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흐르듯이 순리대로
關東大路(平海三大路 經路 - 大東地志 ) 본문
관동대로의 경로는 대관령을 분수령으로 해서 서쪽은 남한강 수계 동쪽은 동해안으로 양분된다, 이 분수령이 백두대간의 본맥을 이루고 있다, 또 지질학적으로는 광주산맥, 차령산맥, 태백산맥을 차레로 횡단 하도록 되여 있어서 일부를 제외하면 평지가 적고 구릉지와 산지가 대부분을 찾이 하고있다,
또한 관동대로의 경로는 수 계를 따라가는 부분은 극히 일부이고 거리가 짧은 嶺路를 선택하는 경향이 있어 고개를 빈번하게 오르 내리는 길로 10대로중 가장 높낮이 변화가 심한 경로다,
북한강(龍津, 高浪津)과 섬강에서는 큰 渡津을 한다, 한편 팔당리 부근에서 양근 월계에 이르기까지 한강과 남한강 하안(河岸)구간에서는 벼랑길이 계속된다, 동해안길에서는 백사장과 절벽이 차례로 나타나는데 삼척 한치(大峙)를 제외하고는 내륙으로 우회해서 고개를 넘는 경우가 많다,
위와같은 자연적 여건 때문에 관동대로의 영향 권역에서는 인구가 상대적으로 적고 농업생산력도 낮아서 고을의 분포도 자연 드물어 진다, 특히 원주에서 강릉까지 경로상에는 전혀 고을이 없는 지역을 통과 하며 雲交驛(운교역)에서 平陵驛(평릉역)까지 관동대로 전체 거리의 1/3에 해당하는 약 300리가 江陵府(강릉부) 구역인 점에서 그것을 확인 할 수 있다, 조선시대 군 현 면적의 大小가 인구 밀도와 꼭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전체적인 경향으로는 인정 된다,
행정구역 대,소의 영향을 생각하더라도 강원도 행정중심지 였던 원주, 2차 중심지라고 할수 있는 강릉과 춘천의 인구가 두드려진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 중 원주와 강릉은 관동대로가 직접 통과하고 있어며 춘천도 1차 분기선으로 갈수 있다, 또 관동대로 간선구간에 강원도 인구의 44%가 분포 하고 있다,
이 처름 관동대로는 인구면에서도 강원도 지방의 간선 교통로의 성격이 컸던 것이다, 강원도 영서 지방은 비록 인구 희박지대 이기는 했어나 독자적인 사회 문화를 형성하고 있었다, 특히 관동대로 상인 강릉부의 산간 고지나 해안지대에서는 고대로 부터 뿌리가 전해 온 향촌 사회가 등장하여 고유 문화를 유지하면서 지역의 취락 형성, 교통, 경제의 발달에 영향을 미쳣다, 조선 말기 이후 이 지역에 화전이 증가하여 이는 1970년대 화전 정리사업 시행까지 지속 되였다,
한마디로 관동대로는 영남대로나 의주대로처름 변방 군비를 위해 신속한 거점 간 이동이 우선된 구간도 아니였고, 파발로가 있었던 것도 아니였다, 그것보다 강원도라는 한 지방의 중심 도시 및 고을들을 연결하는 수도 대 지역간 교통로의 성격이 더 컸다, 다른 대로에 비해 상대적인 중요도의 후퇴는 도로의 규모 구분상 大路는 존재하지 않았고
서울 - 양근간이 中路 였던 외에는 모두 小路로 분류 되였다, 한말의 5만분지 1 자형도 에서도 영남대로나 의주대로의 경우 거의 전 구간이 도로의 규격이 가장 높은 구간인 道路(실선 두줄)로 길이 표현되고 삼남대로도 삼례까지 도로로 표시되여 있는 반면 관동대로는 양수리를 조금 넘은 양근 국수리에서 도로 표시가 끝나고 실선과 점 선 한 줄 씩으로 격하되여 있다, 이러한 차이는 국가 기간 철도로서 경부선과 강원도 지역 개발 노선인 중앙, 영동, 태백선의 대비와 상통하는 부분이다,
이상에서 본 三大路 간선의 기능과 지리적 조건을 감안하면 大路 전체를 삼분할 해서 다루는 것이 타당할 것으로 보인다, 1구간은 경도 - 원주, 2구간 원주 - 강릉, 3구간 강릉 - 평해의 3구간으로 분할한다,
1, 서울 - 원주 구간,
