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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흐르듯이 순리대로

평화누리길 8코스 반구정길(5) 화석정 (2017년 2월 26일) 본문

2017년 平和누리길/파주 4개코스

평화누리길 8코스 반구정길(5) 화석정 (2017년 2월 26일)

물흐르듯이순리대로 2017. 3. 1. 15:15

화석정은 원래 고려 말의 유학자인 길재(吉再)가 조선이 개국하자

벼슬을 버리고 향리에 돌아와 후학을 양성하던 곳이었는데 사후 그를 추모하여 서원을 세웠다고 한다.

그 후 폐허가 되었다가 율곡 이이의 5대조인 강평공 이명신(康平公 李明晨)이 세종 25년(1443년)에 정자를 세우고

1478년 증조부 이의석(李宜碩)이 중수하였다. 이숙함이 화석정이라 하였으며, 이이 때에 이르러

다시 중수한 유서깊은 곳이다.



화석정에는 아래와 같은 시를 새긴 화석정 비가 있다,

이 詩는 율곡이 8세때 화석정(花石亭)에서 지은 팔세부시(八歲賦詩)라고 한다,


林亭秋已晩 / 騷客意無窮

숲에는 가을이 저물어 가매 / 시인의 시정은 그지없어라.
遠水連天碧 / 霜楓向日紅
물빛은 하늘에 닿아 푸르고 / 단풍은 햇빛 따라 불타 올라라.
山吐孤輪月 / 江含萬里風
산에는 둥근 달이 솟아오르고 / 강에는 끝없는 바람 어려라.
塞鴻何處去 / 聲斷暮雲中
기러기는 어디로 가는 것인가 / 저무는 구름 새로 소리 끊겨라.







임진강이 휘돌아 흐르는 언덕에

세워진 화석정의 전망은 예나 지금이나 아름답기 그지 없다.

정자 주변에는 느티나무가 울창하고 그 아래 임진강에는 밤낮으로 배들이 다녔어며 

밤에는 고기잡는 등불이 무척이나 아름다웠다고 하나 지금 임진강은 도로와 철조망이 가로막고 있다,

정자의 정면 중앙에는 박정희 전대통령이 쓴 '花石亭' 현판이 걸려 있다,

율곡은 정자에서 제자들과 함께 기둥과 서까래 등에 들기름으로 반질반질하게 칠을 했다,

나무에 들 기름을 잘 먹여두면 국운이 걸린 중대사에 꼭 필요하게 될날이 올것이라는 예견을 했기 때문이다, 

날 임진왜란(선조 25년, 1592년)이 일어나서 선조가 의주로 파천할때(4월 29일 밤) 억수같은 폭우속에 강을 건너려 했어나

칠흙같이 어두워서 강을 건널수가 없었다, 그러자 이항복이 화석정에 불을 질러 대낮같이 강을 밝힌후

무사히 배가 강을 건넜다. 율곡은 이런일을 미리 예견하고 대비했든 것일까?

율곡선생은 국사의 여가가 날 때마다 이곳을 찾았고, 관직을 물러난 후에는

여생을 이 곳에서 제자들과 함께 보내면서 시와 학문을 논하였다고 한다. 당시 그의 학문에 반한

중국의 칙사(勅使) 황홍헌(黃洪憲)이 찾아와 시를 읊고 자연을 즐겼다는 설도 있다, 

화석정 오른편에 있는 느티나무

나무 둘레는 4,5m나 되고 수령은 무려 560년이나 된다,,


화석정 뒤 임진강가로 있는 향나무다,

수령 230년이나 되였다고 한다,  이곳은 파평면 율곡 3 리 산 100-1번지다,


화석정은 임진왜란때 불 타 없어진후 80여년간 터만 남아있든 것을 현종(顯宗)14년(1673)에 율곡선생의 증손

이후지(李厚地). 이후방(李厚坊)이 다시 세웠으나 한국전쟁 때 또다시 소실되였다, 현재의 화석정은 1966년 파주 유림들이 성금을 모아

복원한 것으로 건축양식은 팔작지붕 겹처마에 초익공(初翼工) 형태로 조선시대 양식을 따라 지였다.



율곡 이이는 1536년 강원도 강릉부 죽헌동에 있는 외가인 오죽헌에서,

덕수 이씨 통덕랑 사헌부감찰 이원수와 평산 신씨 신사임당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율곡은 오죽헌 별채에서

태어났는데, 신사임당의 태몽이 흑룡이 바다에서 하늘로 승천하는 꿈이었기 때문에, 나중에 율곡이 태어난 별채방은,

몽룡실(夢龍室)이라 불럿어며, 어린아이때 이름은 현룡(見龍)이라 지었다가 뒤에 이(珥)로 바꾸었다.


율곡 유적지 는 아래에 있다,

경기 파주시 법원읍 자운서원로 204 (동문리) - [자운서원] 경기도 기념물 제4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