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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흐르듯이 순리대로

천혜의 지형을 이용해 설치한 덕포진(2016년 10월 3일) 본문

국내 山行日記/그곳에 가고싶다

천혜의 지형을 이용해 설치한 덕포진(2016년 10월 3일)

물흐르듯이순리대로 2016. 10. 5. 17:40

김포 대멸항에 있는 함상공원

이곳에 온 이유는 덕포진을 가는 길이 이곳이기 때문이다,

덕포진가는길은 김포 대명항에서 부터

시작되는 경기도 평화누리길 1코스 염하강 철책길로 들어간다,

배는 어디로 가고 닿만 서 있는 염하강 갯벌,

함상공원에 있는 유물 전시용 배

엄청나게 큰 나팔을 불어본다, 막히지는 않고 뻥 뚫렸는데 바람 소리만, ~

염하강 철책을 따라 가는길 ~


이곳은 덕포진 쉼터다,

덕포진 쉼터에 있는 재미있는 의자,

볕이 강해서 앉을수도 없어니 그냥 모양으로 만들어 놓은것 같다, 뒤에는 덕포진 가 포대가 보인다,


사적 제292호. 지정면적 48,794㎡. 이곳은 돈대()와 포대() 및 파수청()이 있던 곳으로,

처음 세워진 연대는 알 수 없으나 1666년(현종 7) 강화에 예속된 진이었다고 하며, 1679년(숙종 5) 강화의 광성보(

덕진진(용두돈대()와 함께 축성되었다.

덕포진 포대 일대, ~


가 포대를 지나서 나 포대로

덕포진 나 포대다,

덕포진 나 포대 안쪽,


덕포진 다 포대 가는길

덕포진 다 포대에서 덕포진 돈대터로 가는길에 있는 파수청터다,

2주일 전만 하드라도 복원된 건물이 있었는데 무슨 이유인지는 알수없어나 며칠만에 철거하고 터만 남겨 놓았다,

철거한 건물은 당시의 건물 규모로 추정되는 앞면 3칸, 옆면 2칸 이였다,

돈대와 포대의 중심부에는 파수청터가 있는데, 이곳은 포를 쏠 때 필요한 불씨를 보관하는 동시에 포병을

지휘한 장소로 생각된다. 1980년의 발굴조사 당시 7개의 포탄과 상평통보() 2개가 출토되었고, 건물터에서는

주춧돌과 화덕자리가 발견되었는데, 건물규모는 앞면 3칸, 옆면 2칸으로 추정되며, 둘레에 맞담을 쌓듯이

둘러친 석벽이 있었다는 곳이. 이곳이다,

고려고종이 몽고병의 침략을 피하여 강화도로 가는 길에 배를 타고

이곳의 바닷길을 지나다가 거센물길에 위험을 느낀 나머지 사공이 흉계를 꾸몄다고 오해하여

그를 처형했으나, 무사히 그곳을 빠져나가자 잘못을 뉘우쳤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이 무덤은 당시 사공 손돌()의 무덤이다,

지금도 덕포진 앞 손돌묘앞의 좁은 바닷길을 손돌목이라 부르고 있다.

이곳 돈대터에서는 1874년(고종 11)에 만들어진 포와 포탄 등이 발굴되었다. 이곳은 바다를 사이에 두고

강화도의 광성보와 맞서 있는데, 시야가 막힌데다가 해협이 매우 좁고 물살이 빠르며 소용돌이치므로 적을 방어하는

전략적 요충지로서 중요한 구실을 하였다고 생각된다.돈대의 위치는 한성으로 통하는 바닷길의 전략

요충지로서 병인양요 때는 프랑스함대와, 신미양요 때는 미국함대와 싸웠던 격전지 였다.

덕포진 돈대터에서 보는 염하강 건너 맞은편 강화도에 있는 광성보,

광성보아래 용두돈대,

그리고 오른쪽으로 문수산과 문수산성도 보인다,

덕포진 돈대터에서 보이는 초지대교,

그리고 초지대교를 건너 상류방향에 있는 강화도 초지진

강화도 덕진진 도 바로 건너다 보인다,

며칠전에도 있든 파수청이다, 파수청터는 손돌묘 옆에 있다,

 손돌묘 옆길로 평화누리 길은 이어진다,

이곳으로 따라 들어가면 계속해서 염하강 철책을 따라 문수산성 남문으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