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흐르듯이 순리대로
경기옛길 평해3길 마재옛길, 다산생태공원 ~ 운길산역(2026년 5월 24일) 본문

다산생태공원 입구 연꽃단지 ↑ 가 보인다, 정약용유적지에서 들어오면 끝 지점, 한강변에 있는 공원이다, 들어가는 길에서 두번째 다리를 건너 가

수변쉼터로 가는길 한강변은 보이는것 만으로도 시원하기도 하지만 잘 어우려 지는 나무들과 한강이 묘한 조화를 이루는듯 하다,

이곳에는 여러개의 이름이 있는데 연꽃단지, 수생식물원, 수변쉼터 등의 이름들은 안내판에 있다

다산생태공원에도 경기옛길 평해3길은 경로가 지정이되여 있지만 우리는 굳이 지정된 길을 따라 가야하는 이유가 없다, 이 길로 가던 저 길로 가던 모두 다산길이자 평해 3길이다,

두물머리 방향의 남한강은 고요하다, 남한강 이기도 하지만 팔당호수 이기도 한 다산생태공원일대는 평화롭다, 그리고 아름다움의 극강을 보여준다,

요즘들어 핫 해진 황토길도 있고

우거진 숲 그늘에서 돗 자리 펴고 앉아 조용히 쉬고 있는 가족들도 많이 보인다,

오늘은 부처님오신 날 공휴일이라서 일까? 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다산생태공원

여유와 아름다움이 함께 묻어나는 색다른 풍경이 넘처나는 이곳에서

잠시 다산 선생의 저서 를 살펴 본다,
欽欽新書(흠흠신서)
1822년(선조22)에 간행된 책으로 형사사건을 다루는 관리들의 자세에 관하여 적었다, 조선은 물론 청나라의 역대 모범적인 판례를 선별하여 해설과 비평을 담고 있으며 살인사건 실리의 실무 지침서다,
與猶堂集(여유당집)
여유당이란 정약용선생이 마현에있는 고향집에 건 당호이다, 1800년(정조24) 국와의갑작스러운 즉음으로 고향으로 돌아와 형제들과 경전을 공부하며 그곳의 당호를 여유당 이라고 하였다, 여유 란? 겨울에 시내를 건너는 것 처름 신중하게 하고 사방에서 나를 엿보는 것을 두려워 하듯 경계하라, 는 뜻으로 노자의 도덕경 15장에 나오는 말이다, 세상사와 자신에 대한 경계의 뜻이 담겨있다,

牧民心書(목민심서)
1818년(순조18년) 먹민관 즉 수령이 지켜야 할 지침을 밝히면서 관리들의 폭정을 비판한 책으로 48권 16책이다, 각 편은 6조로 나누어 72조로 편제 되여 있다, 목민할 마음은 있으나 행 할 수 없어서 마음에 둔다하여 心書라고 하였다,
雅言覺非(아언각비)
1819년(순조19) 국민의 언어, 문자 생활을 바로 잡기 위하여 지은 책이다, 우리나라 어휘 450여개를 대상으로 중국의 고문헌이나 시문 등을 상고하여 그 변화와 잘못을 고증 하고 있다, 이 책은 총 200여 항목으로 나눠어 바른 말로서 그릇된 점을 깨닫게 한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상의필요
18158~1817년 喪禮를 간편하게 치르는데 필요한 중요 사항을 역은 책이다, 중국과 우리나라가 풍속이 다르고 성품이 달라서 회통(會通) 하기가 어려움을 느껴 상례(喪禮0를 행하는데 손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요점을 추렸다, 1815년 겨울에 일가인 학가(學稼)가 아버지의 병환에 대한 처방을 부탁하여 이를 계기로 일가(一家)에 유용하게 쓰이기를 바라면서 저술한 자료이다,
경세유표(經世遺表)
1817년(순조17)해배 1년전에 지은 책으로 원래 제목은<방례초본>이다, 1표 2서의 첫 번째 작품으로 행정기구의 개편을 비롯하여 관제, 토지제도, 부세제도 등 조선의 모든 제도의 개혁원리를 제시한 책으로 부국강병을 이루는 것에 목표를 두고 저술 했다,

