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물흐르듯이 순리대로

충무공이순신백의종군길 서울구간上, 의금부 터~삼각지역(2022년 8월 21일) 본문

경기옛길(조선시대 7大路)/삼남길 서울 구간

충무공이순신백의종군길 서울구간上, 의금부 터~삼각지역(2022년 8월 21일)

물흐르듯이순리대로 2022. 9. 26. 00:08

충무공 이순신 백의 종군길은 서울 중구 인현동 이순신 장군 생가 터,를

출발하여 이순신 장군이 수감되였던 의금부 터 가 있는 종로 종각앞 제일은행 본점에서

시작한다, 첫번째 구간인 서울 구간은 남대문을지나 동작대교를 건너 남태령까지 약 20km다,

SC제일은행 본점 앞 의금부 터,에서 충무공이순신백의종군길 시작지점을

출발해 맞은편 영풍문고로 간다, 영풍문고 앞 대로변에는 녹두장군 전봉준상이 있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 간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 잎에 앉은 새야, 녹두 잎이 깐닥하면 너 죽을 줄 왜 모르니

우리나라 국민이면 모두 한번은 들어 보았을 것 같은 시 다,

청계천 광통교를 건너간다,

광통교는 차가 다니는 도로다, 광통교를 건너가면서 보이는 청계천

삼도수군통제사로 재직하던 이순신 장군은 어떤 죄를 지었을까? 정유년에 특이한 두가지 사건이 일어났다, 하나는 부산 왜영 방화 사건이다, 부하들이 부산에 주둔하던 왜놈들 진영에 불을 질러 공을 세웠는데 이순신이 공을 가로 챗다는 것이고

 

두번째는 일본 이중간첩으로 부터 가토 기요마사가 일본에서 바다를 건너 온 다는 정보를 입수 하고 선조는 이순신 장군에게 어명을 내려 그를 쳐 부수라고 했는데, 이순신 장군은 가토 기요마사를 잡기 위해  망망대해에서 죽치고 기다리는 것은 자살 행위라고 판단하고 부산에서 다시 절영도로 후퇴를 한다, 이 과정에서 가덕도 왜성에서 일본군에 의해 약간의 피해(전사 1명 포로 5명)를 입었다, 그 사이 기요마사는 부산진에 안착 했어니 어명을 어긴 죄 다,

 

이후 부산진을 공략하는 것은 불속으로 뛰여 드는 꼴이라고 어명을 거두어 달라고 하소연 하였어나 선조는 받아 들이지 않았다, 가토를 잡어라고 부산에 보냈더니 잡어라는 가토는 놓치고 애꿏은 피해만 입고 돌아와? 선조는 원균을 후임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하고 어명에 따라 싸우지 않았다는 이유로 1597년 2월 26일 서울 의금부로 압송하여 3월 4일에 감옥에 가두고 문초를 가했다,

 

이순신 장군은 두번이나 사형을 당할뻔 했다, 임진왜란 발발 후 선조는 의주로 몽진을 하고도 엄청난 공을 세운 이순신 장군이 백성들의 환호를 받아 임금의 위상을 추락 시킨다는 이유였다, 선조실록에는 이순신은 참으로 역적이다, 이제 가등청정 의 목을 들고 온다고 해도 절대 용서 할수 없다, 임금과 조정을 기망했다, 반드시 죽여야한다, 라고 기록되여 있다,

 

그러나 오성과 한음으로 유명한 백사 이항복 과 병조판서 정탁 등 시대의 흐름을 아는 인재들이 선조에게 상소를 올려 이 어려운 전란 중에 한명의 군인도 아쉬운 마당이니 삼도수군절도사로 엄청난 공을 세운 이순신을 백의종군 이라는 형벌로 낮추어 전장으로 내보내 다시 공을 세울 기회를 주고자 하니 선조는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다,

 

백의종군 은 조선시대 형벌중 하나다, 한자 그대로 해석하면 흰옷을 입고 군대를 따라 간다, 라는 하직급으로 군 복무를 한다는 뜻이겠지만 중 죄를 지었지만 지난 전공을 참작하여 내린 보직 해임조치로 직책은 없지만 장수의 신분은 유지된 상태에서 재차 전공을 세울 수 있도록 한 처벌이라고 볼 수 있다,

