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흐르듯이 순리대로
북한산둘레길 우이령길과 석굴암(2026년 4월 12일) 본문

구파발역에서 양주37번 버스로 도착한 송추교현리 우리령길 입구

이곳은 우이령길 입구이기도 하지만 석굴암이라는 사찰 입구기도 하다,

멀리 오봉이 아스라히 보이는

우이령입구로 들어가면

그리 멀지않은 곳에 오봉 아파트가 있고

가는길 오른쪽 언덕에는 작은 절도 있는데

오봉아파트 담장이 끝나는 지점

새호리기 사진이 있는데 이 새는 멸종위기 야생동물 2급으로 깨끗한 산간 하천에서 서식하는 소형 조류로 물속의 곤충을 잡아 먹어며 생활하는데 수질오염과 서식지 변화로 위협 받고 있다는 설명이 붙어 있다,

이어서 북한산 국립공원 우이령길 교현리 탐방지원센터가 있다, 여기서 우이령탐방 예약을 확인하고 입장을 해야 한다, 예약은 북한산국립공원에서 하면된다,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인원은 예약자 포함 10명이다,

우이령길은 소귀고개길로1968년 1월 21일 무장공비 침투사건 이후1969년부터 국가안보 및 수도 서울 방위목적으로 2009년 6월말까지 민간인 출입이 전면 금지되였던 곳이 였으나 우이령길을 국민에게 되돌려 줘야 한다는 여론이 대두 되면서

국립공원 관리공단에서는 1968년 사방사업 당시 시행한 돌배수로 돌쌓기 공법과 어울리게 공사를 시행 하는등 자연 친화적 정비 공사를 완료하고 2009년 7월 전면 개발하게 된다,

우이령길 교현리 탐방지원센터에서 예약한 예약증 바코드를 찍고 들어가야한다, 예약을 하지 않았다면 들어갈 수 없다, 그러나 평일에는 당일 예약도 가능 하다고 한다,

우이령길 들어가는길 오른쪽은 산이라도 입산금지용 울타리가 설치되여 있고

왼쪽은 소귀고개에서 부터 흘러 내리는 개천이지만

계곡으로 들어가지 못 하도록 가림 울타리가 설치되여 있다

이 일대 벚꽃은 이제 만개를 했지만

서울지역에서는 아직 몽오리가 맺힌 진달래가 여기서는 만개했다,

평지길이기도 하지만 흙 길에 마사를 깔아 놓아 맨발로 걷기를 하면 아주 좋을것 같은길

탑방지원센타에서 1km를 들어 왔는데도 길은 한결 같다,

푹신한 흙길에 만개한 진달래 까지

흙길이 비 바람 등으로 패이면 보수 할 자재인 모래와 마사토도 길가에 준비되여 있는 길이다,

쉬엄 쉬엄 걷다보니 금방 오봉 전망대다,

전망대에 비치되여 있는 안내판에는 우이령에서 보이는 오봉의 유래다, 전설 이야기로 한 마을에 다섯 총각이 원님의 외동딸에게 장가들기 위해 상장능선(오봉과 마주한 북한산 능선)의 바위를 오봉에 던저 올리기 시합을 하여 현재의 독특한 모습의 봉우리가 만들어 졋다는 이야기다,

오봉의 산 꼭대기의 둥근 암석은 지형학 용어로 토르(tor)라고 하는데 한 덩어리였던 화강암이 냉각 및 팽창하면서 표면에 절리가 생기고 직각을 이루며 교차하는 수평절리와 수직절리에 의해 여러 조각으로 나뉜다, 니눤 조각들은 풍화하며 동그란 모양이 되고 그 과정에서 생긴 주변의 흙이 빗물에 씻겨 내려 가면서 둥근 핵석만 남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오봉의 형태인 토르 다,

