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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가산-해수관음성지 보문사 普門寺(2020년 5월 5날) 본문

국내 山行日記/그곳에 가고싶다

낙가산-해수관음성지 보문사 普門寺(2020년 5월 5날)

물흐르듯이순리대로 2020. 5. 6. 17:33

주차장에서 보문사로 들어가는 입구 보문사 관음송 觀音松이 있다,

觀音松 수령은 약 200년 이상이라고 하는데 이 소나무는 암반위에 뿌리를 내리고

옆으로 비스듬히 누운자세로 200여년 동안 보문사입구를 지키는 소나무다,

소나무를 지나 보문사로 들어간다,

일주문이 보인다

보문사 일주문과 나란히 붙어있는 건물은

통행세를 받는 보문사 매표소다, 어른 2,000원 중고생, 1,500원

초등생 1,000원의 입장료를 내야 한다는 안내가 보인다,

보문사 일주문에는 낙가산 보문사 라는 현판이 붙어 있다,

사찰에 들어설 때 가장 먼저 만나는 문이 일주문(一柱門)이다. 기둥이 한 줄로 서있다고

일주문이라고. 하지만 일주는 일심(一心)을 상징한다. 일심으로 진리의 세계로 들어가라는 상징적인

가르침인 것이다. 일주문의 현판은 대개 절집의 주산(主山)이름을 함께 병기한다.

이것은 절집을 수호하는 산신(山神)에 대한 일종의 배려다.

일주문을 들어서면 사바세계가 아닌 불국정토佛國淨土다,

바다를 바라보고 자리한 강화 석모도 보문사는 해수관음성지다, 우리나라 대표 해수관음성지는

강화보문사, 남해보리암, 양양낙산사, 여수항일암, 등이며 관음성지란? 관세음보살님이 상주하는 성서러운

곳이란 뜻으로 사용되고 있어며 이곳에서 기도 발원하게되면 그 어느 곳보다 관세음보살님의

가피를 잘받는 곳으로 알려져있다, 물론 이런 말의 뜻은 사찰에서 통용되는

말이니 일반인들은 그리 신경쓸일은 아니다,

절로 들어가는 오른쪽 기념품을파는 보문사 상점이 보인다,

길을막고 입장료를 받는것으로도 모자라는지 돈벌이에 너무 집착하는 것은 아닌지?

물론 불교신앙을 믿지않는 일반 관람인들도 절에 왔어니 적은 금액이지만

불전도 낼줄 아는데 요즘절에서는 보이는게 모두 돈내라는거다,

공덕비 뒤로 법음루가 있는게 보이고 그 오른쪽에는 범종각도 보인다

법음루 아래층 불이켜저있는 것을보니 찾집도 있는것 같다,

보문사는 신라성덕여왕 4년(635년)회정대사가 금강산에서 수행을

하든중 관세음보살을 친견하고 강화도로 내려와 창건했다는 일화가 전해저오는 절이다,

당시 관세음보살이 상주한다는 이름을 따서 보문사뒤 산을 낙가산이라 하고 관세음보살의 원력이

광대무변함을 상징하여 보문사라 이름지었다, 산과 절 이름이 모두 관세음보살을

상징하고 있어 보문사가 관음도량임은 창건의 역사로 부터 시작되였다,

경내 느티나무 아래는 해수관음성지 보문사와

오백나한에 대한 안내문도 붙어 있다,

보문사 석실이다, 보문사를 창건한지 14년만에

부처님과 미륵보살등 스물 두분의 석상을 바다에서 건저올려 석굴 법당에 모신

나한전 조성일화는 유명한 전설로 이어저 내려온다,

무려 1,400년전부터 보문사가 세워진 이야기중 하나의 전설은

석모도에 살든 어부가 바다로 나가 그물을 던젓는데 고기는 안잡히고 인형비슷한

돌덩이 22개가 올라왔다, 실망한 어부는 돌덩이를 바다로 던저버리고 돌아왔는데 그날밤 꿈에

노승이 나타나 귀한것을 바다에 버렸다며 꾸짖었다, 다음날 어부는 다시 돌뎅이를

건저올려 낙가산 동굴에 이 돌덩이들을 봉안했다,

 

전설속에 나오는 동굴은 아직도 보문사에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 전설이 사실인지? 아닌지가 중요한게 아니다, 역사는 그렇게 흐르는 것이니까,

