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흐르듯이 순리대로
남산둘레길-3, 정상-장충단공원(2020년 11월 22일) 본문
남산 정상부에 있는 팔각정이다, 서울의 중심부에 위치한 서울의 상징으로
높이는 해발 265m의 산이다, 본래 이름은 인경산이었으나 조선조 태조가 1394년
풍수지리에 의해 도읍지를 개성에서 서울로 옮겨 온 뒤에 남쪽에 있는 산이므로
남산으로 지칭되었고 풍수지리상 안산으로 중요한 산이다.
남산정상에 있는 팔각정은 1959년 이승만 대통령을 기리기위해
우남정으로 지어졋는데 1960년 4.19 의거 때 철폐되었다가 1968년 11월 11일
다시 건립된 정자다, 남산정상에는 85타입캡슐이 있다, 이타임캡슐은 500년 후인 2485년에
우리 후선들이 열어볼수 있도록 중앙일보가 1985년 10월 17일에 묻었다,
남산정상에서 한양도성을 따라 내려간다,
둘레길을 따라 아침에 올라온 남산한옥마을까지 가야했지만 산으로
왔어니 정상은 보고 가야할 것 같아서 정상으로 올라왔다,
남산 정상부 남산순환버스 정류장
남산으로 올라오는 유일한 교통편이다, 이 버스는 전기버스다,
남산정상 버스정류장에는
남산전망대도 있다,
전망대에서 보이는 서울시내
비온후 날씨가 많이 흐린날이라
어디가 어딘지?
다른 곳은 잘 모르겠어나 잠실 롯데타운은 알겠다,
무려 555m의 높은 건물이니
한양도성 성곽을 따라 내려간다,
순환도로를 따라 내려가는 길은 의미가 없을것 같아서
남산타워 맞은편에 있는 옜 미군방송국(AFKN) 전파송출탑이 있든
아랫길로 들어간다, 이 길은 못다녀 본 길인데?
어디한 곳 나무랄데 없이 잘 만들어 놓은 길이니
어디로 가든 가고 싶은 곳으로 갈수있는 산이 남산이 아닐까?
그리 높지않아도 나무 계단도 만들고
걷는길 행여 신발에 흙이라도 묻을까? 야자매트도 깔았다,
그기다가 겨울철 냉해로 길이 얼거나 눈이 쌓이면 미끄럽기라도 할까봐
야자 매트에 주름까지 잡아서, 친절한 서울시님이다, ㅎ
가는길 조금은 높은 곳에 있는 전망대도 보인다,
여기서 부터는 서울 한양도성길로 이어진다,
국립극장은 600m, 목멱산봉수대는 1000m 이니 남산정상에서
여기까지는 1km라는게 된다,
정상부로 이어진 한양도성 남산구간,
성곽돌로 보아서는 태조때 도성축성공법인데 상단부는 한양도성 정비를
새로 하면서 세멘트로 땜질을 해놓아서 영 어울리지 않는다,
한양도성은 이렇게 산 비탈을 따라서 길게 이어진다,
성 밖은 이렇게 높게 축성되였지만 성 안쪽은 거의 평지정도의 높이다,
이어지는 성곽위로 내려다보니
남산국립극장과 반얀트리(타워)호텔이 내려다 보인다,
조선 건국 초에 태조는 한양 천도를 위해 일차적으로 궁궐과
종묘를 먼저 지은 다음, 1395년(태조 4)9월 도성축조도감(都城築造都監)을 설치했다,
정도전(鄭道傳)은 백악(白岳)을 비롯하여, 인왕(仁旺), 목멱(木覓), 낙산(駱山)에 올라 실측하여
사산(四山)을 연결하는 5만 9500척의 성터를 결정했는데 여기는 목멱산(남산)구간이다,
조선시대 1척(尺)은 30cm가 조금 넘는다, 그러나 편의상 30cm정도로
생각하면 별 무리가 없다,
조선시대 거리 용어를 알아보면 1척(尺)은 30cm가 조금 넘는 길이고,
1촌(寸)은 3cm가 조금 넘는 길이다. 지금 우리가 알고있는 "한 자" 라고 하는 말은 1척이고
"한 치" 라고 하는 말은 1촌(3cm)이다, 정도전이 측정한 성터가 5만 95척이였어니
지금의 단위로 한양도성은 18km가 조금 넘는 거리다,
도성은 1395년(태조 5년) 정월부터 전국의 민간인 장정들을 11만 8,000명이나
동원하여 축성구역을 97(區)구로 나누어 각구간 약 600척(약1,9km)을 한 단위로 하여
천자문의 자호(字號)를 따 백악산 동쪽부터 천자(天字)로 시작하여 낙산, 남산,
인왕산을거쳐, 백악산 서쪽 조자(弔字)까지 구획해 구간별로 축성했다,
