 기준)도 깊은 잠에 빠저있다,

장사상륙작전에는 같은해 8월 24일 대구와 경남 밀양에서 모집해

기초훈련을 받은 육군 제1유격대 대원 772명이 투입된다, 당시의 대원들은

정일권 육군참모총장과 신성모 국방장관이 참석한 가운데 부산항 부두에서 작전명령

제 17호 출동명령을 하달받고 9월 13일 LST 문산호로 부산항을 출항,

다음날 오전 4시 30분쯤 경북 영덕 장사동 해안에 도착했다,

유격대원들은 태풍 케지아의 영향으로 문산호가 좌초되는 악전고투끝에도

상륙에 성공해 6일 동안 인민군의 주 보급로였든 포항, 영천방면 국도를 완전차단하고

인민군 후방을 마비시켯어며, 인민군 2군단 정예부대 2개 연대의 북상공격을 격퇴하는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

그러나 아군의 피해도 컷다, 유격대원 139명이 전사했고 92명이

부상했다, 장사 상륙작전은 눈에 보이는 전과 외에도 인천상륙 작전의 양동작전으로

북한 인민군의 이목을 동해안으로 돌리게 해 불리한 전세를 역전시키는

결정적인 공훈을 세운 전투다,

기록은 장사 상륙작전 또는 장사동 상륙작전은 1950년 9월 15일

경상북도 영덕군 장사리에서 벌어진 상륙작전이다. 작전명 174라고도 한다.

9월 14일 부산항을 출발한 이후, 9월 15일 06 : 00에 상륙작전이 개시되었다. 대한민국

학도병으로 구성된 772명이 문산호를 타고 장사에 상륙하여 국도 제 7호선을

봉쇄하고 조선인민군의 보급로를 차단하는데 성공하고 철수한 작전이다.

인천상륙작전의 양동작전으로 실시되어 양동작전으로서는 성공하였다.

사실상 미 8군에게 떨어진 명령이었으나 바쁘다는 명분으로 작전명 174를 대한민국

학도병들에게 맡긴 것으로 추정된다. 총 139명이 전사하고 92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772명 중 사망과 부상을 당한 학도병을 제외하면 모두 행방불명 상태이다.

원래는 3일간 상륙한 뒤 귀환할 예정으로 총기등의 물자도

3일치만 지급되었다. 그러나 문산호가 좌초되어 돌아오지 못하고 총알과

식량이 부족해진 상태에서도 7번 국도 차단 임무를 계속 수행했다,

인천상륙작정이 성공한후 고립된 학도병들을 구출하러 배를 보냈지만,

죽기전까지 싸웠던 북한군(북한군 2개 사단 정예부대)에 의해 대부분 전사했다.

배가 상륙하면 상륙한 배까지 위험해질 가능성이 있어 철수명령이 떨어졌다. 학도병들이

상륙했던 배는 1997년 3월에 난파선으로 발견된다, 66년전 처절한 전투가

벌어진 장소였든 이곳은 지금 해수욕장으로 변했다,

나라꽃 무궁화가 곱게핀 장사해변을 떠나가야할 시간이다,

2016년 9월 3일인 지금은 북한이 연일 핵 미사일로 위협하는 세상이다,

우리는 더 강력한 무기체계나 대응책을 마련해야 하는데 핵무력에 대응하기 보다는

동조하는 듯한 세력들이 더 큰소리를 치는 세상이 된것 같은 시국이라 안타갑다,

장사상륙작전등 625전쟁에서 목숨바처 이 나라를 지켜낸 호국영령들께

부끄럽고 면목이없다, 어쩌다가 나라가 이지경이 되였는지?

[KFN스페셜] 비사(秘史),

국방TV 영상, 1950년 9월 장사 상륙작전

해군수송함 LST 문산호

1950년 장사 앞 바다에 침몰해 지금도 바다속에 가라 앉아있다,

글, 사진 / KBS 한국의 유산 참조,

다시 이곳에 왔습니다. 그리고 떠올립니다. 1950. 9. 14. 치열했던

그날의 전투는 인천 상륙작전을 숨기기 위한 교란전이였다, 장사상륙작전은 칠흑같은

적진에 뛰어든 772명의 군번없는 학도병이였어며.~ 너희는 죽음으로써 나라를 지킬 수 있다.

이 말한마디에 장총 한 자루에 미숫가루 몇 봉지만 가지고 우리는 배를 탔습니다. 적을 유인하고 보급로를

차단하며 엿새 동안 이어진 치열한 전투와 빗발치는 포화 속에서 꼭 살아서 돌아가자고 친구와

약속한 학도병, 어머니 얼굴이 보고 싶다며 죽어가던 전우의 얼굴이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장사 상륙작전!! 우리가 영원히 기억해야 할 숭고한 희생입니다.

- 김영재(장사상륙 유격동지회 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