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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흐르듯이 순리대로

경기옛길 평해8길 고래산길 下,(무왕3리 갈림길~일신역)2022년 6월 26일 본문

경기옛길(조선시대 7大路)/평해길

경기옛길 평해8길 고래산길 下,(무왕3리 갈림길~일신역)2022년 6월 26일

물흐르듯이순리대로 2022. 7. 8. 00:52

무왕3리 갈림길을 지나서 가는 임도

경기옛길 이정표는 있는데 거리 표시는 지워져 있다, 

이정표 기둥에 남양주라고 적혀있다,

남양주시에서 제작해서 양평군 구간에 기증을 했나보다,

이제 길은 옥녀봉과 즐바위산 등이 보이는 곳이다, 

6월의 싱그로움과 그 속에서 유유자적하는 사람들,

여유란 이런 것이 아닐까?

곳곳에 "라사 1560 3713" 등의 국가지점번호도 있다

국가지점번호는 전 국토를 10×10m의 격자형으로 구획한 지점에 부여한

위치 표시 번호다,

등산로나 해안가 등 주소가 부여되지 않은 지역을 중심으로

부여한 국가지점번호는 전국에 약 74,000여개가 설치되어 있는 위치표식 이다,

강활꽃도 보인다, 강활은 산형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풀로

강호리 라고도 부르는데 어린 순은 나물로 먹고, 그 뿌리는 한약재로 쓴다.

강활은 우리나라의 깊은 산골짜기와 계곡에서 자생하는데, 뿌리의 형태가 당귀와

비슷하고 잎이 구릿대(백지)를 닮아서 잘못 먹고 중독되는 경우도 있다, 

강활은 해열작용과 진통 작용을 하면서 관절의 활동성을 증가시키는

효과가 있고 감기로 인해 머리가 아프거나 팔다리가 쑤시고 저릴 때 뼈마디가 시큰거리고

아플때도 효과가 있다. 또한 몸이 붓거나 피부에 종기가 생겼을 때도 처방하는데

속병보다는 피부나 관절의 질환을 치료하는 약제로 쓰인다,

고래산 임도는 개망초 천국이다,

가는길 내내 개망초가 흐트려지게 피여 있다,

고래산 임도 곳곳에 많은 시그널을 걸어 놓았다,

먼길이기도 하지만 산길이니 행여라도 길을 잘못 들면 조난을

당할 수 도 있어니 그런가 보다,

가는길 한켠에서 간식겸 점심을 했다,

하루 종일 사람은 물론 새 한마리도 구경을 못한 임도라서

어디서든 앉어면 쉼터다,

흐린 날씨에도 녹색의 숲이 빛을 자체 발광하는 고래산 임도

걷기에는 최적의 길이다,

시그널은 어디라도 있고

싸리꽃도 만개 했다, 싸리꽃은 5월에서 8월까지 핀다,

싸리나무를 먹고 백살이 넘도록 장수 했다거나 한겨울에도 추위를 모르고 지내고

뼈가 무쇠처름 단단해저서 높은 곳에서 떨어저도 뼈를 다치지 않고 골다공증이나 관절염에 걸리지

않는다는 속설이 전해지는 나무로 그만큼 몸에 좋은 효능이 많은 나무라고 알려진 나무다,

안먹어 보았어니 그런지 어떤지?는 알길이 없지만, 책에는 그렇게 쓰여있다,

어쩜 이곳은 산중에서도 깊은 산 중인가 보다,

오동나무 정도는 기본이고 알 만한 나무들은 거의 있는 것 같다, 

지세가 약한 곳은 이렇게 담을 쌓아서

임도 관리를 안전하게 하고 있는 것도 느껴진다,

계속해서 옥녀봉 일대를 보면서 가는길

울창한 소나무 군락지도 만난다,

좌 우 모두 빽빽하게 들어 선 소나무 군락지,

수없이 많은 나무 종류 속에서도

소나무는 유독 돋보인다,

이어지는길 내내 

솔향이 싱그러운길

때마침 가량비가 촉촉히 내렸다,

물기를 머금은

숲의 향기가 코 끝을 간지럽힐 정도다,

소나무 군락지를 지나서 가는길

이 먼길에 고작 몇개 정도만 보이는 의자가 있다,

그러나 가야하는 길이 멀다보니 편히 앉아 쉴 여유 조차없다,

길고 긴 임도를 얼마나 걸었을까?