천연동굴을 개조하여 만든 석실 입구에 무지개 모양을 한 3개의 아치형 홍예문을 만들었다,

석실 내부는 30 ~40여평의 넓은 구조로 상단에 석가모니부처님과

미륵보살, 제화갈라보살, 송자과음보살등의 보살님이 계시고 18나한이 모셔저 있다,

나한전은 365일 24시간 스님들의 기도가 끊어지지 않고 계속 이어지는 곳으로

누구나 언제든지 원하는 시간에 기도를 할수있는 나한도량 이다,

보문사 석실 앞, 또 하나의 볼거리인 맷돌이 있다,

신라선덕여왕때 건립한 보문사는 나한상을 모신 보문 동천으로 유명하다,

한때는 승려와 수도사들이 300여명에 이르럿다고 하는데

이들을 위해 음식을 만들었든 맷돌이다,

보문사 와불전이다,

와불전은 오백나한과 함께 천인대에 조성된 전각이다,

와불전내에는 열반 당시 석가모니 부처님의 모습을 자연석에 그대로

조각하여 모셨으며 전체신장 10m 열반대는 12m 로 그 규모가 크다, 전각 내부는 부처님뒤로

공간이 있어 주위를 돌면서 참배할수있다, 부처님이 누워계신 모습과 손의 모양, 불의佛衣의 주름등이

사실적으로 표현되여 있고 문양이 새겨진 열반대는 구름의 모양이 수려하고

아름답게 조각되여 있다,

와불전 옆 오백나한은 2009년 와불전과 함께 조성되였다,

진신사리가 봉안된 33관음보살탑을 중앙에 두고 오백나한이 감싸는 형상이다,

나한은 부처님의 제자로 아라한과를 증덕한 존자를 말하며

해탈하여 더 이상 윤회하지 않는다고 한다,

보문사의 오백 나한상은 모습과 표정이 모두 달라

각각의 개성적인 모습을 자유분망하게 나타내고 있어며 나한님의 좌대에는

봉안에 동참(시주)하신 분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와불전에서 내려다 보이는 보문사 전경

왼쪽의 향나무와 오른쪽의 느티나무 등이 보문사의 역사를 말해 주는듯 하다,

느티나무의 수령은 290년이나 된다고 한다,

보문사 향나무다, 보문사 석실 앞 큰 바위틈에서 자라고 있는

이 향나무는 밑둥 지름이 2,1m 이며 높이 1,2m 나무들래가 3,2m 정도나 된다,

나무가생긴 모습이 마치 용트림을 하고 있는듯 기이한 느낌을 주고있다, 이 향나무는 1,7m 높이에서

원 줄기가 동 서 양쪽으로 갈렸는데, 동쪽것은 둘레가 1,3m이고 서쪽것은 둘레가 1,5m이다,

625 동란중에 나무가 죽은것 처름 보이다가 3년후에 다시 소생 했다고 한다,

법음루 현판이 붙어있는 정자는 운판과, 목어, 그리고 법고가 걸려있다,

일반적으로 사찰에는 범종각이나 범종루에 범종과 법고, 목어와 운판이 함께 있는것에 비해

보문사 범종은 범종각에 따로 있다,

운판과 목어, 그리고 법고에 대한

설명도 있다,

윤장대다, 輪藏臺란? 책장의 일종으로 경전을 넣고 중심에 기둥을 세우고

기둥에 의지하여 원형 또는 다각형의 나무장을 올린 뒤 여기에 경전을 넣고 손잡이로

돌릴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경전은 경장뿐 아니라 율律 과 논論, 여러 고승들의 장소章疏도 함께 넣어둔다,

이는 불도를 믿어려 하나 글을 알지 못하거나 불경을 읽을 겨를이 없는 사람들을 위하여 만들었어며

한번 돌리면 경전을 한번 읽은것과 공덕이 같다고 한다, 이와함께 경전을 넣고 돌리면서

소원을 빌거나 소원을 써서 윤장대 안에 넣고 돌리는등 소원을 빌때 사용한다,

절에서 범종梵鍾이란 시간을 알릴때나 대중을 집합시키고

의식을 행할때 쓰이는 종이다, 종은 그 소리가 장엄하고 청명하여 듣는이의

마음을 청정히 참회토록하며 불교의 무한한 이상과 신앙심을 불러일으킨다고 한다, 또한

범종은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생들까지 구제할수 있는 믿음이 있어 사찰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의식법구중 하나다,

절 내외부에 빼곡히 걸려있는 연등 형형색색의 연등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걸어놓은 연등에 종이가 매달려 있는 것은 주인을 만난 것이고 아직 종이를 붙이지 못한것은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등들이다, 연등을 달려면 얼마나 시주를 해야 하느냐고 궁금해서 물어보니, 가족등을

며칠 걸어 놓는것은 3만원이고 1년동안 걸어 놓는것은 10만원이라고 한다, 올해는 주인을 못만난

연등이 이렇게 많은것을보니 사찰도 코로나 여파로 돈벌이가 잘 안되나보다,

보문사 극락보전(대웅전)뒤

낙가산 중턱에 눈섭바위가 보인다, 이제는 저곳으로 올라가보려고 한다,

 

