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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흐르듯이 순리대로

평화누리길 2코스 조강철책길(문수산성남문 ~ 애기봉입구) 본문

2017년 平和누리길/김포 3개코스

평화누리길 2코스 조강철책길(문수산성남문 ~ 애기봉입구)

물흐르듯이순리대로 2018. 1. 3. 23:04

사진영상으로 재구성 하면서 의도적으로 음악을 삽입하지 않았습니다,

음악이 들어가면 좋기는 하겠지만 어떤 음악도 이 길에는 어울릴것 같지않은 생각 때문이였습니다,

평화누리길 2코스, 조강철책길(2016, 10, 16)

1코스 염하강철책길 이후 근 한달만에 다시 평화누리길 2코스를 찾았다,

1코스 답사 이후 한달만에 다시 찾은 2코스

8,31km에 4시간 22분(쉬는시간 1시간 19분 포함)이 걸렸다, 결국 걷는시간은 3시간 정도,

 

문수산성은 강원도 태백에서 발원하여 500km를 흘러온 한강이 서해와 만나는곳,

지금은 DMZ가 되버린 한강의 끝이며 육지와 강화도를 가르는 좁은 해안지대에 위치한다,


이 성은 갑곶진과 더불어 강화 입구를 지키는 성으로 숙종 20년(1694년)에 축성 하였고

순조 12년에(1812년) 대대적인 중수로 성문을 수축했다, (조선왕조실록/참고)

축성당시 성의 총길이는 6123m이며, 남아있는 구간은 4640m로 1483m는 없어졋다, 

김포시는 북문과 남아문(홍예문)사이 434m를 복원했다, 원래 문류(장대, 대문) 3개, 아문(암문) 4개가 설치되여

있었어나 해안쪽 성곽과 문류는 없어지고 현재는 남문과 북문, 남아문 과 동아문 만이 남아있다,

1866년 고종3년 흥선대원군이 조선에 있든 프랑스 신부를 포함하여 조선인 천주교신자등 8천명을

처형하는 병인박해사건이 일어났다, 이 천주교 탄압은 두차레나 조선에 통상을 요구하다가 실패한 프랑스에

좋은 구실이되여 이 사건을 빌미로 프랑스 동양함대사령관 로즈제독이 강화해협을타고 올라와

9월 6일 갑곶진에 상륙하여 9월 8일 강력한 대포를 앞세워 강화도를 침공함락한다,

9월 9일 프랑스군을 격퇴하기위해 순무영 선봉이 된 이용희와 양헌수는

통진부에 도착했고 1월 13일 흥선대원군은 봉상시 봉사 한성근을 순무영 초관에 임명하여 광주 별파진 50명을

데리고 문수산성을 방어토록 했다,


9월 18일 문수산성을 향해 100여명의 프랑스군이 군함 4척으로 공격해왔다,

한성근은 남문밖에서 적을 기습하여 프랑스군 2명을 사살하고 25명을 부상케 하는 초반전투에는

우위를 점했어나 무기와 병력의 열세로 조선군 포수 4명이 전사하고, 2명부상, 1명이 포로가 되면서 패퇴한다,

이 전투로 문수산성 해안 쪽 성벽이 파괴되고 성안의 진영과 창고등이 약탈 전소되고, 19일에는

문수산성이 점령당한다,

이로서 강화도는 물론이고 한양으로 들어가는 수로를 프랑스군이 확보한다, 

하지만 양헌수가 강화 정족산성에 군대를 이끌고 잠입했다는 소식을 입수한 프랑스군대는 10월 1일 

150명의 병력으로 정족산성을 공격하지만 지형상 이점을 이용한 양헌수 부대에 패하여 퇴각했고 10월 5일에는

프랑스 함대가 갑곶진을 떠나 철수한다, 조선말 이렇게 아픈 역사의 한가운데 문수산성이 있었다,

평화누리길 2코스 조강철책길 지도(문수산성남문 ~ 애가능입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