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흐르듯이 순리대로
한양도성길(1) 돈의문(서대문) ~ 숭례문(남대문)(2016년 9월 25일) 본문
지하철5호선 4번출구로 나가면 서울 적십자병원과 삼성강북병원이 있다,
한양도성길 서대문은 강북 삼성병원 앞 정동서거리에 있었든 돈의문터에서 부터 이야기가 시작이 된다,
강북삼성병원과 경향신문사 앞 정동사거리는 돈의문 즉 서대문이 있었든 곳이다,
돈의문은1395년(조선 태조 5년) 한양 도성의 제2차 축성 공사가 끝나고 8문이 완성되던 때 처음 세워졌다.
돈의문 이라는 이름은 유학의 덕목인 인의예지신 중 의(義)를 넣어 만든 이름이다, 또한 서대문인 돈의문이 없어진 것도
그 이름 때문이다. 일제는 조선인들이 의(義)를 찾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돈의문을 헐어 건축자재로 매각하고
서대문지역에 형무소를 지였다. 그만큼 우리는 인의예지신(仁 義 禮 智 信) 이란 말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돈의문이 있었든 정동사거리에서 광화문 방향으로 경희궁이 있었다,
일제는 이곳에 도로를 내고 돈의문과 경희궁을 일부를 철거하면서 한양도성 성곽은 점차 흔적도없이 사라진다,
유추하건대 돈의문(서대문)에서 소덕문(서소문)으로 연결되였든 한양도성은 지금의 이화여고를 가로질러 이어졋을것 같어나
지금통행할수 있는 길은 이화여고 정문이 있는 정동길과 이화여고 외국어 고등학교가 있는 농협박물관 옆길 뿐이다,
돈의문(敦義門)은 조선의 수도인 한양의 4대문 중의 하나로 서쪽의 정문이다.
한양 도성 서쪽의 큰 문이라 하여 서대문(西大門)이라는 명칭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고,
새문, 신문(新門)이라고도 불렀다. 돈의문으로 가는 길에 위치한 중구 정동의 신문로 나 새문안길,
새문안교회, 등의 이름은 돈의문의 다른 이름인 신문, 새문등에서 따온 말이다.
행정지명인 서대문구는 돈의문인 서대문에서 이름을 따왔지만,
정작 돈의문터인 이곳 서대문은 행정구역 개편으로 중구 관할지역에 속한다.
서대문 로타리 농협중앙회와 농협박물관 사이길, 이화여고외국어고등학교 앞으로 간다,
이곳에는 엄청나게 큰 나무가 있다, 분명 무슨역사가 있을것만같은,
서대문정거장터다, 비문에 새겨진 안내대로 경인선 개통당시의 시발역이였다,
서울역이 아니라 이곳이 시발역이였다고
경찰청옆 서소문아파트가 건너다 보인다, 40년도 훌쩍넘었을것 같은 서소문 아파트
마치 시간이 정지하고 있는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 아파트는 주상복합 아파트로 1층은 상가다,
중앙일보와 호암아트홀 앞길
소덕문 터다, 문류와 성곽은 흔적도 없이 사라젓어나 소의문인 서소문은
한양도성의 정문이였든 남대문이나 동대문과는 달리 대문이 할수없는 역활을 한 문이다, 이곳 소의문도
광희문과 함께 시구문 이기도했다, 즉 도성에서 상여가 성밖으로 나가든 문이다, 또한 소의문은 상여뿐만이 아니라
죄지은 사람을 도성바같에서 처형하든 장소기도 했다, 조선시대 죄인들의 처형 장소가 이곳이였다,
1890 년대 초중반의 모습,
소덕문(昭義門, 昭德門) 속칭 서소문(西小門) 外측 모습,
소의문, 또는 소덕문(昭義門, 昭德門) 속칭 : 서소문 바깥쪽 모습,
성문안팍 왼편에 성곽이아닌 석축이 보이며, 왼쪽 성곽너머 안쪽에 수평으로 된 건축?
구조물과 굴뚝으로 보이는 것이 있어며 전봇대를 보면 구한말이나 일제강점기 초기의 모습으로 보인다,
오른쪽 성곽의 나무 모습도 보이며, 성문앞길 오른쪽의 지형이 여느 성문주변과 다른모습이다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에서 본 소의문 (昭義門) 은
속칭 서소문西小門 이라고도 한다, 숭례문(崇禮門)과 돈의문(敦義門)사이, 즉 지금 서소문동 큰길에 위치
하였던 서남간문으로 일반적인 통로가 되였고, 광희문(光熙門)과 함께 시신을 성밖으로 운반하든 통로 구실을 하였다,
이 문은 창건당시인 1396년(태조 5년) 9월에 다른성문과 함께 지어 졋을때는 소덕문(昭德門)이라 하였다, 이 곳은 태조때 토성을
쌓았든 곳이며, 1422년 세종 4년에 이 것을 석성(石城)으로 개축한것으로 미루어 소덕문으로 고쳐서 지였어리라 믿어지나
확실한 기록은 없다, 경성부사(京城府史)에 1472년 성종 3년에 예종비(睿宗妃) 한씨(韓氏)의 시호를 소덕왕후
(昭德王后)라 한 까닭에 문 이름을 소의문으로 고쳣다는 기록도 나온다,
호암아트홀 앞길을 따라 숭레문까지 이어지는 길은 한양도성 성곽기초를 근간으로 복원되여 있다,
모두가 사라지고 없는 이곳에 그나마 성곽의 흔적이 남아 있다는게 반갑기 까지하다,
남대문인 숭례문이 건너다 보인다, 국보 1호인 숭례문은 정도전이 이름을 지었다.
정도전은 조선이라는 나라의 소프트웨어를 만든 사람으로 숭례문이란 이름도 그냥 붙인 것이 아니다.
그는 한양성의 틀을 잡을 때도 유학을 기반으로 했다. 한양을 유학이 완전히 구현된 천국 으로 만들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래서 4대문의 이름을 유학에 나오는 인간의 본성인 4단(仁義禮智)에서 하나씩 차용해 지었다.
흥인(仁)지문, 돈의(義)문, 숭례(禮)문, 그리고 홍지(智)문이 그것이다,
원래 4대문의 북쪽 이름은 숙정문인데 북쪽은 음기가 세기 때문에 열어놓으면 환란이 많이 생긴다 하여
숙정문을 항상 닫아놓고서 홍지문으로 대문을 갈음했다. 가장 중요한 신(信)은 바로 보신각이라는 이름에 들어 있다.
모든 가정과 국가의 기본은 신뢰다. 왕이 신하를 못 믿고 백성이 왕을 믿지 못하면 왕 노릇을 할 수 없다.
그래서 보신각의 타종으로 사대문을 열고 닫았다.
남지터도 있고
조선통신사의길 비석도 있고
더이상 말이 필요없는숭례문
1904년 초 숭례문주변 사진
1900년대 초 까지만해도 성곽이 온전하게 남아있음을 보여주는 사진기록이다,
이해를 돕기위한 서대문역에서 부터 숭례문까지의 약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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