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물흐르듯이 순리대로

한양에서 평해로 가던 關東大路 서울구간上(동대문~청량리역)2022년 3월 27일 본문

관동대로(동대문-평해)/서울구간(동대문~망우고개)

한양에서 평해로 가던 關東大路 서울구간上(동대문~청량리역)2022년 3월 27일

물흐르듯이순리대로 2022. 4. 12. 05:00

2022년 3월 27일 동대문으로 왔다, 이곳으로 온 이유?는

오늘부터 조선시대 한양에서 강원도로 가든 옛길을 따라 가 보려고 한다,

그 출발지점이 동대문이며 도착지는 을진군 평해다,

보물 제1호. 흥인지문(興仁之門)은 조선시대 한양도성 동쪽문으로

동대문(東大門)이라고 하는데, 서울도성의 사대문 중 동쪽에 있어 붙여진 이름으로

1397년(태조6) 도성을 쌓을때 함께 짓기 시작해 이듬해 1398년에 세워졌다.

동대문 바깥에는 반원형의 평면을 이룬 甕城(옹성)을 쌓아 적에 대한

방비를 견고히 했어며 도성내 8개 성문 중 옹성을 갖춘 문은 동대문 뿐이다. 이 옹성도

창건 할때부터 축성한 것으로 옹성의 벽은 두껍게 화강석 마름 돌을 앞 뒤로 쌓은 옹성 위에

내, 외(안쪽과 바깥쪽)겹으로 여장(女墻)을 돌렸다, 

여장에는 총안(銃眼)을 만들었으며 옹성 위로는 파수꾼이 다닐 수

있도록 했다. 석축위에는 누각 주변으로 여장을 벽돌로 쌓고 양측에는 작은 일각문

형식의 협문을 하나씩 두어 누각에 오르내릴 수 있도록 만들었다,

동대문옆 종로대로 로 끊어진 한양도성은 도로건너 흥인지문 공원에서

낙산공원을 지나 혜화문으로 이어진다, 이 구간의 한양도성은 완벽하게 복원 되였다,

한양도성은 1397년부터 쌓기 시작했고 지금은 2022년이니 62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사는 이치는 같을 것만 같다, 왕조시대에는

통치를 위한 길은 필연적이 였을 것이고 서민들도 그 길을따라 임금이 사는 도성으로 왔을 것이다,

2022년 3월 27일 오늘은 조선시대 한양에서 강원도로 가든 옛길을 찾아간다,

긴 긴 세월동안 조선시대 옛길은 흔적도 없이 사리졋어니

그 길을 그대로 찾아 간다는 것은 불가능 하겠지만 조선시대 강원도와 한양을

이어주던 길 자료를 찾다가보니 "문화역사지리 제14권 1호"에 大東地志(대동지지)에 

東南至平海三大路(關東大路)라는 학술 논문이 있어 이를 참고로 서울에서

평해로 가는 길을 찾아 가 보려고 한다,

동대문 앞 지하철 1호선 6번 출구를 나가면서 출발을 한다,

가는 방향은 학술논문에 표기되여 있는 대로 중량포와 망우리다, 그러나

어디로 해서 중랑포로 가야할까? 라는 의문이 들었지만 동대문 밖에는 선농단이 있다,

선농단은 임금이 고사를 지냈든 곳이니 그 시대 사람들은 선농단으로 해서

도성으로 들어오지 않았을까? 그러면 그 길이 옛길일 것 같다,

선농단에서 청량리, 그리고 중량포로 가는 길은 오래된 도로를 따라 가는게

맞겠지만 어느 도로가 구,길인지 조차 가늠키도 어려운 대 도시로 변해서 흔적도 없지만

나름 옛사람들이 다녓든 길이라고 생각하고 가야 할 것 같다,

문화역사지리 東南至平海三大路(關東大路)의 지도다,

楊根(양근)과 砥平(지평) 原州(원주) 平昌(평창) 江陵(강릉) 三陟(삼척)

蔚珍(울진) 平海(평해)가 전부다, 이 지도 한장으로 도시와 도시를 이어주는 길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구, 도로나 옛길을 찾아가야 할 것 같다, 

다행스러운 것은 경기도에서는 망우리에서 원주시 경계까지의

경기도 구간을 경기옛길 평해길이라는 이름으로 10개 구간을 조성해 관리하고 있다,

망우리에서는 원주시경계 양동면까지 경기옛길 평해길을 따라가면 되겠다,

신설동교차로 로 가면서 건너편 빌딩사이로 숭인공원이 보인다,

숭인공원은 조선 6대 왕이였든 단종이 숙부인 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영월에 유배되고, 정순왕후는 군부인으로 강등되어 현재의 동대문 밖

정업원에서 생활하면서. 정업원 뒤쪽 산봉우리(동망봉)에 올라 영월을 바라보며

단종을 그리워하며 한 많은 세월을 보냈다고 하는 곳이다.