 

이순신 장군의 백의 종군은 1597년 3월 4일 투옥되고 4월 1일에 출옥해 군 복무를 하기 위해 권율 도원수 를 찾아가는데 자신의 후임인 삼도수군통제사 원균이 부산진 을 치기 위해 나섯다가 칠전량에서 거의 전멸을 당하자 선조는 어쩔 수 없이 이순신 장군을 삼도 수군통제사로 다시 임명하는 8월 3일까지 약 4개월 간을 말한다,

롯데호텔과 롯데백화점으로 간다,

롯데호텔 앞, 을지로 1가 교차로는 지하철 을지로 입구역이다,

롯데호텔 건너편에는 오래된 한전 건물이 있다,

지금은 한국전력공사 서울본부다,

롯데백화점 옆에는

롯데 영 프라자도 있는데 이 건물은 예전 미도파 백화점이다,

롯데백화점이 끝나는 길에서 보이는 조선호텔

서울 도심의 명물이였던 호텔인데 지금은 그저 흔한 건물 정도다,

이어지는길은 신세계 백화점 본점과 옛 제일은행 건물이고풍스럽게 보인다,

제일은행 건물은 지금 비여 있다, 철거하고 신축을 하고 싶어도 근대문화 유산으로

건축 허가가 나지 않는 모양이다,

그리고 한국은행 건물

신세계 백화점 앞 분수대다,

여기는 한국은행앞 교차로 로 남대문로와 소공로가 만나는 교차로다,

그리고 서울중앙우체국, 가운데가 갈라진 특이한 형태의

건물은 우체국 집배를 상징하는 제비를 형상화 했다는 건물이다,

신세계백화점 앞

분수대가 있는 곳으로 건너간다,

분수대를 배경으로 본

신세계백화점 본관 과 옛 제일은행 본점

신세계백화점 앞에서 건너다 보는 한국은행 본점 건물은

지금 화폐박물관이며 그 뒤에 한국은행 본관 빌딩이 보인다,

신세계백화점에서 남대문으로 간다,

남대문로 지하쇼핑센터 입구를 지나 가면서

왼쪽 골목을 보면 남대문 시장이다,

그리고 지하쇼핑센터 입구 건너편

붉은벽돌 2층 집은 한옥카페로 영업을하고 있는 집이다,

숭례문이 보인다, 충무공 께서

도성을 나가 자면 당연히 남대문을 통해 나가야 했을 것이다,

나도 매번 남대문으로 올때마다

남대문은 잠겨 있었는데 오늘은 활작 열려 있다,

도성 안쪽이라 숭례문 현판은 걸려 있지 않지만

이 문을 나가 보는 것도 오랬만이다,

남대문을 나가면서 보이는 서울역 방향

그리고 왼쪽으로는 한양도성이 남산으로 이어지는 방향이다

숭례문을 나와서 돌아 본다,

2층 처마 아래 높게 걸려 있는 숭례문 현판, 좌 우의 성곽은 모두 끊어지고

없지만 이순신장군의 시대에는 이 문을 통과하지 않어면 도성으로 들어 갈 수 도

없었을 것 같은데

숭례문 앞 안내표지판에 1900년대 초 서울 전경과

숭례문 사진이 안내되여 있는데, 남대문 밖 성곽을 따라

기와집들이 있고 숭례문 출입문으로 전차가 지나가는 모습도 보인다,

의금부에서 출옥한 이후

난중일기를 보면

1597년 4월 1일 정유년 신유(양력 1597년 5월 16일) 맑음

옥문을 나왔다, 남대문 밖 윤간의 종 의 집에 이르러 조카 봉, 분, 과 아들 울,이 윤사행, 원경과 더불어 같이 앉아 오래도록 이야기 했다, 지사 윤자신 이 와서 위로하고, 비번랑 이순지 가 와서 만났다,

 

지사가 돌아 갔다가 저녁 식사를 한 뒤에 술을 가지고 다시 왔다, 윤기헌도 왔다,

이순신(李純信-한자가 다른 동명이인)이 술변째로 가지고 와서 함께 취하며 위로해 주었다, 영의정 유성룡, 판부사 정탁, 판서 심희수, 이상, 김명원, 참판 이정형, 대사헌 노직, 동지 최원, 동지 곽영, 이 사람을 보내어 문안 했다,