민보의(民堡議)
1812년(순조12) 국토방위 책략에 관해 자신의 견해를 밝힌 책으로 조선 후기 속오군제가 무너져 복원하기 힘든 상황에서 민간 자치의 상비적인 방위체계를 구상한 자료다, 민보군(民堡軍)이 민간을 주도한다는 점에서 관군과 구분되고 전략 요충지에 민보를 설치하여 유사시 대비한다는 점에서 방위체제의 새로운 구상이였다,(원래 표지는 사암별집 이라 되여 있다,
악서고존(樂書孤存)
조선 후기 우리나라의 음악 이론과 악기에 대한 기록을 문헌적으로 고증한 이론서 이다 다섯 갈래의 논문에서 율의 본질에 대한 해명으로 부터 시작하여 율관제작에 관한 이론, 12율에관한 이론, 5음과 6율, 12율에 관한 이론, 악기제작과 사용법등, 넓은 범위에서 해박힌 지식과 실천적 경험에 기초하여 음악 이론의 과학적 입장을 천명 하였다, 여유당전서에 전하고 있다,

역학서언(易學緖言)
강진에서 유배 생활을 할때 쓴 책으로 역학에 관한 여러 이론에 대해 해명했다, 모두 22항목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주역사전의 서론 구실을 하는 것으로 이를 역학서언 이라는 제명으로 포괄하여 편집해 놓은 것이다,
아방각역고
1811년(순조 11) 우리나라 강역에 관한 역사 지리서다, 이 책은 고조선에서 발해에 이르기 까지 우리나라 강역의 역사를 각종 문헌에서 기록을 뽑아 고증하고 자신의 견해를 첨부하여 그 내력을 자세히 밝히고 있다,

삼미자집(三眉子集)
선생은 태여나면서 부터 영특하여 4새때 한자를 익히고 7세에 산이라는 한시를 지었다, 10세 이전에 지은 <삼미자 집>이라는 문집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전해 지지 않는다, 삼미는 정약용의 호다, 어릴때 천연두를 알아 오른쪽 눈썹에 흉터가 남아 눈썹이 세개로 보인다고 하여 삼미 라고 불렸다,
마과회통( 麻科會通)
1798년(정조22)에 마진(홍역)을 다룬 의학서로 이헌길의<마진기방>을 중심으로 중국의 많은 마진 전문서를 참고하여 저술했다, 우리나라에 유행한 마진을 중심으로 하여 그 병중을 관찰하고 치료 방법을 기술 하였고 부록에 제너의 우두방을 소개하고 있다,

해도 해도 끝이 없을 것 같은 다산선생 이야기는 이 쯤에서 마치고

정약용의 정신이 깃든 다산생태공원으로 돌아 와서

생태공원을 나가 생가로 간다,

다산생태공원에서 선생의 생가는 그리 멀지 않다, 장미가 곱게 핀 길을 지나 생가로 가는 길목에는

다산생태공원과 다산유적지 일대의 배치도가 있고

다산유적지로 왔다, 크고 웅장하게 보이는 이 건물은 다산기념관이다, 오늘은 일요일이라? 문은 닫겨있다,

다산기념관을 지나 들어가는 길을 따라가면 가는 길에

다산선생의 牧民心書 와

경세유표(經世遺表)

흠흠신서(欽欽新書)등의 이야기가 나열 되여 있다,

다산유적지로 들어가는 문은 마재마을 이다,

다산선생의 생가가 보이는데 첫 번째로 보이는 건물은 사랑채다,

문이 열려있어니 마당으로 들어 가보면 안채도 활짝 열려 있다,

생가 뒤 언덕에는 선생의 묘가 있다,

다산 정약용 선생 지묘 비문은 자찬묘지명 이라는 이름으로 정약용선생이 회갑이던 1822년 선생의 생애와 사상, 업적을 묘지명 이라는 문체를 빌어 사실대로 적은 것과, 문집에 넣기 위한 집중본과 무덤속에 넣을 광중본이 있는데 아래 명은 광중본으로 민족문화추진회의 국역 글이다


다산선생은 1836년 현존 2년 6월 22일 마현에서(남양주 조안면 능내리) 별세 하셧다, 선생의 묘지 아래녁 생가 반대편에는 다산선생 사당이 있는데 후손들은 매년 기일(忌日)에 이 사당에서 제사를 올린다, 또한 다산의 학문과 정신을 기리기 위해 후손뿐 아니라 학계와 지역 사회에서도 다산제(茶山祭)라는 이름으로 추모 제향을 올리고 있다

다산 생가는 여유당(與猶堂)이다, 정약용이 1800년 정조 승하 후 고향으로 내려와 사랑채에 ‘여유당’ 현판을 걸었는데 여유(與猶)는 도덕경의 구절에서 따온 말로, “살얼음판을 건너듯 조심하고, 사방을 두려워하듯 신중히 살라”는 뜻으로.이는 다산이 유배와 역경 속에서도 학문과 삶을 경계하며 살겠다는 다짐을 담은 이름 이라 한다,