동묘공원이다, 동묘공원 옆 도로는

동묘벼룩시장, 황학동벼룩시장등의 이름난 노점시장이 있다,

동묘는 중국 장수인 관우(關羽)의 영정을 모신 東關王廟,(동관왕묘)

사당이 있다, 임진왜란때 관우의 혼이 때때로 나타나 조선과 명나라군을 도왔다고

해서 명나라 신종 황제의 명에 따라 1601(선조34)년에 건립했다

丁字形(정자형)의 단층 기와지붕으로 보물 제142호다

동묘 담장을 지나 신설동교차로로 가는 길에서도

건너편 숭인공원에 있는 동망정이 보인다,

숭인공원 東望亭(동망정)은 정순왕후가 15세에 왕비가 되여

18세에 단종과 이별하고, 부인으로 강등되어 동대문밖 정업원에서 생활 할때 

영월로 유배되였든 단종은 억울한 죽음을 맞는다.

이 소식을 들은 정순왕후는 조,석으로 동망봉에 올라 동쪽을 향해

통곡(痛哭)을 했는데, 곡소리가 산 아랫마을까지 들렸어며 온 마을 여인들도 땅을 한번치고

가슴을 한번 치는 동정 哭(곡)을 했다는 역사의 흔적이 배인 곳이다

신설동 교차로다, 신설동 교차로에는

오래된 검정고시 학원인 수도학원이 있다, 수도학원 앞으로 건너간다,

신설동교차로 까지는 종로구지만 수도학원부터는 동대문구다,

여기서 청량리로 가는 길은 가던길 직진으로 가면 가깝지만 신설동교차로에서

선농단으로 가는 길은 안암오거리로 가야하기 때문이다,

신설동 교차로에서 대광고등학교로 가는길 오른쪽 골목이다,

큰길에는 대형빌딩이 있는 곳이지만 이 골목은 아직도 50년대에 머물러 있다,

대광고등학교 담장을 따라 간다,

그리고 대광초등학교 삼거리에서 대광중고등학교 정문으로 간다,

대광중고등학교 앞 도로가 안암로다,

안암로 건너 대광초등학교가 보인다, 초등학교 후문에

윤석열 대통령 당선을 축하 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는데 대통령당선인은

대광초등학교 4회 졸업생이라고 적혀있다,

대광 중 고등학교 정문이다,

잠시 학교로 들어가본다, 운동장에서는

일반인들이 운동을 하고 있었고 일요일이라 학교는 조용했다,

학교앞 화단에는 4,19민주혁명 진원지라는 기념비가 있다,

내용은 1960년 4월 19일 08시 30분 불의와 부정에 항거하고 자유민주주의를

수호 하고자 하는 신념으로 대광고등학교 재학생들이 이곳에서 4,19

민주혁명을 최초로 시작했다는 비다,

대광 중 고등학교 담 경계는 성북천이다,

성북천 안암2교가 있다,

성북천은 성북구 북악 줄기 구준봉 기슭에서 발원해 청계천과 합류해

중랑천으로 흐르는 하천으로서, 길이는 5.1㎞, 안암천 ,안감내, 안암내 라고 하는 하천이다.