 

이 내용은 이순신 장군은 감옥에서 나온 첫날에 남대문 밖 윤간의 종 집에 머물며 여러 사람들을 만나 식사를 하며 술을 마시며 환담 했다고 일기를 썻다, 

 

둘째날 1597년 4월 2일(양력 5월 17일) 종일 비가 왔다,

여러 조카들과 이야기를 했다, 방업이 음식을 매우 푸짐하게 차려왔다, 남대문 밖 윤간의 종 집 에 머물며 음식을 포식하며 몸을 추스렸다, 는 내용이다, 이순신 장군은 셋째날에야 한양을 출발하여 백의 종군을 시작 했다,

 

셋째날 1597년 4월 3일(양력 5월 18일) 맑음,

일찍 남쪽으로 길을 떠났다, 금오랑, 이사빈, 서리, 이수영, 나장, 한언향, 은 먼저 수원부에 이르렸다, 나는 인덕원(경기도 과천시 인덕원)에서 말을먹이고 저물어서 수원에 들어가니, 신복룡 이 우연히 수원에 왔다가 내가 지나가는 걸 보고는 술을 준비해 가지고 와서 나를 위로 했다, 수원부사 유영건 이 나와서 만났다,

구분 보행구간 난중 일기로 본 행적 및 유숙지 등 주요 내용
1 일차
(1코스)
의금부~남대문 밖 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1597년 3월 4일 투옥되여 27일간 옥살이와 고문을 당하고
4월 1일(양력 5월 16일)에 출옥했다

1) 1597년 4월 1일, 의금부에서 나와 남대문밖 윤간의 종의 집에서 유숙하면서
    친지를 만나고 영의정 유승룡을 비롯하여 많은 지인들을 인편으로 만났다,

2) 4월 2일, 여러 조카들을 만나고 방업이 성찬 접대,
2 일차
(2, 3, 4,코스)
남대문~갈산동행정복지센타~용주사입구) 1) 4월 3일 한양 출발, 인덕원 휴식, 신복룡 주안상 접대, 수원부사 유영건 만남 2) 수원부에서 경기 관찰사 수하의 집에서 유숙
3 일차
(5, 6, 코스)
용주사 입구~평택역 1) 4월 4일 수원부 출발, 독성에 이르러 수원 판관에게 술 대접을 받고 취함,
    오상 황정상의 집에서 점심을 먹고 말을 제공 받았다,

2) 4월 4일 4월 4일 수탄을 지나 평택 현 이내온 손의 집, 유숙
4 일차
(7, 8 코스)
평택역~현충사 옛집 1) 4월 5일 선산 절 곡, 조카 뇌의집 사당 방문,2) 4월 6일 친척 친구 모임, 3) 4월 7일 금오랑 이사빈 아산현 접대, 홍찰방, 이별좌, 윤호원 만남4) 4월 8일 변홍백 집에서 도사 접대, 동네 사람들이 접대,5) 4월 10일 변홍백의 집에서 도사와 환담
5 일차 현충사 옛집~게바위
~현충사 옛집
1) 4월 13일 모친 별세
2) 4월 15일 천안군수 내방 모친 입관

3) 4월 16일 해암에서 모친 시신을 맞고 중방포 까지 배로 이동, 영구를 상여에
   올려 싣고 귀가
4) 4월 17일 금오랑 서리 이수영이 공주에서 와서 길 독촉

숭례문에서 서울역으로 바로 가도 되겠지만

지하도를 따라 가야하기 때문에 남산 방향으로 올라간다,

양갈래 길에서 어느쪽으로 가도 되지만

남산육교로 올라가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래로 내려간다,

남산육교에서 보이는 서울역 방향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면 서울로 7017로 입구다

