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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암사 - 1,300년의 신비를 이어간다,(2016, 8, 24) 본문

국내 山行日記/그곳에 가고싶다

정암사 - 1,300년의 신비를 이어간다,(2016, 8, 24)

물흐르듯이순리대로 2016. 8. 25. 17:52

진신사리(석가모니 몸에서 나온 사리)가 봉안된 벽돌탑 정선 정암사

수마노탑(水瑪瑙塔)이 3수(修) 끝에 국보로 승격됐다. 문화재청은 보물 제410호 정선

정암사 수마노탑을 국보 제332호로, 지정예고 했다고 2020년 6월 25일 밝혔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정암사는 신라 자장율사가 당나라 오대산에서

문수보살로부터 받은 진신사리를 들고 귀국해 643년에 창건한 절이다. 율사가 돌아올 때

서해 용왕이 준 마노석으로 수마노탑을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마노는 금, 은과 함께

일곱 가지 보석 중 하나다. 마노 앞에 수(水)자가 붙은 건 물길을 따라

가져왔다는 의미라고 한다.

 

수마노탑은 기단에서 상륜부까지 완전한 모습을 갖춘 7층 모전석탑이다.

전체 높이는 9m로. 화강암 기단 위에 세운 탑 1층에 감실(龕室, 사리나 불상을 봉안하려

탑신 내부에 만든 공간)을 상징하는 문이 있고, 그 위로 벽돌 모양 석재를 층층이 올렸다.

고려 시대 이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수마노탑은 경주 불국사의 석가탑(국보 제21호), 다보탑(국보 제20호) 등과 더불어

탑의 이름이 지금까지 전해지는 희소한 탑이기도 하다. 1972년 해체 과정에서 탑 건립 이유,

수리 기록 등을 적은 돌인 탑지석이 발견돼 조성 과정이 확인됐다.

 

수마노탑이 국보로 승격된 건 세 번째 도전 만이다. 2011, 2013년 두 차례

국보 지정을 신청했지만 근거 자료 부족 등으로 부결됐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탑지석 등

자료에서 수리 기록과 연혁을 알 수 있는 데다 모전석탑으로 조성된 진신사리 봉안탑은

우리나라에 수마노탑 하나밖에 없는 만큼 국보로서의 역사, 예술,

학술 가치가 충분하다고 밝혔다.

태백산 정암사 적멸보궁은 신라 선덕 여왕14년(서기 645년)에

당시 고승 자장율사께서 창건한 사찰이다, 적멸보궁? 이란 부처님의 정골사리를

모신곳으로 불상을 모시지 아니하며, 이러한 성지를 보궁이라 한다,

강원도 첩첩 산중 정암사,

행정구역은 정선군 사북읍 고한리나 절 이름은 태백산 정암사다,

함백산 기슭이지만 이 일대가 모두 태백산 자락이라 지금도 예전 이름 그대로 불린다,

정암사로 가는길은 멀다, 참 멀다, 서울에서 원주 제천 영월을 지나가야 한다,

정암사 일주문을 들어서면서 보이는 수마노탑은 정암사를 창건하신

자장율사께서 당나라에서 귀국할때 서해 용왕이 용궁으로 데리고 가서 주신

마노석으로 탑을 쌓았다 해서 수마노탑이라 한다,

마노석으로 탑을 쌓을때 금탑과 은탑도 쌓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 탑을 볼수없는 것은 후세 사람들이 귀한 보물에 탐심을 낼까 염려하여

영구히 비장 했다고 한다,

경내로 들어서면서 만나게 되는 종각,

여느 절과는 달리 꽁꽁 싸매여 놓은듯 문이 닫혀 있다,

정암사 극락교 다,

극락교를 건너 들어간 보궁뜰 약 1,300 년전 자장율사가 정암사를 창건하시고

평소 사용하시든 주장자(지팡이)를 꽃아 신표로 남겼다는 주목, 결국 이 주목의 나이가 1,300살이다,

언제나 그렇듯 신화와 역사가 함께 살아 숨쉴때가 가장 신비롭지 않겠는가

정암사 적멸보궁, 적멸보궁은 이절의 법당에 해당하는 건물이다,

정암사는 불상대신 적멸보궁뒤 산중턱에 석존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수마노 탑이 있다,

