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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흐르듯이 순리대로

평화누리길 1코스 염하강철책길(대명항~문수산성남문(2019년 5월 19일) 본문

2019년 平和누리길/평화누리길결산

평화누리길 1코스 염하강철책길(대명항~문수산성남문(2019년 5월 19일)

물흐르듯이순리대로 2019. 5. 19. 17:40


이 日記는 평화누리길, 3차 답사때인 2019년 5월 19일

1코스 기록으로 사진이 많다보니 같은 구간이라 하드라도 여러편으로 나누어

기록되여있기 때문에 구간별로 1편으로 압축해서 재 구성한 것이다

이곳은 김포시 대명항이다,

서울지역에서 대명항으로 들어오는 교통편은 염창역에서 송정역까지

라인에서 60-3번 버스로 종점인 대명항까지 오면된다,

공식적인 거리와 소요시간이다,

 평화누리길은 김포대명항에서 부터 경기도 끝에 있는 역고드름까지다,

때로는 산길을 걸을수도 있고 마을길을 걸을수도 있지만 평화누리길은 군 경계 철책을따라

걷는 최북단의 길로 분단의 아픔을 평화의 이름으로 승화시키는 길이기도 하다,

평화누리길 관리처는 경기도 관광공사로 해당 시, 군의 협조를받아

운영하고 있는 길이지만 누구나 불편함이 없이 걸을수 있도록 각종 자료와 시설물들이 잘

설치되여 있기 때문에 분단의 현장을 보면서 평화를 기원하는 안보의 길이기도 하다,

평화누리길이 시작되는 대명항은 출발점으로 염하강 철책길을 따라

강화대교앞에 있는 문수산으로 가는 길이다, 철책사이로 염하강 건너 강화도가 보인다,

나는 2015년에 이곳 대명항에서 연천 신탄리역까지 약 192km를 걸었고

2017년에 다시 경기도 끝인 역고드름까지 195km의 평화누리길을 걸었기 때문에 두번이나

완주한 일이있다, 그리고 2019년 5월 19일인 오늘 다시 평화누리길 3번째 도전을 한다,

평화누리길은 관광의 길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눈으로 보고 가슴으로 느끼며 걷는 아픔의 길이자 안보의 길이다,

덕포진 가 포대다, 강화만을 거처 서울로 진입하는 길목인 손돌목에

천혜의 지형을 이용해 설치한 조선시대의 군영 덕포진은 신미양요와 병인양요때 서구 열강과 치열하게 싸웠든

격전지로 역사적 가치와 유뮬사적 의의를 가진 곳이며 포대는 이곳에서 손돌목까지 이어진다,

덕포진 가 포대주변은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그림처름 아름다운 곳이다,

덕포진 가, 포대를 지나 나, 포대로 가는 언덕,

보이는곳이 덕포진 나, 포대다,

나 포대가 보이는 언덕에서 지나온 대명항 방향으로 돌아보면

유유히 흐르는 염하강과 초지대교등이 보인다,

나, 포대도 지나서

다, 포대로 간다,

이곳이 다, 포대다,

덕포진은 가, 나, 다, 3곳의 포대 중 가, 포대가 가장크다,

다, 포대가 끝나는 지점 파수청과 선몰묘가 보인다,

덕포진 파수청터 다, 이곳 파수청터는 돈대와 포대의 중심부에 있어며

포를 쏠때 필요한 불씨를 보관했든 장소와 군사를 지휘하든 장대였다고 해설이 되여 있다,

그리고 그 앞에 있는 손몰묘로 간다,

손돌은 몽고의 침입으로 고려 고종이 강화도로 피난을 할때 뱃길을 잡은

뱃사공이다, 험한 물길에 불안을 느낀 왕이 그를 의심해서 목을 베였는데 손돌은 죽음에

직면해서도 물위에 바가지를 띠우고 바가지만 따라가면 강화도에 무사히 도착할수 있다는 말을 남기고

죽음을 받아들였다, 무사히 강화도에 도착한 왕은 자신의 경솔함을 깨닫고 후하게 장사를

지낸후 사당을 세워 억울하게 죽은 선돌의 넋을 위로했다고 하는 손돌의 무덤이다,

손돌묘에서 정면으로 바라보았을때 왼쪽으로 보이는 강이 손돌목이다,

손돌목은 안면도 염창동과 함께 난파 위험지역으로 꼽히며 물살이 빠른 곳이다, 태조 4년 1395년

조운선 16척, 태조 3년 1403년, 30척, 태종14년 1414년 60척이 침몰한 기록이 있다


덕포진의 위치는 서해에서 강화만을 거처 수도 한성으로 침공하려는 외적을

방어할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였다, 또한 1866년 병인양요때는 프랑스 함대, 1871년 신미양요때는

