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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흐르듯이 순리대로

여성봉과 오봉의 전설(2019년 2월 17일) 본문

국내 山行日記/서울·북한·도봉

여성봉과 오봉의 전설(2019년 2월 17일)

물흐르듯이순리대로 2019. 2. 17. 21:15


2019년 2월 17일 모처름 도봉산 오봉과 여성봉으로 간다,

구파발역에서 09시 송추가는 버스를 갈아타고 송추 유원지 입구 푸른마을아파트 버스 승강장에서 내려

 길거너 진흥관 옆 송추계곡 옆 도로로 서울외곽순환 고속도로 송추 2교를 지나

2차선 차도 송추계곡을 따라 송추유원지로 들어가면 국립공원 오봉탐방안내소가

나온다, 여성봉과 오봉 산행은 여기서 부터 시작된다,

이곳은 도봉산 일원이다,

북한산 국립공원에 속하는 곳이니 등로 정비는 말끔하게 잘 되여 있는 길이기도 하다,

그제 (2019년 2월 15일) 내린 눈이 평지에는 모두 녹았지만 산에는 이렇게 그대로 있다,

그리심한 가파른 경사지도 없는 완만한 오름길을 따라 서서히 올라가는길, 오봉가는 길은 이렇게 시작이된다,

겨울철 빙판만 조심하면 특별히 위험한 길은 아닌 그런 산길이다

눈이 얼어붙어서 바닥이 많이 미끄럽다,

그래서 시작부터 여긴 조심스러운게 아니다, 안전은 스스로 지켜야 하는 것이니 조심해서 올라간다,

아이젠을 한 사람도 있고 나 처름 안한 사람도 있지만

어쩌면 이런 구간에서 아이젠은 필수일게다,

조금 높은곳으로 올라서니

 발아래 내려다 보이는 송추 일원

그리고 북쪽으로는

사패산이 우람하게 버티고 있는 것도 보인다,

올라 가고

아침 햇살을 받어며 또 올라가면

점 점 더 멀어지는 송추 일대,

그 앞으로 지나가는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가 제일 잘 보인다,

그리고 이곳은? 여성봉이다, 눈이 붙어서 잘 안보이지만

공단에서 세워놓은 안내판에는 이런 사진이 붙어있다,

 왜 여성봉일까에 대한 대답이다,

여성봉에 대한 공식적인 정의는 아래와 같다,

그러나 공식적인 안내는 그렇다고 치고 여성봉의 유래나 전설은 무었일까? 전설은 재미를 더해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기에 옮긴다, 삼국시대 475년경 백제의 한소녀가 강변에 앉아 맑고 구슬픈 피리를 불고 있었는데 소녀의 부드러운 긴 머리카락이

바람에 휘날리는 모습은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소녀는 피리소리를 따라 온 청년과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얼마되지 않아 그 소년은 조국인 백제를 지키기위해 전쟁터로 떠나고 고구려와 백제의

한성 싸움에서 개로왕과 함께 전사한다, 왕을 잃은 백제는 477년경 웅진으로 도읍을 옮기는데 오랜 삶의 터전인 한강유역을

떠나기 아쉬운 처자는 부모와 함께 고구려의 손길을 피해 도봉산 깊숙히 숨어든다, 그리고 알아줄 사람없는

 젊음과 아름다움을 애 태우다, 첫사랑을 그리워 하며 서른 중반의 나이에 숨을 거둔다,

 

이를 불쌍히 여긴 천상의 옥황상제가 무수한 세월동안 남정네의 사랑을 받으라며 바위로 환생 시키니

그가 여성봉이다, 처자의 죽은시기를 기념하여 그 높이를 495m 로 하였다고 하며 1,500년이 지난 지금도 뭇 남성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 전설은 이정도는 되여야 재미가 있지않을까? 헤서 옮긴다,

여성봉에서 보는 위 쪽의 오봉,

그리고 맞은편 멀리보이는 북한산 삼각봉 일대,

인수봉과 백운대, 그리고 만경대다,

여성봉 아래는 송추 일원이 보이고

이제는 여성봉을 지나 오봉으로 올라간다,

공식적인 오봉의 내역

그러나 이곳 오봉에도 전설은 전해저 내려온다,

그것도 여러가지의 전설이

이제 다시 오봉으로 올라 간다,

여성봉에서 오봉으로 올라가는 길에서 보이는 오봉

여성봉에서 오봉은 약 1,5km 거리에 있다,

앞에 보이는 곳이 오봉 정상이다,

오봉정상에서 보는 오봉 이렇게 한줄로 줄지여 서있다,

일반등산인들은 오봉을 한봉 한봉 탐방 하는건 가능하지 않고 정상에서 내려다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오봉에서 하산길은 도봉산 자운봉으로 해서 도봉산 입구로 갈수도 있고 우이동으로 갈수도 있다,

