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흐르듯이 순리대로
봉화길 제8길 자채방앗길 - 3, (무우정 ~ 앵산교)24년 9월 22일 본문
무우정(舞雩亭) 에서 자채방아마을 건물 앞으로 내려간다, 돌고 돌아야 하는게 물레방아인데 이곳 물레방아는 지금 파업중이다,
자채방아마을의 자채(紫彩)는 붉은 빛이 감도는 벼 품종을 뜻하는 말이다,
이제 舞雩亭을 떠나야 하는 시간이다, 언덕에 있는 무우정을 돌아보고 나가는 길
앞에는 이렇게 보이는 건물이 있다, 양녕대군 역사관이다, 이곳에 양녕대군 역사관이 있는 이유?는 조선의 4대 임금인 세종대왕의 큰형이자 태종 이방원의 장남인 양녕대군이 이천에서 15년여간 유배 생활을 할 당시
이천군에서는 마을에 있는 개울을 쉽게 건너도록 징검다리를 놓았는데, 이것이 바로 마을 이름이 되어 군량(郡梁)리가 되었다,
임금님께 진상을 했던 자채벼가 생산되었던 이곳은 풍요로운 들판 “군들” 군량리와 양평리 일대를 양녕대군의 '군' 자와 들판을 뜻하는 '들' 을 합쳐 '군들'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이 일대가 조선 초기 양녕대군의 식읍이라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식읍?은 = 개인이 세금을 거두어 생활하는 땅을 말한다)
아래 비석의 글씨는 양녕대군이 중국의 문호 소동파의 명작인 후적벽부를 초서체로 쓴 작품이다. 양녕대군의 친필은 원래 목판에 새겨진 것으로 사당 지덕사에 원본이 보관되어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감상할수 있게 오석에 원형 그대로 옮겨 새겼다고 한다. 예부터 초서는 서예의 꽃이라 불리울만큼 재대로 쓰는 사람이 흔하지 않았다고 한다, 양녕대군의 필체는 고금의 서예가들이 극찬할 만큼 빼어났다고 한다.따라서 이 초서체 작품은 그 진수를 확인할수 있는 걸작 중의 걸작이다.
양녕대군은 폐세자가 되어 이천에서 유배아닌 유배 생활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는 소동파가 황주에 유배되어 기거했던 설당과 임고정과 같은 이름을 붙여 집과 정자를 짓고 그곳에서 후적벽부를 썼다고 한다. 이글을 보면 당시의 양녕대군의 심정과 풍류를 가히 헤아려 볼수가 있을것 같았다
양녕대군 역사관을 나가 다시 봉화길을 이어간다
이어지는 길은 여전히 양화천 둑길이다,
둑 안쪽은 비옥한 농지가 펼처져 있고 둑길은 가도 가도 언제 끝이 날려는지?
자채벼는 이천을 중심으로 인접해 있는 일부 지역에서만 재배되었던 우수한 품질의 올벼인데.
자채 벼는 경기 남부의 일부 지방에서 재배하는 재래종으로 품질은 좋고 수량은 적으며 성숙기가 매우 빨라 햅쌀 시장에서 항상 10% 이상 높은 값을 받는다고 한다,
땅이 비옥하고 재배하면서 손이 많이 가기 때문에 재배량은 극소수에 불과 했다.
자채 벼 쌀밥은 희다 못해 푸른 기가 돌며 기름이 흐르고 밥맛이 좋아 음력 6월 보름이면 왕에게 진상되었다고 한다,
여기는 한우농장 입구다, 농장 규모는 상당한데 지금은 텅 비여 있다, 여기까지 오는 내내 한우농장들은 모두 개점 휴업 상태다,
이제 두번째 다리를 만난다, 이 다리 이름은 군량2교다,
군량2교를 지나 가는길
하천변으로 이어지는 긴 둑길은
볼거리가 없어서 일까?