토르의 뜻은 똑 바로 서 있는 석탑이며 본래 영국의 다트무어 지방에 있는 화강암 덩어리를 지칭하는 지방어 였다가 현재는 세계 공통의 지형학 용어가 되였다,

우이령길에서 이렇게 넓은 공터가 보이면 여기가 석굴암이라는 사찰로 가는길 입구다, 공터 끝에 군부대 유격장이라는 비석이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을 보니 여기가 옛날 유격장인듯 하다,

넓은 공터 한켠에는 석굴암 중청불사 기본계획 안내도도 있다, 그러나 석굴암 중창 불사 계획으로 지금과는 다른 안내도 다,

계곡을 건너가는 다리로 들어 가면서 보이는 우이령계곡은, 목을 길게 빼고 업드려서 마셔도 될 것처름 맑다,

석굴암으로 들어 간다, 석굴암은 입구에서 약 800m 정도다, 가는길은 그리 가파르지는 않지만 계속해서 오름길이다, 오늘 우이령길은 시작부터 평지로만 걷다가 계속해서 올라가는 길이 나오니 은근히 힘들다,

천년고찰 石窟庵(석굴암)은 양주시 장흥면 석굴암길 519에 있는 불교조계종 제25교구 본산인 봉선사 말사로 수도권 사찰 중 최고의 자연 경관을 가진 곳에 있다,

不二門에 도착했다, 不二(불이)는 진리 그 자체를 달리 표현한 말로, 본래 진리는 둘이 아님을 뜻한다. 일체에 두루 평등한 불교의 진리가 이 불이문을 통하여 재조명되며, 이 문을 통해야만 진리의 세계인 불국토(佛國土)가 전개됨을 의미하는 문이다.

불이문을 지나서도 잠시 더 올라가야 하지만 길 가에 만개한 진달래가 따듯한 봄 기운을 전해준다,

사찰이름인 석굴암은 경내에 있는 자연석굴에 羅漢(나한)상 8구를 봉안한데서 유래했다, 신라 중기 의상대사가 창건했다는 설이 전해 지지만, 정확한 창건 연대 기록은 없고 고려말 도선국사나 나옹선사가 설립했다는 구전도 있다, 특히 석굴암은 나반존자와 관련된 동지 팟죽 공양, 생쌀 공양 등의 설화가 전해지며 기도처로도 유명한 절이다,

석굴암은 1455년에 단종 왕후가 왕세자를 위해 왕후 원찰로 중수 하기도 했다, 현재의 석굴암은 1954년 초안 큰 스님이 복원 불사를 시작해 1975년 대웅전을 중수하고, 1980년 대에는 여러 탱화 조성등으로 중건해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었다,

도일 스님은 토지 2만평을 기증하며 가람의 현재 모습을 완성하는 데 크게 기여 했다,

석굴암에서는 오봉이 바로 올려다 보인다, 결국 이 말은 석굴암은 오봉 바로 아래에 있다는게 된다,

대웅전이다, 일반적으로 사찰의 대웅전은 크고 화려한 모습을 보여 주는데 석굴암 대웅전은 아주 소박하기도 하지만 절의 중심부에 있는게 아니고 오른쪽에 있다,

대웅전 옆 숨겨진 자리 같은 곳에 나한전이 있다, 나한전은 석굴암 내부에 위치한 전각으로 나한 羅漢 즉 아라한들을 봉안한 공간이다, 특히 나반존자 라는 나한상을 모시고 있는데 이 나한은 수행의 적인 번뇌를 없애고 진리에 상응하는 신앙의 상징으로 대단히 중요하다,
석굴암은 자연석굴, 이름 자체가 석굴인 만큼 자연석굴 안에 조성된 불상과 나한상이 문화재적 가치가 높으며 주변 경관과 함께 정신적 상징성을 띠고 있다, 나한상 및 탱화, 나한상과 함께 다양한 불화(탱화)도 중요하게 여겨진다,