적멸 보궁과 1300년의 주목

적멸보궁을 나와서 수마노탑으로 가는길

사철 쉼없이 흐르는 개울에 놓여진 일심교를 건너간다,

적멸보궁이 법당인데도 불상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일까? 석존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수마노탑으로 가는 길은 잘 정비 되여 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올라가다가 고개를 들면 불현듯 나타나는 수마노탑,

바라 보기만 해도 숨이 멎는다,

이 수마노탑은 원형 보존된 문화유적으로

국가 지정 보물 제 410 호다,

신라 선덕여왕 12년(서기 634년) 자장율사가 정암사를 창건하고

7년 후인 641년에 탑을 건립했어며 탑의 내부에는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봉안 되여 있는 성스러운 곳이다

이 탑은 돌을 벽돌처름 짤라서 쌓은 7층 석탑이다,

기단부는 화강마을 쳥면이 점점 좁아지게 6단으로 쌓았고 그 위에 돌 벽돌을

2단으로 쌓아 탑 몸체부를 받치고 있다, 탑 몸체부를 구성한 돌 벽돌은

회록색을 띠는 석회암인데 수마노탑으로 불리여 진다,

1층 몸 돌의 남면 중앙에는 화강암으로 문틀을 마련하고

1매의 넓고 얄팍한 돌을끼워 쇠문고리를 단 문짝을 만들었다, 지붕돌의 추녀

밑은 살짝 들려 있어며, 추녀 밑, 모서리에는 작은 종을 매 달았다, 각층의 위 아래 지붕 돌

받침수는 1층으로 부터 올라갈수록 줄어 들고, 상륜부(탑 맨위에 놓인 장식)는

청동으로 만들었어며 거의 원형 그대로 완전히 남아 있다,

수마노탑 앞에서 신발을 벗고 댓돌위로 올라서서 두손을 모으고 예불을 드린다,

무었을 위해 두손을 모으는가?, 무슨 거창한 소망이 있어 기원을 드리는게 아니다!!

그저 이 깊은 산사의 수마노탑 앞에 내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족하다,

수마노탑에서 내려다 보이는 정암사 ~

한폭의 그림처름 고즈녁한 모습이 정겹다,

삼국유사에 보면 자장율사가 만년에 서울을 떠나 강릉에 수다사 를 세우고

은거했는데 어느날 문수보살이 나타나 태백산에 칡덩굴이 서려 있는 곳에서 다시 만자자,

하고 사라진다, 그래서 자장율사가 태백산으로 들어와 산골짜기를 더듬어며 칡덩굴이 서린곳을

찾는데 큰나무 아래 커다란 구렁이 한마리가 몸을 서리고 있는것이 보였다,

그래서 그 곳에 석남원(지금의 정암사)을 세우고 문수보살을 기다리든 어느날

다 떨어진 도포를입은 한 늙은 거사가 칡으로 역은 삼태기에 죽은 강아지를 담아 메고 와서

자장을 찾았어나 자장이 알아보지 못하고 돌려보낸뒤 뒤늦게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닿고

거사를 찾았어나 찾지못하자 그대로 쓰러져 죽고 말았다는 일화가 있다,

그 먼날의 일화는 지금도 전설속에 남아있지만

정암사를 찾아오는 현세의 수많은 중생들은 이곳에 정암사가 있기 때문에 찾아온다,

정암사는 규모에서는 큰 절이 아니다,

작고 아담한 사찰이지만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 중 한곳이다,

정암사를 나가는길에 다시 한번 둘러보는 사찰경내

묘한 끌림이 있는 곳이다,

정암사 계곡은 물이 맑고 오염되지 않아 인근 경북 봉화군과 함께

열목어 서식지로 알려진다, 이 때문에 계류주변의 삼림과 함께 서식지를 보호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계곡은 물이 말라 붙었다, 이곳에서 살고있든

선천어는 모두 어디로 갔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