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흐르듯이 순리대로
종로둘레길 사직단과 단군성전(2026년 5월 3일) 본문

경복궁역 1번출구로 나가면 인왕산 자락길 안내가 있다, 이정표가 알려주는 방향 직진으로 약 300m정도를 가면

社稷壇 大門(사직단 대문)이 있다, 사직단 대문은 사직단과 관련된 여러 시설을 모두 포함하는 영역의 출입문으로 동쪽에 위치한다, 1592년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이후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社稷壇 大門은 1962년 도시계획으로 14m, 1973년에 도로확장 공사로 10m등 24m나 뒤로 옮겨져 현재의 자리에 위치한다,

社稷壇(사직단)은 조선시대 국가 제례 시설로, 토지신(사社)과 곡식신(직稷)에게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단순한 제단이 아니라 조선 왕조의 국가 정체성과 농업 중심 사회의 근간을 상징하는 성역 이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고려의 수도 개경에서 한양으로 천도(遷都)를 한후 경복궁과 종묘를 짓는 시기 태조4년(1395)에 시작해 같은 해 완공했어며. 도읍을 건설할 때 적용되는 좌묘우사(左廟右社)의 원칙을 충실히 지켰다,
좌묘(左廟) : 궁궐 기준 왼쪽(동쪽)에 종묘(왕의 조상신을 모시는 사당)를 둠
우사(右社) : 궁궐 기준 오른쪽(서쪽)에 사직단(토지와 곡식의 신에게 제사)을 둠

이는 유교적 제례 체계에 따른 것으로, 궁궐을 중심에 두고 동쪽에는 조상, 서쪽에는 토지와 곡식을 배치하여 국가의 근본을 상징했다, 오늘은(2026년 5월 3일)출입문은 닫겨있다, 이 공사는 2027년에 준공한다,

조선시대 사극을 보면 조정에서 왕과 신하들이 회의를 하는 장면에서 신하들이 종묘와 사직을 잘 모시여 라고 하는 대사가 자주 나오는데, 여기서 말하는 사직이 바로 사직단 이다.

종묘는 왕의 조상신, 즉 역대 왕과 왕비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고, 사직은 왕이 다스리는 땅을 주관하는 토지의 신인 국사(國社)와 후토(后土) 곡식의 신인 국직신(國稷神)과 후직(后稷)을 위한 제를 지내는 사당이다.

사직단에는 동쪽에 사단(社壇) 서쪽에 직단(稷壇)을 배치 했는데 두 단(壇)의 모양과 크기는 한변이 7,65m인 정사각형이고 높이는 약 1m이다,
토지 신에게 제사 지내는 국사단은 동쪽에, 곡식 신에게 제사 지내는 국직단은 서쪽에 배치 했으며, 신좌는 각각 북쪽에 모셨다.
농자천하지대본야(農者天下之大本也)'라는 기치를 내세운 조선 왕조에서 농업은 국가의 근간이었기 때문에 땅과 곡식은 조상을 모시는 것 만큼이나 중요했다.

단(壇) 주위에는 유 라는 낮은 담(壇)을 두르고 다시 사방에 4개의 산문을 설치한 담(壇)을 둘러 이중으로 담(壇)을 설치 했고 그 외부에 제사 준비를 위한 부속 시설을 두었다, 그러나 1910 전후 일제에 의해 제사가 폐지된 이후 부속 건물들이 철거되고 두 담(壇)만 남긴채 공원으로 조성되였다,

종묘사직은 국가의 정신적 근간과 정통성을 이어가는 의미가 있기 때문에 사직단은 조선왕조에 있어 아주 중요한 성역(聖域)이었다. 종묘와 사직 중 격은 사직이 더 우위였으며, 어떠한 사정이 생겨 종묘에 제사를 지내지 못해도 사직에는 제사를 반드시 지내도록 했다.선포 후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환구단을 세우기 전까지 사직은 조선왕조에서 '공식적으로' 가장 격이 높은 제사장이었다

사직단 외부에 제사 준비를 위한 부속 시설인 전사청(典祀廳) 이다, 1910년 전후 일제에 의해 제사가 폐지된 이후 철거되였던 사직단 부속 건물들을 해방후 1963년 사적으로 지정하고 1980년대에 담장과 부속 시설 일부를 복원했다