조선시대 관도의 출발지는 서울의 각 성문으로 여겨졋다, 關東大路(관동대로)의 경우, 흥인지문(동대문)이 출빌지다, 이는 대동지지에서 다음 기착지점인 중량포까지의 거리로도 짐작할 수 있다, 동대문에서 구리 시내까지 관동대로는 현 국도 6호선과 거의 일치한다, 다만 청량리 까지는 전차가 부설되면서 길이 일직선으로 직선화 되였어며 청량리 이후에도 일찍이 京春街道 신작로가 부설되여서 지선화 되였다, 중량포는 지금의 중량교 부근으로 생각된다,
忘憂里峴(망우리재)은 예전에는 골자기에서 바로 고개마루로 올라가서 내려가는 길이 였어나 신작로 개설때 구배 완화를 위해 우회 노선으로 만들었다, 현재도 직선의 구, 도로가 일부 남아 있어며 구리시 쪽에서는 옛 주막촌(딸기원)도 남아 있다,
구리시 교문동 돌다리 교차로에서 6번 국도와 헤여져 한강변으로 향 한다, 구리시 부터는 경기도에서 경기옛길 평해길을 지정해서 각종 시설물을 설치하고 운영중이나 대동지지에 나타나는 내용과는 일부 다른 경로가 많이 보인다, 그러나 옛길 그대로 따라 갈 수 는 없는 길이니 경기도 구간은 경기옛길 평해길 10구간을 따라가고 이어지는 원주구간부터는 대동지지를 기준(아래 도표와 내용 등)으로 길을 찾아 보려 한다,
2) 원주 - 강릉구간
경기옛길 평해길이 끝나는 지점인 경기도와 강원도 경계인 松峙(大松峙)송치에서 섬강 강가로 간다, 이 구간은 얼마전 까지만 해도 옛길이 남아 있었지만 국가지원 지방도로 로 포장이 되였다, 섬강 강가로 가면 안창리인데 安昌驛이 있었다, 안창리는 5, 10일에 장도 섯다, 안창진 나루터에서는 60년대 까지도 배가 다녔만 지금에 이르기까지 다리는 없다, 대동지지에는 겨울에 假橋가 설치되는 것으로 되여 있다,
강을건너 양수장 옆을 지나면 옛길의 고개가 나타나는데 馬峴이다, 다시 88번 지방도와 만나 다음 고개인 질마재를 지나면 주막촌이던 광터동에서 42번 국도와 합류한다, 문막에서 섬강을 내린 어염은 이 고개를 지나 원주에 공급 되였다, 만종리박달미 에서 국도와 헤어져 음무재를 지난다, 고개마루에 서낭당이 있어서 서낭당 고개라고도 불린다, 옛길은 도로확장 공사를 했다, 중앙선을 건너면 원주 시내로 들어간다, 현 원주역전 부근에 樓門이 있었다, 江原監營(강원감영)은 구 원주 시청으로 사용했어나 시, 군, 통합 이후 복원공사를 했다,
감영을 나가면 현 봉평교 부근에서 원주천을 건너 42번 국도와 합류한다, 원주부터 42번 국도는 90년도 초반에 단계적으로 확포장 되있기 때문에 지금도 구, 2등 도로의 규격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소초면 신근솔 마을이 직송점 터이다, 소초면 소재지인 평장리를 지나면 탑고개를 넘어 밤나무정 주막촌으로 도달한다, 치악산 입구인 학곡리를 통과하여 역골마을로 영동고속도로 새말나들목을 거쳐 馬院驛(마원역)이 있었던 오원에 다 다른다, 지금 오원 저수지가 되여 있는 웃거리 마을에는 주막촌이 있었으며 현재는 한채만 남아있는 회치마을에도 주막이 있었다, 여기서 부터는 남한강 지류들을 가로 지르기 위해 높고 험한 고개들이 연속되며 수레의 왕래는 사실상 불가능 했을 것으로 보인다,
오원에서 전재를 넘는 길은 우회도로 고도를 넘는 시작로에 대비해 계곡으로 바로 올라간다, 옛길가에는 1941년 일본인이 세운 治山治水碑가 있다, 전재는 표고 530m나 되고 경사도 급해 양쪽에 驛(역)이 배치되여 있었다, 고개 넘어에도 전재 마을이 있는데 고개나 진도를 끼고 양 기슭에 같은 취락명이 있는 사례는 전국적으로 볼 수 있다,
일시적으로 농로로 들어간 다음 다시 국도와 합류해서 안흥으로 들어간다, 安興驛이 있었던 장소로 관말 이라는 이름도 남아 있다, 주천강 대안의 말 무덤이는 험한 행군을 하다가 쓰러진 역마를 매장한 장소라고 전해 진다, 다시 42번국도를 따라 가면 상안리에 관터마을이 있다,
