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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흐르듯이 순리대로

경기옛길 평해길 제9길 구둔고갯길下(임도입구~양동역)2022,7,10, 본문

경기옛길(조선시대 7大路)/평해길

경기옛길 평해길 제9길 구둔고갯길下(임도입구~양동역)2022,7,10,

물흐르듯이순리대로 2022. 7. 22. 00:01

산중에 딱아 놓은 큰 터를 지나서

이어가는 임도

이제 가야하는 매월교까지는 2,2km 이고

매월교에서 평해9길 구둔고갯길의 종점인 양동역까지는 3km 라고

이정표가 알려주는 정보에 따르면 5,2km만 더 가면 끝이다,

길은 점점 더 그늘은 없고 땡볕 으로 바뀐다,

이런 길을 얼마나 더 가야 할까?

앞에 보이는 바위에 벌통이 있다,

지나가면서 보니 벌은 이사가고 없고 통만 있는 것 같다,

어찌되였건 아무 것도 보이는 않는 산길이니

그냥 길을따라 가는일 밖에는 없다,

두번째 차량 차단봉도 지나간다,

그린팜 영농조합법인 입구로 왔다,

그러면 여기는 양동면 매월길77-96로 양동면 매월리 34번지다,

매월교는 여기서 1,4km가 남았다,

그린 팜 영농조합법인을 지나니 외진 곳이지만 이런 주택도있다,

마당에 수도가 보여서 주인을 찾았어니 빈집이다, 수도를 틀어서 물이라도

뒤집어 써보고 싶었어나 물도 안 나온다,

그린팜 영농조합법인 이후부터는 다시 아스팔트 길이다

온도 체크를 했더니 35도-36도다,

그래서 일까? 거의 탈진 상태다, 가지고 온 물은 이미 바닥이 났고

바람도 없는 한증막 같은 길을 걷는날

가는길 아랫쪽에 집이 보인다,

집은 보이는데 내려가는 길도없다,

사실 길이 있어도 저 집으로 갈 생각도 없지만

오랜시간 먼 길을 걸어왔더니

이제 서서히 지처가는 시간 이기도 하다,

다시 또 보이는 집들이 몇 채있다,

지도검색을 해 보니 보이는 제일 큰 집은 능목식당이다,

식당이면 에어컨이 있을테니 시원할텐데,

그래도 그곳으로 갈 형편이 안된다,

한참은 돌아가야 하니까, 자동차로 가는게 아니고 걸어서 가야하니까,

터널이 보인다, 좁은 포장 길은 구, 철길이였다,

구둔역에서 매월역을 지나 양동역으로 가던 구,철길의 흔적은 이렇게 남아있다,

구, 철길 터널을 지나간다,

앞에는 자재를 쌓아 놓은 공터도 보인다,

철길 터널 옆에 도랑이 있다, 水(물)량이 그리 많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발목 정도는 담길 깊이다, 그냥 지나갈 수 있겠는가? 조금 깊은 물 웅덩이를