안암2교를 지나 안암오거리 로 간다,

성북천 안암2교에서 안암오거리는 약 500m 정도 거리다,

안암오거리다,

안암오거리 우측에 안암오거리 버스정류장이 있는데

이곳을 유심히 살펴 봐야하는 이유가 있다,

동화공인중계사, 두번째 건물 전통육계장집 앞, 보제원 옛터임을

알리는 비석이 있기 때문이다, 보제원은 1393년부터 1895년까지 약 500여년 동안

여행자에게 무료 숙박과 약을 주든 곳이라고 안내되여 있다,

보제원?은 먼 길을 온 백성들에게 잠자리를 주고

아픈 사람에게는 병을 고처주든 조선시대 구휼기관이 였을 것 같다,

또한 그시절에도 돌림병은 있었을 것으로 전염병에 걸린 사람이 임금이 사는

도성으로 들어가면 큰일이므로 성 밖인 이곳에서 백성을 통제하는

기능도 했을 것 같다,

서대문밖 홍제원과 남대문밖에는 이태원도 있었어니

동대분 밖인 이곳에도 조선시대 복지기관이든 보제원이 있었든 것같다,

조선시대 보제원이 있어서 였을까? 제기동일대는 1960년대부터 한약재시장이

형성되면서 전국 한약재의 70%를 유통시키는 약령시장으로 발전했다,

보제원터 비석이 있는 곳에서

뒤로 돌아 골목으로 들어가면 종암초등학교가 있다,

여기는 동대문구 제기동 1157번지다, 종암동은 성북구에 있어며

구청도 다르고 거리도 먼 곳인데 무슨 이유로 이곳에 종암초등학교가 이곳에 있을까,

옛날 이일대는 종암동이 였을까? 학교 앞 선농단역사문화관이 있다,

선농단 역사문화관은 일요일이라 휴관인지?

잠겨있어 선농단으로 간다,

서울 선농단공원 입구에 있는 안내판에는 선농단은 백성들에게

농사의 소중함을 알리는 선농제를 지냈든 제단이 있는 곳이다, 임금이 선농제를 올리고

친히 경작하는 의식을 거행 했든 농경문화 상징적 유적이다,라고 안내되여 있다,

선농단 출입문도 잠겨있다, 보이는 향나무는 천연기념물 240호다,

이 향나무는 500년이나 된 선농단의 상징으로 1476년 선농단을 조성할때

성종이 기념으로 심었다고 알려지는데 향나무를 심은 것은 제사를 지낼때 피울 향을

충당하고자 하는 뜻이 담겻다고 한다, 나무 한그루를 심어면서도 후일을

생각하는 선조들의 지혜가 부럽기만 하다,

선농단 북쪽 제를 올리든 장소 홍살문도 보인다,

선농단 입구에서 보이는 것은 그리 크지 않은 이 정도가 전부고

사방이 모두 주택이라 선농단 출입구도 여기 뿐이다,

선농단 문이 잠겨 있어니 들어갈 수 도 없고

선농단 옆 성일중학교 뒤로 해서 내부순환도로 아래로 간다,

내부순환도로와 성일 중학교 사이길로

조금만 내려가면

성일중학교 정문이 있다,

성일중학교를 지나서 내부순환도로 아래

하천변으로 내려 가다가

용두교를 건너가면서 올려다 본 정릉천이다,

용두교는 제기동역에 있다, 선농단으로 가려면 제기동역에서

가는게 가장 빠른 길 일 것 같다,

정릉천 용두교를 건너서 부터는 한의원과 한약방,

한약도매업, 한약수출입업 등 1천여개 점포가 있는 동남아 최대의 서울약령시다,

지하철 1호선 제기역 2번출구에서 청량리 방면 50m 위치한

서울약령시는 1,044개의 점포가 있어며 전국 한약재의 70%가 거래되는

대표적인 한약재 시장이다,

약령시장 앞 왕산로를 따라

경동사거리를 지나 청량리 방향으로 올라가면

한약재와 의류 잡화 등 백화점보다

더 많은 종류의 물건을 파는 노점상들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약령시장 다음은 청량리 청과물 시장이다, 청량리청과물시장은 동대문구

왕산로33길 4번지에 위치한 청과물 도, 소매 전문 재래시장으로. 1958년부터 경기도와

강원도 농민들이 청량리역을 통해 농산물을 들여와 판매하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레 형성된 시장이다,

청량리의 재래시장은 청과물시장, 전통시장, 종합시장으로

청과물시장이 가장 규모가 크고 방문자 수가 많다. 청량리 청과물시장은

전국 각지에서 들여온 청과물을 판매하는 시장으로 명성이 높다.

청과물시장을 지나면 청량리역전 롯데캐슬SKY 오피스텔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고 있다, 2023년 7월에 준공 한다는 대형 주상복합 빌딩이다,

롯데백화점과 롯데캐슬SKY오피스텔 사이 왜소하게 보이는

작은 건물?이 청량리 역이다, 양 쪽의 건물이 워낙 대형이여서 청량리역은

상대적으로 작아 보이지만 역으로 올라가보면 공원도 있다,

한양에서 강원도 평해(지금은 울진군이 경북이지만 예전에는

강원도 였다)까지 이어지는 東南至平海三大路(關東大路) 한양구간 동대문에서

경기도 경계인 망우리고개까지의 上 편은 이곳 청량리역 까지다,

下 편에서는 청량리역에서 망우리고개 까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