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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흐르듯이 순리대로

이화원 이허위안(I-ho Yuan) - 4, 곤명호, 장랑, 청연방 (2018년 1월 14일)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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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원 이허위안(I-ho Yuan) - 4, 곤명호, 장랑, 청연방 (2018년 1월 14일)

물흐르듯이순리대로 2018. 1. 29. 16:53

끝이 보이지않을 정도로 큰 곤명호수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사이한 일이다,

云辉玉宇 에서 장랑 长廊 Changlang을 따라 길게 이어진 호수가 끝으로 간다,



위사진 끝 건너편에 보이는 정자와 유람선을 중인해보니  

겨울이라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

이제 사진에 보이든 호수가 정자도 지나간다,


아직도 길게 뻩어 있는 장랑 长廊 Changlang을 따라간다,

장랑 끝 지점 돌로만든 배가 있다, 그러나 이 돌배는 돌로 만든 배가 아니고

이화원 청연방(颐和园 清晏舫,이허위안 칭옌팡)이다, 이화원 청연방은 곤명호 서북쪽 호수가에 위치한다,

원명은 석방 石舫 으로 건륭년간에 지어 졋어며 강남원림 중의 배 를 모방한 건축물이다, 전체 길이는 36m, 대형바위를 조각하여

배의선체를 만들었다, 선체 위에는 중국 전통양식의 객실을 지었는데, 앞쪽과 중간 뒤 등 세부분으로 나뉘며

뒤쪽 객실은 2층 이였다,

  이화원 기란당 앞에 정박되여 있는 돌배 건축물

기란당에 대한 설명은 아래에 있음,

돌로 만든 배가 물위에 뜨 다닐까? 답은 No 일종의 건축물이다,

건너편에는 중앙 과 양 옆에 수로가 연결된 2층 누각도 보인다,

그리고 누각 왼편에 조금 떨어저서 정박해 있는 대형 유람선도 있다, 

맞은편에 있는 누각과 유람선 한꺼번에 보니 더욱 멋스럽다,

청연방은 광서 18년(1890년) 재건시에 중국식 객실이 서양식으로 개조되였고

명칭 또한 청연방 으로 개명했다, 청연방은 머리가 북쪽으로 향하고 꼬리는 올라간 형태다,

청연방 선체위에 2층을 건축하여 총 16개의 방을 만들었다, 배 위 건축은 서양식 채색화가 그려저 있다,

그래서 돌기둥마다 그려저 있는 문양은 아름답기는 하지만 중국식 단청이 아니다, 

이허위안 지란탕(颐和园 寄澜堂,jìlántáng,이화원 기란당)

이화원 청연방옆에 있는 기란당은 만수산 서측으로 석방의 동축, 서사소 서측에 위치한다,

건류년간에 세워지고 광서시기에 재건했어며,  곤명호 호수가에 자리한 물가 정자 형식의 사합원 원락이다,


기란당은 석방 및 곤명호 산착장과 가까워 건륭황제가 곤명호 물놀이 후 이곳에서 잠시 쉬였든 곳이라고 한다,

메인건축 기란당은 너비는 3칸, 앞뒤로 복도가 있어며, 헌산식 지붕이다,  원락 동면에 3칸 곁방이 있는데

북면은 경산식이고 남면은 헐산식 지붕이다,

기란당 주변에 들어서 있는 전각들 

 저 마다의 역사야 있겠지만 모두를 다 알기는 역부족이므로 ~~





정박해 있는 돌배건물이 가장 잘보이는 이허위안 싱챠오(颐和园 荇桥,xìng qiáo,이화원 행교) 위 정자로 올라간다,

이화원 행교는 석방의 서북쪽 무성사도와 기란당 사이의 물길인 만자하 위에 위치한다, 견륭년간에 지어 젓어며 광서시기에 재건햇다,

행교는 삼공석교(구멍이 세개가 있는 석조다리)형태다, 다리위에는 너비 3칸의 정자가 있다, 화강암 석교기단이며

 정자기둥아래 돌 사자 두개가 있다,

다리를 건너가서 있는 오성사 五圣祠 Wushengci (이허위안 우성츠 颐和园 五圣祠) 일대,

이화원 오성사는 만수산 서측 만자허 서안의 작은섬 소서령의 최남단에 위치하며 행교 荇橋와 맞다아있다,

오성사는 건륭년간에 지어졋어며 광서시기에 재건되였다, 소주의 오통묘를 모방해 지은 사찰로, 내부에

오성(산신, 토신, 화신, 약왕, 용왕)을모셧어며 명칭도 오성사라 했다, 현재 신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남향으로 삼면이 물과 접하고 앞쪽으로 선착장이 있다, 산문은 안자척식 대문이며,

정전 오성사는 3칸 크기다, 후조전의 너비는 5칸이며, 북측에 3칸 동방이 있다, 정전의 동서에는 각각 2칸 크기 배전이 있다,

오성사 五圣祠 에서 본 기란당과 청연방,

청연방(돌배모양 건축물)에서는 연희를 베풀든 곳이다,

배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도 있다,

청연방 2층은 16개의 방을 만들었다는데 지금은 모두 오픈 공간이고 2층 뒤 편만 방이 있는것 같다, 

오성사 五圣祠 에서 다시 행교 荇橋 위 정자로 올라가서

행교 양끝에는 패루가 하나씩 있었는데

동쪽 패루는 위추 비향, 서쪽 패루에는 연서, 운암 등의 편액이 있다,

패루는 1992년에 복구한것이다, 이제 만수산 방향으로 간다,

높은 다리위 전각으로 오르내리는 계단은 가파르다보니 미끄려 질수도 있어

계단을 만든 돌들을 깍아 놓았다, 어찌보면 계단에도 세심한 배려를 한것 같지만 이는 황제를 위한 건축이 아니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