왼쪽 숲 속으로 교회 철탑이 보인다,

일신3리 금동교회 철탑이다, 이제 임도는 끝이다,

그리고 보이는 밭 

그 뒤로 일자형 산 줄기가 흐르듯이 흘러 내린다,

집들도 보이는 곳

여기가 고래산 임도 끝이다,

차들의 통행을 막아놓은 차단 철제봉도 있는 곳에서

345번 도로로 나간다,

길고 긴 임도를 지나서 일신 3리 금동마을 입구로 왔다, 

보이는 다리는 금동1교다,

다리건너 오른쪽에는 일신3리 금동 버스정류장이 있고

왼쪽에는 금동마을로 들어가는 입구다,

평해길은 금동교를

건너가지 않고 금동천을 따라 오른쪽으로 내려간다,

다리건너 에는

궁을행복요양원도 있는 곳이다,

금동천을 따라 금당천으로 내려가면서 보이는

지평면 일신리 들녁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일신3리에서 흘러내리는

금동천이 금당천과 합류되는 지점 금당 2교를 건너서

금당천 둑으로 올라간다,

금당천둑길로 올라가면서 왼쪽으로 보이는

저 산이 고래산 인가보다, 고래처름 생긴 산이라서 고래산이라고

부르는 지는 모르겠어나 오늘은 먼길을 돌아 왔다,

둑길에서 외롭게지고있는 엉겅퀴가 보인다, 엉겅퀴는 가장자리나

양지바른 풀밭에 주로 서식하며 몸 전체가 털로 덮여있는 여해 살이 풀로 잎 가장자리에

크고 작은 가시가 있고, 자주색 또는 적색 꽃이 한여름 가지 끝에 한 송이씩 피어

나는데 어린 잎은 나물로 먹고, 전체를 말려서 약재로 사용하는 식물이다,

금당천을 건너는

다리를 따라 가든길 반대편 둑으로 간다,

이길 오른쪽은 농지고

왼쪽으로 풀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곳이 금당천이다,

오른쪽 농지 건너

산 자락에는

마을이 있는데 여기도 지평면 일신리다,

금당천 둑길로 계속해서 올라가다보면

이번에는 일신2리가 보인다,

보이는 저 마을이 일신2리 중심지로 예전에는

초등학교 분교도 있었다는 마을이다,

보이는 저 건물이 지평초등학교 일신분교 였지만

지금은 폐교되였고 지도상에는 다산서원으로 표기가 되여 있다,

금당천과 일신천이 합류되는 지점 일신2리 마을 입구 일신리길 까지 올라 왔다,

이곳에 있는 평해길 안내에는 구둔마을 유래도 안내되여 있다,

무왕리의 거치리를 지난 평해로는 일신리 구둔마을로 들어간다,

일신리는 일제 강점기인 1914년 행정구역을 통폐합 할때 금동리, 지산리, 구둔리,

신촌리, 노일 등의 자연마을이 합처지며 형성된 마을이다, 일신리 라는 마을 이름은

노일리와 신촌리 라는 지명에서 한 글자씩 따서 지어진 것이다,

 하지만 본래 일신리로 합처진 자연마을의 으뜸마을은 구둔리였다,

애초 구둔리 라는 이름은 임진왜란 당시 왜군을 물리치기 위해 마을의 산에 아홉개의

진을 설치했던 것에서 유래가 되였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아홉구(九) 진칠 둔(屯) 그래서 구둔마을

