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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성 12성문-6,원효봉 북문 그리고 서암문(2016년 9월 11일) 본문

국내 山行日記/서울·북한·도봉

북한산성 12성문-6,원효봉 북문 그리고 서암문(2016년 9월 11일)

물흐르듯이순리대로 2016. 9. 13. 12:52

백운봉암문 白雲峰暗門 이다, 백운대와 만경대 사이에 있다,

일제시대에는 위문으로 불리다가 몇해전에 백운봉암문으로 개명한 북한산성 7개 암문중 제일높은곳에 있는 문이다,

백운봉 암문에서 하산길은 하루재나 영봉 또는 도선사 방향, 우이동이나

만경대 우회길을 따라 북한산성 주능선으로 가는길, 북한산성 북한동으로 하산하는 길등이 있다,

백운대에서 북한동으로 하산하는 길은 가파르고 거친 너들길이다,

올라오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내려가는 사람도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로 거친길이다,

그래도 내림길이다보니 하산하는 사람들은 잘도 내려간다,

문제는 이런길을 하산할때 정상적으로 내려가지 않고 페이스를 오버하면 

무릅에 상당한 무리가 올수도 있어니 조심해야 한다,

대동사 일주문격인 문이다,

이곳에는 상원사와 대동사, 두곳의 절이 있는데 두곳 모두 신도를위한 절이아니라

중들이 수행하는 절로 소위 도딱는 절이라 일반인들의 출입을 꺼리는 절이다,

대동사 종각이다 ~

대동사는 이렇게 작은 절이다, 특이한 것은 출입문을 잠궈 놓은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대동사보다 조금 위에 있는 상운사다, 이곳도 수행승려들이 공부하는 절이다,

조계종 직할교구 조계사의 말사로. 서울과 경기도 고양시의 경계를 이루는 북한산 원효봉(元曉峰) 남쪽 중턱 북문 앞에 있다,

신라 때 원효元曉 617∼686가 삼천사(三千寺)와 함께 창건하였다고 전하며, 조선 중기이후 승병들이 머물렀던 절이다. 1722년(조선 경종 2)

승병장 회수(懷秀)가 중창하면서 절 이름을 노적사(露積寺)로 바꾼 것을 1813년(순조 13) 승병장 태월(太月)과 지청(智廳)이

중건하면서 현재의 이름으로 바꾼 절이다,

대동사와 상운사를 지나 북문으로 올라간다,

오늘은 꽤나 먼길을 그것도 평탄스럽지만은 않은 거친산길을 걸어서 인지 지금쯤에는 슬슬 지처가는 시간이다,

지친 발걸음이라 무척 멀어 보이기는 하지만 사실 가까운곳인 북문으로 올라왔다,

북문은 북한산성 4대문중 대(大)자를 붙이지 않고 그냥 북문이라 부르는 문이다, 축성 당시만 해도

외부길이 없었든 곳에 북문이 지여젓다, 동서남북 으로 대문을 만들면서도 대(大)자를 붙이지 않은문은

북한산성 북문만이 아니라 한양도성의 북문인 숙정문도 대(大)자를 붙이지 않은 4대문이다,

어찌보면 북쪽은 다소 홀대했든것 같다, 예를들면 한양도성 북문을 북대문이라 하지않고 숙정문이라

했어며 또한 숙정문을 열어놓어면 장안의 여인네들이 바람이 난다는 속설로 사철문을 닫아놓았다는 기록이 보이는

것들을 보면 이곳도 한양도성과는 멀리 떨어저있는 곳이기는 하지만 사대문인데도 大字를 붙이지 않았다,

복원한 북한산성곽을 따라 원효봉으로 올라간다, 원효봉은 북문에서 300~400m 정도의 거리에 있다,

성곽에 검은색을 띠는 성곽돌은 산축성당시부터 있었든 성곽돌이고 흰색의 돌은 복원하면서 추가로 투입한 돌이다,

이곳 원효봉에서 보이는 백운대와 만경대 노적봉은 백운대에서 보든 것과는 또 다르다,

이곳 원효봉 정상도 북한산성 수비승군들이 훈련을 하고도 남았을 정도로 너른 암반 공터가 있다,

이렇게 쌓아저 있는 성벽 여장이라 한다, 외부에서 보면 성벽 몸체부분과같이

축조되여 있지만 성내에서 보면 성벽의 몸체부분 위에 설치한 낮은 담장이다, 이는 성을 지키는 병사들을

보호하고 적을 관측하거나 방어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 진것이다, 자세히보면 성벽 담장에 구멍이 뚫려있다,

