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흐르듯이 순리대로
이화원 이허위안(I-ho Yuan) - 8, 만수산 산책길, 의운관,(2018년 1월 14일) 본문
이곳은 이화원에서 제일 높은 산인 만수산(万寿山,Wànshòushān,완서우산) 정상이다, 곤명호가 내려다 보인다,
보이는 곳은 곤명호의 남호도 (南湖岛 Nanhu Island )로 들어가는 십칠공교(十七孔桥,shíQīkǒngqiáo,스치쿵챠오)가 보인다,
이제 만수산 산책길을 따라 이화원 동문으로 간다,
지혜해에서 불향각으로 내려가는 곳에있는 매표소직원의 안내에 따르면 내려가는 길은 불편함이 없도록 잘 만들어저 있다고 했다,
초입부터 아주 시원한길이였다,
여름철에는 굳이 햇볕이 쨍쨍드는 곳이 아니라 이런길로 더위를식히며 돌아봐도 좋을것 같은 그런 길이다,
길이 너무 좋어니 딴생각이 든다,
해발 100m가 넘는 산과 바다처름 큰 호수를 손으로 만든 민족이 중국이라는게 ~
도대체 이런 불가능함을 가능하게 만드는 힘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단지 인구가 많다는 이유만일까,
아니면 생각부터가 우리와는 다른 민족일까? 전자든 후자든 왠지 그들의 기질이 부럽다
완서우산 우리말로는 만수산이라 부르는 이곳은 이화원 내 작은 산이다,
높이 58,6m 해발 108,94m 로 이화원내 곤명호 옆 북쪽에 있는 산이다, 명나라 홍치 7년 1494년 효종孝宗의 유모
조성부인 라씨가 산 앞쪽에 원정사를 지었어나, 청나라 초기에 궁궐의 말을 키우기 위한 여물장이 되였다,
건륭15년 1750년 황태후 회갑을 경축하기 위하여 원정사 부지에 보은연수사를 지었다,
이듬해 산 이름을 만수산이라 개명했다,
곤명호 개척공사시에 원 배치의 요구에 근거하여 퍼낸 토사를 산위에 쌓았어며, 동서 양쪽 비탈은 완마하고 대칭이 되도록 했다,
지근의 만수산은 영국 프랑스군의 침탈후 자희태후가 새로이 보수공사를해서 오늘에 이른다,
이곳을 현재는 만수산이라 부르지만 원나라때는 옹산이였다, 전설에 따르면
한 노인이 산위에서 보믈이 가득담긴 돌 항아리 석옹(石瓮)을 발굴 했기에 붙여진 이름으로 산 앞쪽의 호수는 오산박(瓮山泊)이라 불럿다,
기원1292년(원 나라때부터 원나라 29년)경 과학자 곽수경이 통혜허(通慧河) 하천을 파고
창평과 서산지역 일대의 샘물을 호수내로 끌어와 궁궐에 물을대고 운하를 만들었다, 이때부터 옹산박 호수는
베이징성에 생활용수를 공급하는 저수지가 되였다, 그러고보면 이곳 곤명호와 황실은 오랜 세월동안
연관이 있었든것 같다,
이떼부터 명나라때까지 호수주변으로 비교적 영향력이 있는 사원들이 건설되였어며,
그중 서북연안쪽의 대승천호성사(大承天㨭성寺)가 가장 규모가 컷다, 만수산자락에는 넓직한 한백옥의 낚시터가
호수까지 연결되는데, 원나라 황제가 이곳을 자주찾아 물놀이와 낚시를 즐겻다는 이야기도 전해온다,
이제 많은 건물들이 보이기 시작하는것을 보니 만수산 하산길은 끝나가는 모양이다
내려가는길 오른쪽으로 산위에 우뚝 서있는 불향각, ~
이화원의 정점에 있는 불향각이 보인다, 곤명호 옆에 있는 운무옥우 云輝玉宇 패루 牌樓 부터
배운문 排云門, 이궁문 二宮門, 배운전 排云殿, 덕뤼전 德輝殿, 불향각 佛香閣을 거처 맨위 지혜해 智慧海에 이르기 까지
직선의 중추선에 한층 한층 올려진 모습은 지금의 설계로도 힘들것같은 생각이 드는건 나만일까,
만수산에서 내려와서 이제 전각 안으로 들어간다,
사실 이 전각은 무었을 하든 곳인지는 모른다, 그저 길이니 따라 들어가는 것이다,
건축물의 한가운데를 걸어가지만 길이 맞는지도 헸길린다,
그러나 이런곳에서는
앞서가는 사람들만 따라가면 되는게 여행지의 이치니 그냥 따라간다,
의운관이라는 안내판이 있다, 이화원 의운관(颐和园 宜芸馆,yíyúnguǎn,이허위안 이윈관)은
옥란당 뒤쪽에 있는곳이다, 청 건륭년간(1736년 ~ 1795년)에 지은 건물로 광서시(1875년~1908년)에 재건했다, 광서제의 융유황후의 거처였다,
의운관은 청대 청의원 시기에는 건륭제 서고 였어며 이화원 시기에는 광서황후, 융유의 침궁이였다,
옥란당 건축은 서로 연결되여 있어며, 분포상 옥란당의 후원이다,
이런 돌을 모아서 진열을 해놓은 곳이 여러곳에서 보인다,
필경 무슨 뜻이 있을듯 했지만 자료는 없다,
나가는 길은 이제 저문을 통해서 곤명호수 로 나간다,
긴 장대에 달림 큰 붓으로 물을 찍어 바닥에 글을 쓰는 여자가 있었다,
물이라 금방 마르기는 했지만 필체가 보는 사람을 압도 한다, 더욱이 손으로 쓰는게 아니고 큰 붓을
어깨에 메고 자유자재로 쓴다, 우리나라 같어면 세상에 이런일이 TV에나 나올것 같은
호수가로 걸어 나가는데 오른쪽에 정자가나온다, 뭐지, 들어갈때는 못본것 같은데?
조금더 올라갔더니 성문처름 생긴 누각이 나온다, 안내를보니 문창각이다, 이화원 문창각(颐和园 文昌阁,Wénchānggé, 원창거)은
성관문 위 3층각이 였어나 광서시기에 재건할때 2층으로 만들었다, 문창각의 이름은 문운창성의 뜻을 가진다, 문창각은 이화원내 6개의 성관중
가장 크며 북향건축물이다, 하부 너비는 17m 깊이 17m로 벽돌을 쌓아 올린 성대에다가 성대중앙에는 동굴형 문이있고 상부 중앙에는
십자형 누각과 사면으로 복도가있고 네 모퉁이에 정자가 하나씩 있는 건축물이다,
문창각을 나가니 앞에 보이는 낮선풍경이 낮설다,
저곳은 이화원 남호도 (南湖岛 Nanhu Island) 로 들어가는 십칠공교(十七孔桥,shíQīkǒngqiáo, 스치쿵챠오)다,
오늘은 저곳까지 갈 시간이 안되여 이화우너 정문인 동문으로 나가야 하는데 동문을 지나처 왔다,
십칠공교(十七孔桥,shíQīkǒngqiáo, 스치쿵챠오)를 보니 내가 길을 잘못 들어온게 느껴진다,
앞서가든 식구들도 모두 안보이고 혼자만 경치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들어왔든 문창각을 다시 나가서
이화원 정문인 동문으로 나왔다,
주차장으로 가는길
겨울이라 인산인해를 이룬다는 이화원이 비교적 조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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