이라고 불렷다, 또한 1907년 정미의병이 결성 되였을때에는 이 마을에 있는 구둔치 고개에서

의병과 일본군의 대대적인 전투가 벌어지기도 했다, 

당시 일본군은 양평 양동면에 본거지를 두고 있던 의병대를 소탕하기 위해

구둔치를 넘게 되였는데 이 고개에 매복하고 있던 150명의 의병과 격전을 치럿다, 죽기 살기로

구둔치에서 의병들이 항전을 해 준 덕분에 양동면에 집결된 의병진은 전열을 가다듬고 일본군 토벌대에

대비할 시간을 벌었다, 그러니 일제에게 구둔이라는 마을 이름이 상당히 꺼림칙했던

것만은 사실이였을 것이다,

그 옆으로 일신2교가 있는데 일신 2교 건너에는 일신2리 버스정류장도 있고

아홉구비의 골자기에 위치한 구둔마을 이라고 도 적혀 있다,

여기서 일신역은 1,2km다,

그러나 가야하는 길은 구둔역이다,

일신리길을 따라 일신역으로 가는길 

오른쪽으로 지평초등학교일신분교 였든 건물과

그 앞으로 일신2리 마을회관도 보인다,

멀리서 부터 보이든

산 위에 있는 교회, 일신교회였다,

조금은 경사진 언덕으로 올라가니

멀리 일신역이 보인다,

가물거리듯이 보여서 조금 당겨 본 일신역

집 한채 보이지 않는 허허 벌판에 덩그러니 있는 일신역

아침에 출발한 석불역보다 더 외로운 역일 것 같다,

구둔역, 이제는 더 이상 기차가 다니지 않는

역이지만 이 좁은 길로 역으로 다녓다는게 상상이 안된다,

석불역에서 평해8일 고래산길 종점인 구둔역으로 왔다,

다음번 평해 9길은 여기서 부터 시작이다, 구둔역은 지금 공사중이다,

구둔역 앞 길로 일신역으로 간다,

구둔역에서 일신역까지 가는 길도

숲이 우거저 있는 길이다,

경기옛길 평해길 제8길 고래산길은

석불역에서 구둔역까지로 거리는 18,3km다,

길은 작은 개울 다리를 건너서

언덕으로 올라간다,

구둔역에서 고래산길은 끝이 났지만 일신역으로 가야 돌아갈 수 있어니

구둔역에서 일신역간, 길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하루종일 걸어서 그런가,

작은 언덕길도 발 걸음이 무겁다,

그러다가 보이는 일신역, 역이 있는 곳이지만

역 근처 어디에도 집 한칸 보이지 않는 곳에 일신역이 있다,

일신역으로 왔다, 여기가 역 정문이다,

화장실도 아랫층 외부에 있고 역무원 사무실도 보이지 않는다,

아랫층은 보이는 그대로 이고 2층은 승강장이다,

일신역에는 버스 정류장도 있다, 이곳에 도착한 시간이

15시경이고 우리가 타야하는 열차는 17시 9분이니 2시간은 기다려야 한다,

선선한 바람이 통하는 곳에 앉아서 기다리다 보니 오후 3시 30분경에 버스가 들어 온다,

여주공영버스다, 여기는 양평군인데 여주공영버스? 그래도 버스는 다닌다,

장장 2시간의 기다림끝에 승강장으로 올라왔다, 승차장에는

승객대기 부스가 있었어나 더워서 앉아 있을 수 도 없었고 의자는 딸랑 1개 뿐이다,

긴의자 몇개 더 설치해서 열차 기다리는 승객이 이용하면 안될까?

일신역에서 지나온 일신2리 방향으로 돌아본다,

바로앞에 한줄로 이어지는 둑이 시야를 막고 있다, 이 둑은 예전에

중앙선 열차가 다니던 철길로 구둔역으로 이어진다,

철길 건너편에는 일신1리 마을도 보인다,

먼길을 걸어 왔더니 목도 마르고 2시간을 기다리는 중 이라

편의점을 찾았어나 편의점은 커녕 구멍가게도 없는 마을이 여기다,

일신역에도 자판기라도 있어면 좋을텐데, 그나마 없다,

석불역에서 일신역까지 21,23km를 걸어왔다,

공식거리는 18,3km인데 알바도 안 했는데 거리는 왜 다를까?

고래산길은 구둔역 까지다, 구둔역에서 일신역까지는

공식적인 거리가 아니기때문이다,

일신역에서 17시 09분에 무궁화호 열차로 청량리역에 18시경에 돌아왔다,

다음길인 경기옛길 평해 9길 구둔고개길은 1907년 이 고개에 매복하고 있던 150명의

의병과 일본군의 치열한 격전을 치럿던 고개이니 기대가된다, 청량리역 맞은편 음식점 골목에서

일정을 마무리 한다, 역사성 없는 옛길을 지정해준 분들을 위해 건배도 하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