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흐르듯이 순리대로
평화누리길 7코스 팁, - 반구정 伴鷗亭 (2017년 2월 26일) 본문
청백리 황희정승(1463~1452)이 말년에 관직을 사양하고 고향에 돌아와 갈매기를 벗삼아
지내든 곳으로 임진강 하류 절경지역에 세워진 정자가 반구정이다, 앞 보이는 정자는 앙지대(仰止臺)라는 정자다,
양지대 오른쪽 조금낮은 곳에 있는 정자가 반구정 伴鷗亭 이다,
반구정에오르니 만감이 교차한다, 민족의 비극을 안고 흐르는 임진강,
멀리 북한이 보이고 정자 옆의 철조망과 군 초소가 통일을 기원하는 방문객들에게 안타까움을 더한다,
반구정은 청백리 황희가 관직에서 물러나 갈매기를 벗삼아 여생을 보냈다는 정자다,
나라가 무너질 지경인 지금의 현실에서 반구정의 의미는 크다,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였는지?
그럴수록 청렴, 성실, 강직했든 황희선생의 생애가 가슴을 때린다, 1450년(세종31년) 초 여름날 저녁 임진강가에
앉아있는 황희 정승의 뒷모습은 단아 했을 것이다, 그를 위로하는 벗은 정자를 맴도는 갈매기와
떨어지는 했살을 타고 곱게 흐르는 임진강의 은빛 물결이 아니였을까?
이곳 반구정에 낙조가 들면 더 없는 아름다움을 한꺼번에 느끼게 해주는 곳이다.
허목(許穆)의 반구정기(伴鷗亭記)에는 "조수때마다 백구가 강위로 몰려들어 모래사장 벌판에 가득하다" 고 했다.
그러나 지금은 철조망이 반구정 언덕과
임진강을 가로막아 임진강가로 들어갈수도 없는 가슴 아픈 분단의 현실로 바뀌였다,
그래도 예나 지금이나 임진강은 서해로 유유히 흘러가는 것을 보니
자연은 그대로 인데 사람만 변했나 보다,
세종을 도와 새로운 나라 조선의 기틀을 마련하였던 황희 정승은 태조의 부탁을 받은
두문동의 고려 신하들이 왕은 미워도 백성은 도탄에 빠지게 할 수 없다 하여 추천한 인물이다,
태종 때 도승지의 자리에 올라 가까운 거리에서 왕을 보필하는 등 신임이 두터웠으나 이후 왕세자
폐출 문제로 양녕대군을 물리치는 것을 반대하여 귀양을 가기도 했다
왕이 된 세종은 양녕대군을 옹호했던 황희를 등용하고 그의 도움으로 조선 최고의 치세의 시대를 열게 된다.
이곳에는 정자인 반구정을 비롯해, 황희 묘, 기념관과 황희의 영정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사당인 방촌영당이 함께 있다.
반구정은 한국전쟁 때 불이 난 것을 1960년에 다시 지어 건물의 예스러움은 덜하지만, 자리는 그대로인지라
반구정에 올라 바라보는 풍경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가 않은것 같다,
오늘은 평화누리길을 걷다가 반구정에 올라 조선 최고의 청백리였든
한시대의 큰 인물인 황희 정승을 기리면서 2017년 탄핵정국의 세태를 생각하니 가늠할수조차 없는
부끄러움에 그저 가슴이 아려온다, 임이시여 부디 이 못난 후손들을 굽어 살피소서 ~
고려말엽에 문과를 급제하고 망국과 함께 두문 불출하다가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하려
새 왕조와 협력하여 정승을 18년간 재임하고 관직에 물러나 자연으로 돌아온 곳, 지금의 사람들은
압구정은 잘 알아도 반구정은 모른다, 압구정은 조선의 재상 한명회가 지였든 정자다, 서울 강남 압구정동 근처
어딘가에 있었다고만 알려저 있을뿐 지금은 흔적도 없다, 그러나 방촌 황희(1363~1452)가 지은 반구정은
아직도 그대로 남아 북녁땅이 보이는 파주 임진강변에서 오늘도 방문객을 맞이한다,
방촌 황희선생 기념관
기념관 내부 전시물들 ~
반구정 일기는 여기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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