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흐르듯이 순리대로
천년의 세월을 이어간다, 운악산 현등사(2017년 10월 6일) 본문
현등사로 들어가는 길 우측에 108계단으로 이어지는 계단전각이 있었다,
이 전각은 현등사 불이문이다,
전각에 븥어있는 108계단의 진리 설명,
복잡하고 난해하지만 결국 중생의 번뇌가 이리도 많다는 것이다,
계단위로 보이는 절집, 저곳은 운악산방 찾집이다,
절이라 야생화 차를 팔줄 알았더니 커피도 팔았지만 오늘은 연휴라 문을 닿았다,
운악산방으로 사용중인 찾집
차집 휴게소로 이용하고있는 건믈 앞 에 있는 삼층지진탑 안내
3층 지진탑 위 절 마당에 있는 또 하나의 4층 석탑, 안내판은 삼층지진탑만 있다,
신라 법흥왕 때 인도승 마라가미(摩羅訶彌)가 포교차 신라에 왔으므로 왕이 그를 위해 절을 창건하고 산 이름을
운악산이라 하였으나, 창건 당시의 사찰명은 전하지 않고. 그 뒤 수백 년 동안 폐사가 되었다가 898년(효공왕 2)에 고려가 개경(開京)에
도읍을 정할 것을 미리 안 도선(道詵)이 송악산(松嶽山) 아래 약사도량(藥師道場)으로 세 사찰을 창건했으나, 완공 뒤 지세를 살펴보니 동쪽이 허(虛)해서
이를 보진할 땅을 찾아 동쪽 운악산의 옛 절터에 이를 중창했다는 유래가 있는 절이니 그세월이 천년을 넘었다,
삼층지진탑, 현등사 내의 언덕아래에 자리하고 있는 석탑으로, 고려 희종 때 승려 보조국사가 이 주위를 지나다가
석등에서 불빛이 솟아오르는 것을 보고, 수백년 동안 폐허로 있었던 이 절터에 새로 절을 짓게 되었다. 이 때 터의 기를 진정시키고자
이 탑을 세웠다고한다. 이로인해 지진탑(地鎭塔)이라는 이름이 생겨났으며, 승려의 이름을 따서 보조국사탑이라 부르기도 한다.
삼층석탑이다, 비슷해 보이지만 아래에 있는 삼층지진탑과는 별개다,
원래는 5층석탑이었는데, 현재 2층의 몸돌과 지붕돌은 없어진 상태이다. 너럭바위를 바닥돌로 삼고
그 위에 4각의 아래받침돌과 낮은 윗받침돌의 중석을 두고 두꺼운 윗받침돌의 덮개돌을 놓아 받침돌을 이루고 있다
관음전
보광전
극락전이다, 현등사의 주법당으로, 영조22년 1746년에 조성되였어며 건물은 가구식 기단위에
막돌초석을 두고 그 위로 자연목을 그대로 사용한 싸리나무 기둥을 얹였는데 주위 송림과 잘 어우려지는 건물이다,
극락전 내부
극락전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극락전의 주불로 138cm의 중형불상으로 무표정한 얼굴,
불분명한 육계의 표현, 짧은목에 움츠린듯한 어깨,평판적인 가슴등에서 전형적인 조선후기의 불상이다,
▽ 지장전이다, 地藏殿 은 다른 전각과 다른 느낌이 드는 법당이다.
그 이유는 지장전이 죽음과 관계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장보살은 죽음에만 관계되는 것은 아니다.
지장경 서문에 보면, '지장보살님의 불가사의한 신통력으로 남녀노소 백천가지의 몸을 자유자재로 나타나시어 모든
죄많은 중생들의 빈곤,재앙,재난,질병 등 모든 고초로부터 구제해주신다.'라고 씌여 있다,
지장전은 '지장보살'을 모시고 있다. 지장보살은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생들을 남김없이 부처님으로 제도한
후에야 성불(成佛)하겠다는 서원을 세운 보살이다. 지장보살이 명부에서 중생구제를 위해 애쓰시고 있기에 '명부전'이라고도 하며,
명부에서 시왕들이 심판을 담당하기에 '시왕전' 이라고도 한다. 명부(冥府)는 죽어서 다음 생에 어디로 갈지 심판을 하는 곳이다.
