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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흐르듯이 순리대로

평화누리길 13코스, 철원 소이산, (2018년 9월 30일) 본문

강원 평화누리길/철원구간 1코스

평화누리길 13코스, 철원 소이산, (2018년 9월 30일)

물흐르듯이순리대로 2018. 10. 3. 06:00


소이산 입구다, 백마고지역에서 바로 작선으로 소이산으로 올라갈수

있어면 이곳까지 돌아오지 않아도 되였겠지만 소이산은 온통 지뢰밭으로 둘러쌓인 산이라

길이 없어니 이곳까지 와야 소이산으로 올라갈수 있다,

소이산 입구에서 건너다 보면 숲 속으로 뭔가 보인다,

저곳이 바로 노동당사다,

소이산(해발 362미터)은 철원읍 사요리 산1번지다, 

북한이 1946년 지은 3층짜리 건물인 노동당사 건너편에 위치한 야트막한 산이다.

소이산은 5월이면 산전체가 하얗게 물드는 산이기도 하다, 일제시대에 심어 놓은

아까시아 꽃으로 물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봄이면 소이산 주변에 양봉 벌통이 널려 있는 산이다,

소이산은 민통선 밖에 있는 산이지만 전쟁이후 미군의 군사기지로 민간인 출입

통제선으로 분리된 곳이였다

그 덕분에 전쟁 이후 반세기 동안 철원읍내 한가운데 야산이 스스로

변화해온 모습이 간직돼 있다. 일제 때 토사 방지림과 연료림으로 많이 심은 아까시아

나무가 소이산 숲의 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 .

길가에 무리지어 돋아난 외래종이자

생태교란종인 단풍잎 돼지풀은 이곳에 오랫동안 군사기지가 있었음을 말해주눈 단서다

통제되여 있든 저 울타리 쪽문으로 들어가면 소이산 정상으로 가는 길이고

앞에 보이는 나무 계단으로 올라가면 소이산 전망대가 있다,


소이산 정상보다 먼저 전망대로 올라간다,

나무계단을 설치해서

길을 만들어 놓았지만 그리 높지는 않다,

계단을 올라가서 약 30여m 쯤 가면

소이산 전망대가 있다,

이곳 전망대 유리창에는

각각의 방향에 있는 지명을 살펴 볼수 있게 안내판을 붙여 놓았다,

↓ 왼쪽 작은 산 정상에 건물이 보이는 곳(나무 뒤)이 백마고지



↓ 두번째 보이는 철원역에서 월정역으로 연결되는 점 선이 원산가는 철길이며

사진 아래 보이는 선은 금강산으로 가는 철길이다,







이렇게 소이산을 한바퀴 돌아보는 4방향 중 3방향을 돌아보고 나서

전망대를 나간다, 전망대에서 보는 철원평야보다 소이산 정상 전망이 더 잘보이기 때문이다,

소이산 정상으로 올라간다,

경계 쪽문으로 들어가면서 처음 보이는 건물은 미군 막사다,

미군 막사 안내

미군 막사 를 지나 소이산 정상으로 올라간다,

소이산은 그동안 일반인들 에게는 잘 알려지지도 않은 산이였다,

미군이 소이산에서 철수 한 후, 육군 6사단이 소이산 개방에 합의하면서 지난 2011년 소이산 "생태 숲 녹색길"

이라는 이름으로 길이 열리면서 비로서 사람들에게 알려진 산이 소이산이다,

 소이산 지하벙커 위로 올라가서 내려다 보니 미군이 사용했든 막사는 서서히

허물어저 가는 중이였다,  그러나 이런 것 마저도 우리에게는 소중한 역사 유적 자산인데 그냥 방치하다가

허물어지면 그때가서 새로 지을 것인가?, 아니면 철거해 버리고 아무일도 없었든 듯이 이 자리에 미군막사가 있엇다

라는 안내판 하나 붙이는 것으로 끝낼것인가? 뭐가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돈을 많이들여서 복구 하기를

