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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흐르듯이 순리대로

북한산둘레길 도봉구간(2021년 11월 7일) 본문

Trail(둘레길)/북한산둘레길

북한산둘레길 도봉구간(2021년 11월 7일)

물흐르듯이순리대로 2021. 11. 19. 00:40

2021년 11월 7일은 북한산둘레길 20구간 19구간

그리고 18구간 일부를 가는 날이다, 시작지점은 북한산 우이역1번 출구다,

북한산둘레길은 우리나라 둘레길 표준인 길로 이정표가 완벽한 길이다,

북한산 우이역 1번출구에 북한산둘레길 안내가 있다,

안내해 주는대로 왕실묘역길로 간다, 

왕실묘역길은 북한산둘레길 20구간으로

북한산둘레길과 서울둘레길이 함께하는 길이기도 하다,

북한산우이역 1번출구에서 470m 거리에 있는

북한산 둘레길 왕실묘역길 출입문을 지나서 연산군묘역이 있는

도봉구방학동으로 간다,

가는길은 신길이 맞지만

산길이라기 보다 나즈막한 언덕을 넘어서 간다,

북한산둘레길은 보이는 것 처름

이정표가 촘촘하게 설치되여 있는 길이다,

인위적으로 만든 길 보다

예전부터 있든 길을 자연스럽게 연결해서 이어지는 길 

그래서 일까?

길은 편안하기도 하지만 자연스럽다,

분명 산 길은 맞지만

산이라기 보다는 언덕을 올라 지나가는 그런길이다,

작은 언덕을 올라와서 다시 내려간다,

함께하는 일행들 외에는

아무도 지나가지 않는 한적한 길

이길은 방학동

연산군 묘역으로 가는 길이다,

이 길에서 보이는 유일한 단풍나무를 지나 내려가면

연산군 묘 재실이 있다, 연산군묘 재실은

묘 관리자가 상주하든 곳으로 제향을 지낼때는 제관들이

머물면서 제사에 관련된 일을 준비하든 공간이다,

작은 규모의 제실이지만 참봉의 집무실이였든 제실과

향과 축문을 보관하는 안향정과 제기를 보관하는 제기고 등이 있어며

그외 부속공간인 행랑등으로 구성되여 있다,

이곳 제실에서 발견된 치제현판에서는 영조51년(1775년)

연산군의 외손에게 연산군 묘소의 제사를 지내게 하고 관아에서 제수를 주고

군사를 배치해 묘를 지키도록 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연산군 묘소앞 수백년은 됨 직한 은행나무가

세월의 무상함을 알려주는 듯 노란 단풍을 피우고 있는게 보인다,

서울 방학동 은행나무로

서울시 기념물 제33호로 등록된 나무다,

나무 높이는 25m, 둘레는 10,7m로 1968년 나무 형태의

아름다움과 역사적 가치를 인정하여 서울시 보호수 1호로 지정했어며

2013년에는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하여 등급을 상향 조정하여 기존의

보호수 지정을 해지하고 서울시 기념물로 지정했다,

당시의 조사 결과 이 나무의 수령은 550살로 추정되였다,

이 나무는 경복궁 증축당시 징목 대상이였어나 마을주민들이 흥선대원군에게

간청하여 제외된 나무로 대감나무로 불리기도 하는 나무로 매년

정월대보름에 제사를 지내는 나무다,

은행나무 앞에는 연못도 있고

우물도 있다,

은행나무 앞 연산군 묘소다,

제일 뒤에있는 보이는 방향 왼쪽 묘가 연산군 묘이며

오른쪽이 거창군 부인 신씨묘로 묘에서 보면 오른쪽이 남자 왼쪽이 여자 묘다,

조선10대 임금(1476~1506)이였든 연산군은 성종과 폐비 윤씨의 아들이다,

그리고 중간에 있는 묘는 태종의 후궁인 의장궁주 조씨 묘며

앞에있는 묘는 왼쪽이 연산군 사위인 능양위 구문경묘, 왼쪽은 연산군의 딸 휘순공주묘다,

연산군 묘소를 나와서 이어서 둘레실을 가면 

길 건너편에

정의공주 묘와 양효공 안맹담의 묘가 있다,

세종의 둘째딸인 정의공주와 사위인 양효공 안맹담(1415~1462)은

1428년에 혼인하여 4남 2녀의 자녀를 두었다,

울타리 너머에는 신도비가 보인다, 조선시대는 2품 이상의 관직을

역임하고 뛰여난 업적을 남긴 사람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는 신도비를 만들어 세웠다,