오원역도 그렇고 역관의 위치가 여러차레 이전 되였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는 없다, 상안리에서 옛 신작로는 문재를 넘기 위해 남쪽으로 크게 우회하면서 서서히 올라가지만 옛길은 계속 골자기 밑으로 간다,(사료공장 때문에 우회 해야함) 2등 도로는 구배를 1/25이하로 억제 해야 되였기 때문에 등고선을 따라 우회할 수 밖에 없었다, 확장 및 포장공사로 터널이 개통되였는데 그 경로는 옛길과 많이 가까워 졋다, 백현과 같은 현상을 여기서도 확인할 수 있다,
표고 830m인 문재를 넘어 다시 계곡길을 가면 운교리에 도착 하는데 雲交驛/倉이 여기에 있었다, 취락 동쪽에 驛(역)터가 있었는데 지금도 밭에서 기와가 대량 나온다,
여우고개를 넘어서 윗사그네 까지의 옛길, 신작로, 포장도로등 세줄의 도로가 엉키면서 다닌다, 위, 아래 사그내는 주막촌이 였어며 또 계촌 방면과 합해지는 멋다리 마을에도 주막과 마방이 있었다, 이들 주막촌의 마방은 역참과는 달리 소장수 등 일반인들이 사용했다, 이 길에는 영동고속도로 개통때까지 강릉에서 서을까지 하루 1회 8시간이 소요되는 버스가 다녔다,
芳林驛이 있었던 방림리는 상방림, 중방림, 하방림등 3개 마을인데 상방림은 평창으로 가는 길목으로 하방림은 면사무소 가 있는 행정취략으로 발전했다, 잠시 평창강을 따라 가다가 헤여저서 사초거리 주막촌에서 정선방면 길과 갈라진다,
이어서 반정리 마을인데 이곳이 원주와 강릉의 절반 마을 이라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취락명에서도 관동대로 제 2구간이 원주와 강릉이라는 강원도의 두 도시를 연결하는 도로 로서 연로 주민들에게 인식되여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대화리는 大和驛/倉 이 있던 장소다 신리에서 국도와 갈라저서 지름길로 간다, 비포장 옛길이 였지만 1997년 부터 포장이 되였다,
소근리에서 급경사를 올라가서 표교 800m인 모릿재를 넘는다, 도로는 터널이 뚫렸어며 고개를 올라가 내리면 2차선 도로다, 오대천과 만나면 淸心臺店(청심대점)이다, 주막촌인데 人藥院 터 이기도 한다, 오대천을 따라 올라가면 하진부로 珍富驛(진부역)이 있었던 장소로 3, 8일에 장이 섯어며 지금도 定期市 정기시가 있다,
독가촌 마을에서 오대천을 건너 옛길을 가다가 月精巨里(월정거리)에서 史庫쪽으로 가는 길과 갈라진다, 여기서 영동고속도로와 456번 국도 지방도를 따라 가는데 2차선 영동고속도로 시절의 흔적과 자주 만난다, 해발 700m 이상의 고지대여서 목장과 고랭지 채소밭이 많아 진다, 싸리재를 넘어면 橫溪驛(횡계역)으로 옛 역촌은 피서, 동계스포츠 관광지로 변했다,
한강 수계 마지막 주막촌인 가시머리 마을에서 지방도와 헤어지는데 옛길은 완전히 폐도가 되여있다, 지형도의 소로 표시대로 가면 작은 고개를 넘어서 바로 山神堂(산신당)이 나타난다, 여기가 대관령국사성황당이다, 이어서 다시 가파른 경사를 올라가면 백두대간 과 만나서 大關嶺에 도착한다,
여기서 강릉방향으로 아흔 아홉구비로 일컬어지는 산길이 시작하는데 반정까지는 길이 곳곳에서 萌落되고 많이 훼손되여 있다, 반정에서 구 영동고속도로를 건너면 옛길은 관광용으로 정비되여 다니기가 수월해진다, 예전에 강릉 단오제 행열은 이 길을 다녓어나 지금은 지방도를 사용한다, 濟民院원터인 상제민에는 지금은 마을이 없고 주막터만 남아 있다, 민박촌이된 하제민원을 지나 邱山驛(구산역)은 성산면 소재지다, 남대천과 병행 하면서 강릉읍성으로 들어간다,
3) 강릉 - 평해 구간
강릉 남문을 나서면 남대천을 건너 평야지대로 간다,