찾아서 머리를 박았는데(군대용어) 찬 물이 뜨거워 질 것 같다, 머리도 적시고 세수도 하고

발도 담갓더니 천국에 가 보지는 않았지만 천국이 있다면 이런 곳일 것같다,

구, 철길 터널을 지나서

도로를 건너 매월천 둑으로 간다,

도로 건너 매월천 둑방길에 택풍당(이식)안내판이 있다,

안내에는 양동면 소재지에서 319도로를 따라 1km정도를 가면 오른쪽으로

쌍학리 안골로 들어가는 길이 나온다, 안골은 조선중기 대제학을 지낸 택당 이식이

광해군11년(1619년)에 귀향하여 만년을 보낸 곳으로 택당은 여기에 태풍당을

짓고 후학을 양성 했다고 한다 는 내용이다,

이식이 택풍당을 짓게 된 계기를 내가 처음 골자기 어귀에

터를 잡고 몇칸 짜리 집을 지어놓고 살았다, 그런데 얼마 뒤에 보니 그 땅이

관로(官路)가에 위치해 있는 데다가 노복이 단약(單弱)해서 역로(驛路)로 왕래하는

사람들을 응접하기에 고달픈 점이 있었고

내가 또 잇다라 재난을 당하는 바람에 일을 주선할 능력이

부족하기만 하였다, 그래서 골자기 안의 여사(오두막집)로 들어와 살면서

택풍당을 짓게 되였어니 처음부터 뜻을 두고 한 일은 아니였다,

이 기록으로 보면 당시 평해로가 안골 앞으로 나 있었고

통행하는 사람들로 붐비였음을 알 수 있다, 아무튼 이식은 이러한 번잡함을

피해 안골 골자기에 택풍당을 짓고 자손과 제자들을 가르쳣다,

현재 택풍당은 양평군 향토유적 16호로 지정되였고

건물은 1980년대 종중에서 보수한 2층 누각으로 정면 3칸 측면 3칸이며

2층 누각에는 툇 마루를 달았다, 팔작 지붕에 겹처마 형식이며 외관과 담장을

갖추고 방에는 갓을 비롯한 이식의 유품이 보관되여 있다,

이식의 이야기가 길어 졋지만 여하튼 이식이 살았던

안골이 평해로 엿음은 확실해 보인다, 경의중앙선 아래 매월천 매월교를 건너간다,

이제 부터의 길은 매월천 둑방길이다,

매월천은 폐역인 매곡역이 있는

양동면 매월리에서 부터 흘러 내리는 하천이다,

경의중앙선은 끝없이 이어지지만

원주역이나 서원주역에서 잠시 정차했던 KTX는

총알처름 순식간에 지나가는게 보인다,

매월천 둑방길로 내려 가는길

매월천을 건너가는 인도 전용 출렁다리도 있는데

금방이라도 주저 앉을 것 같은 출렁다리다,

매월천 둑방길에도 그늘은 없다,

뜨거운 태양열을 온 몸으로 느끼면서 가는길

오늘따라

솔개바람도 없는 날이다 보니

양동역 1,7km

아직도 30분은 더 가야하는 거리다,

한 발자국도 걷기 힘든시간

들녁에 자리한

느티나무는 미동도 없이 서 있다,

농지 한가운데 있는 집들도 보인다,

이제 서서히 양동면소재지인

석곡리 일대가 눈에 들어오는 거리다,

석곡천에 놓여진

석곡교까지 내려 간다,

석곡천 둑길에서

갈림길 전신주 이정표가 알려주는대로 왼쪽으로 간다,

인삼농사를 짓는 밭 끝에

양평부추공동집하장도 있는게 보인다,

학둔지아래길 까지 왔다, 

오른쪽 양동면사무소와 양동역이 있는 곳으로 가는 도로다,

349번 양동로를 건너

학둔지아래길을 따라 양동면사무소 방향으로 간다,

양동면은 1895년 우리나라 최초로 의병이 봉기한 고장이다,

특히 국지도 349번을 사이에 두고 매월리와 마주보고 있는 석곡리는

의병마을로 알려져 있다,

석곡리는 옛 면소재지인 새우개 마을이 있었던 곳으로

의병장 안승우가 태여난 사이실과 의병장 이춘영이 살던 목골이 있는

역사가 깃들어 있는 마을로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석곡리 사이실

마을에 양평 의병 묘역이 조성되였다,

옛 지평현의 용문면, 지평면, 청운면, 양동면 등지에서

의병들이 모였으므로 이들 지역이 모두 의병 고장이라 할수 있지만

그 중심에 석곡리가 있었다, 석곡리 사이실은 의병장 안승우의 생가터가 있는

고장이기도 하지만 안승우 외에도 아버지 안종응, 아들 안기영등 3대가

의병활동을 벌였던 우리나라 의병사에 기억될 핵심 마을이다,

또한 안승우, 이춘영, 의병장은 이곳 청운동에 살던

지평현 포군장인 김백선과 함께 의병 400여명을 모아 제천으로 내려가

제천의병과 합류하여 호좌의 진을 이끌었다,

당시 지평출신의 의병들은 산포(山砲)계 를 중심으로 사냥에

종사하던 포수 출신들이 많았기 때문에 조직력도 대단했고 화승총에 비겨

성능이 월등한 엽총을 가지고 있어 호좌의진 실질적인 전투력이 였다,

이곳에서도 의병을 토벌하려는 일본군과 이곳에 주둔하는 의병들

사이에 치열한 격전이 벌어졋다,1907년 정미년은 고종 강제폐위, 정미7조약,

군대해산이 벌어진 해다,

이에 분노한 의병들이 전국 각지에서 봉기했다,

이중 양동면은 이인영 의병대장이 이끄는 의병진이 주둔했던 곳이다,

삼산리 전투는 그해 11월 6일부터 사흘간 벌어졋다,

일본군 토벌대는 수적으로 열세였지만 말을 이용해 이동이 빨랐고

신식무기로 무장했는데 반해 의병들은 개인화기는 미약 했지만 수적으로 우세하고

지형지물에 밝아 나름대로 용감히 씨웠다, 이 전투에서 일본군 토벌대에게 상당한 타격을

입혓지만 의병진도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자 산속으로 흩어지면서

훗날을 도모하게 된다,

이후 서울 진공작전은 실패로 돌아 갔지만

삼산리 전투는 이 작전을 계획대로 수행할 수 있게 한

의병 항쟁사에서 의의가 큰 전투였다,

양동면 사무소를 지나 600m정도를 올라가면

양동파출소가 있다,

양동파출소에서도

보이는 양동역전 사거리 왼쪽이 양동역이다,

양동역 1번 출구 양동역 정면이다,

여기서 경기옛길 평해길 제9길은 끝이나고 양동역은

경기옛길 평해길 제10길 출발점이다,

청량리로 가는 16시 56분 누리호 열차로 돌아간다,

청량리역 도착이 18시2분이니 소요시간은 1시간 6분이 걸린다,

일신역에서 이곳 양동역까지 17,43km이고

소요시간은 4시간 1분이 걸렸다, 물론 휴식 시간은 별도다,

다음에는 경기옛길 평해길의 끝, 강원도 경계까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