이 신도비는 조선초기 신도비 양식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신도비 윗 부분에

양효안공묘라는 글씨가 전서체로 새겨저 있다,

정의공주묘역은 북한산둘레길 20구간 왕실묘역길과

19구간 방학동길 갈림길이다, 북한산둘레길은 각 구간마다 포토포인트가

있는데 여기는 20구간과 19구간 인증 PHOTO POINT가 있다

북한산둘레길 20구간 왕실묘역길은 북한산우이역에서

이곳 정의공주묘역까지(1,6km)로 누구나 다 이용할수 있는 난이도 0의 길이다,,

정의공주묘역에서 19구가 방학동길을 시작하는 길

또 한곳의 사당이 보인다,

사천목씨 방학동 선영및 재실이다, 사천목씨의 본관은

경남 사천으로 형제간의 우애가 매우 돈득하여 화목을 뜻하는 睦(목)자를

성으로 내렸다고 한다, 시조는 고려때 낭장을 지낸 목효기다, 

 

이곳 방학동은 1426년(세종8년)에 7세 목진공의 묘역이 된

이후부터 사천 목씨의 선영이 되였다, 9,780여평의 묘역에는 시조부터 6세까지의

단비와 7세 참판공, 목진공, 등등 모두 10분의 묘가 있어며 그중 충정공 목서흠의 묘역, 석물,

신도비와 부속토지는 2009년 서울문화재 기념물 27호로 지정되였다,

사천목씨 선영을 지나 산길로 들어간다,

이어지는 길은 북한산둘레길 19구간 방학동 길이다,

방학동길은

정의공주묘역에서 무수골까지 3,1km의 길이다,

북한산둘레길 19구간은 방학동길이다, 이곳이 왜 방학동?인지를

살펴보면 방학동이라는 이름은 곡식을 찧는 기구인 방아가 있는 곳이라는 뜻을

가진 말로 방아골(굴)에서 유래되였는데 일제강점기 한자로 기록하는 과정에서 음이

비슷한 방학리로 고처져 지금의 방학동이 되였다,

방학동길은 전구간이 숲길이다, 또한 바가지약수터와

북한산둘레길의 명소이자 유일한 전망대인 쌍둥이 전망대도 있는 구간이다,

방학동길의 난이도는 보통이다,

낮은 언덕은 있지만

빠른걸음으로 걸을수도 있고

느린 걸음으로도 걸을수 있는 그저 평탄한 길이다,

이 길을 걸을때가 11월 첫 주일인 7일이니

가는길 내내 단풍이 곱게내린 길이다,

북한산둘레길 이정표도 가는길 곳곳에 있다,

북한산둘레길 이정표는

전국 각지의 둘레길에서 표준으로 채택하고 있는 대표적인 이정표다,

가는 내내 여유로운 길

정다운 사람들과 함께라면 더욱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수 있을 것 같은 여유로움이 묻어나는 그런 길이다, 