현 삼척시내는 사행된 오십천을 직선화 후 구, 하도를 매림한 터에 서 있지만 구, 삼척 읍성은 竹西樓 서쪽 언덕에 있었다, 오십천을 건너 史直驛이 있었던 史直洞을 지나면 해변벼랑위의 한치 고개를 넘는다,
1km정도의 옛길이 나타난 다음 작은 고개를 지나서 교가리로 들어간다, 이곳이 校가驛터이다, 옛길로 살해재를 넘어 궁촌리 초곡동을 지나 龍化驛터인 용화리에 당도한다,
동막에서 이곳까지 미개통인 채 남은 동해선 노반과 교각 터널등이 이어진다, 대로는 여기에서 국도와 헤여져 내륙으로 들어가 아치매기 고개를 넘어 임원리 사기촌으로 이어진다, 다시 산속으로 들어가 召公嶺(소공령)을 넘는다, 召公嶺은 역사적으로 유서가 깊은 곳이지만 이 고개길은 완전히 폐도화 되였다,
산을 내려가면 옥원리인데 沃原驛/倉(옥원역/창) 터이다, 옥원역은 자체 성곽을 가지고 군사 요지의 역활도 수행 하엿다,
월천리 주막촌에서 갈령으로 올라간다, 갈령치고개길은 옛길, 신작로, 현재도로등 세 가지가 각기 경로를 달리하고 있어나 옛길은 소멸되고 신작로도 매몰되다 시피 하다가 산불 때문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울진군에 들어와서 羅室(라실) 脫封(태봉)을 지나면 興富驛(흥부역) 지금은 부구리라고 불리는 북면 소재지이다, 여기서 옛길은 원자력 발전소가 가로막고 국도 쪽으로 돌아서 거목리에서 다시 옛길로 들어간다, 다시 철도 노반이 병행한다,
古山城 옆을 지나서 蔚珍읍내로 들어간다, 다시 국도와 병행해서 守山驛이 있었던 수산리로 화천을 따라 가다가 옛길로 益山峙(익산치)를 넘어 德新驛(덕신역)터인 덕신리로 들어간다,
손부리재 에서 평해땅으로 들어가서 望洋亭(망양정)이 있었던 망양리로 들어 가는데 지금 망양정은 울진 근남면에 있다, 망양해수욕장을 지나서 黃海月乾이 있는 明月浦(명월포)를 지나 越松浦鎭(월송포진)으로 들어가는데 여기에 수영이 있었으며 水軍萬戶(수군만호)가 배치되였다, 지금 越松亭이 복원되였고 달효마을은 達孝驛(달효역)이 있었던 곳이다, 5리를 더 가면 平海평해로 도착한다, 三大路는 여기 까지로, 경도에서 여기까지 총 890리다
길은 여기서도 영덕, 경주 방면으로 계속된다, 다만 대동지지에서 주기가 있듯이 영해를 거처 문경 경로로 올라가면 서울과의 거리는 780리 이며 죽령을 거처 가면 760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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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옛길 평해길을 따라 강원도 경계까지 가면 더 이상 조선시대 옛길은 지정되지 않았다
강원도계에서 부터는 옛길을 찾아서 가야 한다, 산길이나 들길은 알길이 없어니 구, 길인 지방도를
따라가는게 맞을 것 같다, 강원도 원주구간은 1차로 만종을 지나 원주 강원감영까지다,
강원감영에서 소초면을 지나 횡성군 안흥면 안홍리로 간다,
경기도와 강원도경계,
경기옛길 평해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부터 서원주역 까지
서원주역 원주감영
원주감영 소초면사무소
소초면 안흥하나로마트
안흥 하나로 - 방림면사무소
방림면 사무소 - 진부면 전통시장
진부면 전통시장 - 횡계버스터미널
횡계버스터미널 - 국사성황당
국사성황당 - 성산면사무소
성산면 사무소 - 안인 삼거리
강릉 읍성(강릉대도호부 관아)
강릉읍성에서 남대천을 건너 들판으로
안인삼거리 - 묵호항
묵호항 - 삼척죽서루 - 근덕 교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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