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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흐르듯이 순리대로

관악역에서 연주대로(2017년 9월 24일) 본문

국내 山行日記/서울·북한·도봉

관악역에서 연주대로(2017년 9월 24일)

물흐르듯이순리대로 2017. 9. 24. 21:12

과천역 7번출구를 나가서 곧바로 관악향교 방향으로~,

가는길 중앙동행정복지센터라고 쓴 간판이 붙은 중앙동사무소도 지나가고

중앙동사무소 앞 지하도에는 꽃피고 지는일이 내마음속에 있네 라는 글도 붙어 있다,

궂이 이곳에 이런 글이 붙어있는 이유는 아마도 연주대와 가까운 동네라 그렇지 않을까 라고 생각해본다,

과천향교 앞

과천향교 ~ 

과천향교는 1398년(太祖 7) 과천현에 설립되어  조선말기까지 지역 유림의 대표적인 교육공간이다,


향교 앞 계곡

계곡을 따라 연주암으로,

관악대피소,

새로 말끔하게 단장을 해서 인지 제대로 대피소 모습이 갖추어 졋다,

물소리가 가장 잘 들리는 곳이라는 안내가 있지만 계곡물이 말라 붙어 오늘은 물 소리를 들을수 없다,


관천향교 계곡길의 끝은 연주암이다,

계곡에는 연주샘이라는 약수터도 있다,

연주샘 에는 불기 2528년 마하반야바라밀 이라는 표지석도 눈에 띠인다,

1984년이 불기 2528년이면 지금은 불기 ?년 일까

연주샘을 지나면 서서히 고도가 높아진다, 그래도 계단길을 잘 만들어 놓아서 그리 힘들지는 않다,



관악역에서 약 1시간 정도 걸려 도착한 연주암


연주암 천수 관음전이다, 절에서 관음전이란?

관세음보살을 주불(主佛)로 모시는 전각으로 관세음보살의 공덕이 주원융통(周圓融通)하다는 의미에서 원통전(圓通殿)이라고도 한다.

천수관음전 옆 공터에 있는 장 단지,


 관음전에는 관세음보살을 홀로 모시거나, 양류관음이나 해수관음(海水觀音) 또는 천수관음 등을 모시기도 한다.

관음상은 대개 왼손에 연꽃이나 감로병을 들고 앉아 있는 모습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자비의 화신인 관세음보살에 대한

신앙이 성하였기 때문에 거의 모든 사찰에 관음전이 있다,

천수관음전 내부


연주암은 통일신라 문무왕 17년(677) 의상대사가 ‘관악사(冠岳寺)’라는

이름으로 창건했다, 그 후 여러 차례의 단장을 거치고, 양녕대군과 효녕대군이 머물면서 연주암이라 부르게 된다.


연주암 대웅전 앞에 서 있는 3층 석탑. 석탑 1층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리고 머리장식을 얹은 형태다.

바닥돌에는 연꽃을 둘러 장식하고, 기단 네 모서리와 탑신의 몸돌에는 기둥모양을 새겼다. 두툼한 지붕돌은 밑면에 1층은 4단,

2~3층은 3단의 받침을 두어 규칙성을 잃고 있다. 꼭대기에는 노반(露盤:머리장식 받침) 위로 앙화(仰花:활짝 핀 연꽃 모양의 장식),

보주(寶珠:구슬 모양의 장식)가 놓여 머리장식을 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정연하고 균형 잡힌 안정감을 준다. 조선 태종의 첫째 왕자인 양녕대군과 둘째 왕자 효령대군이

셋째 왕자인 충녕대군에게 왕위를 계승할 것을 부탁한 후 궁궐을 나와 이곳에 머무르며 수도할 때, 효령대군이 세운 탑이라고 전하고 있다.

하지만 기단이 1층이고, 탑신의 지붕돌이 두툼하고 받침수가 줄어드는 등 조성수법에 있어 고려시대 석탑의 특징을 보이고 있어

고려시대의 탑으로 추정되는 탑이다,

신라 문무왕 10년(670)에 환국한 의상대사가 세웠다고 하는 이곳은 본디 의상대 였단다.

  여기에 기막힌 얘기가 전해저 내려온다,  675년 11월 삼국통일 과업을 완성한 신라 문무왕은 시름이 빠졌다.

넓어진 국토 관리가 걱정이었다. 왕과 의상은 나라의 미래를 논하다 관악산을 떠올렸다. 관악산은

예부터 개성 송악, 가평 화악, 파주 감악, 포천 운악과 함께 경기도 오악으로 불린 곳이다.

빼어난 봉우리와 바위가 많고 검붉은 바위로 이뤄진 관악산은 그 꼭대기가 마치 큰 바위기둥을

세워 놓은  갓 모습의 산 이라고해  갓뫼  또는  관악이라 했다. 발 아래로 과천 지역과 한강 유역, 서울을 내려다 볼 수 있었다.

연주암 중건기등 사찰 기록에 따르면 문무왕 17년(677) 의상은 관악산 꼭대기에 의상대를 세우고 그 아래 관악사를 창건했다. 고  되여있다, 

그러나 의상대사가 이곳에 의상대를 건립한 이유가 부처님 가피가 두루두루 온천하를 굽어 살피고 보듬길 바랐을 게다.

기암 절벽위에 석축을 쌓아 터를 딱아 마련한 이 암자는 응진전이다, 이 응진전 현재의 건물은 조선후기에 지어진

세평 남짖한 맞배지붕으로 최근에 해체 복원한 것이다


관악산 정상에서 사당방향으로 오르내리는 길 조금은 험한 길이다,


관악산에는 2개의 국가기관 시설물이 있다,

 앞에 보이는 둥근시설물은 기상레이더 관측소 며 그 뒤로 보이는 뽀죽한 철탑군은  KBS 송신소다,

연주대 응진전으로 들어가는길

관악산 정상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