북한산둘레길은 이정표만 있는게 아니다,

사진에 보이는 것 처름 이정목도 있는데, 예쁜 둘레길 마크와 위치번호도 있다,

이정목에 표시된 05라는 위치표시는

북한산둘레길 도봉지역 5번째 장소로 출발지인 무수골에서

2,5km떨어진 곳임을 알려주는 표식이다,

산길 이정목은 500m거리에 하나씩 설치되여 있으므로

500m×5 = 2,5km다,

이번에는 북한산국립공원도봉사무소의 안내판이 보인다,

방학동길 쌍둥이 전망대 라는

북한산둘레길 9구간 방학동길의 포인트인 쌍둥이 전망대다,

사진에 보이는 전망대 두개가 나란히 설치되여 있어며

두개의 전망대는 하늘다리로 연결되여 있다, 오른쪽 전망대는 오름전망대며

왼쪽 전망대는 내림길 전망대다,

오름길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도심전경은

상계동과 창동 쌍문동 그리고 방학1, 2, 3,동이 모두 보인다,

안내판에 보이는 방향이다,

맞은편으로 보이는 산은 수락산과 불암산이다,

두번째 전망대에서는 도봉산이 조망된다,

신선대와 자운봉, 만장봉, 선인봉,

그리고 그 뒤로는 포대능선까지도 보인다, 

오른쪽 오름 전망대로 올라 올때도 이런 계단길로 올라왔는데

왼쪽 내려가는길 내림계단도 이렇게 만들어져 있다, 조금 급한 계단길이기는

하지만 옆에있는 손잡이를 잡고 내려가면 위험하지는 않다,

쌍둥이 전망대를 돌아보면서 무수골로 간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고민할 필요가 전혀 없는 이정표가 곳곳에서 길을 알려준다,

이제 부터는 잠시

단풍 숲길을 느긋하게 즐기면서 걷는다,

쌍둥이전망대에서 그리 먼길은 아니라서

천천히 가다보면 울타리 앞에

개천이 있는데 이 천이 무수골계곡이다,

이것이 무수골이다, 앞에 보이는 다리가

도봉동 468-17 세일교로 세일교에서 북한산둘레길

19구간 방학동길이 끝나고 18구간 도봉옛길이 이어진다, 도봉옛길은

이곳 무수골에서 다락원까지 3,1km의 길이다,

무수골 세일교 옆

곱게 피여있는 단풍이 있어 잠시 둘러본다,

2021년 가을 들어서는

이렇게 붉게 물든 단풍은 처음인 것 같다,

이 단풍은 북한산둘레길

19구간과 18구간의 분기점 옆 공터에 있다,

세일교를 건너 왼쪽 무수골계곡 옆길로 간다,

무수골은 도봉동 104번지 일대로 마을 이름 유래는 약 500여년 전에

수철동(水鐵) 일명 무쇠골이라 했고, 이후 무수동(無愁洞)이라 했는데 그 연유는

영해군 묘소 형국이 仙人舞袖之形(선인무수지형)으로 신선이 소매를

펼치고 춤을 추는 형국이라해서 無愁洞(무수동)이라 했다.

無愁(무수)골은 무수울 이라고도 한다. 아무런 걱정 근심이 없는

골짜기 마을이란 뜻이다. 조선 세종의 9번째 아들 寧海君(영해군)의 처음 이름은

璋(장)이며, 뒤에 瑭(당)으로 바꾸었다. 瑭의 묘가 이곳 무수골에 있었다. 세종이 먼저 간 아들의

묘를 찾아 왔다가 약수터 물을 마시고 물 좋고 풍광 좋은 이곳은 아무런 근심이

없는 곳이라 했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유래됐다고 전해진다.

무수골계곡 옆으로 약 200여m를 들어가면

도봉옛길 출입문이 있다,

이길은 북한산둘레길 18구간으로 이곳 무수골에서

북한산 생태탐방원을 지나 다락원까지 가는 18구간 도봉옛길 이다,

무수골 갈림길에서 약 800m거리에 있는

진주유씨 문중묘를 지나 가면 가는길 직진은 둘레길이고

오른쪽으로는 도봉역으로 가는 갈림길이 있는데 

둘레길에서 도봉역 방향의 길을 따라간다,

이제부터의 길은 평지 산길이다,

많은 시민들이 이용하는 산책길이라

위험하지 않아도 안전 시설도 잘 만들어 놓았다,

이길은 도봉산

도봉사와 능원사 앞 능선이다,

길은 도봉천으로 연결이 된다,

도봉천을 따라 도봉역으로

내려 가다가 수원교를 건너 도봉산역 방향으로 올라간다,

도봉산역앞 자주가는 단골집에서 점심도 하고

우이역에서 도봉산역까지의 둘레길 약8km, 2시간 30분이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