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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흐르듯이 순리대로

해파랑길50코스 통일전망대(2016년 5월 20일) 본문

해파랑길(동해안 일주)/동해안국토종주결산

해파랑길50코스 통일전망대(2016년 5월 20일)

물흐르듯이순리대로 2021. 1. 13. 00:00

택시를타고 뻥뚤린 동해안 7번 국도 마지막 구간을 달린다,

통일안보공원에서 통일전망대까지는 걸을 수 없는 구간이다, 자가용이나

관광버스, 택시로 가야한다, 걸어 온 사람은 통일전망대 관람을 포기하든지 아니면

택시를 이용해야 한다, 다른 일반 교통편은 없다,

이 지역에는 개인택시 뿐이고 이용요금은 무조건 1회 왕복

5만원이다, 정부에서 정한 택시 주행 요금에 대기시간 요금이 엄연히 있지만

이곳에는 없다,꼭 가야한다면 비싼 요금이라도 주고 가야 한다

5만원의 요금을 주고 택시를 이용해 통일전망대로 간다,

달리는 차안에서 찍은 사진이지만 통일을 대비해 만든 도로가 시원스럽게 뚫려 있다,

명파해변에서도 진입할 수 있나보다,

300m 전방에 명파해변으로 나가는 이정표가 보인다,

제진검문소다, 신분확인은 기본이고

차내 검사는 물론 드렁크도 검사를 했다, 이런 절차는 조금

불편하드라도 무조건 협조를 해야하는게 맞다,

제진교차로를 지나간다,

제진교차로를 지나면

통일전망대로 가는 길이 나 온다,

통일전망대 출입신고소 에서 10분도 안걸려서

도착한 고성 통일전망대

전망대로 올라간다,

언덕에 보이는

횐색 건물이 통일전망대 다,

전망대로 올라가는길

공군 351고지 전투지원 작전, 기념비가 있다,

 육군 1군단이 1952년 7월 10일부터 1953년 7월 18일까지

작전을 치른 351고지 전투시, F51 전폭기가 900여 회나 출격하여

전투지원을 했다는 내용이 안내되여 있다,

육군 351고지 전투 전적비 다, 동해안 요충지인 월비산(459고지),

208고지, 351고지의 피아공방은 1951년 7월 15일부터 1953년 7월 18일까지 계속

되였다, 개전이래 수십 차레에 걸처 국군 제 5, 11, 15, 수도사단 용사들과 북한군 제 6, 7, 19사단은

월비산 208고지, 351고지를 뺏고 뺏기기를 반복 하다가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으로

피아 전투가 종료되였다, 현내면 대진리에 있는 전투비를 그날의 격전지가

보이는 이곳 통일전망대로 이전했다,

통일전망대에서 방문객 들에게

남, 북한 지형과 625 전쟁사를 설명을 해주는 통일전망대 직원,

사진의 지도는 통일전망대 출입국사무소에서

참고용으로 찍어 온 것이다,

아침부터 자욱히 끼였던 운해는 아직도 걷히지 않았다,

맑은날이 였어면 더 선명한 전경을 볼수 있었을텐데, 다소 아쉽기는 하지만

이 만큼이라도 보일 정도로 운해가 걷힌게 다행이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 오는 지역이 북한 구선봉 이다,

앞에 보이는 작은 섬은, 송도로 송도섬 중앙이 남 북한의 경계다,

여기서는 계속 대남방송이 들린다,

우리측에서 대북 방송은 낮에는 관광객들을 배려해서

하지않고 저녁 6시 이후에 한다고 한다,

그 저 멍하니 바라보는 북녁 땅

기슴 시릴 정도로

애잔한 마음이 드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국지봉과 바다로 뻗어있는 구선봉(일명 낙타봉)과

해변에 있는 작은 섬 송도,

처음 와 본 곳이라 안내지도 가 없었다면

알아볼 수 도 없는 땅,

동해안 7번 국도와 철도는 이렇게 북으로 이어저 있다,

금강산 육로관광을 위해 우리 측 비용으로 7번 국도와 철도 공사를 했다

한때는 철도와 7번 국도로 금강산으로 가기도 했어나,

지금은 관광 통행 마저 끊겼다,

보이는 왼쪽

암봉은 국지봉 이다,

국지봉 옆 일명 낙타봉이라고도 불리는 구선봉 앞,

평지에 감호가 있는 작은 섬이 송도다, 보고 보고 또 보아도

너무도 아름다운 땅, 구선봉 일대

왼쪽으로 주욱 뻗은 도로와 철도가

북녁으로 연결되여 있는 저 곳을 달려 볼 날은 올까?

우리 평생에? 아님 다음 세대에?