보이는 저곳이 낙가산 눈섭바위 며

마애석불좌상이 있다,

눈섭바위로 올라가는 계단 첫단을 올라가면 보이는 비석

세세한 내용을 알지는 못하지만 절에서 근래에 만들어진 이런 종류의 비석들은 거의가

시주비 다, 절에 돈 많이 낸 사람들을 공덕을 기리는 뭐 그런거다,

오름길 계단이란 한발 한발 딛고 올라가야 끝까지 올라갈수 있는 것이다,

산에 엘리베이터가 있는 것도 아니니, 안 올라가면 몰라도 올라갈려면 다른 방법이 없다,

그래서 보문사 계단은 힘들기로 소문이나 있다,

그러나 못 올라가는 사람은 없다,

힘들어도 370~380개 정도의 계단을 올라가면

용 형상 조형물이 있는 쉼터가 있다,

조형물이 있어니 구경거리도 되고 장 의자가 있어니 쉴수도 있다,

그래인지 사람들은 이곳에서 기념 사진을 찍는다,

용 형상이 있는 이곳에서

올라온 곳을 내려다보면 바다가 보인다,

산 위로 처다보면 눈섭바위가 보이고

이제 마지막 계단을 올라간다,

계단끝 눈섭바위에 보문사 마애석불좌상이 있다,

1928년 금강산 표훈사 주지 이화웅과 보문사 주지 배선주가 낙가산 중턱에

조각한것으로,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만 염전이 있었던 평야와 멀리 바다를 굽어보는

위치에 있어서 보문사가 관음기도 도량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도 하지만

또한 신도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기도처기도 하다.

불상은 뒤의 둥근빛을 배경으로 네모진 얼굴에 보석으로

장식된 커다란 관을 쓰고 손에는 정병을 들고 있어며 연꽃 받침 위에 앉아있다,

얼굴에비해 넓고 각이진 양 어깨에는

승려들이 입는 법의를 걸치고 있어며 가슴에는 커다란 만 卍 자가 새겨져 있다,

여기까지 올라왔어니 부처님전에 예불을 드리지 않을수 없다,

불자든 아니든 뭐 자격이 필요한 것도 아닐테니 남들처름 삼배를 올리고 작지만

불전도 성심껏 올려놓고 내려간다,

눈섭바위 아래 계단에서 올려다보니 마애불소원지에 금등을 달아놓았다,

이 금등은 얼마를 받는지 물어보지는 못했다, 재미있는것은? 대웅전 앞에있는 연등은 거의

휴업상태지만 금 등은 빈 등이없다, 그러니 얼마냐고 물어봐야 달 등도 없을테니 

이제 올라왔든 계단을 다시 내려간다,

이 계단은 모두 420계단, 또는 419계단이라고 한다, 나두 올라가면서

세여보기는 했지만 몇개?인지는 헷갈려서 포기했다,

극락보전 처마 끝에 걸려있는 인경도 바람이 없어니

꿈쩍도 하지않는다,

 

일반적으로 절집 중심 전각에는 대웅전(大雄殿)과 극락전(極樂殿),

원통전(圓通殿)이라고 써진 편액이 걸려 있는데 또 다른 절에서는 보(寶)자 한 자가 더 들어간

대웅보전(大雄寶殿) 극락보전(極樂寶殿), 원통보전(圓通寶殿)이라고 써진 편액이 달려있다, 어느때는

전殿이고 어떤때는 보전寶殿인지? 궁금했어면 답을 찾았을텐데 그르려니 하고

극락보전은 보문사 중심건물로 1972년 정수스님이 중수했다고 한다,

법당내부는 상단에 아미타부처님과 대세지보살, 관세음보살이 모셔저 있고 중단에 지장보살,

대세지보살, 관세음보살과, 신중탱화,가 하단에는 영가단이 모셔저 있다,

절에서는 어디나 다 있는 삼성각이 석실과 극락보전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위치는 경내보다 높게 축대를 이중으로 쌓아 자리하고 있어며 돌 계단으로 오르내리도록 했고

계단 양쪽에는 최근에 만들어진 듯한 두개의 석등이 보인다,

이제 보문사를 나가야 하는 시간이다, 뭐 딱히 시간을 정하지는 않았지만

이 정도면 대략적으로 구경을 한 것 같어니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 오백나한과 와불전 앞

수백년이나 되였다는 느티나무 두 그루가 잘가라고 배웅을 해주는것만 같다,

내려가는길 좌측에 보문사 불교용품을 파는 가계가 있다,

무었을 팔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구경도 할겸 들어가본다, 이것 저것

구경하다가 결국 손에 두르는 팔지 하나를 구입했다, 띠별로 있었는데 담당 보살님의

강력한 추천으로 22,000원 씩이나 하는 금강송 묵주를 삿는데 돈 값어치

하자면 오래도록 기념품으로 가지고 있어야 할것같다,

그리고 200년이나 되였다는 은행나무도 보인다,

아래 사진은 일주문 바깥 일반상가다,

손님은 보이지 않지만 단장을 곱게 해 놓아서 찍었다,

물론 점심식사도 보문사 앞에서 했다,

 

약 3km의 거리와 1시간 30분 소요

일주문에서 부터 보문사 경내를 둘러보고 돌아온 거리와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