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물흐르듯이 순리대로

역사의 전적지(戰迹地) 광성보와 광성돈대,(2016년 10월 3일) 본문

국내 山行日記/그곳에 가고싶다

역사의 전적지(戰迹地) 광성보와 광성돈대,(2016년 10월 3일)

물흐르듯이순리대로 2016. 10. 6. 15:16

육지에서 섬으로 들어간다, 덕포진에서 건너다 보이는 섬이 강화도다, 강화도는 역사와 지리상으로도

고려의 수도였든 개성과, 조선의 수도였든 한양과 가까우며 양 지역의 주요 하천인 한강과 임진강 예성강 의 바다쪽 출구를 막는

중요한 요충지였다, 덕진진은 김포 대명항에서 초지대교를 건너 광성보로 가는 길목에 있다, 사진은 ↓ 덕진진이다,

몽골군이 처들어 왔든 고려때는 조정이 수도로 삼았든 역사가 있고 조선 인조시절 병자호란때는

청나라군대를 피해 강화도로 도피하려다가 실패한 경험도 있다, 방어를 맡은 강도 검찰사 김경장이 청군감시를 등한시

하다가 기습을 받고 봉림대군 등이 인질이 되여 인조가 항복을 하게된다, 왜란과 호란 이후에는 강화유수부로

지정해 한양 외곽지역을 방어하기 위한 군사 요충지 중 하나였다, 사진은 ↓ 광성보다,

근대에 와서는 일본에 굴복하는 최초의 근대적 조약이 강화도 조약이며, 병인박해로 인해

프랑스가 침공해와서 벌어진 병인양요, 제너럴서먼호 사건으로 인한 미국이 강화도를 침공하는 신미양요가 발생한

역사의 현장인 강화도와 그 중심에 있는 광성보는 덕진진, 초지진, 용해진, 문수산성 등과 더불어 강화해협을 지키는 중요한 요새였다.

고려가 몽고 침략에 대항하기 위하여 강화로 도읍을 옮기면서 1233년부터 1270년까지 흙과 돌을 섞어서 쌓은 강화외성으로

다길을 따라 길게 만들어졌다. 영조 21년(1745)에 성을 고쳐 쌓으면서 성문을 만들었는데 안해루 ↓ 라 했다.


광성돈대는 광성보에 소속된 3개 돈대중 하나로 광성보 성문인 안해루와 붙어있다,

숙종 5년(1679) 함경도, 황해도, 강원도의 승군 8,000명과 어영군 4,300명이 40일만에 완공하였다고 한다.

1977년 포좌 4개소와 포 3문(대포, 소포, 불랑기)이 복원 설치된 광성돈대다,


광성보 성문인 안해루, 와 광성돈대 다, ~

돈대란? 성벽위에 석재 또는 전(塼)으로 쌓아올려

망루와 포루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높직한 누대를 말한다,



대포와 소포에 대한 안내문


광성보 성문인 안해루 를 나가 육지인 김포방향을 바라보면 ~ 


광성보는 국방 유적지인데 흔히 전적지(戰迹地)라 부른다, 

광성보 성문을 나가 보이는 염하강, 보이는 곳은  김포다, ~ 결국 강화도가 섬이니 육지다,

덕포진에서 울리는 노래소리?  http://blog.daum.net/dsooh/1131

천혜의 지형을 이용해 설치한 덕포진 http://blog.daum.net/dsooh/1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