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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흐르듯이 순리대로

북한산성 입구에서 산영루까지(2026, 7, 5) 본문

국내 山行日記/서울·북한·도봉

북한산성 입구에서 산영루까지(2026, 7, 5)

물흐르듯이순리대로 2026. 7. 6. 23:24

2026년 7월 5일 북한산성 입구로 들어간다, 모처름 찾아온 북한산 얼마만에 다시 찾아왔는지? 기억도 가믈거린다, 북한산입구 북한산성탐지원센터를 지나 들어가면 갈림길이 있는데 이곳에서 왼쪽은 북한산둘레길과 계곡으로 가는 길이고 직진은 대서문 방향이다,

탐방입구에서 직진해 들어가면 용암사로 들어가는 샛길도 있지만 계속 큰 길을 따라 들어가야한다

탐방지원센터에서 약 900m 정도의 거리에 대서문이 있다, 사실상 북한산성은 이 대서문에서 부터다, 대서문은 북한산성의 정문? 정도의 문인데 

이는 북한산성의 6대문중 5대문은 모두 산성 높은 곳에 위치해 우마가 다닐 수 없어나 대서문은 유일하게 평지에 위치하는 까닭이다, 그러나 산성의 공식적인 정문인 대문은 없다,(참고로 북한산성 6대문은 대동문, 대서문, 대남문, 대북문, 중성문, 대성문으로,이중 동서남북을 제외한 중성문은 2중 방어문이고 대성문은 임금님의 전용문이기도 했다),

북한산성 주 통로인 이 길은 보도블럭을 깔아 길을 다듬어놓았지만 예전에는 산길이 아니였을까?

북한산성은 서울과 경기 고양시에 걸쳐 있는 산으로 조선 숙종(1711년)때 축조한 대표적인 산성으로,

한양도성을 방어하기 위해 건립한 국가사적 제162호다, 현재도 성문, 장대, 행궁터, 사찰터 등이 남아있어 역사 탐방과 등산을 함께 즐길 수 있는 명소다,

대서문에서 약380m 거리에 무량사(無量寺)가 있다, 無量寺는 성내에 위치한 사찰로, 조선 숙종때 산성 축성과 함께 군사적·종교적 기능을 했던 절이다.  

조선숙종 37년(1711) 북한산성 축성과 함께 여러 사찰이 성내에 건립되였는데 무량사도 그중 하나로, 당시 성내에는 12 ~ 21개 사찰이 있었는데 모두 승군 조직과 방어체계에 포함되였다, 

무량사는 이름 그대로 무량수봉(아미타불)을 모시는 절로 불교적 신앙과 군사적 기능을 동시에 수행한 사찰이다,

무량사 배치도

무량사도 지나서

無量寺에서 약 200m를 더 가면 광장처름 보이는 곳이 있는데 여기는 예전에 북한산 방문객을 상대로 영업을 하던 상가 일대였다, 지금은 밉구 상가지역으로 모두 이전을 하고 이곳에 남아있는 시설은 모두 공공 편의 시설이다,

대남문에서 부터 계곡을 이루고 흘러내리는 계곡을 건너가는 다리를 건너가면

길은 양쪽으로 나눠지는데 왼쪽은 보리사와 백운대로 가는 길이고 왼쪽은 중성문과 대남문으로 가는 계곡길이다,

오늘은 오른쪽 대남문 방향으로 간다, 가는길 옆에는 주차장도 있다, 국립공원 안 주차장? 물론 성내 사찰 차량들이기는 하겠지만 이건 아닌것? 같다, 성내 사찰 스님들이나 보살들 모두 차는 성밖에 두고 걸어서 다니시라 절을 찾아 걷는것 자체도 수양일테니 그정도 도 싫어면 절을 떠나던가,

대남문에서 부터 계곡을 이루고 흘러내리는 계곡릏 따라 들어가는 길은 서서히 고도가 높아진다, 오랬만에 왔더니 예전에는 없던 데크길도 만들어 놓았다,

선봉사도 지나간다, 선봉사는 고양시 덕양구 북한동에 위치한 작은 사찰로, 규모는 크지 않지만 아담하고 정감 있는 전각들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절이다,

