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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흐르듯이 순리대로

평화누리길 2코스 조강1리마을회관에서 애기봉입구(2019년 10월 21일) 본문

2019년 平和누리길/김포 3개코스

평화누리길 2코스 조강1리마을회관에서 애기봉입구(2019년 10월 21일)

물흐르듯이순리대로 2019. 10. 21. 13:38


이제는 조강1리 마을회관에서 애기봉으로 간다,

앞에 보이는 산,

하얀 건물이 북녁땅 개풍군 일대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볼수있는 애기봉 전망대다,

문수산 정상에서도 보이든 이곳은 조강저수지다,

이곳 조강저수지는 95년4월부터 조강리 노인회에서 청소비 및 관리비 명목으로

1인당 5000원씩 받고 낚시터로 운영을 했었다, 그러다가 2014년 6월부터 동 시설물(조강저수지)은

농어촌정비법에 의한 농업 생산기반시설로서 농업행위 이외 허가받지 아니한 낚시등의

행위는 불법으로 낚시를 전면 금지했든 곳이다,

그랫든 조강 저수지를 조강마을에서 낚시터 년 매출 10%를 김포시에

지급키로 하고 2015년 8월부터 낚시터 사용 승인을 받아 지금은 유로낚시터로 운영중이다,

또한 이 지역은 청정지역으로 저수지 하류쪽은 수 만평의 농지가 조성돼 있다,

낚시터 요금은 하루 15,000원이 였다,(이 정보는 2년전 정보다,)

조강저수지를 지나가면

6,25 전 까지만 해도 조강포구가 있든 곳이다,

이제 바짝 다가온것 같은

애기봉과 애기봉 전망대도 보인다,

 이곳은 남북 분단으로 더 이상 사람이 갈 수 없게 된 조강포다, 

조강포구는 고려 조선시대 충청 전라도에서 올라오든 세곡선들과 물화를 실은 배들이

개성과 한양으로 가기 위해 지나가든 유명한 나루터였다,

강화도의 좁은 바닷길을 지나 개성과 서울로 들어가든 입구로 한강과 임진강이

합처지는 곳으로 수로 교통의 요충지였다, 서해안 해산물의 집산지이자, 고기잡이 포구로 동국여지승람에도

조강도로 기록될만큼 유명했든 곳이다, 또한 이곳은 토정 이지함선생이 이곳 뒷산(지금의 애기봉이 있는 산으로 추정)

에서 조수간만의 대를 정확히 측정하여 조강물참 이라는 일화를 남긴 한강 어구의 중요한 나루터 였다,

번성했던 포구는 휴전 협정과 동시에 사라졌다. 1953년 어느날, 갑자기 마을에서 나가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휴전선에서 2km 지역은 모두 비워야 한다고. 그런데 실제로 이곳은 휴전협정 1조 5항에

민용선박의 항행을 개방한다라고 명시해놓은 곳이다. 휴전선, 민통선, NLL 모두 해당이 안되는 유일한 곳이라 한다. 그런데도

군당국은 무자비하게 마을 사람들을 밀어내었고 이 곳이 휴전선이 없는 곳이라는 1조 5항은 지금도 유효하지만

사람들의 머리 속에서는 사라졌다. 그래서 지금은 조강포 비 만 쓸쓸하게 남아있다

번성했던 조강포. 이 곳은 여전히 주소지상 조강리 6번지다.

마을을 떠날 때 곧 돌아올 거라고 옷가지 몇 점, 이불 몇 채만 들고 친척들 집으로

잠시 나갔던 조강리 사람들은 다시는 이 곳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다음 해 돌아와보니 집과

건물들은 미군 트럭과 탱크에 의해 모두 사라지고 아무 것도 남지않았다.

주민들의 지속적인 탄원으로 십여년이 지난 후에야 농사만 지을수 있도록 허용받았다.