우리는 오늘 우이동으로 간다, 우이동으로 하산하는 길에서는 오봉이 아주 잘 보인다, 오봉에도 몇가지 전설이 있다,

그중 하나가 여성봉과 얽혀있는 전설로 655년경 고구려와의 국경을 지키든 신라 군사중에서 용맹하고 무술이 뛰여난 청년들은

김유신의 호출을 받는다, 백제를 공격했지만 결정적인 승기를 잡지 못하든 김유신에게는 원군이 필요했든 것이다,

이때 무예가 출중했든 젊은 장수 5명이 한강방면으로 남하하는 길에 도봉산을 지나게 되였다,

바위가 되여 한 갑자를 지켯지만 남정네 구경도 못한 여성봉이 살 살 치맛 바람을 일으켜 이들을 유혹하니 도봉산의 경치에

취한 장수들이 능선길을 따라 오르게 된다, 여성봉바위는 호탕한 기백과 멋진 남성미에 반했지만 신라장수들의 가슴 가득한 백제 공격의

살기(殺氣)가 있음을 느끼자 이들의 길을 막고자 한다, 한 갑자 동안 쌓아올린 바위발? 로 천지조화를 일어켜 이들을 한발치 떨어진

산정에 바위로 윤회시키고 신라 군막에 먼지바람을 일어켜 쫓아버린다, 애꿎은 신라 장수들은 해발 655m에 바위가 되여

여성봉을 바라보고 있어니 이들이 바로 지금의 오봉(五峰)이다,

 멀리 하늘을 향해 뾰죽하게 서 있는 삼각봉은 백운대다, 인수봉과 만경대 그리고 백운대가

내게 주든 의미는 우리네 삶이 변변치 못했든 시절이기는 했지만 저 곳에 올라 하늘을 향해 포효를 하면

모든 걱정 근심도 모두 사라졋다, 그렇게 보낸 지난 세월이 이제는 아련한 추억속의 전설이 되기는 했지만 백운대 일원은

청년기의 내게는 고향처름 아늑한? 곳이기도 했다, 그래서 일까, 멀리서 바라보기만 해도 가슴이 아릴 정도로

아름답다, 검정물을 들인 군복에 워커를 신고 오르내리든 그 시절이 새삼 꿈을 꾸듯 그리워진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오봉약수터 까지 내려 왔다,

물이 귀한 산이라 이곳을 찾는 산꾼들에게는 인기가 많은 샘터로 소문이 나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오봉약수터는 많은 사람들의 휴식공간이자 간식 장소기도 하다,

그러나 특별한 시설물은 없는 곳이다,

이제는 도봉산 능선으로 간다,

오봉에서부터 도봉산 능선으로 이어지는 길은 오름길이 거의 없는 길이다, 

그래서 오봉까지만 올라가면

그 다음부터는 오름길이 거의 없는 편안한 길이기도 하다,

오봉에서 오봉 샘터를 지나 이제 도봉 주능선으로 왔다,

이곳에서는 오른쪽 우이암으로 간다,

도봉 주능선도 아주 편안한 길이다,

또 하나 특이한 점은 아침에 송추에서 여성봉 오봉으로 올라가는 내내

햇볕을 바라보고 가지만 도봉 주능선에서도 계속해서 해를 마주하고 간다, 그래서 바람만

불지 않어면 겨울철에는 따듯한 코스이기도 하다,


이정표에 따르면 우이암에서 자운봉은 2,2km 정도다,

이제는 우이암으로 올라가는 마지막 데크계단길이다,

우이암 직전 데크 계단길 전망대 도봉산 안내도

왼쪽은 지금 우리가 지나온 오봉과

오른쪽으로는 칼바위와 자운봉과 만장봉 선인봉등이 선명하게 보인다,

다시 한번 더 바라보는

칼바위, 주봉, 자운봉, 만장봉, 선인봉 일대,

그리고 마지막으로 올라가는 우이암 아래

우이암이 내다 보이는 전망 바위

이 바위가 우이암이다,

이제는 원통사 로 내려간다,

원통사와 우이동 갈림길이였든 이곳에서 우이동으로 가는 길은 비탐으로

막아놓았고 원통사로만 갈수있도록 해 놓았다,

도봉산 동쪽길은 어디나 다 가파른 내림길의 연속이다,

우이암에서 원통사로 가는길도 가파른 내림길임은 변함이 없다,

가파른 길이기도 하지만

눈이 살짝 붙어 있기도 한 길이니 사실 조금은 천천히 내려 가야 한다,

조심 조심 돌 길을 내려가다보면 

데크 계단길이 나오는데

계단길이 끝나면 원통사다,


원통사 앞에서는 무수골과 우이동으로 가는 갈림길이다,

원통사 에서 직진으로 가면 우이동으로 가고 왼쪽길을 따라가면 무수골로 간다,

우리는 오늘 우이동으로 내려간다,

이길은 우이동에서 원통사로

 올라오는 길로서 처음부터 편안한 계단길이다,

원통사에서 우이동은 약 2,4km 정도지만

가는길은 이렇게 보이는 능선길이다,

오름도 없고 급한 내림도 없는 평지 같은 길,

산길인데도 전혀 산길같지 않은 그런 길이 원통사에서 우이동으로 가는 길이다,





마지막 산 길을 벗어나는 지점,

우이동 이다, 오늘 산행은 여기서 끝이난다, 

여성봉과 오봉의 전설은 2012년 12월 24일 조선일보 블로그 뉴스에 게제되였든

내 블로그 내용을 옮겨왔다, 지금은 조선일보 블로그 서비스가 없어졋다, 그시절 조블만 사용하든

사람이다보니 한번에 많은 자료들을 날려 버려야 했든 기억을 생각하기도 싫지만

그나마 그때의 몇줄 이야기라도 다음 블로그로 옮겨올 수 있어 다행이다

송추에서 우이동까지 약 10km의 거리에 6시간이나 걸렸다,

무론 쉬는 시간도 포함이지만 여하튼 서울 근교에서 대중교통으로 다녀올수 있는

환경을 가진 서울시민들은 복이 많은 사람들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