조금은 거칠고 가파른 길은 이렇게 데크로 정비를 해놓은 길을따라

차츰 자연에 녹아들 정도의 숲길을 따라 여유롭게 가다보면

조금은 가파른 언덕위에 대문이 보이는데 이 대문은 북한산성 내에 있는 중성의 대문인 중성문이다, 중성문은 1714년 조선 숙종 때 완공된 성문으로, 북한산성의 중성(重城)에 위치한 홍예문으로 대서문과 대남문 사이의 평탄한 지형을 방어하기 위해 차단성 역할을 했으며, 현재는 복원된 문루와 홍예문이 남아 있다,

북한산성 중성문은 조선 숙종 때 도성 방어를 강화하기 위해 세운 차단성의 핵심 성문으로, 군사적·역사적 가치가 큰 유적이다. 현재는 복원된 문루와 홍예문, 암문 등이 남아 있어 북한산성의 중요한 문화재다.

그리고 중성문옆 계곡에는 산성내 2개의 수문 중 한 곳인 수문도 있다,

중성문에서 내려다 보이는 계곡에 수문(水門)이 있었지만, 흔적만 남아 있고 원형은 사라졌다, 수문은 계곡물을 통제하고 적의 공격을 이중으로 방어하는 차단성 역할도 하는 용도로 만들어 졋어나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졋다

중성문도 지나 올라간다 가다가 돌아보니 중성문에서 쉬고 있는 사람들과 중성문, 그리고 중성문을 에워 싸고 있는 숲이 그림처름 아름답다,

중성문 다음은 노적사(露積寺)입구다, 북한산 노적봉 아래에 위치한 사찰로, 조선 숙종 38년(1712)에 산성 수비를 위해 창건된 진국사에서 유래했다. 현재는 대한불교조계종 소속 전통사찰로 지정되어 있으며, 고양시 향토유적 제63호인 석사자상이 남아 있다,

대남문에서 부터 흘러내리는 계곡은 계속해 어어진 가뭄으로 바짝 말라 있다, 물이 없는 계곡은 썰렁 하기만 하다,

주일 북한산은 많은 등산객들로 붐비는 산이다, 비가 온다는 소식이 있어서 비 맞을 채비까지 하고 올라가는 사람들이 줄 지어서 보인다, 

그래도 오늘은 비가 온다는 예보로 평소에 비하면 매우 적은 편이기는 하지만

바위를 휘감아 흘러내리는 웅장한 소용돌이 계곡물을 상상해 본다, 

그래서 일까? 바짝 말라붙은 계곡이 아쉽기만하다,

북한산은 곳곳에 이정표가 설치되여 있어 길을 몰라도 걱정할 일이 없는 산이기도 하지만 전국 이정표의 기본 교과서  이정표 이기도 하다

비교적 평탄한 길에서 이제 다소 가파른 언덕으로 올라간다 물론 옆에는 데크계단길도 있는 이곳은

북한산성내 비석거리다, 북한산성 내 비석거리는 승병과 사찰 중건, 인물들의 공덕을 기록한 비석들이 모여 있는 구간으로, 북한산성의 군사적·불교적 역사를 동시에 보여주는 장소다. 탐방로를 따라가며 비석들을 살펴보면 당시 사람들의 신앙과 삶을 엿볼 수 있어 등산과 문화 탐방을 함께 즐길 수도 있겠다.

비석거리 앞 계곡에는 호젓한 누각도 있는데 이 누각의 이름은 산영루다, 山映樓 라는 이름은 산 그림자가 물에 비친다 는 뜻에서 유래했다. 즉, 북한산의 능선과 풍광이 계곡 물 위에 반사되는 아름다운 경치를 표현한 이름으로

산영루(山映樓)는 조선 후기 문인들이 풍류를 즐기며 시와 산문을 남긴 장소로. 1925년 대홍수로 유실되었다가 2014년 고양시의 역사복원사업을 통해 현재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산영루는 단순한 정자가 아니라 북한산성의 풍광과 조선 후기 지식인들의 문화 활동을 상징하는 장소였다. 현재는 복원된 모습으로 북한산성 내에서 역사와 풍류를 함께 느낄 수 있는 명소로 자리하고 있다.