이곳 논 밑은 주춧돌. 기둥, 기와 등등이 이 곳에 그대로 묻혀있다. 아마도 이 곳을 파면 조강포구 였든<

조강리 마을이 얼마나 번성했었는지 그 규모를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조강(祖江)은 할아버지 강이라는 뜻이다, 한강의 끝줄기, 김포를 감싸고 서해로 흘러 들어가는

일정 구간의 강을 일컫는다. 조강(祖江)이라는 명칭에 대해서는 총길이 514km에 달하는 한강이 조강에 이르러

그 수명을 다했다는 뜻에서 祖江=할아버지 강 이라고 불리었다고 한다. 1658년 기언별집에서는 조강의 의미를 두강이 모여서

바다로 들어간다는 뜻이라 했어며, 한강, 임진강, 조강의 ;세 물줄기가 만난다는 뜻에서

삼기하(三岐河)라고도 한다고 전해진다,

이제 조강으로 흘러들어가는 개화천을 따라 개곡리로 올라간다,

개화천 다리에서 약 200m 정도 거리에서 다시 왼쪽 농로로 따라 들어 간다,

이 정표가 잘 되여 있어니 길 잋어버릴 염려는 없는 곳이다,

농로를 따라 산 밑까지 가면 좁은 도로가 나오는데

이 도로를 따라가다가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산을 넘어가는 길로 들어가야한다,

4년전 이곳에서 길이 없는줄 알고 돌고 돌아서 들어갔든 기억이 있는 곳인데

지금도 변한게 없이 그대로다, 그나마 지금은 사람들 발자국 흔적은 있지만 그때는 우거진 잡초가

허리춤까지 자라있어 길 찾는게 보뭉찾기 보다 어려웠다,

한번은 고생을 했든 길이라 잊어버리지는 않은 모양인지 기억이 길을 알려준다,

이렇게 난해 한 길을 조금만들어가면

서서히 찐자 산 길이 나타난다,

아이러니 하게도 입구에서는

잘 안보이든 시그널이 이곳에서는 보인다,

길 옆 묘지도 지나서

그대로 따라가면


두번째 보이는 묘지도 있다,

두번째 묘지를 지나면 언덕이 있는데

언덕은 삼거리다,

삼거리에서는 이정표가

가르키는대로 오른족으로 내려 가면

20여m 앞에 평화누리길 2코스 종점이 있다,

평화누리길 코스별 종점은 다음 코스로 이어지는 출발점이기도 하다,

이제 이곳에서 다시 전류리 포구로 이어진다,

평화누리길 중에서 2코스는 8km로 가장 짧은 구간이다, 그래서 문수산 정상에서

북녁땅과 조강을 조망해보는 호사도 누릴수 있는 코스지만

2코스를 이어 전류리 포구까지 3코스를 이어서 갈 생각이면

그리 녹녹지 않은 길이기도 하다, 사진에 보이는 500년생 느티나무가 있는 곳으로

이어지는 길이 3코스다,

우리는 2019년 5월에 시작한

평화누리길 전체구간을 이곳을 마지막으로 끝냈다,

그래서 더 이상 갈길은 없다, 애기는 입구 도로로 니간다,

평화누리길 2코스 종점에서 애기봉 입구로 가는길 100여m 지점에

고풍스러운 사당이 있다,

이 사당은 한재장이다, 한재당은 가금3리에 있는데

연산군때의 문신이면서 무오사화때 모함을 받아 28세의 젊은나이에 죽임을 당한

한재 이목의 위패를 모신 사당으로 현종 14년 1848년에 세워졋다,

이목은 김종직의 제자로 연산군 원년에 문과에 장원급제 하였다,

숭불론을 주장한 훈구대신 윤필상을 탄핵하다가 공주로 유배되기도 했다, 무오사화때 훈구파의 모함으로

조의제문에 관련되여 죽임을 당한뒤 다시 갑자사화때 무덤을 파 관을 꺼내어

목을 베어 거리에 내거는 부관참시 형을 받았다,

나중에 이조판서로 추중 되였어며

시호는 정간공이다 라고 안내 판에 적혀있다,

한재당 안내문,

한재당도 지나서

다시 애기봉 입구로 나간다, 그곳으로 가야 돌아가는 버스를 탈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나가는길은 평화공원로 이며

앞에 합류되는 2차선 도로는 56번 도로인 애기봉로다,

이곳 삼거리에는 개곡초등학교도 있다,

삼거리에 있는 버스 정류장, 이곳에서 101번 버스를 타면

군하리 한우마을로 가는데 군하리에서 송정리로 가는 버스는 많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곳에서 제일 먼저 만난 72A 버스로 대명항으로 이동했다, 200km의 먼길을 끝냈어니

조금 멀더라도 여유를 즐길 생각이 였어나 막상 대명항에서의

인상은 열번 잘못 갔다는 생각을 지울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