축성공사는 매 글자구간 600척을 6등분하여 100척마다 각 구간에는 판사(判事),
부판사, 사(使), 부사, 판관(判官)등 12명씩을 임명해 민정을 독려하여 견고하게 축성하도록
책임을 맡겼어며. 책임진 부분에 해당하는 성벽에 관직과 군명(郡名)을 새겨넣어 책임을 분명하게
하도록 했는데, 지금도 책임소재에 따른 실명의 흔적↓이 성곽 곳곳에 남아있다,
이 성곽돌을 각자성석 이라 부른다,
성곽돌을 보면 축성시기를 알수있다,
앞 쪽에 보이는 사각 성곽 돌은 세종때이고 중간부분 성곽돌은 태조때다,
자연석을 거칠게 다듬어서 성곽돌로 사용한 축성공법이 태조때 공법이다,
한양도성 성곽은 무려 600년 세월의 모진 풍파를 이겨내고 오늘에 이르는데, 보는것
만으로도 우리 조상님들의 슬기로운 지혜에 머리가 숙여진다,
한양도성은 600년 세월의 역사가 고스란히 이어저 오기도 하지만
오랜풍파에 자연적으로 멸실된 부분 복원 작업은 지금도 게을리 하지는 않어나
성곽 보수공법은 600년전 일반인들의 축성기법을 흉내라도 제대로 낼수 없다는게 아쉽다,
지금 우리가 할수있는 거라고는 돌을 다듬어 세멘트를 바르는 것뿐이니
도성을 내려와 국립극장앞으로 내려간다,
국립극장 뒤 편
울창한 소나무 숲을 보면서
국립극장은 예전에는 엄청나게 큰 건물로 보였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건물은 변함이 없는데 왜 이렇게 작아 보이는지?
여기서 장충단으로 내려간다,
건너편에는 한국자유총연맹이 보인다,
한국자유총연맹은 1954년 6월 아시아민족 반공연맹으로 출발해
우리나라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지키고 발전시키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통일을 추구하는 국민운동단체 본부가 여기다,
한국 자유총연맹도 지나서 가는길
장층단공원에 3,1 독립운동 기념탑도 있고
유관순 동상도 있다,
오랜세월 변함없이 남아있는 어린이 야구장도 보이고
길 건너에는
신라호텔도 보인다,
이어지는 장춘단공원
여기도 낙엽은 아직도 아름답다,
장충동에서 장충단으로 들어오는 입구에는 고풍스런 다리가 있다,
이 다리는 수표교로 물의 수위를 측량하든 관측기구인 수표를 세우면서 수표교라
불럿든 청계천을 가로질러 놓은 돌다리다, 한양도심을 흐르는 개천이였든 청계천의 다리는 조선초에
토교나 목교로 만들었는데 태종 연간부터 석교로 교체했다, 수표교도 태종~세종때 돌로 개조했어며
1958년 청계천 복개공사를 하면서 철거하여 옮겻다가 1965년 이곳으로 옮겨세운 다리다,
수표교와 함께있든 수표(보물 838호)는 지금의 세종대왕 기념관으로 옮겼다,
장충단 입구에 있는 장충단 비 와 석등이 보인다,
원래 장충단비(奬忠壇碑)와 사당이 있었든 곳은 지금의 신라호텔 쪽이 였는데
1965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세웠다, 장충단 비의 앞면에 쓴 장충단 이라는 글자는
순종황제(1907~1910)가 황태자 시절에 쓴 친필이고 뒷면에 새겨진 찬문(撰文)은
당시 육군부장(陸軍副將)을 지냈든 충정공 민영환(1861-1905)이 지였다,
입구에는 정자도 있다,
장충단을 나오면 길 건너에 장충교회가 보이고
신라호텔 앞에는 장충체육관이 있다,
오늘은 남산한옥마을에서 시작해
남산둘레길과 남산정상부를 돌아온길이 10,8km 였고
소요시간은 약 4시간 정도다,
남산을 돌아보는 거리도 꽤나 멀다,
이렇게 꼬불 꼬불 돌아서인가?
장충동에 왔어니 빼 놓을수 없는 족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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