왼쪽 제일 높은 곳이 외금강 2,000여 봉우리다,

왼쪽 높은 봉우리는 월비산으로 한국 군 관측소 건물이 보인다,

왼쪽 봉과 오른쪽 높은 봉우리는 우리측 관측소다,

351고지다, 지금은 북한 전망대지만 저 351 고지의

피아 공방전은 1951년 7월 15일부터 1953년 7월 18일까지 계속되였던 전선이다,

이 전투에서 국군 제 5, 11, 15,사단 용사들과

북한군 6, 7, 19사단 병력이 월비산 208고지, 351고지등을 뺏고

빼앗기기를 반복하다가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으로 전투가 종료되였다,

저 351고지만 사 수 했다면, 금강산까지 걸어갈 수 도 있었겠는데, 

금강산 외금강 2,000여 봉우리를

가깝게 당겨본다,

사진 제일 뒤로

늘어선 산 줄기가 금강산이다,

통일전망대에서

북녁땅이 보이는 전망대에 섯다,

먼길을 걸어면서 얼마나 기대했든 고성 통일전망대 인가?

이 자리에 서 있는 것 만으로도 감회가 새롭다,

누군가가 손에 태극기를 쥐어 주었다,

나쁘지는 않을 것 같은 생각에 태극기를 들고 사진을 찍었더니

한달이 넘게 걸어 온 피곤함이 얼굴에 묻어나는 것 같다,

남쪽 통일전망대 곳곳에서 보이는 전시물,

이곳은 특별한 볼거리로 보는게 아니라 마음으로 보고 느끼는 곳이다,

통일전망대 남쪽으로 보이는 해변

명파리 방향 민통선내 해변이다,

동해안이 남북으로 갈리기는 했지만 아름다운 해변은

남과 북이 다르지 않은 것 같다,

통일전망대를 내려와 주차장에있는 625전쟁 체험

전시관으로 들어 간다, 사실 여기는 모르고 있었는데 통일전망대

가이드를 자처하는 개인택시기사가 데려다 주었다,

규모는 작지만 전쟁의

참혹성을 전해주는 각종 자료들로 구성되여 있다

사진으로 보여 주는 6,25

평양 진입과

1,4 후퇴 피난 생활

중공군 참전으로 후퇴를 해야 했지만

중국 공산당 군대가 참전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지금

통일된 한반도에서 살고 있을 텐데,

녹슬은 총알은 진 흙에 뒤엉켜 있고

미군 전투화와 각반등 은 

6,25의 처절했던 전쟁을 그대로 보여 주는 듯 하다,

내 한몸 으스러져 한 줌 흙 되어도

온 누리에 떨치고 싶은

오직 하나 뿐 어미니인 내 나라여,

피아 군인 인영 손실 과

민간인 인명 손실 통계 자료도 도식화 되여 있고

태극 무공 훈장에서 인헌 무공 훈장까지의

내역도 있다, 

통일전망대에서 나 가는 길, DMZ박물관도 있다,

외부 전시장에는 특별한 건 없었지만 주차장 맞은편 언덕에

대북방송시설과 조명시설 들이 보인다, 

원래 이 설치 물은 DMZ 우리측 최전방에 있었어나

대북방송 중단시 이곳으로 옮겨 전시했다고 한다, 지금은 예전에 있든

자리보다 더 북쪽으로 옮겨 최신설비로 다시 만들었다고 한다

평화의 상징인 비둘기와 맞 잡은 손,

평화와 생명의 땅! DMZ 박물관

제진역으로 돌아 왔다, 우리땅 최북단에 있는 제진역은

원래는 이곳보다 더 오른쪽에 있었어나 새로 신역을 만들었다,

보이는 문은 제진역으로 들어가는 출입문이다,

제진역 옆, 남북 출입국 사무소,

잠시 북으로 왕래하는 업무가 이곳에서 처리되기도 했지만

지금은 깊은 잠에 빠저 있는 출입국 사무소다, 통일전이라도 출입국

사무소가 제 몫을 다하는 날이라도 올 수 있을까?

이제는 돌아간다,

고성 통일전망대 출입신고소 로

들어 갈때와 마찬가지로 최전방 7번 국도는 뻥 뚤려있다,

들어오는 차도 나가는 차도 보이지 않는다,

이 도로는 통일을 대비해 개설한 7번 국도 동해대로다,

이 길에 많은 차들이 북으로 북으로 시원하게 달리는 날은 언제나 올까?

고성 통일 전망대를 돌아보고

마차진리를 지나 대진1리로 돌아 왔다,

이곳에서는 1번이나 1-1번 시내 버스로 간성이나 속초로 갈수있다,

서울로 돌아가는 버스에서는 잠이나 푹 자야겠다,

동해안 국토종주 해파랑길은 부산오륙도에서 고성통일

전망대까지다, 한 달이 넘는 날을 걸어서 북녁 땅을 보고 돌아가는 길,

완주를 했다는 안도감이 몰려오는 듯 하다, 이제 집으로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