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흐르듯이 순리대로
서대문 이음길 홍제천구간, 2024년 7월 21일 본문
계단 1도 없는 서대문 북한산 자락길은 여기서 끝이나고 무장애 데크길 4번째 마지막 화장실 옆 계단 ↑ 으로 홍제천으로 내려가 오른쪽 → 은 홍제천을 따라 포방터시장으로 가는 길이고 왼쪽 ← 은 인왕산 방향으로 가는 서대문이음길이다,
서대문이음길로 홍제천 상류로 간다, 바로 앞에는 옥천암이 있다, 옥천암은 홍제천 개울가에 있는 거대한 바위에 새겨진 불암(佛巖)이 고려초기부터 유행하던 높은 보관을 쓰고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암자다,
1830년대 자료로 추정되는 한경지략(漢京識略)에 옥천암은 언덕위 바위 사이에서 샘이흘러 바람병, 체증있는 사람이 마시면 신효하게 낫고 눈병에도 씻으면 낫는다고 했다. 옥천암 불상은 언덕 바위를 깎아서 만들고 해수관음보살(海水觀音菩薩)이라 했다,
옥천암 석불 위 기와집은 보도각으로 1868년에 고종의 부인 명성왕후가 관음전과 함께 지었으며 흥선대원군이 현판을 썼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마애불은 고종의 모친인 여흥 부대부인 민씨가 고종의 천복을 빌며 호분(胡粉)을 발랐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으며 흰색의 호분이 전체적으로 칠해져 있기 때문에 백의관음 또는 백불(白佛)이라고도 한다
백의관음 뒤에는 삼성각이 있다, 삼성각내부 뒤 벽은 유리창으로 만들었는데 유리창에서도 석불이 보인다,
뒤로 돌아가 보니 자연석에 석불을 조성했다,
삼성각에서 내려다보는 보도각 뒤편은 웅장한 암석 위로 보도각이 건축되여 있다,
보도각 윗쪽으로는 삼각산 옥천암 일주문도 있는데 일주문은 홍제천 건너 도로로 연결되여 있다,
일주문 뒤에는 범종각도 있다,
종각 옆에는 명성왕후가 보도각과 함께 지었다는 관음전이 있는데 지금의 현판은 극락전(極樂殿)이다, 아미타부처님 주불전인 극락전은 관세음보살, 지장보살님을 협시불로 모신 전각으로, 그 옆 건물은 설법전인데 원래는 요사채와 사무실, 공양간이 모두 모여 있던 건물로 건물 내벽을 터서 큰 공간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극락전에서 보면 하류에 홍제천 다리가 있고 홍제천을 따라 길게 데크길이 조성되여 있다, 보이는다리옆 숲이있는 곳은 북한산 자락길에서 홍제천으로 내려오는 계단이다,
서대문이음길은 북한산 자락길에서 홍제천 상류로 이어진다,
홍제천 위 고가도로는 북악터널에서 한강으로 이어지는 내부순환도로다
옥천교와 옥천1교 아래 홍제천변으로 올라가다보니
옥천1교 아래서 혼자서도 잘 놀고 있는 녀석도 있다,
옥천암에서 홍제천 상류로 약 500m지점에 탕춘대성 오간수문이 있다, 탕춘대성은 한양도성 서북쪽인 인왕산 기차바위에서 시작해 북한산 향로봉 아래까지 이어지는 약 5㎞의 산성으로 탕춘대성(蕩春臺城)은 국가 사적으로 지정된 성(城)이다,
탕춘대성은 조선 후기 독특한 방어체계를 엿볼 수 있는 성곽유산으로, 1702년(숙종28년) 우의정 신완의 건의를 받아 1715년부터 건설이 시작돼 영조 시대인 1754년 완성됐다.
탕춘대성은 도성 서쪽을 방어하면서 군량을 보관하고, 전쟁 시에는 한양도성과 북한산성에 보급하는 중요한 기지로 활용되고 동시에 두 성을 이어주는 통로 기능도했다. 아울러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인근 성곽의 군량 보급과 지휘를 담당했다.
국내에서는 보기 드문 차단성이자 연결성(통로성)의 역할을 하는 성곽으로 홍지문(弘知門)과 오간수문, 암문 등 성곽 부속 시설이 있다. 성 내부에 총융청 터, 평창 터 등 국방 관련 시설이 있다.