서울로 7017은 화분으로 조경을 한 곳인데

이제는 제대로 뿌리를 내린 것 처름 제법 숲이 울창해 보인다,

"서울로 7017은" 1970년에 만들어진 고가도로가 2017년 17개의

사람이 다니는 길로 다시 태여난다는 뜻에서 명명된 서울역 고가도로

도시 재생 공원화 사업명 이다, 

서울시는 서울역 고가도로를 공원화해 2017년 5월 20일에 개장 했어며

인근 보행로와 고가를 잇는 구조물을 추가로 설치해 최종적으로 총 17개의 보행로와 연결 했다,

서울로 7017에서 내려다 보이는 서울역 일대

여러 종류의 꽃들과 나무들이

이제는 제법 울창하다,

바닥에 구멍을 뚤어서 밑에있는 도로가 훤히 내려다 보이도록 만들기도 했다,

고가차도를 만들면서 사용한 철근들도 보인다,

이 길의 중간쯤에 엘리베이터 와 원형 계단길이 있는데

원형 계단으로 내려간다,

내려가는 길 옆 건물 옥상에 멋 스러운 조경도 보인다,

이 건물은 서울역 파출소다,

원형 계단으로 내려가면서 보이는 서울로 7017 하부 구조물

구, 서울역사가 있는 서울역 광장으로 내려왔다,

예전 서울역사 였던 이 건물은 지금 문화역 서울 284 다,

서울역 신 청사 

롯데 아울렛 서울역점이 있다,

서울역에서 마주 보이는 연세세브란스 빌딩과 서울스퀘어빌딩

그리고 남대문 경찰서와 서울시티타워가 보이고 남대문경찰서 뒤로는

밀레리엄힐튼 호텔도 보인다,

서울역을 지나서 냠영동 방향으로 간다,

KDB생명타워와 트윈시티 남산오피스텔,센트레빌아스테리움 등

서울오피스텔, 빌딩들이 하늘 높은줄 모르고 치솟아 있는 서울역 일대

맞은편 서울역 기차길이

이어지는 일대는 아직도 예전 그대로다

서울역 끝, 청파동 삼거리로 청파로(지하차도)를 따라 간다,

이 지하 차도 위는 서을역으로 오가는 철도다

지하차도를 지나 와서 청파로 로 왔다,

청파로는 서울역 뒤편 마을 이다,

가는 길에 건너다 보이는 조금은 튀는 건물이 보인다,

작은 땅을 최대로 활용해 지은 건물이 앙증맞다,

숙대입구역과 청파동 주민센터 버스 정류장까지 왔다,

숙대입구와 효창공원으로 들어 가는 입구길

여기는 숙명여대입구 교차로다,

숙명여대로 들어가는 입구 반대편은 숙대입구역으로 가는 길이다,

왼쪽 갈월동 지하차도를 나가면 숙대입구역이다,

이제는 이곳에도 서서히 지형이 바뀌는 것 같다,

다닥 다닥 붙어 있던 집들이 헐리고 고층 아파트 들이 들어섯다,

길 건너에는 신광여자고등학교도 있다,

남영역 교차로 를 지나서

계속해서 청파로 를 따라 내려 간다,

내려가는길 왼쪽은 남영역이고

길 건너 오른쪽은 용산더프라임

아파트와 이안 용산프리미어 아파트 단지로  이어진다,

이순신장군 백의종군길은

이제 앞에 보이는 육교 계단으로 올라가서

철도가 지나가는

건너편 삼각지 일대로 가야한다,

철도위로 나 있는 이 도로는 삼각지 고가차도다,

삼각지 고가 차도를 지나 가면서 내려다 보이는 철도

삼각지 고가차도 인도는 끝까지 가지 않고

철도 위를 지나가면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다,

삼각지 고가차도를 내려가면 용산파크자이 오피스텔과

용산파크자이 아파트가 있는곳이다,

용산파크자이 아파트 상가는

삼각지 교차로에서 효창공원앞 역으로 이어지는 

삼각지고가차도 옆으로 길게 이어저 있다,

용산파크자이 아파트 앞은 삼각지 교차로다,

오래전 삼각지 로터리에는 원형으로 만든 고가차도가 있어 

삼각지 로터리 라는 노래도 있었는데

지금은 모두 철거되고

6호선 삼각지역과 4호선 삼각지역이 있다,

용산파크자이 아파트다, 이순신장군 백의종군로가 숭례문을 나와서

걸어가셧던 길이 오늘 걸어 온 길이 라고는 단정할 수 는 없다, 그러나 의금부에서

남대문을 나와 한강을 건너 남태령으로 간 것만은 틀림이 없을 것 같다,

이순신장군 백의종군길 서울구간 上, 편은 여기까지다,

다음번에는 삼각지에서 남태령고개 까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