서서히 지쳐가는 것만 같다,
더욱이 오늘은 20여km를 가야 하는 날이라서 평소보다
2배 속으로 가야 하기 때문일까?
가고 또 가도 끝없이 이어지는 둑길이 그리 반갑지 만은 않은 길이다,
그래도 쌀이 익어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한 들녁이 보이는 것 만이라도 위안이 된다, 올해는 이상기온으로 벼에 치명적인 해충인 벼멸구가 창궐하면서 농가의 피해가 커지고 있다는 소식이 호남을 시작으로 충남과 경남지방으로 빠르게 번지고 있고
그 피해는 축구장 36,000개에 달하는 면적의 논이 초토화되였다고 하는데 여기는 벼멸구 피해가 없는것 같아서 다행?이다, 보이는 벼는 익을대로 다 익은 것같다,
그리고 3번째 다리를 만나게 되는데 다리 이름은 군량1교다,
군량 1교는 들녁과 들녁을 이어주는 좁은 다리로 농로전용 다리인듯 하다,
그래도 길이 있어니 가야하지만 이제는 조금 지친다<
허허벌판을 따라 가다가 수중보를 보게되는데
수중보가 있는곳 건너편에 작은 마을이 있다, 그러나 저 마을이 어디인지?는 초행길이라 알 수 없다
수중보가 있는 곳 위쪽에는 상봉교가 있다
그리고 상봉교를 지나 올라가면 다시또 다름 다리가 보이는데 보들교다,
양화천 지천을 따라가는 양화천로에 있다,
여기서는 여태까지 걸어 온 양화천 둑길로 건너가는 길이 없다,
그래서 이렇게 오른쪽으로 올라가다가 천을 건너가는 다리가 있는 곳에서 다시 양화천 둑길로 가야 한다,
이 다리는 복평교다,
복평교를 건너 가다보니 다리 건너 양화천로(路)에는 버스정류장도 있다,
이 버스 정류장은 상봉리와 서경리로 가는 "보뜰" 버스 정류장이다,
복평교를 건너 가서는 직진이다,
그리고 첫번째 농로 사거리
연꽃 밭에서
왼쪽으로
양화천 둑길로 나간다,
양화천 둑길로 돌아왔다, 다리가 있었어면 바로 이어왔을 텐데 ㄷ 자로 돌아서 다시 둑길로 돌아온 셈이다,
봉화길 제 8길은 긴 둑길의 연속이다,
여기까지 온 둑길만 하더라도 7~8km는 족히 되는것 같은 먼길이다,
길고 긴 둑길이 지겹기는 하지만 이 둑길은 탈출로도 없는 길이다,
탈출로가 있다면 차라리 돌아가고 싶을 정도지만
마음만 그렇다,
이제 조급함을 버리고
느긋하게 다시 마음을 다잡고
천천히 이어간다,
오늘은 오후 3시까지는 설성면 행정복지센터로 가야 이천으로 가는 3시 15분 버스를 탈 수 있어 마음이 급하다,
그기다가 같은 패턴의 길을 하루 종일 걷는 것 같아서 마음이 급하니 육신도 힘들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누런 벼가 익어가는 넓고 광활한 들녁이 있어서다,
여태까지 양화천 둑길을 따라 오면서 본 것은 수중보가 있으면 어김없이 교량이 있었다 여기도 마찮가지다,
흐르는 하천은 양화천이라고 안내되여 있고
위쪽에 있는 다리는 앵산교다, 봉화길 제8길 3편은 여기까지다, 다음에는 설성면행정복자센터 봉화길 제8길 마지막 기록이다, 구간별로 한편으로 기록을 하면 좋을텐데, 워낙 사진이 많기도 하지만 하나라도 더 상세한 기록을 남겨야 후일 생생한 일기로 남을 것 같아서 나누어 기록한다,
봉화길 제8길 전체 트레킹 기록입니다, 참고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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