↓ 삼성각이다,
우리나라 명산의 양지바른 곳에 가면 거의절이 있다, 산으로 보면 명당자리는 절이 차지하고 있다,
비스듬한 산세에 절을 짖다보니 일주문을 지나서 본당인 대웅전이 있고 절의 맨 꼭대기에 이르면 삼성각이 있다.
절에는 모든 전각의 이름에 전(殿)자가 들어가는데 유독 삼성각만 각(閣)자가 들어가 있다, 불교가 우리나라에 처음 전파될때,
토속신앙에 젖어있는 백성들의 마음을 건드리지 않고 불교를 전파하기 위한 방편으로 절에 부처 외에 신선도(환인천왕..환웅천왕..단군왕검)
믿어도 된다는 삼성각을 세우게 된 것이다, 불교는 초창기에 개인 신앙도 인정하며 현명하게 선교하여 백성들의 마음을 얻어
수백년간 우리나라에서 뿌리를 박게 한 원인이 되었다
영산보전 과 좌측에 있는 만월보전
만월보전(滿月寶殿), 약 11m의 목조탑이다, 약사여래를 주불로 모신 약사전이다,
약사여래는 약왕이라는 별명을가진 보살로 중생의 아픔과 슬픔을 달래주셧는데 12가지 큰서원을 세웠어며
그 중에서도 유별히 중생의 병고와 구제를 근본서원으로 발원하신 부처님이시다,
적멸보궁 가는길
적멸보궁 가는길은 좁다, 좁아도 한사람이 겨우 지날수 있을만큼좁다,
이 좁은길을 오르내리는것 마저 마음을 다스리는 수행이니 좁아도 넓어도 길은 길일 분이다,
적멸보궁(寂滅寶宮)이다, 적멸보궁은 불상을 모시지않고 부처님 진신사리를 향해 예배를 드리는 법당을 말한다,
현등사 적멸보궁은 신라법흥왕 27년 540년에 인도 마라가미 스님께서 부처님 진신사리를 인도에서 모셔와 봉안한 유서깊은 한국최초의 적멸보궁 도량이다,
적멸보궁에서 가벼운 예불을 드린후 내려가는길
운악산 자락의 가을이 넘실댄다,
위에서 내려다 본 현등사,
이제 불이문을 지나 현등사를 나선다,
불이(不二)란 뜻은 중생과 부처가 둘이 아니요, 하나라는 뜻이다,
세속과 부처의 세계가 둘이 아니며, 선악(善惡), 유무(有無), 깨끗함과 더러움, 등등 상대적 개념에 대한
모든 대상이 둘이 아니라는 의미다. 이 불이사상(不二思想) 속에 담겨진 불교의 진리는 매우 미묘한 법문을 간직하고 있다고 하겠다.
불이(不二)란 둘이 아니고 나누어지지 않았으며, 다르지 않다는 말로 일단 정리할 수 있다.
하나라는 말은 또 하나를 보태서 둘이 되는 하나가 아니라 전체, 즉 그것 밖에 없고 상대되는 것이 없다는 의미에서 하나라는 것이다
들어올때 처음으로 만났든 일주문을 나선다, 일주문이라는 말은 기둥이 한 줄로 되어 있는데서 유래된 것으로,
사주(四柱)를 세우고 그 위에 지붕을 얹는 일반적인 가옥형태와는 달리 일직선상의 두 기둥 위에 지붕을 얹는 독특한 형식으로 되어있다.
사찰에 들어가는 첫번째 문을 독특한 양식으로 세운 것은 일심(一心)을 상징하는 것이다. 신성한 가람에 들어서기 전에 세속의 번뇌를 불법의 청량수로
말끔히 씻고 일심으로 진리의 세계로 향하라 는 상징적인 가르침이 담겨 있다. 즉, 사찰 금당(金堂)에 안치된 부처의 경지를 향하여
나아가는 수행자는 먼저 지극한 일심으로 부처나 진리를 생각하며 이 문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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