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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흐르듯이 순리대로

서해안국토종주 5-2 (무안버스터미널~영광불갑면사무소)고절3리마을회관-무안상동마을(2018년 5월 18일) 본문

서해안 일주(해남 땅끝-김포)/전남·해남,영암,목포,무안,함평,

서해안국토종주 5-2 (무안버스터미널~영광불갑면사무소)고절3리마을회관-무안상동마을(2018년 5월 18일)

물흐르듯이순리대로 2018. 6. 9. 05:30


고절3리 마을회관을 지나서 가는길

앞에 삼거리가 보인다,

삼거리 왼쪽길은 고절 3리 마을회관이 있는곳으로 들어가는 길이고

계속해서 가는 길은 백로 로다,

가는길 옆에는 오리지 가 있고


오리지를 지나 가면 1번국도 아래로 연결이 된다,

1번국도 아래를 나가면

1번국도 옆으로 고절 3리 유동마을로 들어 가는 입구가 있다,

계속해서 백로 로를 따라가는 길

무안은 전라남도 서부 중앙에 위치하고 있어며. 동쪽은 영산강을 경계로

나주시와 영암군, 서쪽은 신안군의 무수한 섬과 면하고, 남쪽은 목포시, 북쪽은 함평군과 접하고 있는 .

인구는 81,324명(2014년 9월 기준)이고 2읍 7면 103개 법정리로 되어있다.

군청 소재지는 무안읍 성동리이다.


무안은 노령산맥의 한 줄기가 비옥한 나주평야를 지나 전라남도 서남단에 무안반도를 형성하고

다시 여기서 갈라져 나간 해제반도와 망운반도가 있으며, 연안에 2개의 유인도와 25개의 무인도가 있어며

해발 400m 이상의 산지는 없고, 승달산, 국사봉, 감방산 등의 산과 낮은 구릉 및 평지로 이어져 있다.


무안은 백제때에는 물아혜군으로 불렸어며, 757년(경덕왕16)에 무안군으로

이름이 바뀌였어며 진성여왕 6년인 892년에는 견훤이 건국한 후 백제의 영역이였어나, 909년(효공왕13)

왕건에 의해 점령됨으로써 훗날 고려 건국의 기초를 제공한 땅이기도 하다,

기왕에 무안에 대한 역사를 알아본 김에 조금 더 찾아보니 고려 9혜종1년인 944년에

 물량군이 되였다가  991년 (성종10)에는 다시 무안군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으나 나주군의 속군으로 예속된다,

그럼에 다라 그 영역과 기능이 크게 위축되었어며. 1172년(명종2)에 이르러 비로소 감무의 파견이 있었고.

 조선 1413년(태종13)에 처음으로 현감을 두었든 도시가 무안이다,

가는길 옆 마을에는 무안동부교회가 있는 무안읍 용월리다,

무안의 근대 역사는 1895년 나주부 예하의 무안군이 되었고, 1896년에는 도서지방이 지도군으로

분리 되었어며 1897년 10월 목포진이 개항되어 이곳에 감리서가 설치되자 무안군도 부로 승격 되었고 1910년에

목포부로 개칭되여 무안이라는 이름이 없어졌다가 1914년 다시 분리되여 목포부와 무안군으로 독립했다.

이제 길은 무안읍 용월리 상동마을이 보인다,

이곳이 상동마을임을 알리는 표지석도 세워저 있고


무안 IC에서 나오는 차량들을 안내하는 이정표도 있다,

이곳에는 오래된 역사가 있는마을이다 보니 길 옆에는

이런 비석들이 많이 보이는 동네다,

그리고 가는길 오른쪽에는 정자도 있는게 보인다,

상동마을은 나름 큰 동네다,

마을로 들어가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