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흐르듯이 순리대로
고양누리길 3코스 서삼릉누리길(삼송역~원당역) 2026, 9, 13, 본문
서삼릉누리길 연인과 함께 걷고 싶은 아름다운 길! 한적한 산길을 걷는 평화로움과 세계문화유산 서삼릉을 답사하는 체험학습도 겸할 수 있다 로 알려주는 서삼릉누리길을 찾아간다,

삼송역 5번출구다, 고양누리길 3코스 서삼릉누리길은 8,28km에 2시간 15분이 소요된다고 안내되여 있다, 이는 산술적인시간 일뿐 걷는이들의 체력이나 방법에 따라 더 느릴수도 있다, 이 구간에서는 수역이마을 먹거리촌과 원당경마연수원 서삼릉등이 대표적으로 둘러보아야 할 곳들인 모양이다,

삼송역 5번출구에서 직진으로 출발을 한다, 성큼 다가온 가을 날씨라 날씨가 다소 쌀쌀해서 걷기에는 아주 좋은 날이다,

서울 고등학교들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규모가 큰 고양고등학교 앞으로 간다,

고양고등학교는 1938년에 설립되어 현재까지 88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학교다, 학교안으로 들어가 보지는 않았지만 교문에서 들여다 본 학교는 오랜 역사만큼이나 넉넉해 보인다,

현재 고양고등학교는 도시조경디자인과, 외식식품가공과, 반려동물관리과, 전기전자과를 운영하고 있다, 고양고등학교 담장을 따라 약 350m정도를 가야 학교 학교울타리가 끝난다

고등학교 울타리가 끝나고 첫번째 골목길을 만나면 여기서 우측 골목으로 들어가야 한다, 이 골목길을 지나서 조금 더 가면 신도지구대(파출소)가 있는데 여기까지 갔다면 되돌아 와야 한다,

이런 모습의 골목길로 들어가면

왼쪽에 작은 공원이 있는데 공원입구에서 오른쪽 영어복싱학원 옆 골목으로 꺽어 들어가

잘 보이지는 않는 길이지만 산으로 들어가야 한다, 사유지인지? 곳곳에 울타리가 쳐저 있는데 그래도 철망울타리 문으로 들어가면 제대로 가는 길이다,

길을 알려주는 이정표나 네이버 지도에 나오는 길 안내도 여기서는 헷갈릴 정도로 잘 안 맞는다,

그래도 그리 멀지않은 거리에 다시 이렇게 보이는 철망 울타리가 보이면 제대로 찾아가는 길이 맞다,

철망울타리를 지나 가면 이제야 이렇게 보이는 이정표가 보인다, 이정표등의 길 알림은 그냥 직진으로 가는 길에는 필요치 않다, 이런 곳에는 천으로 된 시그널이면 족하다,

그러나 갈림길이나 꺽어 들어가는 길에서는 꼭 필요한데 고양누리길은 이런 점에서는 아직은 많이 서툰 모습이 보이니 각자가 잘 알아서 찾아 가야 한다,

동네 산길은 거의가 여러갈래로 나누어 지기 마련인데 여기는 직진길로 이어진다,

야산이라 높지도 않고 흙길이라 맨발로 걸어도 좋을 만큼 길은 좋다,

오늘따라 서늘한 날씨라 춥지도 덥지도 않아서 느긋하게 걷다보니

명나라 이여송과 숫돌고개 이야기가 안내되여 있다, 이야기는 임진왜란 당시인 1593년 1월로 고슬러 올라가는데 이곳 삼송동과 오금동 경계에 있는 숫돌고개에서는 큰 전투가 벌어졌다,

조선을 돕기위해 출정한 명나라 대군과 일본군이 벽재관의 첫 전투에서 명나라 총 사령관 이여송 장군은 벽제관 전투에서 승리하고 서울에서 편안하게 식사를 할 생각이였다,

그러나 청릉천 방향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군의 매복에 걸려 숫돌고개에서 선봉대가 큰 피해를 보았고 자신이 직접 지휘한 본진에서도 패해서 개성으로 후퇴하게 된다, 일본군을 무시했다가 당한 패배였다,