작은 범종각과 큰 적멸보궁이다,

범종각은 석굴암 경내에 있는 범종을 모신 전각으로 정면 1칸, 측면 1칸, 규모의 작은 건물이다, 불교 의식에 사용 되는 범종을 보관하는 곳이다,

종각 뒤 언덕에는 삼성각이 있다, 우리는 예로부터 산악 숭배 관념이 지대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고 그래서 일찍부터 신성한 곳으로 믿어지는 산에 제사를 드리고, 산에는 산신(山神)이 있다고 생각해 왔다. 신라 때는 국가적으로 중요한 다섯 산,(동 토함산, 남 지리산, 서 계룡산, 북 태백산)중 팔공산을 오악(五岳)으로 지정하여 국가가 주재하는 제사를 올렸으며 이는 고려나 조선시대까지 지속되었다. 이런 전통 신앙의 산악 숭배가 사원 내부에 자리잡은 것이 산신각이다.

오봉(五峰)의 서남쪽에 있는 관음봉(觀音峰) 중턱에 자리 잡은 석굴암은 위로는 도봉이 치닫고 아래로는 삼각산이 모여서 마치 여러 별이 모여 북극성을 떠받들고 있는 것 같아 그 산세가 크고 뛰어나며, 물 또한 맑고 골이 깊어 수행하는 사람이 살기에는 더 없이 좋은 사찰이라고 한다.

오봉산 석굴암은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가 창건했으며, 고려 공민왕 당시 왕사(王師)였던 나옹화상이 3년간 수행정진 했다고 전해진다. 끊임없는 고승들이 주석하며 선맥을 이어갔으나, 6, 25 전쟁으로 인해 석굴암의 전각이 모두 소실되어. 1954년 초안큰스님으로부터 시작된 복원 불사를 이루어 현 가람의 모습을 만들어 냈다.

절 옥상에서 이런 사진을 찍는일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석굴암에서는 개방해 놓았다, 뒤로 보이는 산 능선이 상장능선이다,(오봉 유래에 언급되는 능선)

석굴암 제일 끝 당우는 茶房(차방) 이다,

왼쪽 부터 제일 높은곳에 있는 산신각과 종각, 그리고 숨겨져 안 보이는 나한전과 대웅전이 한줄로 보이는 석굴암 전경은 평화 스럽기만 하다,

대웅전에서 나가는 방향 계단위 장독대, 사찰에서는 어디나 독특한 장독대가 있는데 석굴암 장독대도 독특한 장소에 있어서 인지 멋스럽기만 하다,

금방 不二門 으로 내려 왔다, 불이문은 절로 들어가는 세 개의 문 중에 마지막 문으로 상대적이고 차별적인 상태를 초월하여 절대적이고 평등한 진리의 세계로 들어서는 것을 상징하며. 또한, 불이의 경지에 도달해야만 불(佛)의 경지로 나아갈 수 있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어, 여기를 지나면 금당(金堂)이 바로 보일 수 있는 자리에 세운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 문을 解脫門(해탈문)이라고도 한다.

곱게 피여 있는 진달래를 뒤로 하고

석굴암 입구 넓은 광장으로 내려와 우이령으로 간다, 교현리에서 들어 올때의 길과는 다른 멋이 풍기는 오솔길 처름 느껴지는 길을 따라 들어가다 보면

오봉이 보인다, 오늘은 오봉을 오봉을 몇번이고 바라보고 올라왔다,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 석상이 또 있을까 싶다, 한국 최고의 자연 석상이 바로 오봉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대통령들을 조각해 놓은 미국 사우스다코타주 러시모어산 의 큰바위 얼굴 이 세계적인 명산이 되었는데,

하물며 신(神)이 빚은 도봉산 오봉을 어찌 큰 바위 얼굴에 비하겠는가?

