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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흐르듯이 순리대로

마니산 안개속에서 역사를 더듬다,(2011, 8, 19,)조블뉴스 본문

국내 山行日記/그곳에 가고싶다

마니산 안개속에서 역사를 더듬다,(2011, 8, 19,)조블뉴스

물흐르듯이순리대로 2011. 8. 19. 23:24

2011년 8월 13일 강화도 함허동천에서 야영을하고 마니산을 오른다,

  마니산 정상인 참성단 까지 2.2km, 평지 길이면 30분이면 갈수 있는 길이다,

유명한 산길은 길을 알면 아는대로, 모르면 모르는 대로, 먼저 지나간

발자국만 따라걷다보면 이런 이정표가 정확한 위치를 알려주니 길 잊어버릴 염려는 없다,

오르는 길가에 스치로폴에 글씨를 써서 붙여 놓은 안내판이 왠지 낮설다,

어느곳이고 다 경쟁적으로 멋있는 안내판을 설치하는 시대에 스치로폴에 새긴 이정표,

등산객이 훼손만 하지 않어면 그런대로 오래 사용 할수도 있겠다,

가파른 곳이라 그런지 겨울철 눈길에 미끄러워서 인지는

알수 없지만 굵은 밧줄을 설치해 놓은 곳이 유독 많아 보인다,

안개가 자욱히 낀 아름다운 산길을 따라 참성단으로 가는길

가시거리가 10 m 앞도 보이질 않는다,

마니산은 높고 험한 산은 아니다,

그러나 해발 0 m 에서 시작 하는 산이라 일반적으로 1000 여 m 는 족히 되는 듯한 산이다,

이런 괴이한 형태의 바위길도 지나고,..

멋스러운 소나무들이 촘촘히 서 있는 길도 올라간다,

가는길에 만나는 이정표는 현재의 정확한 위치를 알려주는 역활을 한다,그래서 초행길이라도 든든하다,

맑은 날이면 맑은대로 이렇게 안개가 낀날이면 안개가 낀 대로

산길은 언제나 어디나 다 멋스럽다,  그저 산길을 걷는 사람은 자연을 즐기기만 하면 된다,

후두둑 빗 방울이 떨어진다,

오늘은 야영을 하고나서 산책처름 나온 걸음이라 산행준비가 전혀 없다,

마실물도 없고, 흐르는 땀을 딱을 수건 한장 준비하지 못했다, 그러니 그저 비가오면

온몸으로 비를 맞고 땀이 흐르면 손등으로 땀을 흠치며 가야 한다,

바위길이 많이 미끄럽다, 그러니 자연히 걷는 속도가 붙질 않는다,

어차피 급할것도 없는 유유자적,!! ~ 다행히 능선이 다가 오는지 시원한 바람이 분다,

함허동천에서 부터 계속된 오름길에서 처음으로 만나게 되는 데크계단,

이 계단을 올라서면 마니산 동에서 북으로 가는 주 능선이 나온다,

이길은 능선길 이기는 하지만 우회길도 없는 암릉으로 만 이어저 있다,

능선길은 모두가 암릉이라 위험하다 그래서 조심해야하는 구간이다,

그래서 능선길 전부를 이렇게 쇠줄이나 밧줄을 걸어 놓았다, 날 밝은날 이 능선은

아주 조망이 좋은 곳이다,

바로 발아래 펼처지는 끝없는 바다와, 오밀 조밀한 염전과 전답,

 그러나 오늘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멀리 보이지 않어면 어떤가?

이렇게 마니산 능선 명품 소나무가 반겨 주는데, ~

오늘 여기서 보이는것은

안개속에 묻혀있는 오밀 조밀한 자연 그게 전부다,

마니산에도 우리나라 측량의 기준이 되는 측량 삼각점(강화 422의 위치)이 있다,

동경 126도 26" 18, 북위 37도 36" 36" 높이 469m 라고 쓰여있다,

여기는 사진에 보이는 밧줄이 곧 길이다, 

그냥 저 밧줄만 따라가면 정상인 참성단으로 간다,

자욱한 안개로 아무런 조망은 없지만

안개속에 싸인 마니산의 운치는 아름다운 영화속의 한장면 같다,

함허동천에서 정상에 거의 다가면 참성단 동쪽 등산로 50m 정도의 거리에

참성단 중수비 가 있다. 숙종 43년 강화 유수였던 최석항이 높이 5m에 폭 3m의

자연석에 쓴 이 비석은,  등산객 대부분이 북쪽의 등산로를 이용하기 때문에

그 존재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자연 바위에 사각 ↓ 음각 으로 

만든 곳이 참성단 중수비 다,

참성단 중수비 는 숙종 때의 보수 내력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비문을 그대로 직역하면 아래와 같다, 우리나라 국토 수천리를 통털어 강화는 나라의

방패가 되는 중요한 곳이며 강화 수백리에서도 마니산은 나라에서 제사를 드리는 명산이다,

이 산 서쪽 제일 높은 곳에  돌을 쌓아 대를 만든곳이 있어니 이곳이 참성단 이다,

 