이여송은 훗날 복수를 다짐하며 이 고개의 큰 바위에서 칼을 갈았다고 해서 고개 이름이 숫돌고개, 礖石嶺(여석령)이 되였다고 한다,

개성으로 후퇴했던 명나라군은 권율 장군의 행주대첩 후 일본군이 서울을 물러나자 전투없이 숫돌고개를 넘어들어 왔다,

깨나 먼 길에 어디 잠시 앉아 쉴 곳도 없었는데 장의자 보인다, 잠시 물도 한모금 마시고 쉬였다가 일어났다, 앞에 보이는 작은 굴둑은 통기관이다,

누군가가 정성을 모아 쌓은 작은 돌 탑은 거북바위가 있기 때문인 모양이였다,

거북바위는 북한산에서 서삼릉 방햔으로 이어지는 한북정맥 서삼릉 누리길에 있는 바위 이름으로 화강암계의 바위로 일부는 자연적인 현상에 따라 땅에 묻혀있다,

거북이는 서쪽에 몸이 있고 동쪽으로는 머리를 들어 오른쪽을 보고 있는 모습이다,

거북이는 오래전에 북한산에서 살다가 창릉천을 따라 내려 왔다가 돌아가지 못한 거북이라 알려져 있는데 묻혀진 거북이 다리가 땅 위로 들어나면 창릉천 개울이 마른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사람들이 다닌 발자국으로 보아 이 길에는 많은 사람들이 왕래하는 모양이니

그만큼 산책 코스로는 손색이 없다는 것으로 보면 될 것 같다,

삼송역에서 1,7km 를 지나 왔고 서삼릉까지는 2,05km가 남았다는 지점의 이정표가 보인다, 여기서 거리는 참고용이고 확실한 정보는 방향 정도?일듯 하다,

지하철로 삼송역으로 와서 이길을 따라 서삼릉을 돌아보고

서삼릉입구에서 버스로 귀가하는 코스로는 아주 좋을 것 같은 그런 길이 여기일듯 하다,

삼송역에서 부터 2km를 정도를 지나가면 산에서 내려가는 길이다,

삼송역 2,25km 농협대학교 0,84km 거리로 내려 왔다,

여기에는 서삼릉과 삼송, 세수리, 솔개마을 이야기가 안내되여 있다,

조선시대에는 봄과 가을에 왕이 왕릉 제사를 위해 자주 고양 땅에 행차를 했다, 도성과 가까운 서오릉을 지나 서삼릉으로 행열이 왕래 하였는데 소나무 세 그루가 유난히 눈에 띄고 멋진 곳이 있었다,

그래서 마을 이름이 三松里(삼송리)가 되였고 세 그루의 나무가 있으니 세수리가 되었다,

솔개마을은 서삼릉 입구에 해당하는 곳으로 원흥동에 속한 자연 촌락 이름이다, 한문으로는 松峴(송현)이며 소나무가 무성한 큰 고개가 있어 솔고개라 했는데

후대에 솔개로 불리게 되였고 지금도 솔개마을 입구와 서삼릉 부근에는 키가 크고 오래된 조선 소나무가 일부 남아 있다,

이정표에 농협대학교 방향 알림이 보인다,

큰숲홍익교회 와 종려나무 농업법인으로 가는길도 안내도 있는 도로 로 잠시 올라가면

좌측 울타리 안으로는 너른 초지도 있는데

계속해서 이어지는 길은 도로옆 울타리 밖이다,

이 도로는 서삼릉길로 원흥역에서 부터 이어지는 권율대로에서 이어져 오는 길이다, 서삼릉로 권율대로 처음 듯는 도로명이지만 낮설지 않은 이름들이다,

농협대학교앞 버스정류장을 지나가면서 보이는 농협대학교는 그 규모를 짐작 하기도 어려울 만큼 커 보인다, 아마 이 일대 보이는 전부가 농협대학교 부지일듯 한다,

농협대학교는 농협의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2962년에 농협중앙회가 농협 임직원 교육을 목적으로 설립된 교육기관으로, 농협의 역사와 함께 발전해 온 학교로

농협대학교의 대표 학과는 협동조합경영과다. 농협을 비롯한 협동조합의 경영, 금융, 경제, 유통, 조직관리 등을 배우는 농협 특성화 교육을 중심으로 신입생을 선발해 온 학교다.