1920년대 초까지 축조 당시 모습을 유지했으나, 홍수로 홍지문과 오간수문 등 일부가 훼손돼 1976년 탕춘대성의 정문인 홍지문과 오간수문 등을 복원했다
장마철이라 홍제천에도 물이 많다, 시원한 물소리를 들을려고 동영상도 찍었다,
오간수문에서 나가는길 오간 수문 위 성곽 여장에 조금전 옥천1교에서 혼자 놀고있던 녀석이 여기로 따라왔다, 이 넘아 넌 여기서 그냥 그렇게 놀아라 난 바빠서 가야하니까, ㅋ
오간수문옆 홍지문이다, 이 문은 탕춘대성 정문이며 탕춘대성에는 3개의 문이 있는데 홍지문 (弘智門) 과, 오간수문(五間水門), 탕춘대성암문(蕩春臺城暗門) 이다,
1715년(숙종 41)에 서울의 도성과 북한산성의 방어시설을 보완하기 위해 탕춘대성(蕩春臺城)을 건립하고 홍지문(弘智門)과 오간수문(五間水門)을 설치했다.
홍지문은 서울의 북서쪽 방어를 위한 탕춘대성의 출입문으로 한북문(漢北門)이라고도하며 홍지문에 연결된 탕춘대성은 서쪽에 있어서 서성(西城)이라고도 했다.
원래 탕춘대성이 있는 세검정 일대는 삼국시대부터 한산주(漢山州)로서 군사상 중요한 지역으로. 임진왜란 이후 도성 방어체계의 완성이라고 볼 수 있는 성이다.
홍지문과 탕춘대성 안내도 간략하게 적혀있는 안내판도 있다, 1921년 대 홍수로 오간수문과 홍지문이 무너졋어나 1977년 탕춘대성과 함께 다시 지었다는 안내다,
홍지문에서 상명대학교입구 다리를 지나가면 세검정교차로 삼거리가 있다, 건널목을 건너 자화문로 로 가면 상명대학교 석파랑 버스정류장이 있는 곳, 석파랑 현판이 보인다,
잠시 위로 올라와서 석파랑을 내려다 보면 이런 한옥이 보이는데 석파정(石坡亭)은. 인왕산 기슭에 위치한, 조선말기의 대표적인 별장으로. 흥선대원군의 별장으로 더 잘 알려졌다. 정자 주변으로는 큰 바위와 노송이 많은데 정자의 이름 또한 거기서 유래한다. 석파(石坡)는 정자의 앞산이 바위여서 붙여진 이름이다. 흥선대원군의 아호인 석파 역시 석파정에서 나왔다.
황현의 『매천야록(梅泉野錄)』에는 철종 때 영의정을 지낸 김흥근의 별장이였고, 숙종 때는 조정만의 별장 소운암(巢蕓庵)이 있었다. 고종 때 흥선대원군이 팔기를 청했으나 김흥근이 거절했다. 이에 하루만 묵어가기를 청했고 고종과 함께 다녀갔다. 임금이 묵은 곳에 신하가 살 수 없는 것이 관례라 자연스레 흥선대원군의 소유가 됐다.
석파정은 당시부터 도승의 경승지로 손꼽혔다. 인왕산 기슭에서 계곡이 흘러들어 연못을 이루고 큰 바위와 소나무가 안위하듯 집을 품었다. 본래 일곱 채의 집이 있었으나 지금은 안채와 사랑채, 별채 등의 세 채가 남았다, 인접한 석파정 음식점들이 일대를 에워싸고 있기도 하다,
길은 계속해서 자화문고개로 이어진다, 국내최초 중국요리 명장으로 지정된 하림각으로 가면
하림각은 AW컨벤션센터에 위치한 중식당으로 중국 정통 요리를 하는곳인데. 가게 내부는 격조있는 인테리어로 구성되어 있고, 결혼식 및 가족행사 등 각종 연회를 이용하기에도 적합하다.
자화문터널이 보이는 곳, 자화문터입구, 석파정 버스정류장까지왔다, 조금전에도 석파정 버스정류장이 있었는데 또 석파정? 헷갈릴 수는 있지만 이곳은 석파정미술관이 있다, 사립미술관으로 흥선대원군의 별서인 석파정을 함께 관리하고 있다. 지난 2012년에 개관한 미술관이다,
인왕산을 지나 안산으로 가야 하는데 불볕 더위라 자하문터널 입구에서 버스로 종각으로 왔다, 종로 SK 본사 옆 골목에서 더위를 식히며 대구탕으로 간단히 뒤풀이를 했지만 여름철 땡볕에 걷는 건 사실 힘들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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