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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흐르듯이 순리대로

청량산 청량사(2012년 9월 22일) 본문

국내 山行日記/충청·경상·전라

청량산 청량사(2012년 9월 22일)

물흐르듯이순리대로 2012. 9. 22. 20:01

2012년 9월 22일 압구정에서 06시 30분에 출발한 버스로

안개가 자욱히 낀, 고속도로를 달려 도착한 경북 봉화군 청량산 입구다,

청량산은 12봉(峯) 과, 10개의 대(臺), 5개의 굴(窟), 2개의 우물과, 2개의 폭포(瀑布)등

자연유적(自然遺蹟)이 있는 곳이다,

연대사(蓮臺寺)를 비롯한 20여개의 암자가 있었어며 지금도 청량사의

유리보전과 웅진전이 남아 있는 곳이니 수려하고 아름다움 곳 임은 두말 할 나위가 없겠다,

   - 사진은 청량산 입구 △ 다리, 버스로 건너면서 찍은 낙동강 상류다, -

이 외에도 청량산은 많은 불교유적과 산성유적, 유교유적,

공민왕 유적등이 있다, 그러나 오늘은 청량사에서 뒷실고개, 자란봉, 하늘다리,

장인봉, 두들마을, 청량폭포등을 코스로 잡고 청량산을 오른다,

개울다리를 건너간다,

단풍이 곱게 든 이 정자 앞에서 청량사로 올라간다,

오늘이 9월 하순인데 아직도 이곳에 단풍이 들자면

조금은 더 기다려야 할것같다,

대한불교 조계종 청량산 청량사 라고 쓴 투박한 비석이 보인다,

잘 다듬고 손질을 한게 아닌게 더 잘 어울린다,

청량사 일주문을 들어간다,

이 길은 등산로가 아니라 청량사로 들어가는 길이다,

청량사로 들어가드라도 산길은 있어니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이용한다,

사찰로 들어가는 길이다 보니

콘크리트 포장이 되여있다, 포장길 이기는 하지만 오름의 경사도는 조금 있는곳이다,

우리가 이곳으로 들어온 들머리인 정자가 있는 모정에서

청량사까지는 대략 500m 정도의 거리로, 청량사로 가는 시간은 넉넉하게 20여분 걸린다,

청량산 등산로는 이 길이 아니라 정자가 있는 곳에서 약 800m정도 더 올라가면 있는

입석이라는 곳이 청량산 들머리다, 입석에서 청량산으로 들어가는 등로에는 웅진전과 금탑봉, 김생굴과

보살봉인 자소봉으로 해서 연적봉, 뒷실고개, 하늘다리로 갈수 있는 등산로가 있기 때문이다,

청량사 입구에 산 꾼의 집이 있다, 

   콘크리트 포장길이기는 하지만 비교적 가파른 길을 올라와야 한다,

여기서부터 청량사 건물이 시야에 들어온다,

산 꾼의 집을 지나면 청량사다, 청량사입구에 있는 안내도 일직선상으로

12번은 안심당, 9번은 범종루, 10번은 청류정, 13번은 화장실, 14번은 오산당, 11번은 유리정,

5번은 요사채, 4번은 산신각, 3번은 신불장, 7번은 삼층석탑, 2번은 유리보전,

6번은 오층석탑이며, 8번은 심우정, 그리고 16번 등이 있다,

그러고 보면 청량사는 지금은 그리 큰 절이 아니다,

   안내판 배치도를 봐도 알겠지만 한눈에 쏘옥 들어올 정도로 아기자기한 사찰이다,

빽빽한 기암괴석과 열두 봉우리로 이어진
연화봉 기슭 한 가운데 연꽃처럼 둘러쳐진 꽃술 자리에 자리를 잡았다는 청량사는

신라 문무왕 3년(663)에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며

송광사 16국사의 끝 스님인 법장 고봉선사(1351-1426)에 의해 중창된 천년 고찰이다.

창건당시 승당등 33개의 부속 건물을 갖추었고

봉우리마다 자리잡은 암자에서는 스님들의 독경소리가 청량산을 가득메웠다고 한다.

또한 자연경관이 수려한 청량산에는 한때는 신라의 고찰인

연대사(蓮臺寺)와 망선암 (望仙菴)등 大小 27개소의 암菴 자가 있어서 신라 불교의 요람지 이기도 했다,

하지만 조선시대 불교를 억압하는 주자학자들에 의해

절은 피폐하게 되어 현재는 청량사와 부속건물인 응진전만이 남아있다.

청량사의 법당인 유리보전은 창건연대가

오래되고 짜임새 있는 건축물로 인하여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7호로 지정되었다.

청량산의 최고봉인 의상봉은 화엄종의

시조인 의상대사께서 입산수도 한곳이라 의상봉이라 불린다,

청량산에는 의상봉을 비롯해 보살봉, 연화봉, 축융봉 등 12개의 암봉이 있고

어풍대, 밀성대, 풍혈대, 학소대, 금강대 등 12개의 대와 8개의 굴과 4개의 약수터가 있다.

청량사에는 불교의 우수한 유적 건물이 많았으나,

소실 등으로 거의 없어지고 현재 신라시대 대찰의 모습은 없지만 망월암 등

33개 암자가 있었던 유지가 있고, 문수보살, 지장보살, 16 나한등이 봉안되어 중생의

근기에 맞는 기도처로서 손색이없는 도량의 모습을 띄고 있다.

위에 나열한 청량사에 대한 이야기는

구름으로 산문을 지은 청량상 청량사 라는 청량사 홈페이지 청량사 소개글을 인용한 것이다,


청량사로 들어오면서 처다보니 하늘에 뜨 있는 듯 느껴지든 오층 석탑이

   위 에서 내려다 봐도 구름위에 두둥실 뜨있는듯이 느껴진다, 이 멋스러운 조형물은

우리 조상들만이 만들수 있었든 독특한 건축양식이 아닐까?




청량산 청량사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에

자리한 5층석탑,

그저 바라만 보고 있어도

극락이 있다면 이런 곳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불자든 불자가 아니든 그게 중요한게 아니다,

5층석탑에서 보는 맞은편 산자락

그리고 5층석탑 옆에는 유리보전이 있다,

유리보전의 현판은 고려 공민왕 친필이다, 유리보전은 약사여래불을 모신

곳이라는 뜻이며 약사여래불은 모든 중생의 병을 치료하고,

수명을 연장해주는 부처다,

유리보전은 약사여래불을 모신 청량사 큰 법당이다,

유리보전에 모셔진 약사여래불은 특이하게도 종이를 녹여만든 지불이다,

종이로 만들었지만 단단하기가 금속같고 금칠을 해 겉으로는 식별하기도 어렵다,

우리나라에서 지불을 모신 곳은 청량사 뿐이다,

산신각 앞 에 있는 요사채다, 요사채는 사찰 내에서

전각이나 산문 외에 승려의 생활과 관련된 건물을 통칭하여

부르는 말로 요사(寮舍)라고도 한다.

이제 5층 석탑을 뒤로 하고

청량사를 나가야 하는 시간이다,


청량사 뒷길격인 이곳에는 많은 이들의 염원이 담긴 기와장이 수북히 쌓여 있다,

불사에 필요한 재료를 이렇게 한 두점씩 시주를 받아 대형 불사를 이루고 후세에 역사로 남기는게

 우리 불교 역사의 독특한 방식이기도 하다,

기와한장 용마루 한장에 새긴

개개인의 염원이 모두 이루어저서 큰 복이 내리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