성벽에 뚫려있는 구멍에 대한 설명은 아래사진에 따로 언급하려 한다, 

원효봉에서 건너다 보이는 의상능선 가사당암문 아래에 있는 국녕사 대불이 보인다,

이곳 원효봉을 떠나 하산하는길, 작은 암릉 하나를 넘어가야 한다,

암릉 정상에서 북한동 방향으로 내려다 보면 보이는 대서문이다,

대서문인 저문이 북한산성 평지에 있는 문으로 유일하게 산성내로 우마가 다니든 문이다,

어쩜 북한산성 정문격이 아니였을까? 그래서 유사시 저 대서문이 뚫리면 다음 방어문인 중성문이 있다,

북한산성내에는 행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임금이 출입하는 전용문은 대서문이 아닌

경복궁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있는 문인 대성문이였다,

원효대사가 수행을 했다는 원효암이다, 1711년 북한산성을 축조하면서 지은 암자다,

북한산성 수비와 관리는 승군이 맡았는데 이때 지어진 11개의 사찰과 2개의 암자중 한곳이다,


원효암을 들어가 지나가면 원효봉에서 이어지는 거대한 암반에서 물이 나오는 샘터가있다,

속설에 의하면 수행하든 원효가 지팡이를 꽂아 물을 나오게 했다는 샘이다,

 닫혀있는 샘문을 열어보니 물이 가득하다,

이제 서암문인 일명 시구문 방향으로 하산 한다,

여장은 성벽의 몸체부분 위에 설치한 낮은 담장이다, 성가퀴 또는 살받이터라고도 한다,

여장에는 대체로 총안(적에게 활이나 총을 쏠수있는 구멍)을 뚫었는데 비스듬하게 뚫어서 적이 가까이 왔을때 접근한

적을 공격하는 근총안과 수평으로 뚫어 멀리있는 적을 효과적으로 공격할수 있게한 원총안이 있었다,

이곳은 북한산성문 12성문 중 마지막 문인 서암문이다, 이 문은 시구문으로도 불린다,

죽은 자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어 산성 안에서 명(命)이라도 끊어지면 그 육신은 대문으로 나가지 못하고

암문으로 나갔던 것이다. 그래서 암문은 슬픈 이름 시구문(屍口門, 屍柩門)이 되었다. 그러나 이 높은 곳까지 시신을

모시고 와서 성을 나가야 했든 조선의 사람들은 죽어서도 편할수 가 없었든 것같다,


원효봉 서쪽아래에 위치한 덕암사다,

1966년 거북이 바위굴 이라 불리는 오래된 석굴을 보수해 대웅전으로 삼아 창건했다,

석굴보수전에 석굴안에 석불 3구가 모셔저 있었든 사실로 미루어 덕암사 중건 이전에 사찰이 있었든것으로 보인다,

원효대사가 이곳에 기거하며 삼국통일을 기원했다는 설이 전해저 오는곳이다,

북한산 계곡에서 덕암사로 들어가는 다리 즉,덕암사가 외부로 연결되는 주 통로인 셈이다,

북한산성 계곡을 따라 북한동으로 가는길 ~

북한산성에 설치한 2개의 수문중 한곳인 수문터다,

수문水門이란 물을 가두고 내보내는 기능을 하는 문으로 전쟁시에는 물을가두어서

적을 섬멸하는데 사용하기도 했다, 다른 한곳은 중성문 옆에 있다,

지금 하산한 길인 원효봉

마지막으로 길가에 곱게핀 야생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