보고 또 보아도 어쩜 이리도 아름다운 봉우리가 있을까? 인수봉이 제1의 아름다운 바위라면 오봉 또한 그에 못지 않은 바위일게다,

이렇게 아름다운길에 함께 왔으니

오솔길을 걷는 내내 꽃향기를 보내 주는 진달래 꽃, 1922년경 김소월 선생은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 라고 노래하셨는데 ~ 문득 이 詩가 떠 오른다,

우이령(牛耳嶺)의 우리말 이름은 소귀 고개다, 고갯길이 소 귀처럼 길게 늘어졌다 해서 유래 됐다고 하는데. 우이동에서 바라다 보이는 북한산 인수봉 북쪽면의 볼록 돋아난 부분이 소 귀 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말도 있다.

예전 소귀고개로 불리던 우이령길은 양주시 장흥면 교현리와 서울 우이동 일대를 연결하는 오솔길로 한국전쟁후 미군 36공병단소속 공병대대가 작전도로를 개설했고 전쟁의 상징인 대전차 장애물(고가낙석)도 설치 되였다,

대전차 장애물은 벽의 밑 부분을 폭파하여 돌을 떨어뜨림으로서 적의 진격을 저지하는 군사 시설로 경기북부를 제외하고 서울에서 볼 수 있는 유일한 시설물이다,

우이령길 작전도로 개통기념비도 안내되여 있는데 영문으로 기록되여 있는 이 기념비는 근대 역사 문화유산으로 등재 되여 있기도 하다,

령 자의 한자는 재령, 고개령(嶺)자로 산마루고개 라는 뜻이다, 고개를 넘어 왔어니 이제는 당연히 내려 가야한다,

경사도가 그리 급하지는 않아도 계속해서 내려 간다,

교현리에서 들어올때는 거의 평지길이 였는데

우이동에서 소귀 고개로 올라 갈려면

은근한 오름길을 계속해서 가파르게 올라 가야할 것 같다,

이제 우이령길이 거의 끝나가는 지점에 있는 이정표에는 소귀고개는 1km 석굴암은 2km 교현리는 3,5km라고 하고

우이동은 500m라고 알려준다, 국립공원공단에서 설치한 이정표니 정확하다고 보면 된다,

우이동 우이령탐방지원센터로 왔다, 여기서 우이령길은 끝이다, 아직도 귀가길 교통편 이용을 위해서는 더 가야 하지만

우이령탐방지원센터에서도 이런 길을 따라 한참을 더 내려가면

우이령길 안내가 있는데, 우이령길은 북한산과 도봉산 사이로 한국전쟁중 경기북부 주민들의 전쟁통의 피난길로 1968년부터 2028년까지 민간인 출입이 금지되여 자연보존 상태가 뛰여난 곳이라는 안내도 있다,

이제 우이동유원지로 내려왔다, 이 마을의 정식 이름은 잘 모르겠어나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이름은 우이동유원지다,

서울지역 벚꽃이 거의 끝나가는데 여기는 이제 만개했다, 이 지역은 여의도등 벚꽃보다 일주일 쯤 늦게 피나보다,

이 지역은 우이천을 기준으로 많은 집들이 영업을 하는 오랜 역사가 있는 곳인데 이제 대단위 우이령문화공원으로 탈바꿈 하나보다,

우이동 가족캠핑장도 있다, 북한산과 우이천이 만나는 청량한 자연을 품에 안은 캠핑장으로 도심숲 속 여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고

등산과 둘레길 산책, 4.19민주묘지와 순례길등 다양한 역사문화자원을 체험할 수 있는 캠핑장으로 관내 거주자 우선예약(7면)이며 매월 8일 14시에 예약할 수 있어며 이용요금은 아래 와 같다,

우이신설도시철도 차량기지도 지나고

우이도 산악문화 H, U, B, 입구도 지나서

북한산 우이역 교차로 까지 가면 우이역이다,

서두르는 바람에 등산앱을 켜 않아 기록이 없다, 대신 다음 지도를 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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