고양시 덕양구 서삼릉길에 위치하고 있는 대학으로 일반 대학과는 달리 농업 현장에 필요한 실무형 인재를 양성한다는 특징과 졸업 후 농협 취업을 목표로하는 학생들이 많이 지원하는 학교로 일반전형, 농촌인재특별전형, 전문대졸 이상자 특별전형 등 모두 105명을 모집하는데 지원은 1000명이상으로 20대 1정도의 경쟁력이며 수능 성적은 평균 87점 이상인 학생들을 선발한다고 한다,

농협대학교 를 지나가면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서삼릉과 종마목장 버스정류장도 있다,

입구에는 한국마사회 원당목장이 있는데 여기서 서삼릉까지는 600m 거리다,

서삼릉입구 버스 정류장 앞 오른쪽에는 고풍스러운 한옥 음식점 너른마당이 있다,

너른마당 한켠에는 廣開土大王 碑(광개토대왕비)도 있는데 이 비가 왜 이곳에 있는지? 를 살펴보니 실물 크기로 제작한 모조비로 높이 6,3m 무게 47톤으로 중국 지린성 집안(集安)의 광개토대왕비석과 비슷하게 4면에 1774자의 글씨를 새겨 2004년에 제작하여 너른마당 입구에 세웠다,

특히 재미있는 것은 단순히 장식용으로 세운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너른마당 대표가 광개토대왕의 업적과 고구려의 역사를 기리기 위해 직접 추진했고, 2004년부터 매년 음력 9월 29일을 전후해 추모행사를 열어온 것으로 보도 되기도 했다.

광개토대왕비에 새겨진 1,775자의 핵심 내용은 ① 고구려 건국 이야기와 ② 광개토대왕의 업적, ③ 왕릉을 지키는 제도, 등인데 광개토대왕비가 왜 중요한지는? 고구려가 직접 남긴 매우 중요한 5세기 역사 자료이기 때문이다.

이곳 식당에는 광개토대왕비뿐 아니라 한옥, 넓은 정원, 연못, 돌탑 등이 있어 음식점이면서 작은 역사, 문화 공간 같은 분위기를 갖고 있다,

넓은 정원과 연못이 있는 너른마당 뒤 뜰로 들어가 본다,

연못에는 연꽃이 피여있고

한옥 뒤 식당 모습은 크고 작은 장 종류를 담은 옹기들이 100여개도 넘게 있는게 보인다,

연꽃이 피여있는 연못 옆 불피우는 장소 인듯한 곳 처마에는

돼지고기 다리도 건조시키고 있었다, 너른마당 대표 메뉴는 통오리밀쌈 68,000원, 닭볶음 75,000원, 접시만두 20,000원, 녹두지짐 18,000원 정도의 식당으로 서삼릉과 잘 어울릴 같은 분위기로 꾸며 놓았다,

너름마당 한정식 집을 나와서 약 600m거리에 있는 서삼릉으로 들어간다

가는길 오른쪽은 농협대학교와

원당종마목장이 있는 사이 길이다,

나즈막한 언덕을 올라가 내리막길로 내려가면 이길 끝이 서삼릉 매표소이며

좌 우 로는 끝이 보이지 않는 초지가 있는데 여기는 원당종마목장이다,

삼송역에서 농협대학교와 서삼릉일대의 위치는 아래와 같다,

서삼릉(西三陵)은 고양시 덕양구 원당동에 있는 조선왕릉군이다. 이름 그대로 세 개의 왕릉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능으로 200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조선왕릉으로 등재되었다.

서삼릉 매표소앞 마당 한켠에 고양누리길 제3길 스템프함이 있다,

조선왕릉 세계유산 서삼릉 표지석도 있고

그 옆으로는 서삼릉 종합 안내도 있다,

서삼릉의 세 왕릉은 희릉(禧陵)(장경왕후 = 중종의 두번째 왕비)과 효릉(孝陵)(인성과 인성왕후 = 조선 12대왕 인종의 능) 예릉(睿陵)(철종과 철인왕후 = 조선 25대 왕 철종의 능)등이 경복궁 서쪽에 있다고 해서 서삼릉이라 했다, 서삼릉에는 삼릉외에도 소경원(16대 인조의 맏아들 소현세자 원)과 의령원 (추존장조의 황제 (사도세자)의 맏아들 의소세선 원), 효창원(22대 정조의 맏아들 문효세자 원) 희묘(9대 성종의 두번째 왕비이자 10대 연산군의 생모 페비 윤씨의 묘)등과 왕자, 왕녀, 후궁등의 묘와 태실을 일제 강점기와 광복후 산업화 과정에서 옮겨온 묘 들이 있다,