바라는게 아니라, 관심을 가지고 꾸준히 관리를 해야 할것 같다는 생각이다, 

정상으로 직전

왼쪽에 있는 지하교통호 출입 막사를 둘러본다,

우선 안내되여 있는 지하교통호 내용을 살펴보니 여기는 625 당시 북쪽을 향해

발칸포기지와 레이더 기지가 있었고, 소이산 밑에서 부터 정상까지는 지하교통호가 다 뚫려 있어며

그 안에는 물탱크와, 화장실, 그리고 부대정비공간, 탄약고, 2종 창고, 발전실 등 수많은 진지와

벙커가 내장되여 있는 군사적 요쇄, 라고 적혀있다,

이 말이 뜻하는 의미는 실로 엄청난 군사적 요쇄라는 말이며 이런 요쇄들이

대한민국을 수호하는 최전방 군사시설이 였음을 보여주는 살아있는 역사였다, 지금은 시설물

장비는 철거 했지만 공간은 그대로 남아 있다, 보이는 곳이 출입구다,


그러나 뭔가 많이 아쉽다, 이곳을 그대로 보존해서 안보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방법은 없을까 라는 생각이든다, 그래야 후손들에게 국가는 그저 얻어지는게

아니라 피로 사수한다는 역사의 교훈을 물려 줄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소이산 정상 안내문이다,

소이산 정상에 올라서니  눈앞이 확 트이면서 뭔가 형언할수 없는 기운이 몰려온다,

소이산 입구에서 기껏해야 해발 200여m 정도 올라왔을 뿐인데 수천m 급 고산에 오른 느낌이다.

가슴이 뻥 뚤리는 듯한 소이산 정상 전경은 무었 때문일까?


1953년 휴전회담이 교착상태에 빠지자 휴전회담과 전투가 동시에 벌어졋다.

북한과 남한은 휴전이 이루어 지기 전까지 최대한 영토를 확보하려는 영토 확보 전쟁을 했다,

휴전선을 중심으로 서부에서 동부까지 전 지역에서 고지를 점령하려는 전투가 계속되면서. 중부전선에 위치한

이곳 철의 삼각지는 남한의 요충지인 서울과 전국으로 연결되는 도로망이 발달한

전략적 요충지 였다.

1951년 9월 북한은 중국인민지원군과 함께 철의 삼각지 안의 백마고지, 수도고지, 저격병능선 등에

집중적으로 대공세를 전개했다. 전투는 휴전이 성립되기 직전인 1953년 7월 13일까지 마지막 공세와 수세가 계속되던 곳이다.

이곳은 6·25전쟁 중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낸 곳으로, 결국 철원과 김화는 남한영토로, 평강은 북한 영토로 끝이났다,

소이산의 북쪽 산자락은 모두 지뢰 밭이다. 노동당사에서 국도 87호선을 따라

대마리로 향하는 길 양쪽은 옛 철원 시가지였지만 지난 60여 년 동안 지뢰 통제구역으로 묶였다.

그동안 묵은 논(畓)은 습지가 되고, 묵은 밭(田)과 집터는 숲으로 바뀌었다.


지뢰지대 안에는 고사리와 고라니가 많이 살고 있지만 폭발사고가 나서

사람들은 들어가기도 꺼린다, 전문가들은 소이산의 생태적 가치는 훼손이 심한 산 위 보다 

산자락의 지뢰 지대가 더 높을 것으로 보고 있다,

구,철원이란? 625 전란이 끝난 54년 10월 공산지역이였든 철원이 수복되면서 붙여진 신조어다,

예를 들면 관전리와 사요리 등 구철원에 대칭한 개념으로 신철원이 생겻다, 구 철원읍 지역은 현재의 철원읍

행정관할 대부분에 해당되는데, 철원평야의 중심지에 도시가 발달함에 따라 경원선과 금강산 철도가 운행되고 각종

농축산물의 집산과 교류가 번창하여 예로부터 강원도내에서는 춘천, 강릉, 원주와, 더불어

大邑富鄕(대읍부향)으로 꼽히든 곳이다,


1937년 인구는 4,269가구에 19,693명, 철도는 경원선이 서울까지 101km, 원산까지 125km,

내금강까지 116,6km 요충지다, 철의삼각지 전투에서 철원을 수복하지 못하고 밀렷다면 동두천 의정부까지가

북한지역이 되였을 것이다, 그래서 철원은 피로 얻은 소중하고 귀한 역사의 땅이다,

철원군은 고구려때 철원, 또는 모을동비라 하다가 신라경덕왕때(743) 철성으로,

905년 후삼국 태봉국의 궁예가 국도를 이곳 풍천원에 정했다, 고려태종때(918) 철원으로 했어며 그후

동주로 바꿧다가 고려 충선왕때(1310) 철원으로 조선조 태종13년(1413)에 철원을 도호부로,

고종 32년(1895)구역개편시 철원군이 되였다,


1945년 해방과 동시 철원은 38 이북으로 공산치하에 들어 갔어며 1954년 10월 21일

공산치하로 부터 수복한후 1963년 김화군을 철원군에 신서면은 연천군으로 1972년 평강군 정연리는

철원군에 편입한다,(평강군은 이북 이다)

 이곳 소이산 정상에서는 넓찍한 철원평야와 비무장지대, 그리고 그 건너

북한의 평강고원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곳은 누가 뭐래도 논(畓)의 바다, 철원평야에 떠 있는 논의 바다 섬이다.

