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남한산성 (12)
물흐르듯이 순리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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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5호선 마천역 1번출구에서 남한산성으로 오르기 위해 모였다, 2020년 5월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코로나 사태로 다소 염려스럽기는 하지만 그래도 마냥 움츠리고 있을수만은 없다는 의견들에 따라 모처름 함께하기로 했다, 1번출구 건너편 주택가로 들어간다, 주택가 길을 따라가다가 두번째 골목길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나가면 거여삼거리가 있는데 여기서 다시 왼쪽 인도로 아기이름 전문 작명소도 있다, 도장 작명소 라는 간판을 오랫만에 봐서일까, 오래된 옜날 마을인것처름 느껴지는 길이다, 길건너에는 아파트공사를 하고 있었는데 공사장 이름이 청신호로 청년들과 신혼부부 집을 짓는다는 뜻이다, 이곳부터 성남지역까지 는 현재 모두 공사중이다, 로또보다 더 어려웠다는 청약열기가 휩쓸고 지나간 위례신도시 지역이기 때문이다..
2011년 8월 南漢山에 있는 山城을 찾아 간다, 신라 문무왕때 처음 성을 쌓고 주장성/晝長城 이라 했다, (동국여지승람 東國與地勝覽 에는 일장산성 日長山城 이라 기록하고 있다) 1624년 인조 2년 城 을 개축하여 1626년 공사를 마친다, 4 門 과 16 暗門 1,897개의 성가퀴, 옹성, 성랑, 우물, 샘, 등을 갖추었다 지금은 많은 사람들의 휴식처인 공원으로 변해 있는 남한산성 !! 그러나 城 이란 역사의 한가운데 있었든 곳이다, 남한산성의 역사 또한 우리 민족사에서 결코 잊을수 없는 아픈 역사를 간직한 곳이다, 조선 전기까지 조선에 조공을 바쳐오던 여진족이 명나라가 어지러운 틈을 타 급속히 성장하여 후금을 건국하고 나라 이름을 청으로 바꾼 여진족이 조선에 신하로서의 예를 갖출것을 요구하자 두 나..
남한산성은 조선의 도성인 한양의 방어를 위하여 쌓은 산성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최근의 발굴조사 결과, 8세기 중반에 조성된 성벽과 건물터 등이 확인되어, 신라 주장성(晝長城)의 옛터였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조선시대 남한산성은 주봉인 해발 497.9m의 청량산을 중심으로 북쪽으..
조선 전기까지 조선에 조공을 바쳐오던 여진족은 명나라가 어지러운 틈을 타 급속히 성장하여 후금을 건국하고, 더욱 세력을 확장하여 조선을 침략하는등 압력을 행사하면서 조선과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하였다. 나라 이름을 청으로 바꾼 여진족이 조선에게 신하로서의 예를 갖출 것을 요구하자 두 나라의 관계가 단절된다 결국 인조14년(1636) 청나라 태종이 10만 의 군사를 이끌고 직접 조선에 쳐들어와 병자호란을 일으켰다. 남한산성에 머물며 항전하던 인조가 결국 청나라의 군대가 머물고 있는 한강가의 삼전도 나루터에서 항복을 하면서 우리민족 역사에 가장 치욕적이고 부끄러운 강화협정을 맺게 된다. 병자호란이 끝난 뒤 청태종은 자신의 공덕을 새긴 기념비를 세우도록 조선에 강요했고 조선 인조 17년(1639년) 지금의 송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