서삼릉에서 나가는 길 오른쪽에는 원당종마목장 초지도 있다,

서삼릉 버스정류장을 지나서 효릉과 태실 방향으로 간다,

가는 길에는 이렇게 울타리가 처져 있는 곳이 보이는데 이곳이 서삼릉 효릉과 태실 정문이다,

효릉과 태실은 서삼릉 비공개 지역으로 제 12대 인종과 인성왕후의 무덤이 효릉이며 역대 조선조의 왕과 왕비, 공주, 대군, 등의 태를 모신곳이 태실이다, 이 밖에도 이곳에는 역대 후궁 및 옹주, 공주, 대군의 무덤도 수십기가 자리해 있어 단일 지역으로는 조선시대에 가장 많은 왕실 묘소가 위치해 있다,

연산군의 생모 였던 페비 윤씨의 회묘를 비롯하여 드라마 이산으로 유명한 정조의 후궁인 성송년의 무덤도 이곳에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묘소 및 태실은 일제 강점기에 문화재 도굴 및 관리를 위해 전국에서 옮겨온 것으로 일본의 우리 문화 유산 훼손의 역사를 증명하고 있다,

효릉은 조선왕조 12대 인종(1515~1545)과 인성왕후(1514~1577)의 능이다, 인종은 중종과 장경왕후의 아들로 태여 났어나 생모 장경왕후가 인종을 낳은지 7일 만에 세상을 떠나 문정왕후(중종의 세번째 왕비)의 손에서 자랐다, 1520년 에 왕세자가 되였고 1544년에 왕위에 올랐어나 재위 9개월 만에 세상을 떠 낫다, 인성왕후는 1524년에 왕세자 빈이 되였고 인종이 왕위에 오른 후 왕비가 되였다, 1577년에 세상을 떠나 이듬해에 인종의 능 옆에 모셔졌다,

서삼릉내 조선왕실의 집단 태실과 분묘는 전국 각지의 명산에 있던 국왕, 왕자, 왕녀의 태실과 서울, 경기 일원에 있던 왕자, 왕녀, 후궁의 무덤을 옮겨 놓은 곳이다, 태실이란 왕실에서 태여난 아기씨의 태를 묻은 곳으로 태를 항아리에 담아 전국 명산의 좋은 자리에 모심으로서 아기씨의 건강과 나라의 번영을 기원 하였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인 1928년 부터 1930년에 걸쳐 전국의 국왕과 왕실 가족 태실 54기가 발굴되어 그 태가 이곳으로 옮겨졌다, 현재 묻혀있던 태 항이리와 태지석은 국립고궁 박물관에 소장되여 있으며 이곳에는 비석만 남아 있다,

1930년대에는 조선왕실 왕자, 왕녀, 후궁들의 무덤을 옮겨와 왕자 왕녀묘역과 후궁묘역을 조성 했다, 광복 후 1960년대에도 도시화 개발 과정에서 서울, 경기 지역에 있던 후궁들의 묘가 이곳으로 옮겨 졌으며 마지막으로 1969년 현 서울 동대문구 회기동에 있던 9대 성종의 왕비 이자 10대 연산군의 생묘인 페비 윤의 회묘를 옮겨와 현재에 이르고 있다,

효릉과 태실등의 분묘군 옆에는 한국스카우트연맹 중앙훈련원이 있는데, 야영지 5개소와 야외 강당과 운동장등이 있다,

서삼릉 일대를 지나 가다가 보면 길은 왼쪽으로 이어진다, 이제 가야하는곳은 서삼릉 누리길의 종점인 원당역으로2,29km가 남았다,

이 언덕을 지나가면 수역이 마을이다,

수역이 마을은 고양시 덕양구 성사동에 속한 자연촌락 마을로 원당역과 서삼릉 사이에 위치한 가장 큰 마을로 쇄기 로 불리기도 한다, 본래 이 마을의 정식명칭은 수역(水域)이 마을이다, 수역은 물이 많은 지역을 부르는 이름인데 옛 기록에도 수역으로 표기 했다,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수역이가 오늘날의 쇄기로 불리게 된 것이다, 마을 앞에 넓은 들판이 있는 평범한 농촌 마을이 였으나 2000년대에 들어 식당들이 들어서기 시작하여 지금은 덕양지역에서 유명한 먹거리촌이 되였다,