여기서는 어떤 곳을 배경으로 하던 인증샷은 여류롭기만 하다,

다산유적지를 나와서 운길산역으로 간다, 거리는 약 5,2km이고 1시간 30분 정도는 걸린다,

이길은 도로를 따라 가야하는데 인도가 거의 없다, 일요일은 통행 차량이 뜸한게 다행이다,

철로였던 자전거길 옆 다산로 오른쪽은 한강 팔당호다, 자전거로 달려가면 이런 풍경이 보이지 않겠지만 걸어가는 사람에게는 아름답고 멋스러운 팔당호를 즐길 수 있는 이런게 덤이다, 빠르게 달려가는 길과 천천히 걸어면서 아름다움을 느끼면서 가는 길의 차이는 무었일까? 이런 절경은 아름답다고 해야 하나? 멋스럽다고 해야 하나?

아래 사진은 길옆 쉼터에 전시되여 있는 사진이다, 얼마나 아름다운 곳이면 사진도 전시해 놓았을까?

조선 후기 화가인 겸재 정선이 이 부근을 그린 독백탄이라는 작품도 남아있다 그림에는 예봉산과 수종사가 있는 운길산과, 족자섬이 나타나 있다, 족잣여울로도 불리는 독백탄은 족자섬 앞에 있는 큰 여울을 말한다, 겸재 정선은 이곳의 수려한 풍경을 보고 감탄을 자아 냈던 모양이다 라는해설도 붙어있다,

이런 전경은 그저 멍 하니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충분한 휴식이겠다, 오래도록 보고만 있어도 좋을것만 같은 풍경?,

스쳐 지나가는 풍경이 아니라 고개만 돌리면 다가오는 아름다운 풍경~~

이런 아름다운 풍경은 잠시 앉아서 둘러 보는 것 만으로도 여행자의 피로가 풀릴듯 하다,

여기는 능내역 에서 500m, 봉안터널에서 2km, 그리고 가야하는 운길산역은 3,6km쯤 되는 지점이다,

더시 다산로에서 자전거도로로 올라왔다,

자전거길은 함께가는 길이기도 하지만 조금은 그늘도 있는 길이다,

걸어가는 사람들과 달리는 사람들이 어우려 지는길이기도 하지만

기차가 달리던 길이라서 숲 그늘 보다는 볕이 많은 길이기도 하다,

잠시지만 숲으로 들어가면 얼마나 시원한지? 걸어 본 사람만 아는 비밀? ㅋ

이런 길에서는 길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저 걷고 걷고 또 걷는것 만이 길을 줄이는 유일한 방법이다,

자전거도 사람도 모두 20km가 최고 속도인데 전속력으로 달리는 자전거는 흉기와 다름이 없다,

느리게 걷는 사람들에게 보이는 경치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보상이 아닐까?

자동차 도로의 신호등이 아니라 자전거 도로 전용 신호등이 있는 이곳?은

남양주시 조안면 조안2라 입구다,

길은 이제 양수리로 건너가는 갈림길 이정표가 있는 곳 까지 왔다, 양수리로 건너가는 양수대교는 약 1km의 다리다

자전거 길에서 잠시 인도가 있는 도로로 내려 와서 걷는다, 여기는 철도와 다산로가 나란히 함께 가던 도로다,

이제 양수대교 입구까지 올라 왔다,

가는 길은 다시 자전거 도로다,

잠시 자전거 도로를 따라 가다가

길 건너편에 보이는 운길산역 안내판을 확인하고

전원주택처름 집 몇채가 있는 작은 마을로 들어가

나즈막한 언덕을 넘어가면

전면에 운길산역이 보인다,

여기는 운길산역에서 예봉산으로 가는 등산로 입구다, 운길산역 200m전이다,

운길산 역전에 즐비하게 있는 음식점들 중 한집에 둘러 얹아 미나리 전에 소맥 한잔으로 갈증을 푼다,

평지길 14,3km에 6시간 가깝게 걸었어면 1시간에 2,6km 정도니 많이 즐기고 충분히 쉬면서 걸었다는게 된다, 빠르게 걷는 것 보다 쉬엄 쉬엄 걸어면서 자연을 즐기는 여우로움도 여행의 멋이 아닐까? 트랭글 앱에 찍힌 기록만 보더라도 팔당호수 둘레길을 걸어면서 보고 느낀 강변길의 아름다움이 제대로 묻어 나는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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