전사청(典祀廳) 은 사직단 제례를 준비하는 공간으로 1988년 부터 전주 이씨 대동종악원에서 사직 대제를 매년 거행하고 있다,

제례를 준비하는 전사청은 제기고, 잡물고, 재생정, 저구가, 수복방 등의 건물과 제정(우물) 찬만대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전사청(典祀廳)으로 들어가면 우물(제정)이 보인다, 우물은 조선시대 사직단 전사청 권역에 있던 제례 준비용 시설로, 제사에 필요한 물을 공급하던 중요한 공간이다

우물옆 끝에 있는 건물은 사직단 저구가(杵臼家)다, 지구가는 조선시대 사직단 내 전사청 일원에 있던 건물로 제사에 올릴 곡식을 절구로 찧던 장소다.

저구가(杵臼家)앞 건물은 제기고 다, 제례 도구를 보관하던 창고로

다양한 종류의 향로 외 제기들이 보관되여 있다,



제례에 직접 참여하는 제관들은 검은색 계열의 제복을 입는다, 머리에는 관모(冠帽)를 쓰고 속에 중단을 받쳐 입고 겉옷으로 흑색 의(衣)를 입으며

그 위에 상(裳), 대대(大帶), 패슬(佩瑟), 패옥(佩玉), 品대, 방심곡령(方心曲領),을 착용한다, 버선(襪)과 말(襪)을 신고 손에 홀(笏) 을 든다, 제관에 부착된 세로선의 개수로 신분을 나타낸다,

전사청(典祀廳) 앞 마당은 매우 넓다, 아마도 이렇게 넓은 공간이 있는 이유는 국가 최고 성역의 제례에 많은 사람들이 필요했기 때문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지만 사실관계는 알 수 없다,

사직단(社稷壇) 과 전사청(典祀廳)을 둘러보고 단군성전으로 간다, 檀君聖殿)은 사직단 제일 높은곳 외부에 있다,

사직단 후문을 나가 사직단 담장을 따라 인왕산 방향으로 올라간다,

오름길에 보이는 고풍스런 한옥이다, 안채와 바깥채 로 보이는 한옥은 예사롭지가 않아 보인다, 조선시대부터 전해져 오는 한옥일까? 아니면 고풍스럽게 새로 지였을까?

인왕산으로 올라가는 도로변에 단군성전(檀君聖殿) 내외 삼문이 보인다. 남향을 하고 있는 사당과는 달리 서향을 하고 있다. 단군성전(檀君聖殿)은 우리 민족의 시조인 단군을 모신 대표적인 사당으로. 이 사당은 원래부터 이곳에 있었던 것은 아니고 해방 이후인 1968년에 처음 세워졌다.

사당은 단군 영정과 단군상을 모시고 있으며 단군성전 또는 백악전(百惡殿)이라 부른다. 사직단은 나라의 제사이고, 단군성전(檀君聖殿)은 민족 시조 제사 공간으로 요약 할 수 있다,

단군성전(檀君聖殿)은 단군 영정과 위패를 모셔 두고 봉향하는 곳으로 매년 개천절에 기념행사가 열린다, 이 두 장소는 한국 민족 정체성과 정신적 유산을 되새기기 위한 중요한 역사적 장소로 단군사당은 단군의 영정이나 위패 등을 모셔두고 제사를 지내는 곳으로 전국 곳곳에 남아 있다.

단군(檀君)은 우리나라를 처음 세운 시조로 조선을 건국한 것으로 고려시대 삼국유사에 기록으로 등장한다. 고려 충렬왕때 원나라의 압박을 받던 고려인들의 민족의식에서 비롯된 면도 있고, 전통적인 제천의식과 중국 도교의 영향을 받은 점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단군에 대한 숭배는 구한말 이후 본격적으로 확산되어 오늘에 이른다.

건국신화에 따르면, 단군은 우리나라를 처음으로 세운 국조이자 신인(神人)이다. 실제로는 고대부터 한민족의 정신생활 속에서 민족신앙의 핵심이 되어 천손(天孫)이라는 자부심을 갖게 되였고, 민족 주체의식의 원천이 되어 왔다. 단군이 나라를 세웠다는 10월 3일은 개천절(開天節)로 국경일이고 단군역사의 구체화는 독립된 단일 민족으로서의 정신적·문화적 통일을 열망하는 민족의식의 발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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