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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형무소역사관 - 1,고문실 (2016년 11월) 본문

국내 山行日記/그곳에 가고싶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 - 1,고문실 (2016년 11월)

물흐르듯이순리대로 2016. 12. 3. 15:55

2016년 11월 안산자락길을 돌아서 서대문형무소 역사기념관으로 들어간다,

서대문형무소 개설

1908년 조선통감부가 의병 등 반일세력을 탄압·수용할 목적으로 만든 감옥이다.

건물은 본래 아연판을 붙인 판자로 두른 허술한 형태였다. 건립비용은 약 5만원이었고, 규모는 청사 및 부속건물 80평,

감방 및 부속건물 480평이었다. 원래 수용인원은 500여 명이었는데, 이후 증·개축을 반복하여 1938년 수용인원은 2,763명이었다.

사적 제324호로 지정되어 있다.

변천과 현황

조선시대에 죄수의 수감을 관장했던 부서는 형조 산하의 전옥서(典獄署)였다.

전옥서는 주로 형벌을 확정하고 집행하기 전까지 미결수(未決囚)를 수감하는 시설로 제한적으로 운용되었다.

1895년 정부는 전옥서를 폐지하고 내부(內部) 경무청 산하에 감옥서(監獄署)를 두어 감옥 사무를 관장했다.

현재 감옥서의 「부지평면도」가 남아 있다

그런데 1905년 을사늑약과 1906년조선통감부 설치로 인해 정부의 법 집행의 자율성이

일제에 의해 크게 침해되고, 1907년 일본인이 감옥 관리 인력으로 대거 기용됨에 따라 감옥 운영의 주도권은 일제로

넘어가게 되었다. 이어 1908년(순종 2) 10월 21일 일본인 건축가 시텐노 가즈마〔四天王要馬〕의 설계에 의해 경성감옥(京城監獄)이

건립되었다. 이 감옥은 본래 1907년 8월에 완성되었으나 군대 해산 이후 해산 군인의 의병 가담과 순종황제 등극 이후

시국의 불안정 등으로 인해 바로 개소되지 못했다가 1908년 10월에야 비로소 개소하게 되었다.

그러나 1912년경성감옥이 마포 공덕동에 신축 옥사로 이전함에 따라, 현저동에 있던 기존의 감옥시설은

‘서대문감옥’으로 불리게 되었다. 서대문감옥 산하에는 종로출장서(옛 전옥서), 대평동 출장소 및 영등포·인천·춘천분감을 두었다.

 1923년 ‘서대문형무소’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이로부터 오늘날 일반인에게 익히 알려진 ‘서대문형무소’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현재 1930년에 작성된 「서대문형무소 배치도」가 남아 있다. - 위 내용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인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