세상에 전하기를 단군이 돌을 쌓아 단을 만들어 하늘에 제사를 지내든 곳이라 한다,

돌이켜 보건대 연대가 오래되여 비바람에 씻기고 깍여 서쪽과 북쪽 양면이 반쯤 무너

졌어며 동편 계단 또한 많이 기울어저 이 고을 여러 어른들이 서로 더불어 개탄 한지 오래 되였다,

부족한 내가 이곳 유수로 와 이 고을을 지키게 되여 올 봄에 고을을 두루 살피면서 시험삼아

한번 올라가 보았는데 분연히 이곳을 중수할 뜻이 생겨 선두포 별장 김덕하 전등사

총섭승 신묵에게 그 일을 주관하게 하여 다시 쌓게 하니 열흘이 채 아니되여 공역을 다 마쳣다,

 

아! 무너진 곳을 일어키고 고치여 옜모습을 잃지 않게 하는것을

고을을 지키는자가 마땅히 힘써야 할바이다, 하물며 단군은 중국의 요 임금과 같은

시대에 태여나시여 실로 우리 동국 백성의 조상이 되시는데 손수 단을 쌓아 하늘에 청결한

제사를 드리든 곳임이라, 수천년이 지나도 후손들이 우러러 공경할 곳이니 고쳐서 완전하게

하는 일을 어찌 하지 않을수 있겠는가, 신묵이 일의 시말을 기록하여 후인들에게 이를

알리기를 청하므로서 이를 써서 기록하는 바이다,

 

정우 1717년 숙종 43년 5월(단양월) 강화유수 최석항이 기록한다,

참성단 중수비를 지나 바로 계단을 오르면 마니산 정상이 나온다, 

 마니산 해발 472.1 m 라는 표식이 둥근 통나무로 되여 있다,

헬기장이 있는 이 마니산 정상에서 조금 더 가면 참성단이다,

참성단 입구에도 이런 표식이 있다, 그러나 지근거리에 있는 정상과 참성단은 정상이 3.9m 가 높다

참성단 사방을 훼손을 막기위해 이렇게 울타리를 처 놓았다,

몇년전에 왔을때는 참성단 접근 자체를 막았어나 오늘보니 일반인들에게도 개방해 놓았다,

그래서 저 울타리 문을 지나 참성단 내로 들어간다 

참성단은 강화도 남쪽에 우뚝 솟은, 마니산 정상(468m)에

단군께서 단을 쌓고 하늘에 제사를 올리던 곳이라 전해지고 있다.

 

참성단은 민족의 성지로, 무게를 더해준다.

제단은 다듬은 돌로 만들어졌다. 위쪽은 둥글고, 그 아래는 네모난 단을 쌓아 올렸다.

아래 네모 단은 지름이 8.7m이고 위쪽의 둥근 단은 지름 6.6m 로 되어 있다.

참성단을 조성한 연대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지만 보수 또는 수축한 기록은 곳곳에 있다.

고려 원종 11년(1270년),  조선 인조 17년(1639년),  숙종 43년(1717년)에 단을 보수한 기록으로 보아,

조선 후기까지 이곳 참성단에서  제천의식이 행하여 졌음을 짐작하게 한다.

이곳이 ↓ 참성단 제단안으로 들어 가는 입구다

참성단은 단군왕검이 백성들에게 삼신(三神)을 섬기는 예절을

가르치기 위해서 그의 아들 부루(夫婁)로 하여금 직접 쌓게 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또한, 단군이 이곳에서 직접 하늘에 제사를 올렸다고 해서 <제천단>이라 부르기도 한다.

깎아지른 절벽 위에 자연석을 쌓아서 만든 참성단은  요새위의 신전 이다.

참성단의 축조에는 우리 선조들의 천지관(天地觀) 사상 반영되어 있다.

천원지방(天圓地方) 즉,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 라는 관념에 따라, 성소(聖所)인

윗단은 둥글게,  제사를 올리는 아랫단은 네모지게 쌓았다

참성단 소사나무 천연기념물 제 502호

높이 4.8m 뿌리 부근 둘레 2.74m  수령 150년 추정, 전형적인 관목 모습에

나무갓이 단정하고  균형이 잡혀 있어며  참성단의 돌담위에 단독으로 서 있어 한층 돋보이며

규모와 아름다움에서 우리나라 소사나무를 대표 한다, 소사나무는 잎이 작고 줄기가

고목의 모습을 가져 분재 소재로 사랑 받아온 대표적인 전통나무이나 

문화재 지정사레로는 처음이다, 라고 적혀 있다,

참성단에서 바라보는 경관은 실로 눈부실 정도로 아름답다.

서, 남으로 서해가 시원스레 발 아래로 펼쳐지고, 북으로는 바둑판 같은 강화의

들판이 시원스럽다. 넓은 바다, 먼 하늘이 만리나 터졌네, 라고 읊었다는

고려 말 이색의 탄성이 그대로 터져나올 것 같다.

 

4,000년 역사를 간직한 참성단, 제단을 이루고 있는 화강암 반석들이

세월의 풍화를 묵묵히 견디여 온 배달민족의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참성단은 그 동안 민족성지로서의 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천제의식은 단군을 모시는 일부 종교단체 행사로 그쳐왔다. 정부 차원의 행사는

전국체전 성화 채화식이 이곳에서 이루어질 뿐으로,민족의 영산으로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역사에 젖어 마냥 머물수 만은 없다,

그래서 올라온 길인 정수사 함허 동천 으로 다시 내려 선다,

내려가는 길을 배웅이라도 하듯 자연속의 분재들이 넘실 거린다,

서해바다의 세찬 바람을 맞아서 인가,? 

마니산 동쪽 등산로 암릉의 나무들이 모두 올곧은게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