수역이 마을 coffee 나무사이 집을 지나서

수원 문산 고속도로 아래 터널로 들어간다,

터널을 나가면 이제 부터는 수역이 마을 먹거리 촌이다,

일산정 닭불고기집 과

동동주와 보리밥 채식사랑 등의 매뉴 등을 달고 영업하는 송화황옥경 점과

옛날식 서울불고기 집인 한우촌

솔향기 쭈꾸미 볶음 집등

크고 작은 수십군데 음식점들을 지나

이어지는 길을 따라 가면 좀처름 보기 드문 넓은 콩밭도 있는데

먹거리촌을 지나 이제 나즈막한 산속으로 들어간다,

아직은 11시경이지만 이 길에는 어디 마음 편히 앉아 있을만한 곳이 없어

언덕너머 숲속 공터에 주저 앉아 간식도 한다, 맜있는 용인김밥 원조 집에서 공수해 온 김밥도 한줄씩 먹고 아주 간단하게 급유도 했다, 산에서는 안되지만 평지길이니 소량의 급유는 진정한 사랑이다, ㅋ

그렇게 그긋하게 쉬고나서

이어 가는길

원당역 800m 거리 까지 왔다,

아파트 숲 도 보이고

전철길도 보인다,

그러다가 보니 기건선생 묘 및 신도비가 있는 곳 까지 왔다, 그러나 여기서 130m 왕복으로 260m이니 묘소와 신도비는 다음으로 미루기로 했다,

이어서 원당역으로 가는길 행주기씨 도선산(幸州奇氏 都先山)이 있다, 행주기씨(幸州奇氏)의 연원과 원당 도선산(都先山)은 행주기씨의 연원은 지금으로 부터 3000여년 전인 기자조선을 개국한 (文聖大王 箕子(문성대왕 기자)로 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기자의 48대손 馬韓王 箕勳(마한왕 기훈)에게는 우성, 우량, 우평등 아들 3형제가 있었는데 왕조가 기울자 그들은 부왕으로 부터 기(奇), 한(韓), 선우(鮮于)라는 성씨를 하사받고 백제와 신라, 고구려 등으로 떠났다,

奇友誠(기우성)은 백제 온조왕에게로 가서 侍中(시중)의 자리에 올랐고 행주산성 및 고양시 덕양구 일대에 자리를 잡어면서 이곳은 오늘날까지 2000여년동안 행주기씨의 세거지가 되였으며 이로서 奇友誠은 幸州奇氏의 득성시조가 되였다, 기우성의 후손들은 신라 고구려에도 널리 퍼지고 고려에 이르러서도 크게 번성했다, 고려인종(1122~1146)시대에 이르러 門下平章事(문화평장사)를 지낸 기우성의 65대손 기순우가 행주기씨의 중시조(족보에 제1세조)로 기록되였으며 오늘날 행주산성 내성리에서 태여난 그의 6대손 손녀가 元順帝(원순제)의 왕후인 奇皇后(기왕후)이다,

행주기씨의 聖地(성지)인 이곳 원당 도선산에는 기순우에서 기면 에 이르는 9분의 추모단이 있으며 기순우의 9대 손으로 세종대왕시절 명현이자 청백리인 정무공 기건(1390~1460)의 묘소와 기묘명현 문민공 복재 기준 의 묘소를 비롯해 많은 학자, 충신들의 묘소가 보존되여 있다, 또한 이곳은 문헌공 고봉 기대승의 아버지 문간공 노사 기성진의 선대 할아버지들이 태여난 곳이기도 하며 조선의 명필 한석봉, 중국의 명필 주지번의 글씨로 새겨진 비석을 포함하여 향토문화재가 보존되여 있는 곳이기도 하다, 동시에 이곳에는 정무공 기건을 비롯한 행주 기씨의 선조들과 함께 문정공 정엄 조광조 추만 정지운 등이 배향된 德陽서원이 자리잡고 있다,

건물들 가운데로 보이는 길다란 건물이 원당역이다,

원당역 입구 서삼릉누리길 입구에 있는 이 안내판이 이곳이 고양누리길3코스 종점임을 알려준다,

원당역 3번 출구가 제 4코스인 행주누리길 시종점이라는 이정표도 있다,

원당역 3번 출구로 이어가는길 이제 부터는 고양누리길 4코스 행주누리길이다,

고양누리길 3코스 서삼릉누리길은 8,28km에 2시간 15분이 걸린다고 했는데 GPS 실측거리는 9,1km에 3시간 가깝게 걸렸다, 1km가까운 거리를 알바를 한 것도 아니고 서삼릉으로 들어가 둘러본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많은 차이가 나는지? 알 수 없지만 여하튼 기록은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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