미국함대 와 치열한 전투를 벌인 격전지가 이곳이다,

손몰목에서 부래도 방향으로 간다, 이 길은 거의 철책을 따라가는 길이다,

강화만으로 칩입하는 적이 육지로 들어오는 길목이기 때문에 군 경계가 아주 철저한 곳이기도 하다,

우리가 가려는 해안을 따라 길게 철책이 처저있다,

철책을 따라 부래도 로 가는길

돌아보면 덕포진 포대가 보인다,

예전에는 이 길을 다라걷는것은 꿈도 못 꿀 일이였어니

지금은 평화누리길로 누구에게나 개방된 길이다,

철책 사이로 보이는

덕포나루와 왼쪽에 보이는 섬이 부래도다,

해안 옆 철책을 따라간다,

어쩜 이곳 철책선이 우리국토의 최전방일수도 있다,

철책선너머 염하강 건너가 강화도기는 하지만

우리는 지금 덕포진에서 부터 이렇게 해안을 따라 걸어왔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조선말 외세에 대항했든 견적지 였다는게 믿어지지 않는다,

부래도 입구 덕포나루를 지나간다, 이곳 부래도는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기록이 있다, 해동지도에서는 동진현의 남쪽에 자리하고 있는 섬으로 표기되여 있다,

항무이도 라고도 불렸다, 또한 통진읍지의 기록을보면 현의 남쪽 23리 지점에 위치한 항무이도는

둘레가 4리라고 기록되여 있는데 이것이 부래도에 대한 설명이라 한다,


이 섬은 강화와 통진사이로 흐르는 염하를따라 한강물에 떠내려 왔다고 해서

부래도라 했다는데 지금도 섬안 산에는 성터도 남아 있다, 1866년 병인양요에 양현수 장군이

덕포진에서 염하를 도하할때 강화의 관성진으로 상륙하든 전초기지 이기도 했다,

부래도 입구 덕포나루를 지나

100m 정도 거리에 있는 평화누리길 부래도 쉼터가 보인다,

부래도 쉼터를 지나서

쇄암리 출렁다리?로 간다,

철책 옆 평화누리길을 만들면서 설치한 출렁다리다,

다리 이름은 모르지만 다리를 지나가면 출렁댄다고 해서 이길을 걷는

사람들은 출렁다리 또는 흔들다리라 부른다,

철책길의 단조로움을 잊게해 주는 출렁다리를 지나면

쇄암리 부석바위가 있다, 김포군지 지명 유래에 따르면 마을 서쪽 염하수로와

접한 해안은 암벽인데 잘 부스러지는 돌로 되여 있어 그 뜻으로 쇄암리라고 부르게 되였다고

했어며 고유지명은 바석바위로도 불렸다고 한다

쇄암리 원래의 지명은 우마니로 이 마을 산 모양이 소와 말이 누워있는

형국이라서 그런 이름이 붙였다고 하는데 우마니가 움안이 즉 움안마을의 뜻이 아닌가 한다,

사방이 산으로 막혀있어 움안에 사는 형국이라서 그렇게 불렸을 가능성이 크다,

우리가 가고 있는 강 건너편 강화에 있는 광성보가 보인다,

광성보는 1871년 신미양요때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곳이다.

미 해병 450명으로 초지진과 덕진진을 점령한 미군은 극동함대의 함포 지원사격을
받으며 광성보로 쳐들어왔다.

이곳 덕포진과 강화도 사이를 유유히 흐르는 염하강은

150년전 신미양요와 병인양요의 처절했든 전투에서 어재연장군을 비롯한 250여 명의

이름 없는 우리 선조들께서 항복하면 살려주겠다는 적의 권유도 뿌리치고 대포와 총으로 무장한 적들에

창칼로 맞서서 끝까지 항전하다가 장열하게 산화한 이 땅의 역사를 알고는 있을까?

조선군은 화력의 열세에도 끝까지 싸워 중군장 어재연과

그의 아우 어재순, 군관을 비롯한 49인의 장사와 200여명의 군사가 전사했다.

이때 파괴된 누각과 성곽 등은 1976년에 복원되었고. 현재 광성보에는 어재연등 장수등의 용맹을 기린

쌍충비각과 무명 병사들의 무훈을 기린 무명 용사비가 세워져 있다.

그러나 지금은 조선말 최대의 격전지였든 이곳에서도 무장해제를 하는

세상이 되였어니, 안보의 두손을 모두 놓아버린 우리는 어디로 가고있는 것일까?