철원평야를 한눈에 굽어보는 지형 때문에 이곳은 고려 때부터 봉수대가 설치돼 함경도 경흥에서

서울로 연결되던 경흥선 봉수로에 속해 있었든 장소다, 

소이산은 작은 산이지만 이 산이 없었다면 전쟁 때 철원 평야를 지킬 수

없었을 것 이라는 의견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그래서 이 소이산은 보물보다 귀한 우리의 산이다,

625전란이후 민간인통제선(민통선) 북쪽의 평야지대는 70년대까지 출입이 통제되여

대부분 관목과 초지가 있는 황무지였다, 향토를 가꾸겠다는 농민들의 피땀어린 노력으로 지뢰를 캐내고

개간을 하는 한편, 기존의 학저수지외에 토교, 강산, 신명호, 등 대단위의 전천후 인공저수지를


축조해서 철원평야에 농업용수를 공급함으로서 안전 영농의 기반을 갖추게 되였고

지금은 전국적으로 명성을 얻은 철원 오대쌀을 생산하는 비옥한 농토로 만들었다, 철원의 논 면적은

약 1만 1천여ha에 미곡 생산량은 강원도 전체 약 25%를 차지한다,

철원은 그 어느 곳보다 우리민족의 애환이 가장 많이 어려있는 곳이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자연경관과 인위적 풍토조성이 잘 어우려져 있는 통일의 길목인, 역사의 고장이다,

화산지대로 이루어진 현무암 계층의 한탄강 절경과, 우리나라 중부 제일의 곡창지대인 평야와,

오대쌀의 진미, 겨울철 귀한 손님인 두루미와 기러기, 독수리등 철새가 있는 곳이다,

625와 철의 삼각지 전투, 과거를 회상하는 구,철원 시가지의 유적, DMZ와

제 2땅굴 등이 있는 철원은 강원도 영서 북부에 위치한다, 지리상으로는 우리나라 한가운데 해당하는

요충 지대로서 주요 간선도로의 발달과 함께 경원선과 금강산 철도의 분기점이다, 

구,철원역사, 제2금융조합, 얼음창고, 농산물검사소 등과 같은 과거의 주요

건물들은 근대 문화유적으로 남았어며, 농가와 논밭의 상당수는 습지와 숲으로 바뀌였다.

통일이되여 철원에 평화도시라도 만들어진다면 소이산은 그 중심에 있는 중요한 산이며 무었보다 바라

보기만해도 가슴 뛰는 철원평야의 황금 들판은 무었과도 바꿀수없는 귀한 우리민족의 보고다,

소이산에서 내려 다 보는 노동당사,(우측 하단 붉은선 동그라미)

 철의 삼각전적지 전투에서 김화와 철원을 남한의 영토로, 내준 김일성이 몇달을 술로 시름을

달랫다는 일화가 사실인지? 알수는 없지만 오늘 소이산 여행기는 여기 까지다, 이제 그만 내려가야 하는데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아마도 한동안은 소이산에서 본 황금벌판이 아롱거릴듯 하다,

이제 마지막으로 소이산 정상에서 본 소이산의 四 방향을 정리한다,

사진 가운데 보이는 작은 산이 백마고지다, 이곳부터 우측으로 한바퀴 돌아서 둘러본다,

왼쪽이 백마고지 그리고 철원 평야다, 철원평야 건너편 북한 평강고원도 모두 보인다,

지형상으로 는 백두대간에서 길게 뻗어내린 광주산맥의 끝 자락인 철원은 과거에 대읍부향(大邑富鄕)으로

즉, 큰마을 부촌이 였다,

그리고 잠시후에 우리가 가야하는 곳인

노동당사 방향이다, 왼쪽 중간에 띠 처름 이어저 보이는 경계가

지금은 민통선이며 또한 금강산으로 가는 철길이였다,

철원읍내와 동송읍내

그리고 금학산과 고대산이 보이는 방향이다,

좌측 금학산과 고대산이 있는 신탄리 방향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신탄리 방향에서

백마고지 사이 전경이다, 소이산 에서 보이는 조망은 여기 까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