150년전 그때와 지금이나 다를바 하나도 없는데

평화는 힘으로 지키는 것이지 말로 지켜지지 않는 것임은 역사가 말해주는데 ~

염하강 철책길,

길 이름에서 느끼는 삭막함이 아니라 보이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길이다,

아름다운 길을 따라걷는 즐거움도 여러가지 생각을 하다보면 두려움이 앞선다,

염하강 철책길은 그래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길이기도 하다,









쇄암리 전망대 쉼터가 나온다,

이미 두곳의 쉼터를 지나 왔지만 이곳은 제대로 잘 만든 공원 쉼터다,

이곳 쇄암리 쉼터는 평화누리길 1코스 절반 정도의 위치에 있다, 아랫층은 화장실이며

옆에는 정자도 있고 화장실 옥상은 전망대다,

김포는 지명에서도 나타나듯이 한강과 조강, 염하강으로 둘러 쌓여 있어

포구가 발달한 곳이다, 염하강에는 원머루나루, 바삭바위나루, 덕포나루, 대명나루, 성동나루, 등이 있어나

둑과 철책으로 원형이 훼손되였다, 이곳은 삼국시대부터 고구려, 백제, 신라, 왜구, 청군, 몽골,

프랑스군, 미군, 등이 침략했든 장소로 625 까지 끊임 없는 전쟁터 였다,

염하강 철책길을 따라서 간다,

평화누리길 1코스는 마을로 돌아가는 길도없다 오로지 철책선을 따라걷는 길이다,

원모루나루를 지나간다, 설명에 따르면 원모루는 높은언덕 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한자로는 고양포인데 지금도 어업이 이루어지고 있는 김포의 몇 안되는 포구중 한 곳이다,

원모루 나루를 지나 가는길 왼쪽은 염하강

오른쪽은 김포씨사이드 컨트리 클럽 골프장이다,

오른쪽 철책선 건너에 보이는 강화도

철책은 적의 칩입을 막는 철조망이다,

그러나 보이는 것 만으로는 그냥 자연에 녹아든 그림인 것 같다,

그리나 철책선을 따라 걷는 사람들도 그 속에 녹아든다,

이 구간에서는 이런 다리가 놓여저 있다, 

군 경계 근무용으로 원래부터 있었든 것이 아니라 평화누리길을 만들면서

새로 만든 것 같은 인도교다,


길은 이제 포내리로 들어간다,

여태까지는 산 비탈을 따라 왔다면 포내리는 평야다,

포내리 배수 펌프장이 보인다,

배수 펌프장 옆에는  생태 공원이 만들어저 있다,

이제 부터는 앞에 보이는 문수산을 바라보며 간다,

이곳부터는 철책과 들판 이 외에는 볼거리가 없는 직선 세멘트포장 길을 가야 한다,

대명항에서 부터 이어지든 그림처름 아름다운 길은 이제 끝이다,

구, 강화교가 보인다, 구, 강화교는 사용을하지 않는다,

지금은 강화대교가 주 통행로지만 예전에는 이 강화교가 강화도와 육지인 김포를

이어주는 유일한 다리였다, 지금은 강화도로 드나드는 자전거 길이자 인도교이며 김포에서

강화도로 이어지는 기간시설물들이 건너가는 교량이다,

강화교를 지나가는 길은 48번국도 강화대교 아래로 들어간다,

강화대교 아래를 지나서 오른쪽 길을 따라가면

문수산성 남문이 있다, 문수산성은 서울의 첫 번째 관문이면서 강화도에서

한양으로 가는 주, 길목에 위치한 전략적 요충지이기도 하지만 서해안 분단의 최전방으로

북한과 지척에 대치하고 있는 곳 이기도 하다, 문수산성 남문은 염하를 건너가고 건너오는 사람들이

통행했던 문으로 강화도의 관문역할도 했든 문이다, 지금의 눈으로 보면 평지를 놔두고 궂이

언덕을 오르내렸어야 했는지? 그 이유는 알수 없어나 강화도와 한양을 연결하는

유일한 통행로였든 곳이 문수산성 남문이다,

이곳에서 염하강 철책길인 평화누리길 1코스가 끝나고 이제부터는

평화누리길 2코스인 조강철책길이 시작된다, 김포시 관활에는 3개 코스의 평화누리길이 있다,

첫번째인 1코스는 염하강철책길이고, 2코스는 문수산성을 넘어 애기봉까지 가는 조강철책길, 3코스는 한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한강철책길로 구성되여 있다, 결국 김포시는 염하강과 조강, 그리고 한강에

둘러쌓인 도시지만 지금은 아라뱃길까지 개발되여 물의 도시가 되였다,

이번에 다시 정리한 편화누리길 1코스 종합편은

2016년 9월 19일자에 기록한 내 일기를 상당 인용해서 재구성 한 것이다,

기록에서 보듯이 김포대명항에서

문수산성 남문까지는 14,14km 였어며 소요시간은 4시간 40분이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